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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5화 (5/151)

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5화

상인, 용병, 도적(2)

나타난 도적 떼의 수는 근 이십에 달했다.

용병들의 두 배에 가까운 수.

적들 역시 레더 아머나 갬비슨(누비 갑옷)을 걸치고 칼 한 자루씩은 들고 있는 것이, 무장 상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말 탄 놈을 노리자니까!”

“그럼 네가 맞추던가, 병신아!”

달려오는 도적들 뒤로 석궁을 든 사수가 두 명 보인다.

아마도 말을 탄 전사인 알렉스를 노렸다가 빗나간 쿼렐이, 곁에 있던 도비슨의 몸에 틀어박혔던 모양이었다.

“개자식들!”

“죽여!”

“목을 잘라주마!”

용병들과 도적 떼가 맞부딪혔다.

알렉스는 말에서 내려 전투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고작 1레벨의 라이딩으로는 마상 전투를 벌이기가 곤란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괜히 전투마를 상하게 할 가능성이 높았고, 낙마하기라도 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계속 말에 타고 있다가 사수들의 표적이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망할…… 도망치지 않고 싸우는 게 옳은 선택이길.’

일견 불리해 보이는 상황이라, 심장이 빠르게 뛰며 목덜미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혼자 말을 타고 도주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런 싸움에선 항복이니 인질이니 하는 것도 없다.

도적들은 보이는 이들을 전부 죽이고 짐을 약탈하려 들 터.

상단의 사람들과 정이 쌓일 만큼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의리를 지킨다고 같이 싸우다 패배하면 그대로 목숨이 날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도망만 쳐서는 성장할 수가 없어.’

불리해 보인다고 피하기만 해서는 강해질 수 없다.

그렇게 도망만 치다가 정작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되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기회가 있을 때 착실히 전투 경험을 쌓아둬야 한다.

그래야 레벨을 올릴 수 있고, 더한 위기가 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흐아앗!”

어느 용병을 향해 막 칼을 찔러 넣으려던 도적의 어깨에, 알렉스의 메이스가 내리꽂혔다.

우드득!

“크악!”

한 방에 끝내기 위해 머리를 노린 것이 조금 빗나갔다.

어깨가 박살 나며 비명을 지르는 도적에게, 다시 한번 풀 스윙으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빗나가지 않았다.

쓰러진 도적에게서 터져 나온 핏물과 뇌수가 바닥을 물들인다.

캉!

옆에서 덤벼드는 다른 적의 공격을 인식하고, 방패를 들어 막아냈다.

상대가 무기를 거두며 다시 다른 곳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메이스를 올려쳐 반격한다.

제대로 노리고 가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운 좋게 상대의 턱에 맞았다.

턱이 박살 나며 뽑혀 나온 이빨들이 허공에 비산한다.

깡!

뒤에서 접근해 휘두른 적의 칼날이, 등에 눈이 달린 것처럼 신속하게 돌아간 방패에 의해 막혔다.

방어 본능 스킬의 깔끔한 가드.

한 박자 늦게 적을 인식한 알렉스가 몸을 돌려 발을 내질렀다.

중요한 급소를 걷어차인 상대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몸을 숙였다.

머리를 때려주기 딱 좋은 자세와 위치.

팔이 원을 그리며 그 뒤를 따라 나온 메이스가 상대의 두개골을 파고들었다.

‘으윽!’

세 명 째를 상대하고 나니, 옆구리에 따끔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언제 맞았는지 쿼렐이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

게임에서 방어 본능 스킬은 일정 확률로 피격 판정을 무효화하는 것이었다.

그 확률이란 것도 현실에도 그대로 따라온 모양인지, 이번에는 방패가 절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다행히 가죽 튜닉에 체인 메일, 패딩 아머까지 겹겹이 입은 덕분에 상처는 얕았다.

지근거리에서 쐈다면 옆구리가 관통당했을지도 모르지만, 멀찌감치 떨어진 사수의 사격은 갑옷을 뚫고 깊게 파고들 정도의 위력을 내지 못했다.

‘엿 같은 활쟁이 새끼들.’

매달려 있는 쿼렐을 잡아 뽑고, 알렉스는 치유의 손길을 발동해 상처를 치료했다.

부웅-!

그사이 가까이 다가오려는 도적이 보여, 거칠게 메이스를 휘둘러 견제했다.

황급히 물러나며 다시 기회를 살피던 상대는, 옆에서 튀어나온 용병의 도끼에 머리가 쪼개지며 쓰러진다.

멍청한 새끼.

아무것도 안 했는데 죽어버리긴.

그래, 다음은 누구냐?

눈을 돌려 상대를 찾는다.

같이 적을 해치운 용병이 뭐라고 말을 거는 것 같은데, 긴장과 흥분 탓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몸을 돌려 메이스를 휘둘렀다.

“워! 이봐! 진정하라고!”

같은 편이었다.

용병대장이라 소개했던 그 사내다.

아까 일행들을 소개할 때 이름을 듣긴 했는데.

뭐였지? 헥터라고 했던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자니 시야가 확장되며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쓰러진 도적들과 부상당해 신음하는 용병들이 보였다.

전투가 끝나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으쇼. 다 끝났소.”

후욱후욱.

용병대장 헥터의 말에, 알렉스는 자신이 입으로 폭풍을 만들어낼 것처럼 거세게 숨을 헐떡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숨을 고르고 나자 머리가 조금 맑아지며, 주위의 사물들이 더 명확하게 보였다.

“같이 싸워줘서 고맙소. 제법 잘하더군.”

‘이겼구나.’

다른 이들은 어떻게 싸운 건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전투는 종료되어 있었다.

쓰러져 있는 시체들은 전부 습격한 도적들이다.

헥터와 용병들은 꽤 실력이 좋은 자들이었는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피해 없이 전투에서 승리했다.

사망자는 없이 중상자 두 명에 나머지는 경상.

도적들은 열넷이 죽자 나머지는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갔다.

“멀쩡한 놈들은 쓰러진 적들 확인하고 주변 살펴!”

“조니 이 새끼, 이거 잘못하면 숨넘어가겠는걸?”

“젠장! 길게도 베였군. 누가 실이랑 바늘 가져와! 깨끗한 물도!”

“대장. 상인 나리가 화살에 맞은 것 같은데?”

“뭐? 염병, 싸운 건 이쪽인데 왜 의뢰주가 다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용병들로 인해 소음이 끊이질 않았다.

“후…….”

길게 호흡을 내쉬고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킨 알렉스는, 자신의 레벨이 올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태창을 확인했다.

[알렉스 Lv 17]

[잔여 스킬 포인트 1]

‘스킬 하나 더 찍을 수 있겠군.’

너무나도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방어 본능을 2레벨로 올리려던 알렉스는, 문득 부상당한 용병들이 시선에 들어와 움직임을 멈추었다.

게임에선 눈에 보이는 생명력 포인트가 존재하기에, 이 수치가 0이 되지만 않는다면 어떤 부상을 당해도 상관이 없었다.

치료 마법을 받거나 회복 물약을 사용하거나, 하다못해 빵을 먹고 휴식만 취해도 생명력은 저절로 회복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사람은 작은 상처만 입어도, 관리를 잘못하면 허무하게 죽을 수 있다.

‘힐링 계열 스킬은 유용하니 더 올려둬도 나쁠 건 없지. 성기사 만렙을 찍을 때까지 스킬 마스터까진 아니더라도, 최소 레벨5 정도는 올리는 게 정석이었고.’

옆구리에 작은 구멍 하나 난 걸 치료했을 뿐이라, 아직 신성력은 충분히 남아 있다.

함께 싸운 용병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알렉스는 치유의 손길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치유의 손길 Lv 2]

다친 용병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부하들의 부상을 돌보던 헥터가 살짝 날카로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 오지 말고 정리하는 걸 도와주시오! 부상자에게 좋지 않소!”

헥터는 손목이 반쯤 잘린 용병에게 붕대를 감아두고, 등에 긴 자상이 생긴 다른 용병의 상처를 꿰매던 중이었다.

“치료를 도우러 온 겁니다.”

“음? 무슨…… 포션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딱히 더 뭔가 할 것도 없소만.”

같이 싸워준 동료이기에 방해되니 꺼지라고 하진 않았지만, 헥터는 옆으로 다가온 알렉스에게 불편하다는 티를 내었다.

알렉스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치유의 손길을 발동시켰다.

“이봐! 만지면 안…….”

붕대를 감은 손목을 쥐고 주저앉아 있는 용병에게, 이전보다 조금 더 밝아진 빛이 서린 손을 뻗었다.

부상자와 헥터, 그리고 근처를 지나다가 돌아본 몇몇 용병들도, 모두가 입을 다물고 광채를 내는 알렉스의 손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상처가 깊어서 시간이 조금 걸리겠군.’

그래도 딱히 문제는 없다.

전투상황에선 1초의 기다림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지만, 지금은 치료에 몇 분이 걸려도 상관없지 않은가.

“그거 붕대, 한번 풀어 봅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알렉스가 꺼낸 말에, 멍하니 빛나는 손을 보고 있던 부상자가 피에 젖은 붕대를 끌어내렸다.

출혈이 멎어 있었다.

아직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지만, 새살이 돋아난 상처 부위는 더는 중상이라 부를 이유가 없어 보였다.

“신이시여…….”

옆에서 들려온 중얼거림에 고개를 돌렸다.

넋 나간 얼굴의 헥터에게, 알렉스는 질문을 건넸다.

“그쪽 분 상처는 다 꿰맨 겁니까?”

“예? 아, 그, 그렇습니다.”

“그럼 그 사람도 치료합시다.”

아직은 치유의 손길의 효과가 크게 뛰어나지 않기에, 상처를 봉합시키고 치료를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알렉스는 등을 베이고 정신을 잃은 채 엎어져 있는 용병에게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치유의 손길을 가져다 대었다.

‘레벨이 낮으니 두 명 치료한 것만으로도 신성력이 반 이상 떨어지는군.’

치료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알렉스는,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모여든 용병들이 숨을 죽인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들이 왜…… 신성력에 대한 개념은 잘 알려져 있을 텐데?’

마치 불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원시인들 같은 얼굴이다.

“어, 음, 뭐 문제 있습니까?”

알렉스의 물음에 용병들은 고개를 숙이고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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