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41화 (141/166)

제 10장 -운명의 신- (10)

"이때다! 그 순결한 빛으로 악을 벌하라! 퓨어 샤이닝!(pure shining)"

그때, 멀리에 떨어져 있던 크라이스를 포함한  다섯 명의 고위 신관들

이 마법을 사용하여 홀 전체를 엄청난 빛으로  가득 채웠다. 대 마계용

마법 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퓨어 샤이닝이었다. 효

과는 마계의 생명이라면 온 몸의 혈관이 폭발하며 끔찍한 죽음을  맞이

하게 되는 것이었다.

"크, 크라다겜!"

역시 여러 명의 신관들을 상대하고  있던 스와인은 갑자기 방  전체를

가득 메우는 강렬한 빛에 눈을 감으며 보이지 않는 크라다겜을 불렀다.

그 자신은 이 빛에 별 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지만, 신관들이 사용한 이

상, 절대로 마족인 크라다겜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

다.

잠시 후 방안에 있던 눈부신 빛이 모두 사라져  버렸고, 곧 이어 드러

난 크라다겜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전신에 터지 상처로 푸른 피

를 끊임없이 쏟으며 그 자리에 멈춰 서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라색의

두 눈은 결코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오직... 나만 이곳에서 이 마법에 의해 피해를 입는 군. 크, 크극......."

표정은 변하지 않았으나, 크라다겜의 입에서  일말의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만큼, 이번 마법에 의한 충격은 심각한 것이었다. 고통도,  충

격도, 역대로 이렇게 심각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아니, 아니지. 내 마음을 지배하던  살의와 파괴의 감정이 제거되었을

때.... 그때의 고통에 비한다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크라다겜은 어색한 웃음을 얼굴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본

스와인의 얼굴에는 안도의 기쁨이 떠올랐지만, 다른  모든 신관의 얼굴

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뒤틀림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쏴, 쏴버렷! 안티이블을 쏘아라!"

회심의 일격이라 할 수 있는 다섯 명의 고위신관의 힘을 모아  사용한

퓨어 샤이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강렬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크라

다겜을 바라보며, 크라이스는 당황스러움을 느끼며 다른 신관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원래 크라다겜이 노리고 있던 그 신관들은 재빨리 나

머지 신성력을 전부 소모하며 안티이블의 투명한 빛줄기를  크라다겜에

게 퍼부었다. 죽을힘을 다한 수백 가닥의 강렬한 빛의 화살이었다.

'지금, 저걸 맞으면......'

크라다겜은 재빨리 파일팽을 가로로 세워 들어 검의 넓은 면으로 안티

이블의 공격을 막아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폭발의 반동이  엄청났지만,

크라다겜의 손은 결코 파일팽을 놓이지 않았다.

"으, 으악!"

그리고 신관들에게 육박해온 크라다겜은 세워들고 있던 파일팽으로 그

대로 내려치며 정면에 서있던 신관의 머리를  박살내어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그대로 검에 눌려등뼈가 부러지며 그 자리에서 찌그러지며  쓰

러지고 말았다. 크라다겜은 곧 좌우로 파일팽을  휘두르며 옆에 서있던

신관들을 양단하기 시작했다. 전신에 상처가 나서는  끊임없이 피를 흘

리고 있는 심각한, 아니, 인간 같으면 벌써 죽었어도 이상할 것 전혀 없

는 몸 상태를 가진 자가 펼치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

고 강렬한 공격이었다.

"사, 살려줘!"

"크아악!"

크라다겜이 함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가 딛는 땅이 0.5세션쯤 아래

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나면 막아도 검이 부러져 나갔으며 곧바로 어깨

건, 머리 건, 목이 건, 허리 건 그대로 잘려 나가며 피와, 생명을 허공에

뿌려나갔다. 사방엔 터지고 갈라진 살점들과 몸의 일부들, 그리고  한데

모으면 작은 방 하나를 꽉 채울 듯한 엄청난 량의 피가 사방에 낭자하

여 흐르고 있었다.

그때, 또다시 대기 중이었던 수십 명의 신관들이 마치 비명 같은 기합

을 외치며 막 도살을 끝낸 크라다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크라다겜

과 스와인에게 베어진 신관들만 하더라도 70명에 육박했지만,  아직 80

명의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신관들이 남아있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후회는

죽음을 맞이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크라다겜은 다시 한번 파일팽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며 달려드는 신관

들을 베어나갔다. 거의 한 명을 벨 때마다  한 개꼴로 크라다겜의 몸에

새로운 상처가 생겨났고, 그 상처들은 새로운 고통과, 피를 불러왔다.

왼쪽에 서있던 신관하나를 주먹으로 날려버리자,  동시에 정면에 있던

다섯 명의 신관들이 라브린을 치켜세우고 공격해  들어왔다. 일단 자세

를 낮추어 빠르게 그들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 파일팽의 검날로 세 명의

목을 날려 버렸지만, 나머지 두 명의 검이 그의 가슴과 한쪽 다리를 스

치고 지나갔다. 곧바로 그중 한  명의 가슴을 반으로 토막내고,  나머지

한 명의 복부에 발길질을 해서 내장을 터뜨려 버렸지만, 연이어 뒤쪽과,

오른쪽에서 십여 명의 신관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크라다겜은 변함없

는 동작으로 몸을 돌리며  다시 그들을 향해 파일팽을  휘둘렀다. 마치

폭발하는 듯한 검술을 사용하여, 지면엔 깊은 발자국을 남겨주었고,  상

대에겐 단번에 목숨을 빼앗는 치명상을 안겨주었다.

"..........!"

순간 내장에 닿을 정도로 라브린이 깊숙하게 그의 복부를 찔러  들어왔

고 크라다겜은 재빨리 그 신관의 허리를 가로로 베어버리며 더 큰 상처

가 나는 것을 방지했다. 그러나 이미 나있는  상처만 하더라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요, 참을 수 없는 절망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크라다

겜이었다.

'내 마지막 힘을 전부  쓰기 전에는.... 내 모든  의지를 전부 드러내기

전에는.......'

남아있는 신관들은 약 70여명, 그중 30명  정도는뒤에서 대기 중이었

고 10여명은 스와인과 상대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30여명은  크라다겜과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원래 평범한  검은 웬만한 힘이 실려

있지 않은 이상, 그의 몸에 심각한 상처를 남기기에 어려웠으나, 데스튼

의 신관들이 사용하는 라브린이라는 날이  하나뿐인 검은 담금질을 할

때 성수를 사용하여 만들었고, 또한 기본적인  항마용 신성마법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어중간한 공격이라 하더라도 크라다겜의 몸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었다. 물론 그 어중간함이라는 것은 크라다겜을 기준

으로 한 것이었지만.

'인간의 감정을..... 인간의 감정을 먹을 수 있다면. 아니, 직접  느낄 수

있다면....'

온몸의 기운이 너무도 많이 빠져 있어서 손끝하나 까딱하기  어려웠지

만, 크라다겜은 끊임없이 몸을 놀리며 신관들의  시체를 하나씩 계속해

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으며 굳건히 두  다리를

지면에 붙이고, 또 어느 때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

다.

'내 공격이 멈추는 순간은....  바로 내 생명이 멈추는  순간이 될 것이

다.'

그러나 들고있던 파일팽의 무게가 점점 큰 부담이 되며 크라다겜을 압

박해 들어왔다. 조금씩 신관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간격이 길어졌다.  그

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어깨에 라브린을 반쯤  박아 넣은 신관 하나를

정확히 세로로 반 토막을 내고 나자, 더 이상  파일팽을 치켜  세울 수

가 없었다. 서있는 것도 더 이상 무리였다.

"드디어 저 사악한 마족의 기운이 다했다!  이제는 데스튼의 이름으로

죽음을 안겨 주는 것이다!"

대기하고 있던 크라이스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이미 입어버린 피해가 너무도 심각했지만, 저 끔찍한 마족을 이 지상에

서 제거해 낼 수만 있다면 수많은 데스튼의  신관들의 죽음도, 결코 헛

되지 않은, 값진 것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 혈류의 지옥으로 변해 버린 세피로이스 지하 8층의  홀로

뛰어내려온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크라다겜을 향해 달

려가 막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 신관들을 마치 폭발하는 듯한 기세

로 베어날려 버렸다.

"크라다겜!"

바로 킬츠였다. 킬츠는 일단 크라다겜 주변에  있던 여섯 명의 신관들

을 모조리 베러버리고는 마치 석상처럼 뻣뻣하게 서있는 크라다겜의 모

습을 살폈다. 다행이 아직 목숨을 잃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참혹하여, 킬츠의 얼굴을 하얗게 만들 정도였다.

"킬츠..... 인가."

크라다겜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더

이상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 이 녀석들........."

쓰러진 크라다겜을 바라보며, 킬츠는 자신을 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바

라보고 있는 남아있는 신관들을, 마치 모조리 꿰뚫어 버릴 듯이 노려보

며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홀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네놈들 모조리 다 죽여 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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