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46화 (146/166)

제 11장 -교차로- (3)

결국 세렌과 다운크람, 키사르와 펠린이 한방을 쓰게되었고, 루벨과 카

젯, 그리고 다운크람의 남동생 두 명이 같은 방을, 그리고 미네아와  나

머지 다운크람의 두 여동생들이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일단 방이 정해지고 나자, 세렌일행은 모두  짐을 푸르고 방마다 마련

되어 있는 세면실에서 샤워를 마친 다음 각자 침대에 누워서는  뻗어버

렸다. 긴 여행에 그들의 체력이 못 버틴 것은 아니었으나, 너무  오랜만

에 보는 부드러운 침대라,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었다. 카젯은

씻지도 않고 그냥 침대에 몸을 던졌는데, 루벨이 집어들어 세면실로 던

지는 바람에 겨우 몸을 씻을 수가 있었다.

"아, 몸도 안 좋은데 나가려고? 오늘은 그냥 쉬지 그래."

몸을 씻고는 잠시 침대에 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나서는 문을 열고 밖

으로 나가려하는 세렌을 본 펠린은 가볍게 그의 행동을 만류했다. 세렌

이 제 정신을 차린  것은 고작 사흘전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몰튼 후작이 사주한 마취제의 효과는 그 후유증이 대단한 것이었다.

"아니, 할 일이 있어서. 으음...  할 일 이라기 보단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고 하는 편이 좋겠네. 어쨌든 나가봐야 해."

펠린의 말에 세렌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면서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펠린도 더 이상은 만류하거나 붙잡지 않았다. 이 도시는

클라스라인의 수도, 세인트룸이  아니라서 몰튼 후작의  행여나 있을지

모르는 암습의 위험은 없었다. 그냥, 자유롭고 평화로운 자치도시의  수

도인 것이었다.

"어쨌든 몸조심해!"

"슈레인 님. 오늘 나이트길드에 새로 소속된  사람들 중 나이트 세렌

이라는 분은 약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듯 합니다. 강력한 마취약에 중

독 됐다. 최근 회복한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나이트 키발드?"

키발드가 새로 마련해온 세렌일행의  자료를 훑어 보고있던  슈레인은

지나가는 듯한 키발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에 만났던  금발

의 매력적인 인상을 가진 청년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결코 아프거나 고통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고, 시종일관 침착하게 자신의 의견과 소견을 말했었다. 그는 어느 곳

도 마취제에 중독이 됐다가 겨우 풀려난 환자 격인 사람의  행동이라곤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 역시 패러딘 나이트 선발수련에서 벌점 0점을 기록한 엘리트다운

모습이군요. 하하. 그쪽에서 힘들게 인재를 단련시켜 놓고는 이렇게  우

리에게 가볍게 넘겨주다니, 실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권력자들이란,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보여지면  그땐 그 사람의 실

력이 실력으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럴 때는 그 사람의 실력이 높을수

록, 더욱 큰 걸림돌로 보게 마련입니다."

"정말입니다. 나이트 키발드. 이 자료 정리해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러자 키발드는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총평의장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달고 온 이 문제의 아가씨

입니다...... 이걸 어쩌나....."

슈레인은 키발드가 나가고 혼자서 마지막  한 장의 서류를 몇  번이고

다시 읽다가는, 고개를 저으며 밖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총참모장 님을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내일 회의를 하기 전에 먼저 급

히 할 말이 있다고 말입니다."

"벌써 5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 상처는 낳지 않는 겁니까!"

움직이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지, 치료를 마치고 방에서 걸어나오던 킬

츠는 그를 치료해주고 있는 쿠슬리에게 짜증을 부리며 소리쳤다.

"넌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구나. 뭐, 아무리 네가 회복이 바르

다 해도 약 한 달은 있어야 모든 상처가 완치될걸."

"에! 한 달이나!"

"왜, 싫어? 싫으면 한번 날뛰어봐. 그땐 1년이 걸려도 모자랄 테니."

"예전에도 그와 똑같은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킬츠는 투덜거리며 몇 년 전, 하지만  마치 까마득한 옛날처럼 기억되

는 언덕마을에서의 생활을  기억해 내었다. 그때도  심하게 부상당하여

쿠슬리의 신세를 진 적이 있었었다. 물론 나중에는 카름이 치료해 주었

지만......

'아, 그런 적도 있었지...'

생각해보니, 그때 왜 그런 상처를 입었는지가 떠올랐다.  사피라키루이

라는 괴물 나비를 상대로 한 격렬했던 전투,  어두운 밤을 아름답게 수

놓았던 그 나비의 날개가루, 마치 환상과도 같았던 광경. 그때 왜  그렇

게 강한 적을 상대로 죽을힘을 다해 싸웠는지, 지금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였지.'

결 좋은 금발에 침착한 표정과 분위기,  언제나 함께 있었으며 언제나

함께 보았던 친구. 아주 어렸을 때, 같은 슬픔을 간직하고 함께  생사를

나누었던 친구. 바로 그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 하지만  그

는 결코 자신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

이 강해지길 바랬으며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길 원했었다. 그리하여, 결

국은 그의 곁을 떠난 것이었다.

"뭘 그리 멍하니 생각  하냐. 아, 계단이군. 난  위층에 올라가 뉴린젤

양의 상처를 보도록 하지. 그럼 나중에 보자."

함께 걷던 도중, 계단이 나오자 쿠슬리는  뉴린젤의 상처를 보기 위해

서 위로 올라갔다. 킬츠는  밖으로 나가 걷고 싶었기  때문에 아래층을

향한 계단으로 내려갔다. 밖에 어딘가에 쥬크가 있을 테니,  소울아이라

도 사용하여 쥬크를 찾아내서는 그의 등에 타고 성벽 위를 달리고 싶었

다.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안 좋았다. 무엇인가 막혀있던 감정들

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그 힘을 발휘하듯 무척  힘든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그 느낌은......

'예전에 세렌이 떠나갈 때 느꼈던 기분인가.....'

그때 계단을 내려가던 킬츠의 눈에, 한  명의 사람이 아래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금발의 머리카락에, 조금은 힘이 빠져있지만  결

코 빛을 잃지 않고 있는 푸른 눈동자. 그리고 호리호리하게 잘 균형 잡

힌 몸. 그것은, 바로 킬츠에게 있어서 아주 그리운 네 명의 사람들 중에

한 명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 네 명중 한 명은 그의 어머니였고,

또 하나는 언덕마을의 장로, 도 한 명은 카름, 이었다. 이들 세 명의 공

통점은 이 세상에서 이미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지켜줄 수 없었

던 사람들, 하지만, 그 마지막 사람은 아직 이 세상에 살아있었다. 자신

이 지켜줄 필요가 없었던 사람.... 바로 그였다.

"세.... 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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