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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6화 (6/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6화

상인, 용병, 도적(3)

정적 속에서 알림이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니, 갑자기?

레벨이 올랐다는 건 얼마든 간에 경험치를 습득했다는 소리인데, 전투도 끝났는데 이게 무슨 경우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설마 치료행위로도 경험치가 오르는 건가?

아니면 간신히 숨이 붙어 있다가 뒤늦게 죽은 놈이 있었나?

아무튼 덕분에 치유의 손길을 찍느라 미뤘던, 방어 본능의 레벨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방어 본능 Lv 2]

스킬마다 최대 레벨의 차이가 있는데, 방어 본능은 원래 5레벨이면 마스터할 수 있는 스킬이다.

워낙 효율이 좋은 스킬이니, 빨리 레벨을 올려서 마스터해두고 싶은 마음이다.

스킬창에 신경 쓰느라 잠시 가만히 있었더니, 헥터가 쩔쩔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사, 사제님이신 줄 몰라 뵙고…….”

“아? 전 사제는 아닙니다.”

“옙? 무슨 말씀을……? 신의 권능을 쓰시는 모습을 이리 보여주셨는데…….”

무슨 또 권능까지야.

이 정도 부상은 사실 마법사의 회복마법이나 약제사의 포션으로도 충분히 커버되는 정도다.

신체 절단의 상태이상도 단숨에 치료하는 고레벨 사제와 비교하면, 신성력이라 하기도 민망한 수준.

마치 대단한 기적을 펼치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헥터의 반응은, 솔직히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이러나 싶을 정도였다.

“대장, 상인 나리의 상처를 좀 봐주쇼! 쿼렐이 깊게 박힌 건 같진 않아 뽑았는데, 피가 영 멈추질 않네.”

어색한 공기가 맴도는 가운데.

용병 한 명이 수레 위에 쓰러져 있던 도비슨을 부축해왔다.

“뭐!? 이 무식한 새끼가! 부상자는 내가 보기 전에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니까!”

“아 나한테 자꾸 어떻게 좀 해달라고 징징거리는데 어쩌겠수?”

“으으…… 나 좀, 날 살려주…….”

안색이 창백해진 도비슨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울먹거리다가 정신을 잃었다.

사실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상처는 아닌 것 같으나, 원래 몸에 화살이 박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침착함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심한 출혈이 아닐지라도 몸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오는 걸 본다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제가 하죠.”

아직 신성력이 바닥을 드러낸 건 아니기에, 치유의 손길을 사용해 도비슨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오오!”

“신의 기적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다시 한번 주변에서 놀라움에 가득 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거참. 괜히 민망해지네.’

그렇게 알렉스의 능력이 알려지게 되며 잠시 소란이 일었으나, 슬슬 상황을 정리해야 했기에 용병들은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밝은 얼굴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용병들은 습격자들의 시체에서 전리품을 수거했다.

저품질의 가죽 갑옷이나 싸구려 철로 대충 두드린 칼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런 것들도 돈 주고 사려면 한 달 먹을 빵값 정도는 내야 한다.

장비라는 게 기본적으로 소모품이고 저급품일수록 망가지기 쉬운 걸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무구의 가격이란 건 꽤나 높게 책정되는 편임을 알 수 있었다.

전리품의 소유권은 용병들에게 귀속되기에, 막 살벌한 전투가 끝난 후인데도 여기저기서 즐거운 환호가 들려왔다.

“저, 사제님.”

“알렉스입니다. 사제가 아니라니까요.”

“어, 음…… 예. 알렉스 님. 사…… 아니, 알렉스 님께서 처리하신 놈들의 전리품을 수거해 왔습니다.”

“아? 제가 받아도 됩니까?”

손을 거들긴 했으나 상단에 정식으로 고용된 관계가 아니기에 용병들에게 전리품을 나눠달라 말하기가 애매했는데, 의외로 저쪽에서 먼저 알렉스의 몫을 가지고 왔다.

“감히 어떤 놈이 귀하신 분의 몫을 탐내겠습니까요. 헤헤. 아! 이런 자잘한 물품을 직접 처리하기 번거로우시면, 저기 상인 나리에게 맡기시고 대금을 받으시면 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이고, 별말씀을.”

갑자기 달라진 대접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소소한 수준의 신성력을 보여줬을 뿐인데, 이리도 자신을 어려워할 줄이야.

‘전사 계급에 비해 사제나 마법사 같은 직종의 신분이 더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슨 대귀족을 보는 것처럼 대하니 기분이 영 이상하네.’

기절해 있던 도비슨이 깨어나고 나서야,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귀하신 분께서 이리 함께해 주시고 제 부상까지 치료해 주시다니, 정말이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리 겸허하시기까지…… 과연 그분의 은총을 받을 만하십니다.”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며 자신을 추켜 세워주는 도비슨에게, 알렉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원하던 정보들을 얻어냈다.

‘신성력의 가치가 내 예상보다 더 높은 거였구나!’

이곳에서 신성력이라는 것은, 마냥 신에 대한 믿음이 신실하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몸이 멀쩡하다고 아무나 훈련을 하면 기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듯, 신성력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을 몸에 받아들이기 위해선 타고난 재능이 필요했다.

현대의 신부나 목사 중에 눈에 보이는 기적을 일으키고 다니는 사람이 없듯이, 교단의 사제 역시 신성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를 보긴 어려웠다.

교단의 서품을 받은 정식 사제 중에서도, 알렉스가 보여준 정도의 치료가 가능한 이는 반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긴, 게임에선 유저들이 전직 퀘스트를 하고 레벨 조금만 올려도 주교급 이상의 성직자로 취급받았지. 고렙 사제면 교황이나 성녀보다 뛰어난 수준이었고.’

기본적으로 유저들은 스토리상 신의 가호를 받는 구원자쯤으로 취급되기에, NPC들과의 파워 밸런스가 심하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온라인 게임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도 이상할 게 없었지, 현실이라면 사실 이 정도가 정상이긴 할 것이다.

‘그럼 내가 생각을 잘못했군. 신성력이 그렇게 희귀한 능력이라면, 기사의 종자 따위로 들어갈 필요가 없는 거잖아?’

영주에게 마수 부산물을 진상하고 몸을 의탁하려던 생각은 접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이 알고 있던 성기사라는 건 결국, 기사로서의 능력이 주가 되고 보조 직업이 사제인 전사 계급이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힘을 가진 신분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선, 먼저 기사로 성장하는 코스를 밟아야 한다고 마냥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신성력이 이렇게 고평가를 받는 능력이라면, 오히려 보조 직업인 사제 쪽을 잘 활용해보는 편이 더 낫지 않나 싶다.

“도비슨 씨. 델트시까진 얼마나 더 가야 하겠습니까?”

“아, 초행이라 하셨지요? 별일 없다면 내일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겠습니다만, 방금처럼 전투가 발생하면 하루 더 야영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상행에서 도적 떼가 자주 나오는 편입니까?”

“아예 없진 않지만 원래는 그렇게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닙니다. 요즘 델트시의 치안이 안 좋다는 소문을 들어서 조금 비싸도 추천받은 용병대와 계약했는데, 이제 보니 정말 잘한 선택이었지 뭡니까.”

들어보니 헥터의 용병대는 이 근방에서 꽤나 유명한 모양이었다.

수는 많지 않아도 경력 있는 베테랑들이 모인 집단인지라, 다들 기본 무장이 충실하고 칼솜씨도 괜찮았다.

‘용병이라. 내가 성기사가 아닌 다른 흔한 전사계열 직업이었다면, 용병대 가입을 알아보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네.’

판타지 소설 같은 걸 보면, 이런 세계에 떨어진 주인공은 적어도 한 번쯤은 용병 일을 거쳐 가곤 했다.

물론 성직자가 꽤 대단한 직업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 용병 같은 건 이제는 그다지 메리트 있는 선택지는 아니다.

‘성기사 키우길 잘했군. 하! 이런 데 와서 직업 부심을 갖게 될 줄은 몰랐는데.’

속으로 웃음을 흘린 알렉스는 도비슨에게 교단에 대한 정보들을 물어보았다.

도시에 도착하는 대로 교단 쪽과 관계를 가져볼 생각이었다.

“델트시에도 신전이 있습니까?”

“물론입죠! 정말 아예 모르시나 보군요? 델트시가 대형 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중간 크기는 되는 곳입니다. 예루스 님의 신전이 당연히 들어서 있지요.”

“그렇군요. 다른 신전은 더 없나 보죠?”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으나, 그 말을 들은 도비슨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예? 무슨 말씀을? 다른 신이라니, 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제가 상행을 다니느라 신전에 자주 들리진 못하지만, 한 번도 그분을 의심한 적이 없는 충실한 신도입니다. 장난이 너무 과하시군요.”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다는 듯한 반응에, 알렉스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라? 예루스라는 신이 이 세계의 유일신인 건가? 그런 세계관은 아니었는데?’

도비슨의 반응에 살짝 혼란이 왔다.

알렉스는 자신이 하던 게임의 세계관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직업이 성기사이지만, 솔직히 어떤 신을 모시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대규모 전쟁을 컨텐츠로 하는 그 게임에는 캐릭터가 여러 개의 국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나라마다 믿는 종교가 달랐었다.

신이 여럿 있었다는 소리다.

망명 시스템이 있어 자신도 몇 번이나 소속 국가를 바꾼 적이 있기에, 그때마다 자동으로 국교에 맞춰 개종이 되었었다.

‘어차피 종교가 바뀌어도 성기사 직업의 스킬은 다 똑같아서, 딱히 관심을 가지진 않았었는데.’

밸런스 조절의 문제 때문인지, 종교마다 다른 특색이 있다거나 하는 설정은 없던 거로 기억한다.

뭐 NPC들에게야 각 신마다 뭔가 다른 점이 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유저들 중 종교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이에겐 차이점이 없었다.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자니, 도비슨이 눈치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성서의 말씀에 따르면 아주 먼 고대에는 이 땅이 신들의 세상이었다고 적혀 있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옛 신들이 사라지고 저희 지성체들을 창조하신 예루스 님만이, 주신으로서 오롯이 존재하시지 않습니까?”

“아, 예…… 그렇죠.”

“뭐 교단에서 악으로 규정한 이단 숭배자들이, 어딘가에서 활동한다고 들은 적은 있습니다. 설마 그런 입에 담기 불미스러운 이야기를 제게 묻는 건 아니시겠지요?”

“그, 그럼요. 이단은 나쁘죠. 제가 말이 조금 헛나왔던 모양입니다. 하하.”

어색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친 알렉스는,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것을 느꼈다.

‘예루스…… 예루스라? 거쳐 간 적 있는 종교 같기도 하고, 기억이 잘 안 나네. 내가 마지막에 소속된 나라의 국교가 뭐였더라?’

우스운 일이긴 하다.

성기사가 자신이 모시는 신이 누군지도 모르다니.

‘아니, 마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잖아? 이거 굉장히 심각한 문제 아닌가?’

게임에선 퀘스트를 할 때나 가끔 거론되는 이름이라 몰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교단 쪽에 몸을 의탁하고 활동의 기반을 다져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래서는 쉽게 말을 꺼낼 수도 없지 않은가?

‘저는 신성력을 다룰 줄 압니다. 짜잔!’ 하고 예루스의 교단과 접촉했더니, ‘아니! 이교도다!’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크고 작은 규모의 종교가 여럿인 세상에서도 분쟁이 끊이질 않는데, 유일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섬기는 자가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런 X발. 갈기갈기 찢길 때까지 고문하다가 화형시키는 거 아니야?’

등골이 서늘해진다.

괜히 신성력에 대해 공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더 자세히 알아보기 전까지 교단은 피해야 한다. 내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어쩌면 최악의 경우, 자신은 평생 능력을 숨기고 도망자처럼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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