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47화 (147/166)

제 11장 -교차로- (4)

"키... 킬츠?"

그 상대도 킬츠와 같은 반응을 하고  있었다. 조금은 놀라서 커져있는

두 눈동자. 움직임을 잊은 듯 가만히 멈춰서있는 두 다리.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반가운 표정."

"................"

"................."

그러나 그 이상의 말은 없이 그냥 그렇게 서서 한참동안 그들은  서로

를 바라보았다. 마치,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듯이, 그러나 그들

은 분명한 타인이었고,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다.

"키가... 많이 컸구나. 나보다 큰데?"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세렌이었다. 세렌은  다시 천천히 계단을 올라와

서는 킬츠가 서있는 계단의 바로 두 칸 아래까지 와서는 멈춰 섰다. 계

단의 차이도 차이였지만,  그 차이를 배제하더라도  세렌보다는 킬츠의

키가 더 컸다.

"오랜... 만이구나. 킬츠, 만나고 싶었다."

"세렌... 세렌... 정말로 너냐?"

킬츠는 아직도 조금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세렌의 얼굴을  가

만히 들어다 보았다. 막혔던 감정들이 어느 샌가 모두 시원하게 사라져

있었다. 아마, 언젠가 다시 만나면 정말 서먹서먹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음도, 마찬가지로 함께 사라져 있었다.

"아...... 클라스라인의 패러딘 나이트가 됐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이곳

에 있지?"

잠시 머릿속의 변화의 감정들을 접어두고, 현실적인 문제를 떠올린 킬

츠였다. 사실을 모르는 킬츠의 생각으로는 지금 세렌이 이곳에 있을 이

유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렌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대신,

가벼운 한마디로 킬츠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남겨주었다.

"이젠 패러딘 나이트가 아니야. 너와 같은 나이트 길드의 소속이지."

"저... 정말?"

세렌은 웃는 얼굴로 킬츠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세렌은  생각했다.

아주 오랜만에 의식하지 않고 웃음이 나왔다고. 미리 생각하지 않은 미

소가 얼굴에 나왔다고.

"지금.... 어디 아파?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

"별로, 난 건강하다."

킬츠의 물음에 세렌은 목소리에 조금 힘을  주며 대답했다. 많은 그리

고 갑자기 킬츠는 세렌을 껴안았다.

"...... 킬츠?"

"고맙다... 정말 고맙다......"

세렌은 이 갑작스런 상황에 조금 당황해  했지만, 자신도 킬츠의 등을

안으며 서로의 체온을 확인했다. 아주 옛날에도, 지금도 변함없는 그 느

낌, 기억나지는 않지만, 예전에 킬츠의 등에 업혀 마을로 돌아올 때  느

꼈던 느낌...

"...... 아, 아.... 정말 고맙다."

"뭐가?"

"네가 이렇게 무사하게 있어 주어서. 나의.... 나의....."

킬츠는 거기서 말끝을 흐리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가슴속에 쌓여가던 앙금의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나의, 소중한 나의 친구.........'

"부르셨습니까 총평의장님?"

의장실에 들어온 마인슈는 슈레인에게 인사를 하며 그가 권해준  자리

에 앉았다. 그 역시 부시장처럼 그 어떤  상황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대

처할 수 있는 각종 전략과 전술의 구상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빠져있었

다. 그 둘의 공통점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처해서 자신이  맡은

일에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열정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다 하더라도, 사실

은 그것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자신들에게 딱  알 맞는

천직이었다.

"예, 총 참모장. 좀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참모장을 부르게  되었습니

다."

슈레인은 가볍게 허리를 쭉 펴며 들고있던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부시장과도 이야기를 해야하지만, 그쪽은 너무 여유가 없어놔서 말이

에요. 총 참모장님이라면 이 바쁜 와중에서라도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마침 대략적인 전략은 구상이 끝났었습니다. 그리고 세세한

내용을 정하는 것은 조금은 숨을 돌리고 해야겠지요."

역시 총 참모장의 정신구조는 부시장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건 여유를 내보일 수 있는 그 태도는 실로 뛰어난 능력이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그러니까, 오늘 오전에 이  도시로 여섯

명의 패러딘 나이트가  다섯 명의 일행과  함께 이 도시로  찾아왔습니

다."

"예? 패러딘 나이트가 말입니까?"

하루종일 방안에만 처박혀 있던 마인슈였기에 오늘 막 일어난 일의 정

보까지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곧 예

전에 들은 정보와 일치시켜,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고는 고개를 끄덕였

다.

"아......... 그렇다면, 제 91회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에서  뽑힌 기사들이

겠군요. 그들은 귀족들과 상당한 트러블이 있었다 하니......"

"맞습니다. 이름은 들어 보셨겠지요. 나이트 세렌이란 이름말입니다."

"물론이지요. 패러딘 나이트 역대 최초로  선발전에서 벌점 0점이라는

최고의 성적으로 선발된  기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덕분에 귀족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말입니다."

마인슈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곳 차지도시연합에서도 상당히 유명

한 그 이름을 떠올렸다. 패러딘 나이트 세렌. 아직 임명 된지 2년이  지

나지 않아서 숫자를 받지는 못했지만, 상대적으로  소수의 병력으로 클

라스라인을 침략해온 다도해의 대군을 맞아 완승을 이끌었으며, 드라킬

스와의 원정에서 위기에 처한 클라스라인군을 더 이상의 피해 없이  깨

끗하게 퇴각시킨 뛰어난 사령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기사였다. 그

리고 덕분에 클라스라인 최고 권력자중에  한사람인 재상 몰튼 후작의

시기를 받아 항명죄로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까지 마인슈는 알고 있었

다. 물론 이 모든 정보의 출처는 나이트길드였지만.

"네, 바로 그 나이트 세렌이 동료 패러딘 나이트 다섯 명과 함께 우리

나이트 길드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음, 그건 잘된 일 아닙니까? 그들은 확실한 실력을 가진 인재들인데."

"아, 물론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슈레인의 표정이 상당히 어두워지자  마인슈는 잠시 생각하고는  그의

심중을 파악했다.

"클라스라인이 그들의 반환을 요구할 것 같아서 입니까? 만약  그렇지

않으면 군사적인 보복을 하겠다고 하며....."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하지만 클라스라인, 아니 현재 지배세력인  몰튼 후작과 그의 측근들

은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을 더 반가워 할 것 같은데요? 손대지 않고 코

를 풀었으니 말입니다."

마인슈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슈레인도 표정을 풀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의 내용은 결코 웃음이 나올만한 내용이 아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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