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57화 (157/166)

제 12장 -영원한 문제- (5)

모든 회의가 끝나고 최종적인 방침이 결정된 제스타니아성의 드라킬스

군은, 안타깝게도 회의에서 결정된 안건중 하나인 성문 밖의 병력 보충

을 시행하기도 전에 동쪽 성문이  불타버리는 끔찍한 사건을 맞이하게

되었다. 밤새 끝없이 타오르던 성문은 아침이 되자  모든 것을 다 태우

고는 겨우 멈춰버렸다. 긴급히 달려나온 병사들이 도시 안에 있는 우물

에서 계속 물을 퍼다가  부어댔지만, 성문을 태우고 있던  불길은 수백

번의물세례를 받고도 꺼질 줄 몰랐다.

"마법..... 마법이라. 이건 너무 하는군. 대륙 법 위반아닌가?"

파리퀸은 한숨을 내쉬며 텅  비어있는 동쪽 성문을  바라보았다. 본래

문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검게 그슬린 주변

의 성벽들만이 어제 밤의 참사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밤새 물을

퍼다 부은 애꿎은 병사 수백 명만 지쳐서 그 근처에 쓰러져 잠들어 있

었다.

"어제 밤에 화재진압에 나섰던 모든 병사들을 막사로 돌려보내어 오늘

하루동안 휴식을 가지게 하여라. 수고했다."

파리퀸은 실의에 빠져있는 책임자  쿠스나이트의 등을 두드리며  임무

실패에 대한 벌 대신 오늘 하루동안의 부대 휴식을 내려주었다. 어차피

마법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병사들의 능력 가지고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괜히 군법에 따라 행동하다간  병사들의 사기만 떨

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목격한 병사들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 거대한  불새 한 마리가 나타나

성문 주위를 맴돌더니, 곧 엄청나게 거대한  불덩어리가 성벽으로 날아

와 충돌했고, 연이어 성문주위를 날고있던 그  불새도 날아들어서는 불

이 붙은 성문에 자신의 몸을 부딪쳤다는 것이었다.

"원소마법. 그것도 최소한 상위마력을 운용한 5원소  이상의 마법이다.

그리고 정령마법......."

당장 매직길드와 스피리스트 신전으로 달려가 이 사건에 대해 마구 따

지고픈 심정이었지만, 파리퀸은 침착하게 이성을 찾으며  이 사건을 냉

정히 분석했다. 앞으로 전투에 대비한 자잘한  사항들은 부관인 임멜이

착실하게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는 좀더  편하게 지금부터 일어나

는 일들에 대한 예상을 해볼 수 있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이 사건은 북부자치도시연합

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괜히 미친 마법사와 정령사가 대뜸 들이닥쳐 성

문을 불태우고 사라질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아무리 성문이 불타버린 게 충격이고 또한 너무 거대한 성문이라 예비

용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근처 숲에서라도 나무를

베어와 한 3일쯤 투자하면 충분히  새로 만들 수 있었다.  설마 그 3일

안에 파울드의 자유기사들이 공격해 올 리도 없고 말이다.

'그렇다면 역시 용병단의 기습인가?  그들이라면 3일 내에  공격해 올

수 있으니.....'

그때 한 병사가 생각에 잠겨있는 파리퀸에게로 달려오더니 고개를  숙

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파리퀸 사령관 님! 서쪽으로 움직이던 용병단을 감시하던 감시병에게

서 전문입니다. 용병단은 오늘 새벽부터 다시  진군을 시작하여 페이오

드의 국경을 향하고 있다 합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국경에 도착했을지

도 모른다고......"

"그게 정말인가? 그럼 파울드의  용병단은 이 제스타니아성을  향하고

있지 않은 것인가?"

"그렇습니다."

파리퀸의 생각대로라면 현재 그래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할 수  있는

파울드의 용병들이 이 부서진 성문을 노리고 성을 공격해 올 것이었다.

하지만 보고에 따르면 이미 그들은 새벽부터 출발하여 페이오드를 향하

고 있었다.

'잠깐. 생각해보니 만약 그들이 공격해 들어온다면 남쪽 성문이나 서쪽

성문을 불태웠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동쪽성문을?'

생각해보니 뭔가 문제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이,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있는 그의생각에 착오가 있는 듯  싶었다.

그것도 아주 근원적인 착오가.

"어제 그 마법사 일행을 어느 쪽으로 도망쳤다 했지?"

"남서쪽, 그러니까 파울드의 용병대가 야영하고 있던 부분입니다."

목격자 병사는 그 뒤로 그 도망치는 말의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또

는 그게 너무 커다랗고 털이 많아 꼭 늑대  같았다... 하는 말들을 늘여

놓았으나 그 말까지는 파리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용병대가 야영

하고 있던 방향으로 도망갔다.  그 말이 지금 파리퀸의  귓속을 자꾸만

맴돌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용병대가 공격할 마음이었다면, 도망칠 때 최소한 의심이라도 사

지 않기 위해서 파울드성 쪽으로  했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건  마치

일부러 용병대 쪽으로 도망쳐서 용병대가 우리를 공격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군.'

만약 파울드의 용병대가 일으킨  반란은 모두 꾸미지  않은 사실이고,

북부자치도시연합이 어떻게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제스타니아성의 병력

을 용병대 쪽으로 신경 쓰게 만든 후 빈틈을 노려 공격해 온다고 가정

한다면, 이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이 간단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용병대는 계속하여 페이오드로 이동하고 있으며 어제 밤의

마법사들은 그 용병대 쪽으로 도망친 것이라면.....

"사령관 님! 급보입니다!  약 5일쯤  전에 파울드성에서 자유기사단이

출격했다 합니다. 게다가 지금 이 제스타니아성  쪽으로 고속 이동중입

니다! 대략 내일 저녁쯤이면 성 동쪽 평야지방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때 동쪽에서 급하게 말을 몰며 달려온 감시병 하나가 긴박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바로 파울드의 자유기사 2만 5천이 총 병력을 이끌고

이 제스타니아성을 향해 돌격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역시...... 이렇게 된 것이었군."

파리퀸은 감시병의 보고에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가정의

마지막 조각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을 느꼈다.  역시 제스타니아를 공

격하는 것은 파울드의  자유기사 뿐이었다. 애초부터  용병대는 미끼인

것이었다.

"자신들을 배신한 용병대까지 이용해 먹다니.....  역시 마인슈 총 참모

장 다운 작전이군."

파리퀸은 몸을 돌려 다시 불타버린 성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성문을 다시 제조할 수 있는 3일이라는 최소한의 시간조차 그들에

겐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성문이 없는 성에서  농성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평야에서.... 정면으로 승부를 벌여보자는 말인가?"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속에서  울컥하고 솟구쳐왔다. 마치  젊었을 때

남에게 무능력하다 매도당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기분처럼. 지금

파리퀸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흥분하고 있었다. 마치, 평야에

서 정면으로 전투를 벌이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북부자치도시

연합의 생각. 파리퀸에겐 큰 모욕이었다.

"여섯 시간 뒤까지 전 부대는 전투 체제를 갖추어라! 성문이 불타버렸

으니, 농성은 불가피하다! 평야에서 북부자치도시연합군을 섬멸하는 것

이다!"

파리퀸은 제스타니아성의 전 병력에게 소리치며 곧 벌어질 전투를  준

비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투가 벌어질 줄은 몰랐지만, 이것도  용병

단에 너무 크게 신경을 쓰다보니 파울드성의 자유기사단에 대해 소홀히

했던 결과였다.

'어지러워.....'

1선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전달하던 파리퀸은 갑자기 머리가  깨져오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서  기분만 그렇게 느껴지

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망치도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사, 사령관 님!"

"왜 그러십니까!"

비틀거리며 성안으로 돌아온 파리퀸은 급기야 성문 초소 앞에서  쓰러

져 버렸고 근처에 있던 병사들은 기겁을 하며 쓰러진 파리퀸에게로  달

려갔다. 그의 안색도, 그들의 안색도 이미 창백하게 탈색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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