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운명의 신- (11)
킬츠는 분노에 찬 얼굴로 신관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붉게 충혈 된 두
눈에는 강렬한 살기가 짖게 배어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전부 찢어버릴
듯한 기세였다.
"뭔데! 네놈들이 뭔데!"
킬츠는 가장 먼저 자신을 막아선 세 명의 신관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 어떤 기교도, 변화도 담겨있지 않은 가장 평범하고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이었지만, 그 무엇보다 격렬했고, 강력했다.
"카앙!"
킬츠의 테슬로우가 신관들의 라브린과 충돌하자, 약간만 뒤로 튕긴 테
슬로우와는 달리, 라브린은 거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반대편을 향해
퉁겨나갔다. 그리고 신관들이 다시 막아낼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킬츠
의 검은 무방비 상태인 그들의 전신을 가차없이 도륙했다.
"푸아악!"
뼈와 살이 찢겨나가는 끔찍한 파공성이 홀 전체에 울리며 새롭게 퍼져
나가는 비명소리에 파묻혔다.
"너네 가 뭔데... 너네 가 뭔데...."
"파악!"
"으아악!"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어 동시에 세 명의 신관의 발목을 베어버린 킬츠
는 고통의 비명과 함께 균형을 잃어버린 그들의 복부에 테슬로우의 일
격을 가했다. 비록 크라다겜의 파일팽과 같은 광범위한 반경을 자랑하
지는 못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강렬함과 잔인함이 담겨 있었다.
발목이 잘린 신관 중 두 명은 킬츠의 검에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한
명은 자신의 두개골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느끼면서 뒤로 날아가 버
렸다. 킬츠의 주먹이 그의 이마 한 가운데를 작렬한 것이었다.
"네놈들의 뭔데! 내 소중한 사람을 빼앗으려 하는 거냐!"
킬츠는 공격해 오는 신관들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구타하며 검으로
난자했다. 순식간에 여섯 명의 신관들이 생사가 불명확하게 되어 바닥
을 뒹굴게 되었다. 그리고 킬츠를 향한 1차 공격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한 덩치 큰 신관은 킬츠의 왼손에 목덜미가 잡혀 공중으로 2세션쯤 떠
올라 있었다.
"네놈들 100명의 목숨이 모인다 해도! 크라다겜의 상처 하나에 비할
것 같아!"
"이 악마의 추종자! 어째서 우리의 목숨이 저 사악한 마족보다 못하다
는 것이냐!"
공중에 들린 그 신관은 킬츠의 악력에 의해 목뼈가 그대로 부러지며
눈을 뒤집었고, 다시 대기하고 있던 새로운 신관들이 킬츠를 향해 달려
들었다.
"하! 마족? 인간?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어!"
킬츠는 이미 축 늘어진 자신에 손에 들려있는 신관을 달려오는 신관들
을 향해 내 던지며 짧은 기합과 함께 고속으로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
다. 킬츠에게 던져져서 날아가는 신관과, 따라서 달려가는 킬츠의 속도
가 더욱 빨랐다.
"단지, 내게 소중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다!"
킬츠는 엉겁결에 날아든 동료의 시체를 받아든 한 신관을 들고있는 시
체와 함께 반으로 절단 내 버렸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생명이 교차하며
붉은 피의 향연을 연출해 내었다. 절단된 여러 혈관에서는, 펌프에서 물
이 쏟아지듯 뜨거운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죽음으로써 속죄하라!"
"지상의 운명은 지상의 생명으로!"
"닥쳐! 누구 맘대로!"
시체와 함께 베인 동료의 죽음을 지켜본 신관들은 강렬한 공포와 분노
로 범벅이 되어 미친 듯이 킬츠를 공격해 들어왔다. 모두 데스튼의 신
관들 중에서 직접적인 전투로 한몫 단단히 하는 강력한 전사들이었다.
신관 한 명의 공격이 킬츠의 심장을 노리고 찔러 왔으나, 킬츠는 몸을
아래로 숙여 그 공격을 피해내었다. 완전히 피한 것은 아니라서 왼쪽
어깨 위의 부분이 갈라지며 가는 핏줄기가 솟구쳤지만, 그런 것은 킬츠
에게 아무런 감흥도, 고통도 주지 않았다. 곧바로 공격을 가한 신관의
가슴에 테슬로우를 찔러 넣었고, 연 이은 다른 신관들의 공격을 막아내
기 위해 그대로 박아 넣은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신관의 가슴은 반쯤
너덜해지며 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킬
츠의 전신을 붉은 염료에 담그기라도 한 듯, 붉게 물들여 버렸다.
그리고 강한 역동작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킬츠의 검은 신관들의 검과
격돌했고, 그 폭발하는 듯한 기세에 신관들은 손에 힘을 잃고 검을 놓
여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차 하고 느낄 새도 없이, 연 이은 킬츠의 공
격에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등을 볼 수 있게 되
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그때 뒤에 있던 신관들의 공격이 킬츠의 등을 노려왔고 등의 서늘한
감촉을 느낀 킬츠는 그대로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동시에
공격해오는 적의 숫자는 세 명. 그 순간 킬츠가 막아내고, 베어낸 적의
숫자는 둘이었다. 나머지 하나의 공격은 스치듯 킬츠의 허리를 베며 지
나갔다. 재빨리 몸을 뒤로 빼었기에 몸이 두 동강 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복부에는 근육이 절단될 정도의 심한 상처가 생겨 있
었다. 내장이 밖으로 쏟아질 듯한 극심한 고통이 킬츠의 배에서 느껴졌
다.
'허억!'
그러나 그런 고통을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킬츠는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힌 그 신관의 한쪽 팔을 날려 버리며곧바로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 재빨리 뛰어올라 무릎으로 그의 턱을 강타했다. 그는 이빨이
잇몸 속으로 박혀 들어가 버렸는지, 아니면 혀를 물어 잘라먹었는지 입
에서, 그리고 잘라진 팔뚝에서 대량의 피를 뿌리며 뒤로 넘어가기 시작
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가 지면과 충돌하기 전에 그의 목 한 가운데를
킬츠의 검이 관통하며 지나갔다. 자신에게 치명상을 운 좋은 신관에게
킬츠가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배려, 즉 확인 사살이었다.
그러나 킬츠가 얼마 안 되는 순간동안 십 여명의 신관들을 학살하고
있을 때, 다른 나머지 다수의 신관들을 미리 넓게 퍼져서 킬츠를 둥글
게 포위하고 있었다.
"하하, 너 혼자서 우리 전부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웃기지 마! 나도 아직 살아있어!"
크라이스가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며 킬츠에게 비웃음을 터뜨리자, 저
쪽에서 이제는 다섯 명 정도의 신관들과 싸우고 있던 스와인이 지친 와
중에서도 소리를 지르며 크라이스의 오류를 지적했다.
"흥........ 데스튼의 이름으로 빠른 시간 내에 너희들 전부를 죽여주마!"
"거기에 나도 끼워줘야겠다."
그때, 킬츠를 포위하고 있던 신관들 중 한 부분이 순식간에 허물어지
며 갑자기 뛰어든 검붉은 은빛의 커다란 덩어리에게 유린당했다. 거대
한 몸집, 날카로운 이빨, 인간의 피로 물든 은색의 아름다운 털. 바로
킬츠의 뒤를 이어 맹렬히 달려온 쥬크였다.
"너희들 피는 맛없다! 먹으면 속이 메스꺼워."
"뭐, 뭐라고!"
한 신관의 목을 물어뜯고는 붉게 물든 이빨은 내밀며 으르렁거리는 쥬
크의 말에, 다른 신관들 모두가 그 광경에 경악하며 뒤로 주춤거렸다.
이 거대한 늑대의 위협은 그들에게 있어선 마족을 상대하는 것 이상의
공포였다.
"넷의 바람과 하나의 화염! 윈드 오브 스팀!(wind of steam)"
그때 주춤하던 신관들의 사이로 엄청난 고압, 고열의 바람이 휘몰아
쳤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신관들은 방어마법을 전개하기도 전에, 엄
청난 고압에 전신이 뒤틀리는 고통을 맛보며 의식의 끈을 놓아야 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큰 고통에 기절한 신관들은 연 이은 고온의 열기에 심
각한 호흡곤란을 겪으며 서서히 죽어갔다.
"오, 쌩쌩하군 인간 마법사. 내 할 일을 덜어주었다."
"루디라고 불러주세요 쥬크 님."
그 마법의 근원은 바로 8층 홀로 내려오는 계단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는 루디였다. 얼굴은 아직도 창백했으며, 온몸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지만, 표정만큼은 무척 밝았다.
'오늘은 5원소 마법 두 개, 6원소 마법 하나를 사용했구나...... 아니, 이
중 마력증폭을 했으니 6원소 마법을 두 번 사용한 것인가.....'
그러나 거기까지가 루디의 한계였고, 그는 심각한 빈혈과도 같은 어지
러움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다시 주저앉아 버렸다. 기절한 것은 아니었
지만, 손끝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과도한 알마스의 소비와 정신집중
을 했기 때문이다.
'난 이제 조정력도, 운용력도 B클래스야.... 대 마도사 탄생이군....'
"어, 루디 군 괜찮은가?"
그때 이어서 조금 늦게 내려온 리네임과 제란스가 계단에 쓰러져 있는
루디를 발견하고는 걱정하는 표정과 함께 그를 향해 몸을 숙였다.
"아, 아니... 괜찮아요 그보다, 저기서 날뛰고 계시는 쥬크 님을 도와
서... 상황을 빨리 종결시킬 수 있도록...."
루디가 내린 판단은, 홀 가운데쯤 쓰러져 있는 심각한 중태, 혹은 이미
사망했을지도 모르는 크라다겜과,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또 자신의
피로 옷을 물들이고 있는 킬츠가 어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곳에 남아있는 잔여 신관들을 어서 빨리 전멸시
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