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64화 (164/166)

제 12장. -영원한 문제- (12)

"채앵!"

검과 검이 서로 교차하며 순간적인 불꽃을  만들어 내었다. 빠른 교차

와 움직임, 주위의 공기가 터질 듯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죽음을........"

뉴린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직 한마디였다. 아무런 기압소리도 없

이, 그저 온기를 잃어버린 푸른 두 눈동자로  자신과 검을 교차하고 있

는 한 중년의 남자를 바라볼 뿐.

"빠르구나, ...... 그리고 강해."

파리퀸은 뉴린젤의 공격을 정교하게 막아내며 그녀의 실력을 유감없이

느끼고 있었다. 보통의 두  배에 가까운 길이를 가진  검을 다루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거리낌없는 움직임, 타격 점을 잡아내기 어려운

정도로 빠른 속도, 서로 맞부딪칠 때의 강렬한 충격.

'하지만 말이다. 너에게 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나란다.'

자신의 허리를 공격해 오는 뉴린젤의 공격을 파악한 파리퀸은 그 공격

이 제 괴도에 오르기 전에 미리 막아  버리며 차단해 버렸다. 적당하게

막는다면 곧 물 흐르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공격이 바로 그 자신이

뉴린젤에게 가르쳐준 검술이었다.

재차 자신의 공격이 뜻대로 먹히지 않는 것을 깨달은 뉴린젤은 싸늘하

게 식어버린 표정으로 더욱 빠른 공격을 가했다.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

는 최고의 속도. 더 이상 강해 질 수 없는 최고의 힘.

'온몸의 근육이 파열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더라

도........'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단 하나의 생각은 오직 자신의 아버지인 파

리퀸의 몸에 자신이 들고있는 검을 찔러 넣는 것이었다. 복수, 그의  행

동에 대한 응분의 대가. 그 동안 마음 속 깊은  곳에 응집시켜가던 그

어두운 살의의 감정들이 지금 이 순간에 극에  달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폭발했을 때, 이미 자신의 검은 집요하게 아버지의 목숨을 노리

고 있었다.

'이 정도로.... 이 정도로 나를 증오했던 것이냐.... 뉴린젤?'

파리퀸은 맞부딪쳐 오는 뉴린젤의 검에서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살기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강렬한  기세의 상단공격, 그리고 그것을  미끼로

한 검의 흔들림과 연이어지는 중단공격과 찌르기, 그 다음은 그의 가슴

을 노리는 연속공격. 이 모든 공격들을 전부 막아낸 파리퀸이었지만, 그

공격에 담겨있는 살기는 막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착실하게 대

상의 마음을 파고들어 서서히 파멸로 몰아넣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공격을 하지 않지?"

한참동안 공격을 퍼부어 대던 뉴린젤은 자신의 공격을 튕겨 내고는 뒤

로 물러선 파리퀸을 바라보며 착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

다.

"적, 적! 당신은 나의 적이다! 나는  당신의 적이고! 상대를 죽일 마음

이 없다면 곱게 죽어버려!"

그녀의 눈에서 묽은 액체가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 마!"

뉴린젤은 비명과도 같은 일 성을 지르며 전력을 다한 기세로 다시  파

리퀸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의 딸."

순간 파리퀸은 발을 앞으로 내 딛으며 자신의 검으로 뉴린젤의 공격을

강하게 튕겨내었다. 그리고는 빈틈을 보이는 그녀의  복부에 세로로 검

을 베어갔다.

"........!"

뉴린젤은 재빨리 뒤로 몸을 피했으나 파리퀸의 깊은 공격을 완벽히 피

해 낼 수는 없었다. 가슴과 배의 사이에 가로로 길게 상처가 생겼고, 그

곳으로 서서히 붉은 피가 새어나와 새롭게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내가.... 너를 괴롭게 하고 있는 거로구나."

그러나 파리퀸의 공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교한 솜씨로 뉴린

젤의 수비를 바깥으로 걷어내며 착실하게 그녀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남

기고 있었다. 치명상을 입지 않은 것은 순전히 뉴린젤의 빠른 반사동작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내 모든 힘을 다해 싸워주마. 잘 보아라, 너를 괴롭히

는 한 인간의 실력을."

상처를 입은 뉴린젤의 몸은 점점 속도가  떨어지며 힘을잃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파리퀸의 검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교함과 예리함을

더해가며 뉴린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완숙에  이른 기사의 노련

한 실력이었다.

"이런 게.... 이런 게 아니다......"

뉴린젤은 가까스로 파리퀸의 공격을 막아내며 차 오르는 자신의  호흡

을 조절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며 싸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당신에게 나의 인생을 빼앗겼는데!"

칼날 같은 뉴린젤의 외침이  방안을 가득 메우며  퍼져나갔다. 그리고

파리퀸의 몸은 흠칫하는 떨림과 함께 그 울림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당신에게 나의 목숨마저 빼앗길 수는 없어!"

뉴린젤은 뒤로 몇 발작 빠지더니 자세를 낮추어 다시 파리퀸을 향해 파

고들었다. 그리고는 달려드는 기세 그대로 파리퀸을  향해 자신의 검을

대각선으로 올려 그었다. 전력을 다한 강렬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 모

든 동작은 이미 파리퀸의  눈에 읽히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퀸의 검은

미리 그녀가 도달하는 곳을  노리고 있었고, 서로의 검은  이미 서로의

몸에 바싹 닿아 있었다.

"죽엇!"

"으으... 머리야."

왯지는 몸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금 전 에 벌어졌던

악몽 같은 상황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긴  머리의 커다란 여자 하

나가 경비병들을 모조리 해치우고는 자신에게 파리퀸의 소재를  물었던

사건.

'죄송합니다...... 파리퀸 님. 하지만 목숨이 위험해서....'

왯지는 고개를 저으며 성 안쪽을 바라보았다. 성안의 길가에는 병사들

의 시체가 몇 구 더 널려 있었다. 시체의  상태를 보아서 그 여자의 짓

이 분명했다.

"하아....... 응?"

그때 저 멀리서 웬 은색의 커다란 물체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왯지의 눈에 들어왔다.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다란 생물.......  그것은

반짝이며 태양 빛을 반사하는 은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으며 긴  얼굴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느, 늑대!"

왯지는 경악하며 뒤로 주춤거렸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앞까지 달려온

늑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왯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킬츠, 여기 살아있는 인간이 있다."

그러자 그 늑대의 등에 타있던 검은머리의 남자가 재빨리 뛰어 내리더

니 왯지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뉴린젤 어딨어!"

"뉴, 뉴린젤? 호, 혹시 긴 검은머리에 긴칼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왯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그  여자밖에

없었다. 그리고 과연 그의 예측이 적중했는지,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

기 시작했다.

"그래! 그 여자! 그 여자 지금 어딨어! 전쟁터에? 전쟁터로 갔나? 그럼

지금 전쟁은 정확히 어디서 벌어지고 있지! 어서 말해!"

다시 왯지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반  협박으로 질문을 소리치는 남자,

킬츠는 집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뚫어져라 왯지의 눈 안을 노려보았다.

마치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었다.

"아니, 그, 그 여자는 지금 성안에....."

"성! 이 제스타니아성?"

"네, 네......."

"성 어디!"

"성 안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시청 쪽에...... 문안으로 나있는  길을 따

라 가면 보일 겁니다...."

"그래! 좋았어!"

뉴린젤의 소재를 파악한킬츠는 잡고 있던 왯지의 멱살을 그대로 성문

쪽으로 잡아 던졌다.

"이건 보답이야! 가자 쥬크!"

그리고 킬츠가 쥬크의 등에  올라타서 재빨리 성안으로  달려들어가는

모습이 희미해져 가는 왯지의 시아에 흐릿하게  들어왔다. 이번에는 쉽

게 깨어나지 못 할 듯 싶었다.

'제길... 전쟁에 참가하지 않아서 운이 좋다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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