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장 -영원한 문제- (10)
"뉴린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정면에 보이는 침대 앞에 서있던 한 남
자가 뉴린젤을 바라보며 마치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바로 드
라킬스의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중 한 명이자 그녀의 아버지인 나이트
파리퀸의 목소리였다. 그 동안 안 본 몇 년 사이, 파리퀸의 검은 머리카
락은 군데군데가 하얗게 새어있었고, 얼굴도 많이 수척해져 있어서 10
년은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 동안 지난 시간은 고작해야 3년이 조
금 넘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오랜만이구나 뉴린젤."
잠시동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있기만 하던 부녀간의 침
묵을 먼저 깬 것은 파리퀸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흔들리지 않는 침착한
얼굴로 뉴린젤을 바라보며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고 있었다.
"그 동안 잘 있었느냐? 북부 자치도시연합은 기후도 좋으니까..... 음식
은 입에 맞았을지......"
파리퀸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딸의 얼굴을 깊게 새기며 두서없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냥 이렇게 말하고싶었다는 듯, 하지만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뉴린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단 한마디뿐이었다.
"적, 당신을 죽이러 왔습니다."
"전열의 창병은 조금씩 좌우로 퍼지면서 병력의 낭비를 만들지 말아
라! 모든 병력이 전부 일시에 전투를 벌여야 한다!"
임멜은 혼전을 벌이고 있는 전투의 전열을 바라보며 시시각각 새로운
전투 명령을 전달하며 군을 통솔하고 있었다. 자유기사단과 첫 번째로
충돌한 전열의 창병들은 노련한 솜씨를 발휘하며 결코 밀리지 않고 자
치도시연합군에 큰 피해를 안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그에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보병으로 같은 숫자
의 기병을 같은 수준으로 상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2선에 궁병들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을 쏘아라! 절대 아군을 쏘아서
는 안 된다! 적 기병들에게 집중적으로 쏘아서 혼란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쌍방이 입는 피해의 비율이 적은 까닭은 바로 드라킬
스의 궁병들이 지원하는 화살공격 때문이었다. 그들의 화살은 교묘하게
아군의 머리 위를 날아가 자유기사들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덕분에
자유기사단 중 더러는 갑옷의 약한 부분에 화살이 맞아 운 나쁘게 목숨
을 잃었고 보통 갑옷에 튕겨 날아간다 할지라도 약간은 그 것에 신경이
팔리기 때문에 드라킬스의 창병들에게는 일말의 기회를 주는 셈이었다.
후열의 화살부대의 지휘관이 신호를 보내자 전열에 있던 창병 부대의
지휘관이 그 신호를 받으면서 갑자기 군대를 이끌고 후퇴하기 시작했
다. 당연 기병으로 이루어진 북부 자치도시 연합군이 그 후퇴를 보고만
있지는 않았으나, 재빨리 무기를 창으로 바꾸어 든 후열의 화살부대가
그대로 달려와 자유기사들의 새로운 상대가 되었다. 그리고 후 열로 빠
진 지친 창병들은 다시 무기를 활로 바꾸어 들며 전투중인 부대에 지원
사격을 보내기 시작했다.
"적들은 부대를 교환하며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한번에 전투하는 숫
자는 우리가 더 많은 법! 병력을 넓게 퍼뜨려 적군을 포위한 뒤 공격
해!"
자치도시연합군의 전열을 지휘하고 있던 자유기사단 단장, 나이트 세
텔은 적의 파상공격으로 인해 아군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간파하며 새로운 명령을 전달했다. 드라킬스군은 약 세 개로 병력을 나
누어 하나는 전열에서 직접 전투를, 또 하나는 그 바로 뒤에서 화살로
지원 공격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뒤에서 무기를 교환하며 간접적인
전투를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열에서 전투중인 드라킬스의 보병들의 수비력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과연 철벽의 기갑단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막강한 수비
력과 생존력을 보여주며 자유기사단이 양 날개를 넓히어 포위망을 좁히
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모든 체력과 전투력을 전부 써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쉽게 적의 생각대로 넘어가지 않았고, 만약 버티기
가 정말 힘들어 진다면, 그때는 판단을 내린 지휘관이 신호를 보내어
후 열의 대기부대와 다시 전투를 교환했다. 북부 자치도시연합군으로써
는 맥이 빠질 노릇이었지만, 워낙 철벽의 기갑단이 보여주는 조직력과
전투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별 도리가 없었다. 철벽의 기갑단에 신병이
많아 하더라도 자유기사단 만큼은 아니었고, 그나마 훈련의 양도 드라
킬스군이 우세했다. 무기의 효과적인 사용, 병력의 이동과 체력적인 문
제의 고려. 이 모든 것들이 드라킬스군의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끈질긴 녀석들! 저 세상으로 가버려!"
전투를 벌이던 자유기사는 역시 창병과의 상대를 고려하여 준비한 장
창을 휘두르며 철벽의 기갑단의 보병을 공격해 들어갔지만, 그 역시 들
고있던 방패로 튕겨내며 여유 있는 모습으로 창을 찔러 들어갔다. 그가
노리는 것은 굳이 자유기사의 목숨만이 아닌 그들이 타고있는 말의 목
숨도 더한 것이었다. 만약 말이 드라킬스군의 창에 질린다면, 목숨을 잃
기 전에 고통에 발악하며 타고있던 주인이 균형을 잃게 만들 것이었고,
자유기사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그때 하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볼 것도 없는 애송이 기사! 너희들은 전쟁에 어울리지 않아!"
드라킬스의 병사 하나가 말의 목에 창을 찔러 넣었다. 예상대로 말은
몸을 마구 흔들며 죽기 전 최후의 발악을 해대었고 그 흔들림에 말에서
떨어진 자유기사의 투구 사이올 드러난 얼굴에 드라킬스의 병사가 옆구
리에 차고있던 작은 단도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죽음을 맞이한 말의
목에서 재빨리 자신의 창을 뽑아 들고는 새로운 적을 찾아 두 눈을 번
득였다.
"우리에게 자유를!"
그러나 자유기사단의 기세도 여간 만만치 않은 것이 아니었다. 특히
그들 중에 남부 자치도시연합에서 지원군으로 왔던 자유기사단의 기세
는 실로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이번 전투에 따라 조국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느냐, 못 잡느냐 가 달려있었다. 남부 자치도시연합엔 그
들의 가족이 남아 있었다. 덕분에 드라킬스군으로써는 적 기사의 투구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약간이라도 검은빛을 띄는 것 같다면, 상당히 긴
장을 해야만 했다. 남부의 자유기사단은사막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피
부가 검게 타 있던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드라킬스군이 점점 뒤로 빠지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병사의 피해는 자치도시연합군이 더 많은 편이었다. 그것은 며
칠동안 반 전력으로 달려온 자유기사들의 떨어진 체력에도 그 이유가
있었지만, 드라킬스군의 절묘한 병력 운용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자치도
시연합군은 이 미 것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체력적인 열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적군은 지쳤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우리 드라킬스에게 영광을! 드라킬스에게 승리를!"
물론 드라킬스군도 기병을 상대하며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체력의 순간적인 소비는 자치도시연합군을 능가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매 간격마다 잠시동안의 휴식이 주어졌고 또한 지휘관들의 능숙한 리드
만 따르면 됐기 때문에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게다가 나이트 임멜의
매 순간순간의 변화하는 지령과 사기를 북 돋는 커다란 외침은 더욱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었다. 임멜로써는 목이 쉬더라도 그만 둘 수가 없었
다.
"제길! 일단 모여서 적군의 중앙을 돌파한다! 그리고 배후에서 반전하
여 양쪽으로 포위하여 공격하는 거다! 그땐 아무리 날고 긴다는 철벽의
기갑단도 별 수 없을 것이다!"
자꾸만 죽어 가는 자유기사단을 바라보던 세텔은 흥분하여 작전을 중
앙 돌파, 배후전개로 바꾸었다. 하지만 이미 어떻게든 포위망을 형성하
려고 넓게 퍼져있던 자유기사단이 다시 한데 뭉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렸으며, 또한 자유기사단의 변화를 눈치 챈 드라킬스군의 사령관, 나
이트 임멜에 의해 드라킬스군도 전선을 좁혀서 두터운 방어진을 만들었
다. 덕분에 자유기사단의 중앙돌파도 여의 치가 않았다. 오히려 작전을
변화시키는 도중에 무너진 대열의 틈을 노린 드라킬스군의 공격에 의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어 버렸다.
"전열은 수비대열을 유지하며 서서히 좌우로 넓게 이동하라!"
그리고 임멜은 후방의 궁병이나 대기병들을 모두 전투로 직접 투입하
며 총 공격의 명령을 내렸다. 이미 화살도 다 떨어진 상태였고, 각 부대
의 병력도 많이 줄은 상태여서 하나로 뭉칠 필요를 느낀 것이었다. 하
지만 그때는 이미 줄어든 드라킬스의 병력이 북부 자치도시연합군을 가
볍게 능가하고 있었다. 자치도시 연합군의 피해가 훨씬 많았던 것이었
다.
"적에게 포위되면 안 된다! 조금씩 뒤로 빠지며 전열을 유지하라!"
도리어 포위될 위기에 처한 자치도시연합군은 조금씩 뒤로 빠지면 어
떻게든 포위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하지만 이미 전투는 드라
킬스군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치도시연합 군으로썬 어떻게 상
황을 반전시킬 여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