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58화 (158/166)

제 12장 -영원한 문제- (6)

"지금.... 이다."

뉴린젤은 몸을 일으켰다. 하늘을 올려보니  희미한 그믐달이 아침임에

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제 곧 태양이 제 위력을 발휘하게 되면

사라져 보이지 않겠지만.

"뉴린젤 천인장? 어디 가는 거야!"

뉴린젤이 갑자기 말 위에 올라타자 옆에 있던 용병들이 궁금한 듯  물

어보았다. 하지만 뉴린젤의 입에서 대답의 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흔들

리는 검집의 차가운 금속성의 울림만이 말을 대신하고있었다.

"자자, 이제 출발이야. 우리는 이대로 계속 페이오드를 향해 가면 된다

구."

옆 부대를 통솔하고있는 크랭크가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 소리치며  이

동준비를 서둘렀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옆  부대의 뉴린젤이

말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그녀의 부대는 이동

준비가 끝난 것 같지 않은데, 오직 그녀만이  말에 올라타 진형을 벗어

나고 있는 것이었다.

"어이! 뉴린젤! 어디 가는 거야! 이제 곧 출발이라 구!"

지금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서쪽의 페이오드  왕국이었다. 하지만

뉴린젤이 말을 몰고 달리는 곳은 북동쪽이었다. 정 반대의 방향이었다.

"아... 잠깐. 그러고 보니............"

크랭크는 턱을 글쩍거리며 예전에 킬츠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아

마 뉴린젤의 행동을 주시하라는 내용의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뉴린젤의

행동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 역시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설마 제스타니아성으로?'

지금 그녀가 말을 달리고 있는  방향으로 계속 가다보면 나오는  것은

단 하나였다. 바로 드라킬스의 영토인 제스타니아성. 계획대로라면 지금

쯤 병력을 모조리 모아 파울드의 자유기사들을 상대하러 출진 한  상태

일 것이었다.

'이거 큰일인걸, 쫓아가야 하나....'

크랭크는 갑자기 잠이 확 깨는 것을 느끼며 이미 본진을 벗어나 저 멀

리 점이 되어 달리고 있는 뉴린젤을 바라보았다. 크랭크는 일반 용병출

신이었기 때문에 말을 잘 모는 편은 아니었고,  뉴린젤의 말 모는 솜씨

는 수준 급이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따라잡기란 무리였다.

'더구나 나 마저 따라가면 합계 3천의 용병부대는 누가 인솔해서 이끌

어가나......'

일단 크랭크는 하인스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전했다. 하인스 역시 막

일어나서 긴 장발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참이었다.

"이봐 하인스! 지금 머리손질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깔끔한 장발은 미남자의 기본. 언제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것

이지,"

"여긴 여자도 없잖아!"

크랭크가 인상을 찌푸리자 하인스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한쪽  검지

손가락도 함께 흔들었다.

"항상 가꾸지 않으면 나중엔 되 돌이킬 수 없게 되지."

"그래, 자네 마음대로 하슈. 어쨌든 지금 뉴린젤이  혼자 제스타니아성

쪽으로 말을 몰고 달려갔으니, 이 일에 대해서 생각 좀 해봐."

그러자 하인스는 의외로 깜짝 놀라며 다시 되물었다. 그리고 크랭크도

이제야 상황이 인식 되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

다.

"응? 뉴린젤이 제스타니아성 쪽으로 떠났단 말인가?"

"그렇다네. 방금 횅하니 달려가 버렸지."

"아아..... 이 남자만 득시글거리는 용병소굴에서 유일하게 향기를 퍼뜨

리는 미의 근원이 사라지다니..... 이거 큰일이군."

"왜 그 말 나오지 않나 했지......"

"어쨌든 그러면 우선 킬츠 대장한테  가봐야 하는 것 아니야?  예전에

그렇게 신신당부했었는데."

하인스는 씽긋 웃으며 크랭크를 바라보았다. 킬츠가 뉴린젤 챙기는 것

은 용병들 사이에서 유명했기 때문에 '대장은 취미도 특이하다'라는  소

문이 그들 사이엔 이미 파다하게 맴돌고 있었다.

"루디형, 몸은 좀 어때?"

불과 몇 시간 전, 제스타니아로 떠난  일행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킬츠에게 돌아온 것은 다량의 출혈과 깊은 상처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루디의 창백한 모습이었다.  킬츠는 재빨리 구급약과  약초를 혼합하여

상처에 발라주었고, 출혈이 심해 체온이 내려갈  것을 염려하여 자신의

모포까지 두 겹으로 덮어주며 밤새 간호를 했다.

"키... 킬츠? 여긴 본진인가?"

아침이 되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림 루디가 주위를 바라보며 힘없는 목

소리로 중얼거렸고 그러자 킬츠는 옆에서 함께 밤을 새운 에리나와  함

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디 오빠, 정말 고마워요, 난  오빠가 나를 지켜주러 그런지도  모르

고........."

에리나가 울먹거리며 루디를 껴안았고, 루디는 그런 에리나의 등을 토

닥여주며 부드러운, 그러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아니, 나도 사실 에리나의 몸에  관심이 있어서 말이야. 이건  기회다

생각하고 두말 할 것 없이 그대로 행동한 거지."

"이익! 누구는 그런지도 모르고 밤새 걱정하며 간호해 주었는데......"

에리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삐진 듯 투덜거리며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루디는 그런 에리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벼운 웃

음을 지었고, 그건 킬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이다."

"누구? 루디형 자신이 무사해서 다행이란 말이야?"

"아니, 에리나 말이야. 만약 제스타니아성에서 에리나가 크게 다치기라

고 했다면 어쩔 뻔했어. 만약 그랬다면 난 평생 세렌의 얼굴을 보지 못

하고 살게 됐을 꺼야."

루디는 눈을 감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킬츠가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루디 역시 그를 소중히 여겨주는  모든 이들을 그 누구보

다 깊이 생각해 주고 있었다.

"에리나한테서 이야기는 들었어. 일단 작전은 성공했으니, 이제 우리는

그대로 페이오드를 향해 이동하면 돼. 나머지는  자유기사단과 혼의 용

병들한테 맡겨놓고 말이야. 더 이상 위험한 일은 없을 꺼야. 물론  페이

오드에 도착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킬츠는 밤샘으로 붉게 충혈 된 눈을 깜빡거리며 깊은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루디가 깨어났기 때문에 밤새 근심하던 긴장이 풀린 까닭

이었다.

"너도 보아하니 밤새 나를 간호한 것 같구나. 피곤해 보여.  이제 그만

눈 좀 붙이지 그래?"

"아니, 곧 이동인데 내가 잘 수는 없지. 잠은 페이오드에  도착해서 늘

어지게 자면 되는 거야. 그게 마음도 편하고 좋겠지."

킬츠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어이! 킬츠대장!"

그때 크랭크가 킬츠 쪽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킬츠는 뒤를 돌아보며

말까지 몰며 고속으로 달려오는 크랭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이 아침부터."

잠시 후 크랭크가 움막 앞에 도착하여  말에서 내렸고, 킬츠는 고개를

갸웃하며 크랭크에게 갑자기 달려온 이유를 물었다.  지금 상황에 급할

건 아무 것도 없는데, 크랭크는 상당히 서두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좀 전에 뉴린젤이 혼자서 말을  몰고 제스타니아성 쪽으로 달려갔어,

너무 갑작스럽게 달려가는 바람에 잡지 못했지."

크랭크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침착하게 대답했고 순간 킬츠의  얼굴

에 모여있던 핏기는 마치 썰물 빠져나가듯 사라져 버렸다.

"뭐, 뭐라고?"

"방금 들은 그대로, 뉴린젤이 혼자서 제스타니아성 쪽으로 달려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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