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45화 (145/166)

제 11장 -교차로- (2)

"아, 그 얼음 인형 천인장 아가씨는  어떻게 되었지? 이야기를 들어보

나 꽤 중태라던데."

스와인이 팔짱 낀 한쪽 손을 까딱거리며 신경이 쓰인다는 듯 묻자, 킬

츠는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왼쪽 손목부위의 뼈까지 들어간 상처는 완치되는데 한 달 이상..... 게

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현재는 시력이나 기타 감각이 마비된 상태

라고....."

"아, 그래도 다행이 생명에 이상은 없나보군."

"만약 그녀의 생명에이상이 있었다면....... 난 당장이라도 데스튼의 대

신전으로 달려가서 모든 걸 박살내 놓았을 꺼야."

킬츠는 살짝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헬쓱하고 창백한 얼굴로 가만

히 침대에 누워서 의식을 잃고 있는 뉴린젤의 모습이 그의 눈에 선하게

비치며 들어왔다.

"하지만, 이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라. 뉴린젤의 상처가  깊기 때문에

한동안은 절대로 안정을 취해야 할 테고, 그러면 제스타니아 성을 공략

할 때 그녀와 아버지간의 전투를 피할 수가 있잖아?"

가만히 듣고있던 루디가 저기압으로 떨어져있는 킬츠를 달래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확실히, 뉴린젤이 부상을 입음으로써 우려했던 부

녀 상잔의 비극을 피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아, 그 얘긴 들었어, 하지만 세디아왕국에서 어떠한  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 제스타니아 함락전은 무기한 연장되었다.  그러니, 만약 세디아

황국과 전쟁이 벌어진다면 잃어버린 영토  수복은 영영 물 건너 갈  런

지도 모르지."

스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제

스타니아 성을 함락하는 것은 군사력 면에서 북부자치도시연합이  내란

때문에 병력을 철수시킨  드라킬스보다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디아 황국이라면 상황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 일단 나는 가볼게. 어차피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은 이  여관에 계

속 머물게 될 테니 할 이야기 있으면 찾아오도록 해. 나야 언제나 한가

하니까."

스와인은 크라다겜의 방을 나가면서 자리에 누워있는 크라다겜을 힐끔

바라보았다. 상당히 넓은 더블 침대임에도 불구, 그가 누워있으니  혼자

라도 침대 하나가 꽉 차 보였다.

"아, 가려구?"

"네, 쿠슬리 씨. 나중에 크라다겜이 깨어나면 안부 좀 전해 주세요, 겨

우 하루도 배우지 못한 자네의  검술은 언젠가 다시 꼭 가르쳐  달라구

요,"

스와인은 빙그레 웃으며 방을 나갔다. 그리고  문을 닫고 자신이 묵고

있는 방으로 돌아가면서, 왠지 밀려오는 쓴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친구란, 동료보다 훨씬 좋은 것이구나.....'

세디아 황국간의 모든 외교적인 대책을 검색하고,  평가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부시장 제프는, 데스튼의 신관사건이

벌어진지 4일째 되는 날,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알려온 급한 소식에

이중으로 충격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으아! 난 세디아  황국간의 외교문제만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시장! 어서 왜 당신은 이런  괴로운 때 잘도 병에 걸려  자리를 비운거

지! 예측한 거 야냐?"

제프 부시장은 거의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며 한쪽 손으로 머리를 부

여잡고 마구 흔들었다. 병사가 알려온 사실은  바로 클라스라인의 제 1

기사단이자 라프나 여신의 신전기사이기도 한 패러딘 나이트 여섯 명이

북부 자치도시연합으로, 망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게.....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시장 대리님."

"그냥 부시장이라고 부르게. 아, 맞아. 그들이 말은 그렇게  했어도, 아

마 머리가 있다면 나이트길드를 생각하고 왔을 것이 분명해. 그래, 그렇

지."

제프는 거의 그랬으면 좋겠다는  믿음을 가지며 사람을  시켜, 문제의

패러딘 나이트 일행의 문제를 나이트길드 쪽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사

실, 현재 북부자치도시연합이  나이트길드에 의뢰하고 있는  것은 오직

군사력과, 그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문제들이었지만, 이 외교적인 망명문

제도 방향을 살짝 돌려, 나이트길드에 길드원이  된다는 문제로 바꾸면

책임이 그쪽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할 일은 태산같고, 언제  세디아황

국이 외교적인 사절을 보내올지 모르는 제프로써는 거기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나이트길드의 총평의장,  슈레인이라고 합니

다."

"나이트 세렌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세렌이 그의 동료들과 타고 온  마차는 결국 국경을 무사히  통과하여

목적지인 북부자치도시연합의 도시, 파울드에 도착하게 되었다.  처음에

는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는지, 밖에서 상당시간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만들었는데, 약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깔끔한 평상복 차림에 몸이  좋

고, 균형 잡혀 보이는 중년의 남자 둘이 나타나서는 그들을 이끌고,  이

도시의 가장 훌륭한 고급여관으로 손꼽히는 세피로이스라는 이름의  여

관으로 데려갔다.

처음에는 일단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라는 파울드 도시 측의  배려인줄

로만 알았는데, 막상 여관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자신은 나이트길드의자

치도시연합 담당관이라고 밝힌 피리우크라는  남자를 따라, 나이트길드

의 총 책임자를 만나게 되었다.

모두의 인사가 끝나고, 세렌은 지금까지의  클라스라인에서 있었던 모

든 자초지정을 설명하고는 이곳에 있는  여섯 명 모두가 나이트길드에

소속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 북부자치도시연합에 망명하고 싶다

는 것은 이 나이트길드에 소속되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했던  것이

었다.

"아.... 역시 클라스라인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군요. 예

전에도 많은 패러딘 나이트들이 클라스라인의 지배 귀족층의 압력에 견

디다 못해 이곳으로 탈출해 왔었습니다."

"그렇다면........."

"물론. 저희들은 여러분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나이트길드는  여러분

같이 나라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외의 여러 가지 문제에 의

해, 나라를 등질 수밖에 없었던 기사들의 마지막 피난처입니다.  우리들

은 결코 소속되고 싶어하는 기사분들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슈레인은 가볍게 이야기하며 그들이 길드원이 되는 것을 허락해  주었

다. 사실, 부시장 제프가 이 사실을 알려오기 전부터 그들은 정보를  입

수, 세렌 외 다섯 명의 명단을 조사하여 신원을 확인했던 것이었다.  이

미 그들이 나이트길드에 들어오기 위한 모든 절차는 끝나있었다.

"그럼, 일단 종업원들이 안내해주는 곳으로  가셔서 푹 쉬시기 바랍니

다. 그리고 내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문제를 모두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슈레인은 긴 여행으로 피로해 있을 그들을 배려하여 짧은 대화를 나눈

뒤 그들에게 방을 마련해 주었다. 방은 모두 침대가  네 개 짜리 방 세

개로 총 11명의 인원인 세렌일행은 나누어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런데 문제는 미네아 공주였다.

"설마 세렌...... 너 공주님과 한방을 쓰고 우리들을  쫗아내는건 아니겠

지?"

"설마....... 그럴 리가 카젯. 너무 과민한 반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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