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성기사로 살아가기 3화
험악한 세계(2)
공격이 막힐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남자는 맥없이 밀려나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 와중에 나이프가 뽑혀 나오며 상처가 더 벌어져,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이런!?”
“뭐야!? 깨어난 거야?”
“멍청이! 자는 놈 하나를 제대로 못 찔러서!”
암습자에겐 일행이 있었는지, 뒤편의 문가에서 두 명의 남자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전부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부산물을 운반해 온 자경단, 그곳에 속한 일원들이었다.
알렉스는 고통 속에서 머리를 굴렸다.
마을을 지키는 자경단원들이 왜 자신을 암살하려 하는가?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서?
‘아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눈물을 찔끔거리게 하는 통증을 참으며, 상처 부위를 치유하기 위해 스킬을 사용했다.
낮에 처음 스킬을 사용했을 때, 발동 방식에 대한 모르던 사실을 깨달은 것이 있다.
치유의 손길은 꼭 그 이름대로 따를 필요 없이, 본인의 몸이 대상이라면 굳이 손을 통해 능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다친 부위에 직접적으로 신성력을 발현하는 편이, 더 빠르고 회복에도 효과적이다.
치료를 하면서도 두 손이 자유로울 수 있기에, 꽤 유의미한 방식이기도 했다.
희미한 빛이 상처의 치료를 시작함과 동시에, 알렉스는 침대 머리맡의 벽 쪽을 향해 몸을 던졌다.
정비를 하지 않아 여전히 굳은 핏물이 엉겨 있는 메이스와, 프라이먼의 짐에서 회수한 방패가 그곳에 세워져 있다.
“제길! 막아!”
“빨리 저 새낄 죽여!”
일이 점점 틀어지는 것을 느낀 자경단원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암살을 시도했던 처음의 상대가 알렉스의 몸을 향해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싸워야 한다.’
막 장비들을 집어 든 알렉스는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앞을 가렸다.
다리미 꼴의 형태를 한 히터 실드.
크기가 작아 전신을 보호할 수는 없으나, 몸통을 가리기엔 충분했다.
“어엇!”
굴곡진 방패 면을 긁으며 나이프가 밀려나자, 공격한 사내는 일시적으로 무방비한 상태가 되었다.
가까이 다가온 얼굴을 그대로 방패로 후려친 알렉스는, 반대편 손에 쥔 메이스를 크게 휘둘러 상대의 머리를 내리쳤다.
게이머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지, 데미지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홀리 웨폰까지 발동시켰다.
퍽!
머리가 함몰된 남자는 실 끊어진 인형마냥 무너져 내렸다.
마수가 아니니 속성에 의한 추가 데미지는 거의 없었겠지만, 무기를 강화하는 능력만으로도 평범한 인간의 머리를 깨부수기에 충분했다.
“데인!”
“이런 X새끼가!”
동료가 쓰러지자 분노를 터뜨리는 나머지들.
이를 악문 알렉스는 눈을 부릅뜨고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자는 사람을 죽이려 들어놓고 누가 누구한테 화를 낸단 말인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방패를 앞세우고 몸을 살짝 낮췄다.
현대에선 성인이 된 후로 다른 사람과 주먹질을 해본 경험도 없었지만, 그래도 훈련을 받은 알렉스의 기억이 섞여 있기에 전투 상황에 절로 몸이 반응한다.
탄탄해 보이는 자세를 취하자, 상대들은 바로 달려들 듯한 기세와 달리 쉬이 다가오지 못했다.
말이 자경단이지 동네 건달과 그리 다를 바 없는 자들.
무장 상태라고 해봐야 가죽 조각을 엮은 조잡한 레더 아머에, 싸구려 단검 하나씩 들고 있는 게 전부다.
‘이 인간들에게 원한을 산 기억은 없는데. 그럼 재물을 노린 건가?’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대치의 상황에서, 알렉스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마수 부산물의 온전한 소유권.
거기에 기사의 전투마와 장비들.
알렉스 한 사람만 없어지면 이들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현역에서 멀어진 늙은 말과 기사의 것치고 딱히 질 좋은 무구들도 아니지만, 이런 작은 마을의 사람에겐 충분히 탐나는 재산이리라.
진짜배기 기사도 아니고 별다른 관록도 없어 보이는 종자에 불과한 알렉스이니, 밤에 조용히 기습한다면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염병할. 내가 하던 온라인 게임에선 마을 안에서 습격당하는 일 따윈 없는데.’
게임이 현실이 되니 많은 게 바뀌어버렸다는 생각을 잠깐 하던 알렉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강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대로 대치만 하고 있어 봐야 불리해질 것이라 여긴 탓.
젊은 자경단원들의 독단적인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마을 주민 전체가 적으로 돌아서는 것도 염두에 둬야 했다.
‘빨리 처리하고 여길 벗어나든가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먼저 공격해 오는 알렉스의 행동에, 눈치를 살피고 있던 두 사람 역시 흠칫하며 나이프를 휘둘렀다.
이 대 일의 불리한 싸움.
하지만 무장 상태는 알렉스 쪽이 훨씬 유리했다.
나이프와 메이스의 리치 차이.
거기에 방패까지.
상대가 제대로 전투를 훈련받은 자들이면 모를까, 이런 마을의 자경단원이란 건 어차피 직업병사도 아니다.
짧은 날붙이 하나씩 든 일반인일 뿐이다.
‘게다가 난 치명상만 피한다면, 부상 한두 개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
나이프가 박혔던 팔은 상처가 거의 아물어 움직임에 지장이 없었다.
신앙 레벨을 높여놨기에 치료의 효율이 올라갔고, 신성력도 아직 충분하다.
충분히 유리하게 싸움을 풀어나갈 수 있는 상황.
“흐아압!”
“컥!”
방패를 앞세워 다가오는 나이프 하나를 막아낸 알렉스는, 그대로 몸을 부딪쳐 상대 하나를 넘어뜨렸다.
그 틈을 타 다른 상대가 옆구리를 향해 나이프를 찔러 넣었지만, 신속하게 움직인 방패가 적의 공격을 완벽하게 방어했다.
“헛!?”
‘아, 이거였군.’
패시브 스킬인 방어 본능의 발동이었다.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의 공격을 몸이 저절로 반응하여 막아내는 능력.
잠결에 암살 시도를 막아냈었던 것도, 스킬 덕분에 자동으로 팔을 들어 공격을 차단했던 거였다.
미리 방어 본능을 배우지 않았었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영원한 잠에 빠졌으리라.
메이스를 내리치는 반격으로 적의 머리를 으깨준 알렉스는, 넘어졌다가 일어나려던 다른 사내의 얼굴을 걷어차, 다시 바닥을 구르게 만들었다.
“꺽!”
단단한 부츠가 안면을 파고들자 부러진 이빨 여러 개가 사방으로 튀었다.
상대의 가슴을 짓밟은 알렉스는 차가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왜 나를 공격했지?”
“끄으…… 그냥 시종 나부랭이라더니…….”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생각한 답이 맞았다.
몇 마디 나눠본 알렉스는 더 대화를 지속할 이유를 찾지 못해, 팔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메이스가 머리를 파고들었다.
앞의 두 사람도 그렇고, 투구를 쓰고 있지 않아서인지 전부 일격에 생명이 끊어진다.
사람의 목숨이 이리 쉽게 사라져도 상관없는 거였던가?
‘……아무리 정당방위라지만 살인을 하는데 전혀 망설임이 들지 않는군. 이상할 정도로 무덤덤해.’
기억이 섞여서인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게임의 연장이라 생각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약간의 흥분으로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긴 했지만, 그 외엔 달리 이렇다 할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평범한 현대인의 기억이 알렉스의 것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이렇게 폭력적인 상황에 무감각해도 괜찮은 건가 싶었다.
그냥 세상만 바뀌어 버린 게 아닌가?
나라는 존재 자체도 뭔가 이상해져 버린 걸까?
그도 아니면…… 사실 이게 나란 인간의 본성이라면?
현대에선 누군가와 이렇게 싸워야 할 상황이 만들어진 적이 없었으니, 마냥 아니라고 확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하!”
떠오르는 알림에 알렉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수많은 시간 동안 게임을 하며 경험해 본 것 중, 가장 불편한 상황에서의 레벨 업이었다.
‘사람을 죽인 거로도 경험치가 오르나 보지? 하긴 딱히 기이한 일도 아니군.’
작게 한숨을 내쉰 알렉스는 침상 쪽으로 걸어갔다.
어쨌거나 지금은 사색에 잠겨 있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다.
쉬느라 벗어두었던 갑옷을 찾아 걸치고 방패를 제대로 팔에 착용했다.
원래 끈으로 묶어 팔에 고정시키는 형식의 방패인데, 아까는 급하게 써먹는다고 팔목을 끼우는 가죽안감 부위를 움켜쥐고 사용했었다.
이어서 짐을 모아둔 배낭을 들어 올리고, 알렉스는 시체들 사이를 지나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오? 대체 무슨 소란인…….”
밖으로 나가자마자 등잔을 들고 있는 촌장과 마주쳤다.
핏물이 맺힌 메이스를 들고 무장을 전부 갖춘 알렉스를 본 촌장은,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알렉스는 촌장을 바라보며 그가 자경단과 관계가 있을지 생각했다.
‘촌장이 저들에게 나를 죽이라고 사주했을까?’
막 잠에서 깬 듯한 행색을 봐서는 그건 아닐 것 같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살인을 청부해 놓고 태연히 잠을 자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선 누구도 신용할 수 없기에, 일단은 주도권을 가지고자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이 지시했습니까?”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무, 무슨…….”
“자경단원들이 나를 암습했습니다. 당신도 관련이 있습니까?”
“그게, 그럴, 나, 나는 아니오. 대체…….”
당황해하던 촌장은 알렉스의 뒤편으로 시선을 넘겼다.
열린 방문 안쪽으로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이 보인다.
“아, 아아! 제이크!”
눈을 크게 뜬 촌장이 방안으로 달려가, 한 사람의 시체 앞에 주저앉았다.
그러고 보니 둘의 얼굴에 꽤나 닮아 있다.
‘……아들이었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알렉스는 잠시 침묵했다.
물론 스스로는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싸우지 않으면 죽는 상황이었고, 상대를 봐주며 여유를 부릴 수도 없었으니.
어쨌거나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계속 여기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정당방위라 해도 마을의 주민들을 죽였고, 그 안에는 촌장의 자식까지 섞여 있으니 말이다.
촌장이 이 일과 관계가 없었다고 해도, 같은 시도를 하려고 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냥 지금 떠나야겠군.’
보아하니 암습 시도는 그 세 사람이 꾸민 일인 듯하고, 일단은 더 전투가 벌어지진 않을 것 같다.
비록 자신이 잘못한 일은 아니라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인데 괜히 분란을 더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시간이 꽤 남았지만, 알렉스는 지금 바로 이 마을을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조용히 떠나겠습니다.”
바들거리는 손으로 시체를 만지던 촌장이 공허한 눈으로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촌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대답을 기대했던 것도 아니기에 그대로 몸을 돌렸다.
‘아, 갈 땐 가더라도 내 몫은 챙겨야겠지.’
마수의 부산물은 촌장의 집에 보관되어 있었기에, 알렉스는 처음의 계획대로 굵직한 한 쌍의 엄니를 챙겼다.
거기에 더해 가죽 묶음 한 덩이를 추가로 들고 바깥으로 나섰다.
마구간에 묶여 있던 전투마가 그를 발견하고 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프라이먼이 살아 있을 때는 말 두 마리를 소유할 돈이 없어, 두 사람이 함께 말에 올라 이동하곤 했었다.
지금은 알렉스 한 사람만 남았으니, 부산물 때문에 짐이 조금 늘었어도 말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말을 혼자 다뤄본 기억이 없는데.’
말을 조종하는 건 기사인 프라이먼의 역할이었으니, 알렉스는 말에 타보긴 했어도 승마 기술을 가졌다고 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다행히 자신에겐 스킬이라는 훌륭한 수단이 존재한다.
성기사 역시 엄연히 기사(騎士)인 만큼, 승마술에 관련된 스킬을 가지고 있다.
[잔여 스킬 포인트 2]
지난번 남겨둔 포인트와 조금 전 레벨이 오르며 얻은 포인트까지 총 두 개.
알렉스는 포인트를 사용해 새로운 스킬을 익혔다.
[라이딩 Lv 1]
‘단순한 이동을 위해 말을 타는 건 1레벨의 라이딩만으로도 별문제가 없겠고. 남은 건 생존을 위해 투자해두는 게 좋겠어.’
언제 또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니, 포인트를 아끼기보단 바로 써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마음 같아선 목숨을 구해준 방어 본능을 2레벨로 올리고 싶었으나, 그러기 위해선 선행 스킬인 실드 마스터리의 레벨이 더 높아야 했기에 그쪽에 먼저 투자를 했다.
[실드 마스터리 Lv 2]
‘후. 다시 봐도 보유 스킬이 너무 빈약하군. 게임 속으로 넘어올 거면 차라리 내 캐릭터에나 넣어줄 것이지. 이런 허접하고 알지도 못하는 인물과 하나가 되다니.’
고개를 내저은 알렉스는 전투마의 갈기를 부드럽게 쓸어준 후, 능숙한 움직임으로 녀석의 등에 올랐다.
1레벨의 기마술이긴 해도, 확실히 없을 때보다 안정감 있게 말을 다룰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럇-!”
횃불 하나를 든 알렉스는 말을 몰아 어둠을 밝히며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