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장 -교차로- (6)
"몰튼 후작 님, 방금 전에 파울드에 있던 우리 첩자에게서 연락이 왔
습니다. 반역자, 세렌일당이 파울드에 도착, 북부 자치도시연합으로 망
명을 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저택에서 수하들과 대책회의를 하고있던 몰튼 후작은 살며시
들어온 한 남자의 보고를 받고서는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이젠 그 반역자 세렌일당을 잡을 수 있겠군. 어리석은 녀석
들..... 그냥 도망쳤으면 더 이상 관여를 하지 않아도됐는데, 미네아공주
를 데리고 가버렸으니...... 스스로 자신들의 목을 맨 셈이다."
몰튼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모인 다른 귀족들에게 소리쳤다.
"자, 이제 파울드로 공문서를 보내기만 하면 되는 군. 이미 법왕폐하에
게 이번 사건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으니 마음 것 위협해 주겠다!"
"오옷! 역시 몰튼 후작 님!"
듣고있던 청중들은 진심인지, 입 바랜 거짓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말
투와 어조로 동시에 소리치며 함께 기뻐했다. 미치광이들의 향연이었다.
-북부자치도시 연합의 맹주인 파울드의 현 시장대리, 제프 부시장에
게.
이번에 데스튼 신전에서 마족을 처단하기 위하여 귀공의 도시인 파울
드로 신관들을 파견, 끔직한 결과를 낳은 대에 대해 삼가 유감의 뜻을
전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에, 마족과 결탁하여 신관들에게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은
몇 명의 주동자들의 신변을, 우리 세디아 황국으로 넘겨주시기 바랍니
다.
일단 그 대표적인 인물로써 북부자치도시연합에 속해있는 혼의 용병단
용병장인 스와인 마브리스와, 파울드 용병단의대장이자 파울드의 방위
사령관인 킬츠 마켄시타의 신변은 반드시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흉악한 마족의 시체도 보관하고 계시
다면 함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 세디아황국의 황제, 로우
케리안스 1세의 뜻입니다.
우리는 귀국이 마족과 결탁하지 않았음을 믿으며, 반드시 이 부탁을
들어주실 것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부탁이 들어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귀국을 마족과 결
탁한 마도를 걷는 국가로 간주, 데스튼을 국교로 하고있는 저의 세디아
황국으로써는 부득이하게 동원 가능한 전 병력을 동원하여 공격을 감행
할 것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세디아 황국 재상. 라우나 토브린 공작.
"껍질뿐인 황국에... 이름뿐인 황제면서, 잘도 이래라 저래라 하는군
요......."
마인슈는 오늘 아침 세디아황국에서 파견된 사자가 보내온 공문서를
펼쳐보면서 빈정거리듯 쓴웃음을 내보였다. 이미 이 문서와 관련된 모
든 사항은 점심때 열린 회의에서 결정이 난 상태였고, 지금 태양이 넘
어가는 저녁시간이 되서야 마인슈 혼자서 천천히 이 문서를 살펴보게
된 것이었다.
세디아 황국은 대륙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인간'의 나라로써 한때
천사성국을 제외한 대륙의 전 영토를 지배한 적도 있는 그야말로 황제
의 나라, 황국이었다.
하지만, 황국력 360년, 천사성국과 있었던 어떤 회담의 계기로 인해 세
디아황국은 수도가 있는 대륙의 북동쪽의 반도를 제외한 모든 지방을
해방하였고, 연 이어 많은 신생국가들이 생겨나면서 세계력이 시작된
것이었다.
세계력도 끝나고, 성의전쟁이 지나 성의력을 쓰고있는 지금, 이미 황국
이란 이름은 자국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위력도 가지지 못했지만, 끝까
지 국왕의 명칭을 황제로 이어나가며 옛 영화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군
사력도, 경제력도 대륙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이 나라는,
그야말로 이름뿐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름뿐인 나라에 멸망의 위기를 당해야 하는 우리 자치
도시연합이야말로 불쌍하기 그지없군요. 뭐, 그래서 난 더 즐겁기는 하
지만."
마인슈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테이블에 놓여있는 저녁식사를 바라보
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약 열흘동안, 그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라면 작전을
실행하기도 전에 쓰러져 버릴 것만 같아서, 큰맘 먹고 지금부터 휴식을
가지며 식사를 제대로 할 결심을 한 것이었다.
"매우 고풍 적인 위협이군요........ 과연, 곧 이어서 올 클라스라인의 공
문은 어떠할지 궁금해지는데요?"
-파울드의 현 시장대리, 제프 부시장에게.
본국 클라스라인의 반역자, 세렌, 펠린, 루벨리자크, 카제스, 키사르,
다운크람, 이 여섯 명이 본국의 법왕, 파우킨저 3세의 둘째 따님이신 미
네아 공주님을 납치, 귀공의 도시, 파울드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사실을
입수했습니다.
만약 귀공께서 정도를 아시는 분이라면 반드시 이들 일곱 명을 본국으
로 호송시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않을 시엔, 클라스라인
의 전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이들을 돌려 받고야 말겠습니다.
-클라스라인 재상, 몰튼 리브리아 후작.
"음, 읽고 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확실히 세디아황국보다 공문의
격이 떨어지는 군요."
다음날, 연이어 클라스라인에서 보내온 사신이 전해온 공문을 접수한
파울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회의를 열어, 이 공문에 대한 새로운 결정
사항을 정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다짜고짜 네요. 하지만, 뭐 이것도 우리의 예상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계획 데로 진행하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제프 부시장은 허리를 펴며 말하자 마인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어제와 오늘 온 이 두 장의 공문서를 보아선, 역시 이 파
울드에 양국의 밀정이 상당수 잠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
니다. 특히 어제는 스와인 용병장과 킬츠 사령관의 이름까지 적혀있었
으니......"
"난, 내 성이 마브리스라는 사실마저 거의 잊고 있었는데."
스와인이 재미있다는 듯 끼어 들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걸 봐서라도 아직까지 파울드에 나이트길드가 개입되고 있
다는 사실가지 알아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혹시, 알면서도 시치미떼는 것은 아닐까요?"
마인슈의 판단에, 제란스 정보처리담당관이 의문을 제기했다. 확실히
알면서도 말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었다. 스와인과 킬츠의
이름까지 알아낼 정도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이트길드에 대한 처분 역시 내려야 하기 때문에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건들의 주체가 나이트길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책임을 북부자치도시연합에 물을 이유가 없지요,"
마인슈는 고개를 저으며 제란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판단에 앞서,
마인슈는 제발 저들 두 국가가 나이트길드가 이 북부자치도시연합에 개
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면 하고 속으로 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
이 크게 어긋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 어쨌든, 계획대로 두 국가의 공문서도 도착했고, 슬슬 작전을 본
격적으로 진행시켜 나갈 차례입니다. 이건 중간의 연기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모두 열심히 맡은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일단 클라스라인 법국과 세디아 황국에 대응 공문을 보내야 하
겠군요."
나이트길드의 대외담당관 키발드가 침착한 목소리로 물어오자 마인슈
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지금부터 시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