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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7화 (7/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7화

루미넌 백작가

야영 준비를 마치고 불가 근처에 적당히 자리를 잡은 알렉스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에 쉬이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안전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교단에 접근한다는 선택은 보류해야 한다.

그럼 처음의 계획대로 종자 자리를 구해 기사 수련을 계속해야 할까?

‘아니야. 망할! 그것도 이제 안전하지가 않아.’

알아보니 이 지역을 지배하는 영주의 성채가 바로 델트시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신성력을 다루는 존재가 그렇게 희귀하다면, 도비슨과 용병들로 인해 자신에 대한 소문이 델트시에 퍼지게 될 수도 있다.

사제도 아닌데 신성력을 다루는 이에 대한 소문이 돈다?

자연히 교단 측에서 그에 대해 조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인데 같은 영지 내에 자리를 잡고 있다면, 금방 내 행적을 따라오겠지.’

처음부터 감추고 있었으면 모를까, 지금부터 조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상인과 용병들에게 자신에 대해 함구해달라고 말해봐야, 입이 몇 개인데 비밀이 유지되겠는가?

게다가 자신은 늙었다지만 커다란 전투마를 탔고, 기사라고 간신히 우겨볼 만한 정도지만 일반인치고는 훌륭한 무장을 갖추고 있다.

또 그런 것치고는 아직 십 대인지라 나이든 얼굴도 아니니, 어딜 돌아다녀도 쉽게 눈에 띄는 외형이라 할 수 있다.

‘소문이 퍼지면 도시 내에선 금방 꼬리를 잡힐 거야. 환장하겠군. 일단 이들과 떨어져야겠어.’

이 사람들의 입을 전부 막을 방법은 없다.

신성력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해봐야 수상하게 생각하기만 할 터.

그러니 이들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신성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움직여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 무난한 해결책일 것이다.

‘도시에 도착해서 헤어지고 나서는 늦을지도 모르니, 자고 내일이 되면 대충 핑계를 대고 따로 행동해야겠군.’

짐수레로 상품을 나르는 행렬보다야, 홀로 말을 달리는 자신이 먼저 도시에 도착할 것은 확실하다.

가서 대강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충하고 다른 도시로 떠난다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신성력을 사용하는 신원불명의 남자에 대한 소문 따위는, 실체를 찾지 못해 금방 잠잠해지게 될 터.

‘분명 그렇게 되겠지. 앞으로 조심하도록 하자고.’

그런 생각과 함께, 알렉스는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 * *

‘진짜 하루하루가 사건의 연속이구만!?’

날이 밝아 잠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알렉스는, 불가항력으로 찾아온 위기에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뭔가 온다!”

“말? 허업! 기사들이야!”

아침을 맞이하기가 무섭게 가도 한쪽에서 땅을 울리며 달려오는 기마행렬.

그것을 발견한 용병대는 다들 표정이 굳은 채로 대열을 갖췄다.

접근하는 것은 다섯 필의 말.

그들의 선두에는 전신을 판금갑주로 무장한 기사가 있었다.

기사라고 말하지만 사실 중장보병 수준의 무장에 불과했던 프라이먼과 달리, 살아 숨 쉬는 살인 병기로 취급받는 진짜 기사의 모습이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한 용병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풀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한 기사는 단 1기라 해도 공포의 대상이다.

아무리 소수정예라 해도 일개 용병대 따위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기사의 뒤에는 4명의 기마병이 뒤따르는 상황.

싸움이 벌어진다면 이쪽이 한순간에 썰려 나갈 것이 자명했다.

물론 여기가 전쟁터도 아닌데, 아무 이유 없이 지나가던 기사가 용병들을 공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다는 말은, 완전히 ‘0’이라는 건 아니라는 의미.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사가 심심풀이나 혹은 급전이 필요하단 이유로, 떠돌이 상단을 습격하는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아무리 잘 발달된 도시라 해도 현대와 비교하면 치안이 개판인 세상이기에, 범죄가 일어날 확률은 굉장히 높은 편에 속했다.

하물며 도시 내부가 아닌 바깥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속도를 줄이는데?”

“다행이다. 강도질을 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아.”

“다들 눈깔아! 기사랑 엮여 문제를 일으키면 다 죽는 거야!”

다행스럽게도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다.

천천히 속도를 늦추다가 멈춰선 기사는, 용병들과 짐수레를 쓱 훑어보고는 외쳤다.

“상단인가? 책임자가 누구냐?”

“기, 기사님께 신의 가호가 있으시길. 루미넌 백작님의 기사님이십니까?”

자신을 찾는 기사의 목소리에, 책임자인 도비슨이 앞으로 나서며 이 지역의 영주가문을 언급했다.

“흥! 네까짓 상인 놈이 감히 입에 올릴 만한 이름이 아니나, 그분이 나의 주군 되시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 땅의 적법한 통치자이신 게일 루미넌 님의 충실한 기사, 다르온이라 한다!”

“죄, 죄송합니다. 한데 다르온 경께서 어쩐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

“가지고 있는 상품 중에 포션이나 그에 준하는 치료물품이 있느냐?”

기사를 뒤따르던 기마병들의 면면을 살피던 알렉스는, 그가 그런 질문을 던진 이유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딱 한 필의 말에만 두 명의 사람이 함께 올라타 있었는데, 뒤에 앉은 이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용모가 깨끗하고 입고 있는 옷도 고급스러운 게 병사로 보이진 않는군. 귀족인가?’

알렉스의 안색이 어두워져갔다.

뒤에 일어날 상황이 뻔히 눈에 보였기 때문.

짐작하는 대로, 부상자는 이곳 영주의 자제 중 하나였다.

기사의 질문을 받은 도비슨은 상인답게 눈치가 빠르고 주워들은 게 많기에, 금방 돌아가는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저 귀공자가 백작의 자제구나! 외모를 봐서는 장남은 아니고 나이 차가 난다는 차남인 모양인데. 어쩌다 다쳤지?’

영지전이 발생하지 않고서야 영주가문이 영토 내에서 공격당할 리는 없다.

차남이 사냥을 좋아해 허구한 날 병사들을 끌고 다닌다더니, 아마도 산짐승을 쫓아 무리하게 나대다가 다친 모양이었다.

‘귀족과 연관되는 건 도움을 베푸는 일이라도 위험하지만, 잘하면 큰 돈줄을 잡을 수도 있는데.’

도비슨의 시선이 알렉스에게로 향했다.

이 근방에 한해서는 많은 상행 경험으로 나름대로 돈을 만지는 도비슨이었지만, 포션처럼 귀족들이나 주로 사용하는 고가품은 취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상행에는 뛰어난 사제가 동행하고 있지 않은가?

어째서 사제라는 명칭으로 자신을 부르지 말라 하는지 의아하긴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확실한 건 콧대만 높고 이적을 행하진 못하는 흔한 사제들과 달리, 그는 신의 권능을 허락받은 진짜 사제라는 점이다.

도비슨이 알기로 그런 능력을 가진 사제는 델트시의 사목구(교단행정의 지방단위)중에선, 사목구장을 맡고 있는 대사제나 그 바로 아래의 주임 사제 정도다.

엉덩이 무거운 그런 고위 사제 나리들과 비견되는 실력자인 알렉스라면, 어렵지 않게 귀족 자제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이놈! 대답이 왜 이리 늦는가!”

머리를 굴리던 도비슨에게 기사가 호통을 쳤다.

“엇! 죄송합니다! 아쉽게도 저희 상단에선 포션을 취급하고 있지 않으나…….”

“빌어먹을! 한시가 급한 때에 도움도 되지 않는 것들이 괜히 시간을 지체하게 만들다니!”

포션이 없다는 말에 기사는 곧바로 검을 뽑아 들며 분노를 터뜨렸다.

이쪽에서 기사를 멈춰 세운 것도 아닌데, 제멋대로 화를 내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당하는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기사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도비슨을 죽여도 반발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사색이 된 도비슨이 빠르게 입을 놀렸다.

“아, 않지만! 사제! 여기 사제님이 계십니다!”

일그러진 얼굴로 살기를 풍기던 기사가, 사제라는 단어에 멈칫거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사제? 어느 분이? 성법이 가능하신 분인가?”

신성술 혹은 성법.

부르기야 어떻게 불러도 되지만, 요는 신성력을 다뤄 상처를 치료하는 행위가 가능하냐는 것.

‘결국 예상대로 되는군. 망할…….’

알렉스는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부상자를 봤을 때부터 느낌이 안 좋더라니, 결국 자신에 대해 언급하는 이가 나왔다.

기사에다가 귀족으로 보이는 이까지 얽혀 있으니, 시치미를 뗄 수도 없는 상황.

이렇게 된 이상 치료를 해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치료만 받고 떠나주면 고맙겠지만, 분명 나에 대해 궁금증을 품을 거란 말이지.’

어떻게 둘러대야 좋을지 머릿속으로 고민하며, 알렉스는 기사에게로 다가갔다.

“접니다.”

“……으음, 사제시라고?”

“예, 뭐. 다치신 분을 말에서 내리십시오.”

성직자의 예복을 입진 않았지만 도시 내가 아닌 바깥을 다닐 땐, 사제들도 무장을 갖추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제라면 무조건 폭력을 거부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의외로 사제들 중에는 귀족처럼 검술을 기본소양으로 익히는 이가 적지 않다.

알렉스를 자세히 살펴본 기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빛에 약간의 의혹을 드러냈지만, 이내 별말 없이 귀족 자제에게로 몸을 돌렸다.

인상을 찡그린 젊은 사내가 말에서 내렸다.

“조슈앙 공자님. 여기…….”

“나도 들었소. 내 부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기에, 알렉스는 곧장 그에게로 다가갔다.

“다친 곳을 보여주시겠습니까?”

“……흠. 그러지.”

루미넌 가의 차남 조슈앙 루미넌은, 가까이 다가온 알렉스를 못 미덥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가슴 섶을 풀어헤쳤다.

꽁꽁 싸맨 붕대를 풀자, 그리 깊지 않은 상처가 눈에 띈다.

‘에게? 별로 심한 부상도 아니잖아?’

군데군데 보이는 작은 멍들과 길긴 해도 옅은 생채기들.

딱히 어떤 조치가 없어도 청결을 유지하고 붕대만 잘 갈아주면, 자연적으로 아물 만한 상처였다.

뭐, 시간이 조금은 걸리겠지만.

물론 작은 상처에도 잘못된 상식 때문에 감염으로 죽어 나가는 이가 널린 세계이니, 마냥 엄살이라고 할 수도 없긴 하다.

알렉스의 손에서 치유의 손길이 발동되었다.

“헛!”

“오오! 신성한 빛이야!”

“신의 은총이 내리셨다!”

용병들을 치료했을 때처럼, 알렉스를 제외한 모두가 감탄을 터뜨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리 심한 부상도 아니기에, 이내 대부분의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이럴 수가! 잠시나마 의심을 품은 내가 부끄럽군!”

기적을 몸으로 받은 조슈앙은 호들갑을 떨며 입을 열었다.

“저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이런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니, 필시 교단에서 주목하는 중요한 인재시겠구려!”

“그게…….”

“아! 이 고마움을 보답해야 하니, 이럴 게 아니라 우리 가문의 성으로 모시겠소.”

“괜찮은-”

“성심을 다해 대접하리다. 이 조슈앙을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한 자로 만들지 말아주시오.”

“그, 아쉽지만 저는 일정이-”

어떻게든 따라가지 않으려고 말을 고르는데, 눈치를 보던 도비슨이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알렉스 님. 델트시까진 여기 공자님과 함께하시는 편이, 속도가 느린 저희 상단보다 훨씬 쾌적하실 겁니다.”

“아! 알렉스란 이름이시군. 목적지가 델트시라면 더 말할 것도 없구려! 분명 면식이 없으신 분인데, 혹시 델트시로 새로 부임하시는 사제님이시오?”

‘저런 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찡끗거리는 도비슨을 보며, 알렉스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따라가고 싶지 않다는 기색을 전혀 읽지 못하는 거냐?

어쨌거나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과한 거절은 의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능력이 된다면 누가 뭐래도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할 텐데.

18레벨에 불과한 자신은 이 세계 기준으로도, 아직 여러 사람의 눈치를 봐야하는 약자에 속한 존재다.

평기사 한 사람만 해도 레벨로 따지면 40 정도는 된다.

괜히 수상하게 여겨졌다가 붙잡히면 떨쳐낼 방법이 없었다.

‘힘이 부족하니 자꾸 상황에 휘둘리게 되는군. 끄응, 대충 밥이나 얻어먹고 급한 일이 있다고 떠나면 되겠지.’

예정과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도비슨의 상행에서 떨어져 먼저 델트시에 도착하게 되리란 건 변함이 없다.

귀족과 연관된 것이 꺼림칙하긴 했지만, 적당히 대접받고 빨리 벗어난다면 별 탈은 없을 것이다.

“예.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조심하기만 한다면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알렉스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조슈앙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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