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40화 (140/166)

제 10장 -운명의 신- (9)

"그럼, 너희들은 데스튼의 인형들인가?  너희 인간은? 이  모든 지상의

생명들은?"

"무, 무슨 소리냐!"

"너희들은 군체로써 존재하는가, 아니면 단체로써 존재하는가, 모두 단

하나의 명령체계에 모든 것을 위탁하고 살아가는 자아가 없는 곤충들과

같은가?"

"헛소리하지 마라! 어째서 우리 인간이 곤충과 같은 존재란 말이냐!"

"미안하지만, 인간은 결코 곤충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너희들

은 그렇게 보인다. 각자  자기 자신의 뜻과 생각은  배제하고 전적으로

데스튼의 뜻에 따르고 있지 않는가. 마치 종족 보전이라는 하나의 목적

을 가지고 있는 곤충들, 아니, 그런 본능조차 거부하고 오직 신의  뜻에

따르는 너희들은 인형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다. 왜, 그렇게  소

중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 그것을 그렇게  마음대로 포기해 버

리는 것이냐....... 나는, 나는 죽어도 완벽히  얻지 못할 그 능력을..... 그

소중한 능력을......."

크라다겜의 눈이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천천히 흔들렸다. 감정, 감정이

란 것들. 지금 크라다겜은 그 소중한 감정 하나에 눈을 뜨고 있었다. 바

로 질투라는 감정을.

"저, 전부 다 위선이야! 다 거짓이란 말이다! 마족의 말을 듣고 자시고

할 이유가 없어! 어서 공격하라 데스튼의 형제들이여! 저 마족을 이 땅

에서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크라이스는 혼란스런 마음을 신앙심이라는  강력한 금고 속에  단단히

감추어 놓으며 역시 혼란스러워 하고있는  다른 신관들에게 총 공격의

외침을 터뜨렸다. 그러자 단번에, 그들 150명의 신관들이 소리 높여  고

함을 지르며 크라다겜과 스와인에게로 달려들었다.

"이봐 크라다겜. 어쩔 수 없는 거야. 같은 인간으로써 보기에도 조금은

민망하지만,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의 정의와 신념을  가지고 있는거라

구."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정의와  다른 정의를 만났을  때,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존재들이지."

"바로 그거야. 결국, 남아있는 자의 정의가 진정한 정의일  뿐.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불멸의 정의는 인간들에게 없는 것이지."

"........ 다른 사람을 죽이지 마라. 서로 협력하며 살아라, 남을 배려하고

이해해 주어라, 행복한 삶을 살아라..... 난 이것이 인간의 절대적인 정의

인줄 알고 있었다."

"글세........ 듣고 보니, 난 네가 저들보다, 그리고 나보다  더욱 인간 같

아 보이는데,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나 역시 모르고 있었다니....  그래.

그게 진리야. 그게 진리이지......"

스와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바스타드 스워드를 비스듬히  세워

들었다. 600년 역사의 혼의 용병의 용병장에게만 주어지는 단 하나뿐인

바스타드 스워드. 보통 다른 바스타드 스워드와 다른 것이라곤, 오직 손

잡이에 새겨진 별의 문장뿐이었지만, 그 검엔  수많은 시간을 용병들의

혼과 함께 하며 쌓여간 신념과, 명예가 담겨  있었다. 수십 번, 수백 번

검날이 나가고, 부러지면서도  그때마다 다시 녹여서  원상태로 돌아온

아주 오래된 검. 그러나 한번도 쉬지 않고  용병장의 손에 들리어 끊임

없이 싸워온 검. 온갖 고통과 절망에도 마지막까지 굴하지 않고 살아나

는 혼의 용병의 의지가 그 검의 혼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진리는 너무도 가까이 에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

지 않아?"

"맞다. 소중한 것도, 알고 보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크라다겜은 자신의 무기, 오직 하나 남은  데스 나이트의 병기인 파일

팽을 치켜세우며 달려드는 신관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가차없

이, 단숨에 세 명의 신관들을 베어버렸다. 모두 라브린으로 막기는 했으

나, 크라다겜의 파일팽과 닿는 족족 부러지며 날아가는 것이었다.  그리

고 나면 무언가 느낄 새도 없이  이미 그들의 몸은 상하로 두 동강  나

있었다. 고통도, 아픔도 느낄 새 없이.

"너희 인간들의 진실을.... 그 소중한 마음을 느낀  후로부터...... 인간을

죽인 다는 것이, 얼마나,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희망을 제거해 버린다는

사실을..... 난 알아버렸다. 너희들도 얼마든지 자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부정의 세계에서 부정으로. 안티 이블!"

그때, 뒤에서 대기중인 30여명의 신관들이  동시에 신성마법을 사용했

고, 예전에 뉴린젤에게 그 마법을 사용했던 신관과는 달리, 이곳에 있는

신관들은 모두 선발된 정예들이었기 때문에, 한 사람  당 최저 10여 개

의 투명한 빛의 화살을 발사하고 있었다.게다가 속도도 월등히 빨랐다.

"신성마법....."

그러나 크라다겜은 오히려 그들 30명의 신관들을 향해 달려들며  날아

드는 빛의 화살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었다. 그리고, 크라

다겜의 몸에 충돌한 그 안티 이블의 빛줄기들은 그대로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생각해 보니, 아주 오랜 옛날.... 내가  젊었을 때, 인간들을 죽인 적이

있었구나, 그것도 아주 많은 인간을......'

크라다겜은 피부를 뚫고, 자신의 내부까지 미치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

면서도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신관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벌

써 수백 발의 안티 이블의 공격에 명중되었지만,  그가 느끼는 것은 오

직 육체의 아픔이었다. 그리고  그 공격으로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신관들 앞에 도착한 크라다겜은 마치 폭발하는 듯한

공격을 퍼부으며 방금 마법을 사용해 무방비 상태로 서있던 그들을  가

차없이 마구 도륙해 버렸다. 사방으로 엄청난 양의  피가 튀며 금새 주

위는 붉은 색 액체로 뒤덮여 버렸다.

"...................."

그러나 그들이 사용한 안티 이블이 크라다겜의 목숨을 빼앗지는  못했

다 하더라도, 그의 온몸에 심각한 상처를 만들기엔 충분한  위력이었다.

이미 군데군데에 갈라지고 찢어진 상처에서 푸른색의 피가 흐르고 있었

다. 그러나 겉의 상처보다, 안티이블의  가장 큰 능력인 항마력에  의한

전신의 뼈와, 근육에 미친 손상이 더욱 심각했다.

"죽어라! 이 괴물!"

"죽음으로써 모든 죄를 속죄하라!"

"지상의 운명은 지상의 생명으로!"

그러나 휴식할 시간도 없이, 수십 명의  신관들이 각자 라브린을 치켜

들고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또 그들의 뒤에는 다른 신관

들이 신성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건, 멋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데스튼."

또 다시 크라다겜의 파일팽이 묻어있던 피를 사방으로 뿌리며 다시 새

로운 피를 요구했다. 동시에 날아드는 십여 개의 칼날, 그러나 크라다겜

은 피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데스나이트의 검술대로 공격에만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덕분에 한번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크라다겜의

몸에는 여러 개의 상처가 남았으며, 동시에 여러  명의 신관들이 그 검

고 거대한 검 아래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실력은 지상에서 뉴린젤

과 싸웠던 신관들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지만, 그 역시 크라다

겜의 압도적인 힘 앞에선 왜소해 보일 뿐이었다.

"부정의 세계에서 부정으로! 안티이블!"

그리고 또 수백 개의 투명한 빛의 화살들이 크라다겜을 향해 날아들었

다. 그러자 크라다겜은 이번에도 같은 패턴으로 피하지 않고 그 신관들

을 향해 뛰어들었다. 상처에 다시 폭발이 일어나며  더욱 더 많은 피와

고통을 불러일으켰지만, 결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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