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38화 (138/166)

제 10장 -운명의 신- (7)

엄청난 열기의 폭발에 휩쓸린 신관들은 모조리 잿더미로 변하여 서로

사이좋게 수북히 쌓여있었다. 그리고 곧 그 열기도, 지면의  달아오름도

사라졌지만, 방안의 공기는 아직도 화끈하게 뜨거워져 있었다.

'절반은 날렸군. 하지만......"

뉴린젤은 약 10여명의 신관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바닥에  쓰러져버린

루디를 힐끔 바라보았다. 가슴과,  다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

상처로 인해 쓰러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더 이상 그를 생각할

여유가 뉴린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죽어라! 이 마녀!"

그 이유는 거의 목숨을 내 던지다 시피하며 맹렬히 공격해 오는  데스

튼의 신관들 덕분이었다. 한 명씩 따로 따로  싸운다면 반드시 이길 확

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동시에 협공을 당하고  보니 계속하여 몰리기만

했다. 이대로는 서서히 힘만 빠질 뿐이었다.

'어차피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녀의 눈이 새파란 광채를 내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두 개의 검

을, 피하거나 튕겨내지않으며, 그대로 스치면서 검의 주인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그 검은 뉴린젤의 양쪽 허리를 스치며 길게 상처를 내었지만,

곧바로 뉴린젤의 검에 의해 공격을 가한 두 명의 신관의 허리가 동시에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그녀의 길고 날카로운 검이 단숨에 베고 지나간

것이었다.

일단 뉴린젤은 공격을 하던 신관들의 균형을 깨뜨렸다. 그러나 마찬가

지로 수비하던 자신의 균형도 깨져 있었다. 가까이  있던 신관 세 명이

들고있던 라브린이 그녀의 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일단 전력을 대해  몸을 돌려 피하기는 하였

으나, 그녀가 피한 공격은 단  하나뿐이었다. 나머지 두 개의  라브린은

각각 십자로 교차하며 그녀의 등에 깊은 상처를 만들어 내었고, 상처에

선 곧바로 대량의 피가 새어나와  그녀의 검은 연습 복에 더욱  어두운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뉴린젤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검을 세워 자신을 공격한 세  명의

신관들을 바라보았다. 나머지 다섯 명과의 거리는 약간 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그녀의  굳게 다문 입안에서는

잇몸에서 피가 날 정도로 이가 악물리고  있었다. 절대적인 불리함에서

오는 절망과, 몸에 난 깊고,  옅은 상처들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고통을

견디기 위한 무의식중에 나오는 대처법이었다.

"하아아아!"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뉴린젤은 세 명

의 신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순간 신관들을 압도할 정도의 기합

이 실려 있었고, 잠시 후 그 기세에서 정신을  차린 세 명의 신관이 라

브린을 세워 들어 그녀의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

다. 가장 오른쪽에 서있던 신관은 가장 먼저  뉴린젤의 검에 심장을 관

통 당했으며, 그 옆에  서있던 신관은 자신의 허리를  노리는 뉴린젤의

연이은 첫 일격을 어렵게 막아낼 수 있었으나,  강한 충격에 자신의 검

이 뒤로 튕겨 오른 순간, 이미 공격의 준비를  회복한 뉴린젤의 제 2격

에 의해 한번은 지켜내었던 허리가 단숨에 베어져 버렸다. 물컹하며 잘

리는 피부와 내장의 움직임, 그리고 가운데 있는 등뼈의 갈라짐과 또다

시 이어지는 내장과 피부의 절단. 그것은 고작 0.1초도 되지 않는  순간

의 일이었다.

"푸악!"

동시에 주변에 서있는 뉴린젤과 다른  한 명의 신관에게 붉은  선혈을

낭자하며 허리가 잘린 신관의 상체는 그대로 땅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

나 그보다 먼저 가장  왼쪽에 서있던 신관의 공격이  뉴린젤을 향했고,

미리 눈치챈 뉴린젤은 그 공격이  완벽한 힘과 속도를 내기 전에  미리

팔을 뻗쳐 왼 손목 등의 조금 아랫부분으로 라브린을 막아내었다. 뉴린

젤의 팔은 가늘었지만, 뼈에 반쯤 칼날이 박혔을 뿐, 베는 힘이  부족하

여 완전히 절단되지 는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뉴린젤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검은 그 신관의 가슴을 횡으로 갈라 버렸다. 순식간에 절단 난 장

기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왔다. 그리고 뉴린젤은 그 파편들에 흠뻑 젖으

며 나머지 다섯 명의 신관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강렬한

살기를 담은 두 눈만 번득이면서.

그러나, 거기까지가 그녀의 한계였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려버렸고

순간적으로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온몸의 근육을 극대로 혹사시켰기

때문에, 더 이상 몸이 그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다섯 명... 남았군."

"이, 이 잔인한 마녀!"

"죽어라!"

"지옥으로 돌아가 버려!"

뉴린젤이 가만히 멈춰 서서 나머지 다섯  명의 신관들을 바라보자, 그

끔찍한 광경에 잠시 넋이 빠져있던 그들은 곳 동료의 잔인한 죽음에 분

노하며 흉폭스럽게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표정에는  신관답지 않은

살기가 짖게 배어있었다.

'지옥은..... 아버지를 베고 나서 가려 했는데.......'

그녀는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 눈으로 거의 앞까지 육박해온  신관들을

바라보았다. 흐릿흐릿하고 자꾸 끊기는 모습이었지만, 의식만큼은  또렷

했다.

'죽음.... 죽음인가?'

그리고 가장 먼저 달려온 신관의 라브린이 뉴린젤의 복부를  관통하려

했다.

"크와앙!"

그때 은빛으로 새하얗게 빛나는 커다란 덩어리가 그 신관을 옆에서 덮

쳐 버리더니, 단숨에 이빨로 목덜미를 반쯤 뜯어내었다. 잘린 신관의 동

맥에서 마치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고, 그 거대한 생명체의 뾰족한 얼굴

과, 등 언저리의 은빛 털이 그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생

명체는 한쪽 발로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그 신관을 멀리 차버리며 뉴린

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자........ 꼴이 말이 아니군. 뭐. 그 모습도 잘 어울리긴 하지만."

"개 주제에...... 날 놀리는..... 거냐......"

그 거대한 붉은 은빛의 생명체는 바로 실리온 늑대의 수장.  쥬크였다.

뉴린젤은 이미 보이지 않는 눈 대신 귀로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로 쥬

크임을 확인하고는, 의식을 놓기 전에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무릎이 풀리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엇, 너야말로 인간 주제에..... 아니, 이봐! 그렇게 쓰러지면 어떻게  하

나!! 내 말은 듣고 죽던지 말던지 하라구!"

쥬크는 자신도 그녀의 말을 되받아 치려 입을 열었으나 이미 뉴린젤은

의식을 잃은 후였다. 이제는 그가 아무리 떠들어  봤자 혼자 쇼하는 것

일 뿐.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 기분이 나쁜데, 이러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뭐....."

쥬크는 다시 몸을 돌려 달리다 그 자리에 멈춰 선 네 명의 신관을 바

라보았다. 그들은 이 갑작스런 난입자의 덩치와, 기세에 눌려 어찌할 바

를 모르고 있었다.

"너네 들, 뭣 하러 이 여자를 공격하는 것이냐."

쥬크가 살벌한 목소리로 신관들을향해 말했다.  이미 화가 날대로 나

있는 듯, 피에 젖은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서는 빛에 반사되어 번득

였다.

"저, 저 여자는 마녀... 아니, 마계의 힘을 가진  자들을 도,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형제들을 죽여서....."

늑대가 왜 말을 하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신관들이었으나,

일단, 물어보았으니 대답을 해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 떨리는  목소리

로 친절하게 대답을 하였다.

"....... 그렇다면, 나도 너희 형제들을 죽였으니 공격을 해야 되겠군. 아

니, 당하는건 내 성미에 맞지 않으니,  내가 먼저 공격하겠다. 이 어리

석은 인간들아."

그리고 쥬크는 곧바로 네 명의 신관을  덮쳐들었고, 단 한번의 도약으

로 100세션 이상을 건너 뛰어 곧바로  신관들을 공격했다. 양쪽 앞발로

각각 다른 신관의 가슴을 후려치자 그들의 흉부에 있는 각종  장기들은

일순간 갈비뼈와 함께 파괴되어 버렸으며, 운 나쁘게 그들 가운데 서있

던 신관은 쥬크의 커다란 입에 머리가 부서져  버렸다. 하얀 뇌수가 쥬

크의 입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으아악!"

"비명 지르지 마라, 인간아. 너도 곧 따라가게 될 테니."

그리고 가장 왼쪽에 있는 덕분에 쥬크의 일차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었

던 운 좋은 신관은 자신이 지른 비명의 끝도 듣지 못한 체 곧바로 자신

의 목을 향해 이어진 쥬크의 이빨에 의해 생명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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