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39화 (139/166)

제 10장 -운명의 신- (8)

"쳇... 약해 빠진 것들. 살육의 느낌이  나서 달려나왔는데..... 알고 보니

이놈들만 죽고 있는 거였군."

상황을 종결시킨 쥬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쪽 한편에서 싸우고 있

던 리네임은 역시 도와주러 온 나이트 길드의 나이트 피리우크와  나이

트 제란스의 도움을 받아 상대하던 신관들을 전부 쓰러뜨린 후였다. 그

들 모두 몸 군데군데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다지 심

각한 상처는 아닌 듯 했다. 심각한 상처를입은 것은 혼자서 다섯 명의

신관을 살해한 뉴린젤뿐이었다.

"이봐! 거기 인간! 이 여자 좀 데리고 가서 치료해  주어라. 혹시 죽으

면 너도 죽여버릴 테니...."

"아, 알겠습니다."

쥬크는 가까이 있던 나이트 피리우크를 부르며 뉴린젤의 치료해 줄 것

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요구는 거의 협박 수주이었기 때문에, 피리우크

는 곧바로 주저앉아 의식을 잃은 뉴린젤을 들쳐업고는 세피로이스의 의

무실로 달려갔다.

"킬츠는..... 저 아래로 들어 갔나보군."

".... 쥬크 님?"

쥬크는 지하로 통하는 입구 앞에 쓰러져 있는 루디를 입으로 잡아끌며

자신의 등위로 던졌다.

"컥!"

"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냐,"

"아, 아. 네 물론이죠. 방금은 알마스가 고갈되어서 쓰러진 게 아니라...

단지 한계 이상으로 집중을 해서 그렇습니다."

"좋다. 그럼 내 등을 꽉 붙잡고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까....."

쥬크는 지하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기운의 신성력을 느끼고는  곧바로

그곳을 향해 뛰어 들었다.

"너희들도 어서 따라와라! 벌써 지친 거냐!"

이미 멀어져버린 쥬크에게서 들려온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가쁜  숨

을 몰아쉬고 있던 리네임과 제란스는 서로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 한 뒤

곧바로 쥬크의 뒤를  따라 지하실로 달려들어갔다.  아무리 크라다겜이

마족이라 할지라도, 그는 당당한 나이트 길드의 길드원이었으며 나이트

길드는 동료의 위험을 못  본체 하는 파렴치한 집단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의 주관도 없이 오직 데스튼의 뜻이라며 밑도 끝도 없이 마계의 힘

을 가진 사람을 살상하는 데스튼의 신관들에게, 무뚝뚝하지만, 성실하고

믿음직한 동료인 크라다겜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들에겐 모르는 인간

보다, 아는 마족의 생명이 훨씬 중요했다.

"뭐, 뭐야? 크악!"

세피로이스의 나이트 길드 전용 지하실을 관리하던 두 명의  길드원이

문서를 정리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수많은 신관들에 의해 복부

가 베어진 상태로 그대로  피를 쏟으며 쓰러져 버렸다.  이미 데스튼의

신관들은 이 지하에 있는 모든 사람을 데스튼의 뜻에 어긋나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미  숨겨진 통로를 따라  지하 7층까지  내려온 약

150명의 신관들은 도중에 있던 길드원  여섯 명을 항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체 그대로 살상해 버렸다.

"점점 더 가까워진다! 마족의 힘이! 모두 긴장하라!"

신관들을 이끌고 있던 상급신관 크라이스는 바닥을 구르고 있는  시체

들의 위로 데스튼의 성수를 뿌리며 점점 더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그

리고 마지막 지하 8층. 그곳엔 하나의 거대한 정 사각형의 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세면대와 화장실, 그리고 침대 등등이 있

는 것만 제외하면 완벽하게 비어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신관들이 느끼는 것은 그야말로 생생한  마족의

강력한 힘이었다. 홀의 정 중앙에는 두 명의  남자가 미리 무기를 들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신관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한 명

의 기운은, 옆에 서있던 나머지 한 명의 기세와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것이었다. 바로 크라다겜과 스와인이었다. 물론 신관들 중에 크라다겜을

본 사람은 없었지만, 그 둘 중에 누가 마족인지는 단번에 가려낼 수 있

었다.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었구나! 이 사악한 마족!"

크라이스는 흥분하며 크라다겜을  바라보았다. 사방의  벽에 붙어있는

횃불에서 나오는 붉은 빛으로 인해 그림자진 회색의 피부. 날카롭고 지

성적으로 생긴 얼굴, 평범한 흰색의 옷 위로 보이는 조각 같은 근육. 약

간 위로 뾰족하게 솟은 양쪽의 귀. 그리고.....

"사악? 날 보고 하는 말인가?"

섬짓할 정도로 낮은 톤의 목소리, 크라다겜은  150명 신관들의 선두에

서있는 크라이스를 바라보며 음울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이미 고

정관념과 편견으로 가득 찬 신관들의 귀에,  크라다겜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슬픔과 비애는 결코 들리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다! 너는 마족! 그러니 이 지상의 운명을 흔들어 놓는 것

이다!"

"난 인간을 죽이지 않았다. 그 아무도, 그래도 난 사악한 것인가?"

"마족의 말을 믿을 것 같으냐!"

"그래도 사실이라면."

"..... 만약 네가 그 어떤 인간도 죽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지상에 네

가 있다는 그것만으로 넌 그 무엇보다 사악한 것이다."

"내 존재 자체가..... 사악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데스튼의 뜻에 어긋나는 부정의 존재! 넌 이곳에 있어서는 안

돼는 것이다!"

크라이스는 강렬하게 소리치며 크라다겜을 노려보았다. 강렬한 살기가

담긴 눈으로, 그러나 크라다겜의 보라색 눈동자엔 그 어떤 살기도 들어

있지 않았다. 오직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만이  깊이 새겨져 있을 뿐이

었다.

"난.... 인간을 좋아한다. 그 풍부한 감정과,  마음을 가진 인간을, 타인

의 육체가 아닌, 마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 그

인간의 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난..... 동경한다 너희  인간을..........

이 끊임없이 노력해도 가지지  못하는 무력한 마족에  비해... 너희들은

너무도 큰 행복을 아무런 노력도 없이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는가."

"무, 무슨 소리냐!"

크라다겜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듣고 있는  크라이스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혀갔다.

"그렇게 축복 받고 태어난 인간들이기에....... 서로 다른 종족을 이렇게

잘 이해해 주며 동료로  받아들여 준 것이다.  정말 대단한 포용력........

하지만, 너희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다르고 말고! 우리는 마족의 꾀임에 넘어간  어리석은 인간과는 차원

이 다르다! 데스튼의 뜻에 충실하기 때문에!"

"데스튼이라......... 데스튼. 키퍼들을 만든  신 말이군. 운명의 신이라고

도 하는가."

"그렇다. 모든 지상의 생명들의 운명을  관장하는 가장 위대한 신이시

다!"

크라이스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소리쳤다. 그 누가 뭐래 도, 그는 데

스튼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데스튼이 가장 위대한

신이라 소리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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