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56화 (156/166)

제 12장 -영원한 문제- (4)

"좋아. 그럼 오랜만에 움직여 보자 케사라."

에리나는 루디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정신을 집중하며 정령을  부르기

시작했다. 정령 마법은  원소마법과는 달리 체내의  알마스를 마법으로

교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발동하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후확! 하는 엄청난 불길이  에리나의 정면 100세션  근처에 일어났고

그 불길은 사방에 엄청난 빛을 뿌리며 점점 하나로 뭉쳐들기 시작했다.

아마 드라킬스의 병사들도 이 엄청난 빛에 순간적으로 에리나일행의 모

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이 찬란한  빛에서 눈을 뗄 수 있

다는 가정 아래일 뿐이었지만.

에리나가 오른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키자 불길은 점점 하나로 뭉쳐서

는 곧 몸집은 작고, 날개는  커다란 새의 형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뭉쳐졌어도 그 불새의 크기는 보통 인간의 두세 배는 될 정도였

다.  그리고 형상이 완성되자 그 섬광과 화염의 다중속성 정령, 케사라

는 제스타니아성을 향해 엄청난 빛을 뿌리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우와악! 저게 뭐야!"

성 근처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기겁을 하며  케사라를 바라보았고,

케사라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곧  제스타니아성의 동쪽 성문 근처의

하늘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 불새가 뿜어내는 빛이 어찌나 강한지, 제

스타니아성 부분은 마치 대낮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섯의 화염! 너를 가로막는  그 모든 방해물을  터트리고, 불태워라!

칸프라그레이션!(conflagration)"

그때 루디는 마력을 조합하여 전방에 거대한 화염의 덩어리를  만들어

내었다. 마치 그 불길을 살아있는 듯 빨간  혀를 날름거리며 강렬한 열

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섯의 화염을 조합하여  만든 프레임 럼프보다

더욱 강대한 마법인 칸프라그레이션이었다.

"부, 불덩어리가 날아온다!"

병사들은 거대한 불새에 이어 그보다 더욱 거대한 화염이 주변의 풀들

을 모조리 태워버리며 성으로  날아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화염은, 그 괘도가 한치도 어긋나지  않고 제스타니아성의 동쪽

성문을 향하고 있었다.

"우와악!"

"크악!"

너무 갑작스런 상황에, 멍하니 그 불길을 보고 있다가 미처 피하지 못

한 병사들이 루디의 마법과 충돌하기도 전에 전신이 타오르는 듯한  열

기를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미 피하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

그리고 더 이상의 고통을 느낄 순간도  없이, 그대로 칸프라그레이션에

휩쓸리며 한줌의 재로 변해버렸다.

"서, 성문에 부딪친다!"

병사들은 어찌 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 화염의 덩어리가  성문과

충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성문과 충돌한 칸프

라그레이션의 거대한 불길은 사방으로 폭발하며 거대한 파편을날리었

고 줄이 붙지 않는 목재에 또 불이 붙지 않도록 특수 가공한 두꺼운 다

섯 겹의 성문은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을 남기며 주변에 그대로 불이 붙

어 버렸다. 그러나 성문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것은 아니었다. 원래  칸

프라그레이션은 목포를 태우는 것보다는 목포를 폭발시키는 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야! 내려와 케사라!"

그러자 에리나는 성문 근처의 하늘을 날고있던 섬광과 화염의 다중 속

성정령, 케사라를 성문을 향해 날아들게 했고, 케사라는 정령사의  명령

에 충실하며 그대로 약간의 불길에 휩쓸리고 있는 성문에 자신의  몸을

들이대었다. 그러자 마치 기름에 불붙듯 엄청난  열기를 사방으로 퍼트

리며 삽시간에 성문은 가공할 만한 화염에 뒤덮여 버렸다.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엄청난 불길이었다.

"작전 성공! 어서 이제 달아나자!"

루디는 한쪽 손의 주먹을 꽉 쥐며 기쁨의 표정을 환호성을 내었다. 그

러나 무척 창백해져 있는 그의 얼굴과, 그  표정은 무척 대조적인 모습

이었다.

"이봐! 인간들이 이쪽으로 달려온다! 어서 등에 올라타!"

그때 쥬크가 으르렁거리며 소리쳤고  에리나와 루디는 재빨리  쥬크의

등위로 올라탔다.

"에리나, 이번엔 네가 앞으로 타."

"에에.... 왜? 내 허리 잡고 싶어서?"

"농담할 시간 없어! 잔말 말고 어서!"

달려오는 병사들을 힐끔 처다 본 루디가 심각한 표정으로 에리나를 재

촉하자 에리나는 약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거절하지 않고 루

디가 하라는 대로 먼저  쥬크의 등 앞부분에 올라탔다.  그리고 루디는

에리나의 뒷부분으로 올라탔다.

"다 탔겠지! 달린다!"

쥬크는 등위에 두 명의 인간이 전부 탄 것을 확인하고는 갑자기  엄청

난 가속력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말과 같은 보통 이동수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기동력이었다.

"쏴라! 놓쳐서는 안 돼!"

제스타니아성에 주둔하고 있는 드라킬스의 병사들은 대부분  보병이었

기 때문에 말보다 빠른 쥬크를 쫓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대신 그들은

전원 활을 장비하고 있었다. 같은 보병은 물론  기병과도 능히 맞설 수

있도록 드라킬스의 기갑병들은 검과 방패, 그리고  창과 화살까지 능히

다루는 것이었다.

처음 에리나의 정령마법이 시전 될 때부터 딴 데 한눈팔지 않은  충실

한 드라킬스의 병사들은 마법이 날아온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

다. 그리고 대략 백  여명의 병사들이 달려오며 쥬크가  달리는 부근에

화살을 쏴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길! 생각보다 인간들의 반응이 빨라!"

쥬크는 날아드는 화살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 여 개의  모든 화실을 피해 달

릴 수는 없었다.

'내 몸에  저런 어설픈  화살  따위가 상처를  입히지는 못한다   하지

만........'

쥬크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등위에 타있는 두 명의  인간이었

다. 그리고 그중 뒤에  타있던 루디는 재빨리 앞에  타고있던 에리나의

몸을 그대로 덮쳐 누르며 몸을 숙였다.

"아앗! 루디오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무리 상황이  긴박해도 남자

가 이러면 안 돼!"

지금 화살이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에리나는 루디가 자신의 몸을  찍어

누르자 거기에 벗어나기 위해 마구 몸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러나 루디

의 힘은 완강했다.

"난 지금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니까......."

"뭔 소리야!"

에리나는 루디 때문에 쥬크의 등에  온 몸을 밀착시키고 있는  상태였

다. 앞은 쥬크, 뒤는 루디. 시아가 극히 좁아졌기 때문에 주변으로 날아

드는 화살도 볼 수 없었다.

"파박, 팍!"

그때 에리나의 귀에 무언가 강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뾰족한 것이 무

엇인가에 박히는 소리... 에리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없

었다.

"............. 괘, 괜찮니 에리나?"

"뭔 일이 있다고 문제가 있겠어!  어서 내 위에 있는  오빠 몸이나 치

워!"

"하... 그래? 그럼... 다행이구나...."

그리고 더 이상 루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에리나는 그때 자신의 몸을

누르고 있는 루디의 힘이 약해진 것을 느끼고는 몸을 일으키며  루디를

돌아보았다. 뭔가 목소리가 이상했다. 엄청난 고통을 참는 듯한  눌려있

는 목소리. 그것은.....

"오빠! 루디오빠!"

에리나는 쥬크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균형을  잡으

며 루디를 돌아보았다. 이미 루디는 의식이 없는  듯 쥬크의 몸을 제대

로 붙잡고 있지 않았다.

"쥬크 님! 쥬크님! 잠깐 멈춰요! 루디오빠가 이상해요!"

"제길! 활에 맞았나?"

쥬크는 한참 달리다가 에리나의  목소리에 달리던 것을  멈추어 섰다.

그러자 에리나는 재빨리 쥬크의 등에서 내려 뒤에 타있던 루디의  등뒤

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두 개의 화살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하나는  어

깨 죽지 부분이었고 하나는 왼쪽 허리부분에 박혀있었다.

"바보......  그럼 나를 앞에 타게 한 것도,  나를 몸으로 찍어누른 것도

이 화살 때문에? 으.. 으앙! 이런 게 어딨어......"

에리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쥬크가 으르

렁거리며 주저앉은 에리나에게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봐, 인간여자!, 음. 에리나라고 했던가? 어쨌든 루디는 아직 죽지 않

았어!"

"흑.. 흐흑..... 에.... 정말 요?"

"너 같은 약한 인간  여자라면 단숨에 죽었겠지만,  아직 루디는 죽지

않았어. 심장이 뛰고 있으니 어서 응급조치를 취해!"

쥬크는 몸을 낮추며 에리나에게 루디를 엎드린 상태로 땅에 뉘여 놓으

라고 말했다. 에리나는 훌쩍거리면서도 아직 루디가  살았다는 말에 떨

리는 손을 힘겹게 움직이며 루디를 잡고서 땅에 내려놓았다.

"화살은 내가 뽑을 테니까, 너는 화살을 뽑자마자 바로 천으로 상처를

싸매 줘! 난 인간처럼 손을 쓰지 못하니까 그건 네가 해야한다."

"아.... 알았어요. 하지만 상처를 싸맬 천은....."

"네가 입고 있는 그 헐렁한 치마라도 찢어서 만들어! 지금 그런 거 물

어보게 됐어!"

"아...... 네. 알겠어요."

그리고 쥬크는 곧바로 앞발과 이빨을  사용해서 루디의 등에 박힌  두

개의 화살을 뽑아내었다. 그러자 상처에서 많은  피가 새어나왔고 에리

나는 일단 피에 흠뻑 젖은 루디의 상의를 벗긴 다음, 이를 악물며 힘을

주어 자신의 치마를 찢어서는  그 천으로 루디의 상처를  싸 매주었다.

지금 에리나가 입고 있던 옷은 스피리스트의 신전에서 정령사에게 지급

하는 스피리스트의 정령사 복장이었지만, 에리나의 얼굴엔 결코 아깝다

던 가 하는 표정은 실려있지 않았다. 오직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마지막

매듭을 꽉 묶을 뿐이었다.

"다.. 됐어요."

"좋아. 그럼 빨리 킬츠에게로 돌아가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해야돼.

시간이 급하다. 어서 올라타!"

쥬크는 쓰러져 있는 루디를 살짝 불어서는 자신의 등에 던져 올린  후

에리나까지 등에 올라타자 다시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드라킬스의 병사들은 추격을 포기했는지 좋아오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쥬크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전속력을 다해 바람처럼 킬츠와 용병단

이 있는 야영지를 향해 달려갔다. 만약 이 루디가 죽으면, 쥬크는  도저

히 킬츠의 얼굴을 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제길...... 너, 루디라고 하는 인간......  죽기만 해봐라. 시체를 갈기갈기

씹어버려 줄테다.....'

"흑.. 흐흑..... 으아앙......"

쥬크는 일그러진 얼굴로 헉헉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에리나 역

시 읽으러진 표정으로 마구 울며  루디의 몸을 꽉 붙잡고 쥬크의  몸에

자신과 함께 떨어지지 않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죽으면 안돼 루디 오빠.... 나  때문에 오빠가 죽으면 난 어떻게  하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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