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운명의 신- (2)
운명의 신 데스튼. 세디아 황국의 북쪽 칼튼 산맥에 대 신전이 위치해
있으며 그 대신전을 제외하고는 대륙 그 어느 곳에도 데스튼의 신전은
세워져 있지가 않았다.
모든 생명의 운명을 관장한다는 이 신은 어찌 보면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지도 모르는 것이다. 예전에 타천사 나타스가
일으킨 성의 전쟁에서도 오직 그만이 인간들을 도와 '키퍼' 라는 존재를
만들어 준 선례를 보더라도 그가 지상계의 모든 생명들의 운명을 그들
의 손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을 알 수 있다. 지상계에 사는
모든 생명들의 운명은 오직 지상계의 생명들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것.
결코 다른 세상의 힘에 의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이 데스튼의
뜻이자, 데스튼의 신관들이 추구하는 단 한가지의 계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데스튼의 신관들은 온 대륙을 떠돌며 마계의 힘을 사용
하는, 특히 다크휴먼 같은 존재들을 제거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 힘을
가진 사람의 선악의 유무를 떠나서 오직 소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거
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오직 그들이 신관으로써 살아가는 유
일한 목적이었으므로.
"상급 신관 크라이스라고 합니다."
파울드를 찾아온 200여명의 데스튼의 신관들은 성에 들어오자마자 곧
바로 시청에 있는 시장을 찾아가서는 즉시 자신들의 목적을 말하기 시
작했다. 그야말로 다짜고짜 쳐들어 온 셈이었는데 원래 대륙에서 중립
을 지키며 그 어디라도 자유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바로 신관이
었으므로 그들의 앞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클라스라인을 음양으로
돕고 있는 생명의 빛의 여신, 라프나의 신관들은 예외였지만.
"시장 대리인 제프입니다. 운명의 수호자이신 데스튼의 신관들께서 이
도시는 무슨 일로....."
노환으로 인해 자리에 누워있는 시장을 대신하여, 부시장인 제프가 그
들 신관들을 맞이했다. 원래 다른 신들의 신관들과는 달리 대륙에서 가
장 영향력 있는 3대 신전의 신관들이기 때문에 제프는 결코 소홀히 그
들을 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이곳에 온 그들의 목적이 결코 포교
나 빈민구제와 같은 성스럽고 보기 좋은 것이 아닐 것이란 사실은 그들
의 분위기와 무장상태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파울드를 찾아온 200
명의 신관들 전부가 '크란'이라 불리는 전투용 지팡이를 소유했으며 온
갖 성구들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상에 사는 생명에 하나이신 제프 님에게 데스튼의 뜻이 진실히
도착할 수 있기를."
"예......"
"저희들이 이 도시에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오직 하나. 이 지상의 것
에 의하여 이 지상의 운명이 바뀌지 않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
다."
"그, 그렇다면......."
제프는 어느새 이마에 난 식은땀을 재빨리 닦아내며 마른침을 꿀꺽 삼
키었다. 그가 아무리 30대 초반의 젊은 부시장이고 열정과 혈기가 넘치
는 청년이라 할지라도, 상대를 향해 은은한 압박감을 주는 상급신관과,
그리고 그 뒤에 대기중인 그에 만만치 않아 보이는 200여명의 신관들을
대하고 있으려니,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무
언가 켕기는 사실도 있었기 때문에, 거의 매 떼에게 둘러 쌓인 토끼라
도 된 기분이었다.
"우리 신관들 중 하나가, 이 도시에서 사악한 마족의 기운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보기도 했다는 군요."
"그, 그럴 리가...... 설마 요. 마족이 이런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서 왜
살고 있단 말입니까. 그랬다면 벌써 그 마족에 의해 이 도시는 멸망하
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대꾸하면서도, 제프는 속에서 철퇴가 굴러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사실은, 그들이 이 도시의 군사력을 맞긴
나이트 길드에 소속된 어느 한 명이, 마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북부 자치도시 연합의 지도층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비밀이 새어나갈 염려는 없었다.
'그런데 직접 보았다니......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일단 잘 둘러대고 있었지만, 영원히 신관들을 속일수도 없는 노릇이었
다. 그들은 보지 않아도 마계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도 하겠지만, 일단 저희들이 보고, 느꼈음에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일단 저희로써는 이 도시를 철저하게 수색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마 시장대리님께서도 혹시나 모를 위험을 이대로 놔두시려는 것은 아
니겠지요."
신관 크라이스는 마치 제프의 마음속을 들어다 보기라도 하려는 듯이
강렬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것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해도, 그는
이미 제프의 속사정을 눈치 챈 듯 했다.
"그, 그러시지요. 제가 어찌 데스튼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희 나라에서 곧 군사적인 행동이 있을 것 같으니 그 점에 대
해선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곧 있을 드라킬스와의 전쟁을 생각해서 나온 말이었다. 이미 준
비는 착착 진행되어, 한달 정도만 있으면 곧바로 나이트 파리퀸이 지키
고 있는 성채, 제스타니아를 공략하기도 되어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중
간에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우리들은 이 도시, 이 나라가 그 어떤 군사적인 행동
을 하던지, 아니면 어떤 계략을 꾸미는지 그것에 대해서 참견하지 않습
니다. 저희는 오직, 지상의 생명이 아닌 것들에 의해 이 지상에 있는 생
명들의 운명이 바뀌지 않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자 그럼 저희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 도시에 계실 동안에 만이라도 저희가 숙식을 제공해 드리
겠습니다. 미천하지만, 데스튼의 신관들께 드리는, 저희의 성의라고 생
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프는 재빨리 나가려는 크라이스 신관을 붙잡으며 친절하게 숙식을
제공해 주겠다고 나섰다. 일단 그들이 짐을 풀고, 식사를 할 동안 나이
트 길드에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생각 같아선 그냥 마족 하
나 이 도시에 있으니 잡아가쇼, 하고 싶었지만, 그 마족이 나이트 길드
에 속해있으며 결코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으며 이 도시로 잠입
하려는 수많은 암살자들을 잡아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마족
에 대한 편견만으로 이 일을 처리해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제프는 당사자의 의견도 묻지 않고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는 막 나가는
귀족들 같은 인물은 아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자치도시의
모범적인 시민인 것이었다.
크라이스는 시장 대리의 꿍꿍이 있는 호의를 고마워하며 감사히 받아
들였고, 제프는 곧 시청 옆 종합 관사에 있는 빈방들을 정리하여 신관
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재빨리 고급여관, 세피로이스
로 보내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부디, 조용히 넘어 갔으면 좋으련만......'
일단 시청 쪽 보다도 먼저 이 사실을 알아챈 나이트 길드는 긴급 회
의를 열어 이 사태의 수습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했다. 모일 수 있는
간부들은 모조리 집합하였으며, 아무래도 이 일의 근원일 것이라 추측
되는 특수 치안 담당관, 크라다겜과 그의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성 방위
사령관 킬츠와 최근 크라다겜과 친해졌으며, 마침 이 도시에 있던 혼의
용병장, 스와인도 함께 자리에 모여 앉았다.
"큰일인데, 데스튼의 회색곰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다니....... 눈치 챈 것
이 틀림없어."
스와인은 이 사실을 듣고는 고개를 저으며 크라다겜을 바라보았다. 최
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가끔 그에게 식사도 제공해 주던 스와
인은 데스튼 신전의 신관들에게 유일한 임무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것
은 이 대륙에서 마계의 힘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일단...... 데스튼의 신관들이 하는 유일한 일은 다른 세계의 힘을 제거
하는 것이니, 그들이 이 도시로 찾아온 목적은 특수 치안 담당관인 나
이트 크라다겜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의문이지만......"
나이트 길드의 총평의장인 슈레인은 냉정한 표정으로 사태를 정리하
며 한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혹시 나이트 길드 내에 이 일을 밀고한 사
람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