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66화 (166/166)

에필로그.

'차가워........'

뉴린젤은 자신의 뺨에서부터 느껴지는 차가운 냉기의 조각들을 느끼며

힘겹게 눈을 떴다. 흔들거리는  자신의 몸은 자신을 태우고  있는 희고

커다란 늑대의 움직임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늑대의 등에

서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앞에 타있는 한 청년의 등

에 업힐 듯 기대어 있기 때문이었다.

"눈......"

누군가에 의해 잘 치료된 온몸의 상처들. 그리고 그 상처 덕분에 뜨거

워지고 있는 뉴린젤의 몸 위로, 하늘에서 흰  눈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

었다. 그리고 그 작은 조각들은 뉴린젤의 몸 위에서 서서히 녹으며,  조

금씩 그녀의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다.

"아, 깨어났어 뉴린젤?"

그때 뉴린젤의 중얼거림을 들은 킬츠가 고개를 돌리며 그녀를  바라보

았다. 걱정 없고 즐거운 얼굴. 뉴린젤은 물끄러미 킬츠의 얼굴을 바라보

았다.

"전쟁은... 전쟁은 어떻게 되었지?"

"아, 물론 자치도시연합군의 완승으로  끝났어. 물론 스와인의  말로는

자유기사의 피해는 심했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혼의  용병이 뒤에서

기습한 덕분에 가볍게 승리했지. 철벽의 기갑단 전원 전멸시켰어."

킬츠는 웃음을 지으며 몸의 열기로 인해 붉게 상기된 뉴린젤의 얼굴을

가볍게 응시했다.

"게다가 철벽의 기갑단에는 사령관 파리퀸이 부재중이었다고 해."

그러자 뉴린젤의 얼굴엔 삽시간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파리퀸...... 아버님..... 어떻게 되었지?"

"죽었어. 세세한 뒤처리는 제스타니아성을  점거한 자유기사단에게 맡

겼지만... 아마도 시신은 본국으로 보낼 것 같아."

킬츠는 고개를 돌리며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주위의 평야들은 얼마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에 의해 어느새 점점 흰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

었다.

"아버님은....... 마지막에 나를 베지 않았다.... 나는.... 나는 그를 베었는

데..... 그는... 나를 베지 않았어."

잠시의 침묵이 지나고, 킬츠의 등에 업혀있는  듯한 자세 그대로 뉴린

젤은 힘없이 붕 뜬 목소리를 내었다.

"그럼, 설마 그가 너를 벨 줄 알았어?"

"나는 그의 적이었는데, 그도 나의 적이었고."

"뉴린젤.... 국가간의 소속과 분쟁이, 자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킬츠는 주위를 돌아보며 옆에 달리고 있는 루디와 에리나에게 손을 흔

들었다.

"소중한... 사람? 그에게 있어서 내가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말인가?"

"물론이지. 설마 자식이 소중하지 않은 아버지가 있을까."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소중한 사람에게 그렇게  고통을 주었던  거

지? 그건 내가 그에게 있어서 소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뉴린젤이 메마른 목소리로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킬츠는

그녀의 말을 자르며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건  단지 뉴린젤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표현하는 방법이 어긋났기 때문일 꺼야..... 익숙하지 않으니까......"

"익숙하지 않다고......."

"그래, 파리퀸도, 사실은 너도 마찬가지야."

킬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있는  뉴린젤을

바라보았다.

"어때, 그렇게 품어오던 원한을 다 갚은 기분이."

"모르겠다..... 모르겠어. 지금 기분은....."

킬츠는 자신의 어깨가 점점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악이지?"

"그래........... 최악이야.... 흑.... 흑....."

킬츠는 킬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가슴을 들썩이고 있는 그녀의 뒷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 막 국경을 넘었어. 이제 곧 페이오드야. 그곳엔, 지금  한 왕자

가 자신의 나라를 마음대로 휘젓고  있는 한 재상과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려 하고 있어."

"흑.... 흑...."

"이제 가을도 다 지나갔어. 겨울이지. 그리고 이번에 오는 겨울도 끊임

없이 전쟁이 벌어 질 꺼야.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던....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던... 또 다시 많은 사람이 죽을 꺼야. 대지를 피로  물들

이며."

킬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함박  내리는 눈 때문에, 킬츠의

눈에 하늘은 잘 보이지가 않았다.

"또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죽는  거야. 끊임없이. 또 새로운  원한과

증오를 낳으며....."

킬츠는 자신이 한 말이 조금 어색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음..... 이렇게 말은 나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

지 않아 뉴린젤? 사실 나는 그런 복잡한 모든 것들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은, 그리고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오

직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뿐이야. 그리고 그 사람들이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도 말이지."

"....흑... 흐흑....."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지금 이 곳에 모두 모여있어. 루디형도,

에리나도, 세렌도.... 물론 크라다겜은 조금 떨어져 있지만, 곧 만날 것이

니 상관없지. 그리고.... 그리고 말이야.... 뉴린젤도 이렇게 내 바로 뒤에

있잖아. 그래서  나는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 뭐라고  표현해야  할

까......."

"내가....... 내가 소중한 사람?"

뉴린젤은 울음에 잠긴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고, 킬츠는 고개를 끄

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난 많이 말 한 것 같은데. 네가 듣지 못했던 거야. 나의 소

중한 뉴린젤. 나의 사랑하는 뉴린젤..... 하고 말이지."

".................. 흑... 흑...."

킬츠는 뉴린젤의 등을 토닥여 주며 속삭이듯 말했다. 잠시 소울아이는

접어두고, 그냥 지금 자신의 기분과 그녀의 기분을 느끼는 그대로 마음

속에 퍼트려 나갔다. 부드럽게, 그리고 강렬하게.......

"뭐야.... 흑.... 흑....."

"울지마 뉴린젤.  다 큰   여자가 울면 어떡해.  울지마  뉴린젤. 울지

마......."

-1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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