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61화 (161/166)

제 12장 -영원한 문제- (9)

건물 안으로 들어간 뉴린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료하게 1층  홀을

지키고 있던 드라킬스의 수비병들이었다. 그들은 밖에서 일어난 무참한

학살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뉴린젤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무기를

세워들며 강한 말투로 소리칠 수 있었다.

"넌, 누구냐! 왜 이곳에 들어왔지?"

온몸이 누군가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으며,  길고 날카로운 검을 들고

있는 뉴린젤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결코 호의적으로 비칠 리가없었다.

1층에 대기하고 있던 다섯 명의 병사들은 여차하면 공격한다는  기세로

점점 뉴린젤을 향해 다가왔고 무기를 쥔 손에  힘을 가하고 있었다. 아

직 뉴린젤의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강한 기운이 퍼져 나

온다는 사실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의 정체가 바로 끔찍

할 정도로 매서운 살기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

지 않았다.

".........방해하려는가..."

뉴린젤은 다가오는 병사들 중 자신의 정면에 서있던 병사의 목을 검으

로 관통시켜 버렸다. 그  병사가 어떻게 반응을 해보기도  전에 벌어진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뉴린젤은 그대로 검을 돌리며 왼쪽에 있는 병사를 공격해 들어갔고 그

병사는 좌우로 공격해 오는 뉴린젤의 공격을 단 두 번 막아내고는 그대

로 가슴이 베어져 버렸다.  가슴의 장기들이 그대로 베일  정도의 깊은

상처였다.

"크아악!"

그는 고통의 비명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가슴에 난 상처를 감싸  않았

고, 뉴린젤은 몸을 돌리며  뒤에서 공격해오는 두 명의  병사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두 명에게 협공 당함에도 불구하고 뉴린젤의 검은 그들

둘의 검보다 더욱 많은 잔상을  남기며 그대로 그들의 뼈와 살을  베어

들어갔다. 한쪽 팔이 어깨에서부터 잘린 병사는  그대로 쓰러지며 고통

의 신음소리를 내었고 나머지 한 명의 병사는 자신의 심장이 강철의 검

에 의해 관통 당하는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그대로 즉사해 버렸다.

"으아.. 으아악!"

뒤에 있어서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혼자 남은 병사 하나가  비

명을 지르며 뉴린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공포와 분노가 엉킨 혼란

스러운 정신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의 목뼈가 길고

빠른 뉴린젤의 검에 의해 갈라지는 통증을 잠시 느끼다가 그대로  목과

몸이 양단 되어 버렸다.

또 다시 뜨거운 새로운 피가 뉴린젤의 전신을 열기로 휩싸이게 만들었

다. 비릿하고 야릇한 피의 향기. 그것은 인간을 그 어떤 독한  술보다도

살육과 파괴라는 감정으로 취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몸을 흐르는 뜨거

운 타인의 피.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당사자의  머릿속을 더할 나위 없

이 차갑게 만들어 버렸다.

뉴린젤은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도중에 시종 한

명이 아래층에서 들려온 비명소리에 놀라 방에서 뛰쳐나온 모습이 뉴린

젤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뉴린젤은 재빨리 그  어린 시종의 목을 검

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움켜쥐고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파리퀸은 어디에 있는가."

뉴린젤에 의해 목이 잡혀버린 시종은 자신의 심장이 얼어붙을 듯한 공

포를 느끼며 피의 내음을 훅하고 풍기는 뉴린젤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

보았다. 너무 무서워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었지만, 그의 몸 어느  한

군데도 이미 뻣뻣하게 굳어버려 그의 명령을 듣지 않고 있었다.

"사, 사령관 님은 지금..... 자신의 방에........"

"그 방이 어디냐."

"3층 안쪽의 가장 큰방...... 무, 문이 다른 것 보다 크니까......"

시종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하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정

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뉴린젤은 그의 목에서  손을 놓았고 허물어지

는 시종의 모습을 뒤로한 체 한층 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3층 안쪽의 가장 큰방......."

3층에 올라온 뉴린젤은 한쪽으로 나있는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

다. 과연 복도의 가장 안쪽에는 다른 방의 문보다 가로로 거의 두 배는

클 것 같은 문을 가진 방이 하나 있었다.

"저건가....."

뉴린젤은 바닥에 피의 흔적을 남기며 천천히  그 방을 향해 걸어갔다.

온 세상이 피에 물든 듯, 붉게 변해버리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그녀가

밝고 있는 바닥도, 주위의 벽과 문들도, 단 하나, 가장 안쪽의 정면으로

보이는 커다란 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저 문 안에..... 저 문 안에....'

그녀의 눈이 점점 흔들림 없이 굳어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녀의 손은

그 커다란 문의 손잡이를 향하고 있었다.

'당신이, 있는 거다.'

"이곳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파리퀸은 자신이 침대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

닳았다. 원래는 이 도시의 시장이 사용하고  있었던 사치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방. 건장한 남자 다섯 명 정도는 누워도  빈 공간이 남을 것 같

은 커다란 침대가 방 한쪽 구석에 있었지만, 그 침대도 이 방의 거대함

때문에 그다지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파리퀸은 머리를 흔들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 쪽 벽에 있

는 벽장으로 다가가 그 안에서 위스키를 꺼내 들었다.

'내가...... 쓰러졌었던가.'

파리퀸은 전 병사들에게 총 출동의 명령을 내리다 갑작스럽게  몰아닥

친 깨질 것 같은 머리의 아픔에 그대로 의식을 잃었던 것을 기억해 내

었다. 그때는 아침이었는데, 창문 밖으로 보이는 태양은 이미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저녁때는 아니었지만, 오후는 한참 지난 듯 했다.

도시 안이 조용했다. 아마 병사들은 이미 성을 빠져나가 자유기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었다. 분명히 총 지휘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가

장 높은 직위인 나이트 임멜이 맡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임멜이라면...... 나 대신 잘 해줄 것이다.'

파리퀸은 꺼낸 술병을 다시 찬장 안으로 집어넣으며 가볍게 한숨을 벽

장 반대편 쪽에 위치한 업무용 책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의 걸

음은 10세션도 넘는 것이었지만, 한쪽 벽에서 반대편 벽으로 가기 위해

선 스무 걸음 이상을 걸어야 했다.

파리퀸은 책상 옆의 벽에 기대어 놓은  자신의 검을 집어들었다. 지금

으로부터 20년도 더 전, 드래곤 나이트로  선발되었을 때 국왕으로부터

직접 수여 받은 검이었다. 드라킬스의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철 중에

서도 선발된 최상의 것들만 골라  최고의 대장장이의 실력이 담겨있는

명검이라 할 수 있는 뛰어난  강도와 예리함을 가진 검.  처음 그 검을

받았을 때의 감격이 파리퀸의 머릿속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이 검을 받는 기쁨을....... 그 녀석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었지.....'

파리퀸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스치며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 그 검을 받는 모습, 드래곤 나이트로 임명되는 그 영광스런 모습. 하

지만 그에게 있어서 인생 최고의 기쁨은 자신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부터 22년  전,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가  귀여운 딸을

낳아 주었을 때였다.

하지만, 몸이 약했던 아내는 딸을 출산하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나버렸

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

나지 않지만, 아마 또 이런 식으로 약한 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

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은.

명분은 여자로써 드래곤 나이트가 되기 위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도 그것을 바라고 있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했

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자신의 딸에게 정확하게 이해시키고  받아들이

게 하기보다는, 세상을 모르게 하여 그녀 자신의  길이 오직 그것 하나

뿐인 줄 알도록 만들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단 한번도 그녀를 집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훈련과 연습으로  하루를 보내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파리퀸이 진정으로 바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건... 내가 원한 건.... 오직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내  딸과 행

복한시간을 보내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혹시 약한 어머니의 몸을 물려받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날지 모른

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런

결정을 내렸고, 결국 일은 이렇게 되어버렸다.

파리퀸은 검을 들고 자신의 침대를 향했다. 안타까운, 너무도 안타까운

기분. 만약 지금 원래대로 전쟁터에 나가서 검과 창이 난무하는 전투의

한 가운데에 있다면, 이런 슬픈 마음도, 안타까운 마음도 모두 잊을  수

있으련만........

"하아......."

파리퀸은 다시 침대에 누으려 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것

잊을 수 있는 깊은  수면이었다. 몸은 문제없었지만,  마음이 피곤했다.

그러나 순간 삐그덕 하는  작은 소음이 그의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방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

시종인가, 아니면 병사? 파리퀸은 가만히 열리는  방문을 바라보며 누

군가의 모습을 기대했다. 시종이라면 수면제로 사용할 수 있는 약을 부

탁하고 싶었고, 병사라면 자신이 스러진 사이에  정확히 어떻게 병사들

이 전쟁터로 나갔는지 상황을 듣고 싶었다.

".................!"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모습은 시종도, 드라킬스의 병사도

아니었다. 큰 키에 마른 몸을 가졌으며 온 몸에 타인의 피로 붉게 물들

어 있는 모습. 반쯤 피에 잠겨있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과 마치 자신의

아내처럼 아름답지만, 그 누구보다 차갑고 섬짓한 얼굴. 그것은 바로 자

신의 단 하나뿐인 가족이자, 혈육의 모습이었다.

"뉴린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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