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34화 (134/166)

제 10장 -운명의 신- (3)

"의문을 가질 것은 없을 것 같다. 난, 그 회색 옷을 입은  사람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으니까."

그러자 크라다겜은 딱딱한 말투로 몇 달 전에 있었던 그 사실을  모두

에게 말해주었다. 다행이 내부에 밀고자가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모두

들 때아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숨이나  쉬

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시청 측에서도 그들을 거절할 수는 없

을 것이니, 곧 신관들은 이 도시를 수색하고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데

스튼의 신관들은 마계의 기운을 감지하기  때문에..... 이대로 있다가 걸

리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봐야겠지요."

슈레인이 대책을 말하려고 하는 순간, 밖에서 대기중인 나이트 피리우

크가 회의장의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아, 방금 시청에서 사람이 왔는데, 제프 시장 대리가 도시로  온 신관

들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 준다고 해서 시간을 끌고 있다 합니다."

"오, 젊은 나이에 그냥 부시장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구만,  그 제프

라는 친구,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자신도 비슷한 나이에 혼의 용병장을 하고 있으면서 감탄을 하는 스와

인이었다. 이 자치도시연합은 오직 자신의 실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었다. 결코 가문이나 나이 같은 것으로 요직을 뽑지는 않았다.

"음, 다행이 시장 대리께서 시간을 벌어 주셨군요. 그럼 일단 어떻게든

이 도시에서 마족의 기운이 느껴지기  힘든 곳으로 나이트 크라다겜을

피신시켜야 하겠습니다."

슈레인은 크라다겜을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의 능력이라면, 저들을 모조리 해치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도시와 우리 나이트 길드를 위해서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이트  크

라다겜."

"난 이 나이트길드에 소속되어 있으니,  당연히 나이트 길드를 위해서

라면 그렇게 하겠다. 난, 결코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아직 그들

은 직접적으로 나의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으니까....."

크라다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슈레인의  부탁에 승낙했다. 결코

마족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말들도 함께 곁들이면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이트 크라다겜. 당신이  오직 마족이라는 이유 하

나만으로 결코 저들이 당신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당신

은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욱 사려  깊고, 강한  의지가 있습니다. 그런

당신의 뜻을, 최선을 다해 지켜 드리지요."

크라다겜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 것을 고려하여  (물론

그밖에 여러 가지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직접적인  전투에도 배치하지

않은 나이트길드였다. 그리고 충실하게 자신의 맡은  일을 다하며 성실

하게 나이트길드에 봉사했던 크라다겜이었다.  애초에 마족이라고 해서

그의 영입을 거부하지 않은 이상, 상황이 어려워  졌다고 그냥 나 몰라

라 할 나이트길드가 아니었다. 모든 갈곳 없는 나이트들의 희망, 그것이

바로 이 나이트 길드인 것이었다.

"이 세피로이스의 지하는 약 9층의 규모로 되어있습니다. 각종 무기와,

자원들을 저장해놓고 있는  비밀창고인 셈이지요,  100% 확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마 지하실의 가장 아래층으로 들어간다면 아무리 날

고 긴다는 신관들이라 하더라도 쉽게 나이트 크라다겜을 발견할 수  없

을 것입니다."

슈레인은 제정, 보급담당관인 나이트 스필트에게 부탁하여 크라다겜을

지하실에서 보낼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일단 지하 2

층까지는 그냥 가더라도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 아래부터는 비밀통로

를 사용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언제나 나이트길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지하라도

언제나 깨끗하고, 살기에 알맞게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스필트는 크라다겜과 킬츠, 그리고 스와인과  함께 세피로이스의 지하

로 내려가, 지하 2층에 있는 비밀통로를 사용하여  지하 3층을 향해 내

려갔다.

숨겨져 있는 지하 3층은,  오히려 지하 1,2층보다  온도도 적당했으며,

습도도 숨쉬기에 알맞게  유지되고 있었다. 군데군데에  등잔과 횃불이

끊이지 않고 빛을 발하고 있어,  결코 어둡지도 않았다. 게다가  지상에

있는 여관의 보다도 한층 한층의 규모가 더욱 거대했다.

그곳에는 약 30여명의 길드 원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지하 4층에 있는

엄청난 규모의 무기창고에는 수많은 병장기와 갑옷들이 체계적으로  정

리되어 있었다. 대부분  역대로 나이트길드에 소속된  기사들의 무기나

갑옷들이었다. 몇백, 몇 천년을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모인 물건들이었

다.

그리고 지하 5층은 식량이나 재물들을 보관하고  있었으며 6,7층은 두

층의 규모로 각종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 동안 나이트길드에서

모아온 정보들의 산 재보인 것이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나이트길드의 심장부이구나. 엄청난 문서들......."

스와인이 7층에 있는 수많은 벽장을 가득 메운 문서들을 바라보며  혀

를 내둘렀다. 그는 이 나이트길드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이 크라

다겜의 무료할 지하 생활의 말상대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에, 특별히

고려해서 이 곳을 들어올 수 있게 해주었다.

"규모가 엄청난데. 이런 곳에 있으면 결코 신관들에게 걸리지 않을 거

야 크라다겜."

킬츠는 묵묵히 걸음을 걷고만 있던 크라다겜을 바라보며 안도의  목소

리로 말을 걸었다. 이 지하의 규모가 정말 감탄한 정도로 깊어,  아무리

생각해도 신관들의 추적 망을 피해갈 것 같기 때문이었다. 설사 자신이

지상에서 소울아이를 발동한다 하더라도 크라다겜이 이곳에 있을지  알

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분위기가 좋다. 적당히 어둡고...... 지내기 편한 곳이다."

크라다겜은 간단히 몇 마디로 대답하며 보라색의 차가운 눈동자로  지

하의 내부를 몇 번 둘러보았다. 그가 정말로 이곳을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적어도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안심시켜 줄 수 있

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는 기분이 나쁘다 하더라도 말로는 좋

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를 생각해 주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크라다겜의 보라색 눈동자의 차가움은,  결이 좋지 않은  회색 피부의

싸늘함은, 날카로운 얼굴과 조각 같은 근육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은,  결

코 변하지 않고 그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으나,  이미 그의

내면은 완벽한 인간의 그것이었다. 오히려 변변치 않은 인간들 보다 훨

씬 인간다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나도 가끔 찾아와서 밖에 이야기를  해주지. 크라

다겜에게 걸리면 다 한방인 신관들의 어리둥절 하는 모습을 자세히  말

해주려 말이야."

"그거 좋겠군. 기대하고 있겠다."

크라다겜이 가볍게 대답하자, 옆에 있던 스와인이 킬츠의 등을 토닥거

리며 씽긋 웃음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 스와인이 결코 크라다겜은 심심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테니. 나도 이번 기회에 그  유명한 킬츠의 '폭탄검'을 배워보려고

하거든."

전에 킬츠가 보여준 마치 폭발하는 듯한  위력의 검술이, 용병들 사이

에선 대충 그런 이름으로 불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여간 강한 게

아니라고 소문이 쫙 퍼진 것이다.

"그것 배우려면 좀 힘들텐데."

"어허, 내가 이래봬도 혼의 용병장, 스와인이라구.  설마 못 배울 성싶

나."

스와인이 허리에 차고있던 자신의 검을 세차게 뽑아들며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마치 연극을 하는 듯한 표정과 자세를 하고서는 말이다.

"그런데 그 혼의 용병장 스와인. 혼의 용병은 어떻게 하려고?"

그대 킬츠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하자 스와인은 이번에도 역시  자신

있는 말투로 대답했다.

"걱정 말기를. 부단장인 파킨스에게 말해 둘 테니까. 아 스필트 씨. 여

기서 나가면 제인트 성에 있는 우리 부단장에게 꼭 좀 말해주시기 바랍

니다. 모든 용병들의 지휘를 자네에게 맡긴다고......."

"걱정 마십시오. 오늘 내로 당장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무책임이 극에 달했군....."

"오, 킬츠 사령관. 그건 무책임이 아니고 동료를 믿는  '신뢰'라고 하는

거지. 난 부단장과 우리 혼의 용병단을 믿고 있거든. 행여나 나 없이 전

쟁을 한다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꺼야."

"그럼 이번 기회에 용병장을 사퇴하는 것이 어떨까?"

킬츠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스와인을  바라보며 말하자 스와인은  눈을

감으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난 동료에 대한 믿음도 극에 달했지만, 실력 역시 우리

혼의 용병단 중에서 가장 뛰어나거든, 물론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이야. 그러니 내가 없으면 안  되지. 그리고 누가 뭐래 도  난

혼의 용병장 스와인! 음......... 내가 죽을 때까지 말이야."

"자기 멋대로 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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