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32화 (132/166)

제 10장. -운명의 신- (1)

길이가 조금 길고 날도 약간 넓은 한 자루의 바스타스 스워드가  킬츠

의 머리를 노리며 완만한 포물선을 그렸다. 바르고 강한 힘이 담겨있는

일직선의 공격. 킬츠는 조금 전에 빌린 롱소드로 힘있게 그것을 튕겨내

었다.

"타앙!"

검과 검이 서로 맞부딪치자 잠깐동안 그 교차점에선 반짝이는  불꽃이

튕겨 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구경하던 다른 용병들의 와와 하는 환호성

도 시끄럽게 들려왔다.

한가로운 오후의 성벽 위, 점심 식사를 끝낸 킬츠는 잠시 그의 휘하에

있는 용병들의 상태를 보기위해 그들이 대기하고 있는 파울드 성의  성

벽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휘휘 돌아다니며 천천히  용병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곳에 있던 용병들을  지휘하는 천인장 크

랭크가 킬츠에게 말을 걸며 다가온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지금 용병들

의 상황이 어쩌고, 곧 출병할 때 우리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지 어쩌

고 하며 상투적인 말들이 오갔으나, 말이 흐르던 중에 갑자기 크랭크가

연습으로 대련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해왔다. 따분하고 심심하니 식

후에 운동도 할 겸해서 몸 좀 풀 자며 말이다.

"좋은 생각인데, 그럼 하지 뭐."

킬츠고 마침 따분하던 차였기 때문에 크랭크의 제의를 가볍게  승낙했

다. 그러자 주위의 다른 용병들이 자신들의 천인장과, 역시 자신들의 사

령관이 대련을 한다는 사실에 흥분하며 함성을  질러대었다. 그리고 곳

그들은 크랭크와 킬츠의 주위를 머리서 빙 둘러 감싸며 다분한  오후를

흥미 있게 만들어줄 이 세기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센데! 역시 천인장다운 실력이야."

"과찬의 말씀을, 대장이야말로 제 실력을 안 내고 있는 것 같구만."

킬츠는 방금 전의 방어로 자신의 손목이 가볍게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감탄의 소리를 외쳤다. 그리고 크랭크는 연이어  기세 좋게 연속공격을

퍼부으며 킬츠를 가차없이 밀어 붙였다. 역시 용병으로 잔뼈가 굵은 크

랭크였기 때문에, 그 실력은 여간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용병경력이 15년에 육박하고있다는 사실만으로도,  15년간 용병으로 살

아남은 그 뛰어난 실력은 인정되는 셈이었다.

킬츠는 검날을 이리저리 흔들며  계속되는 크랭크의 공격을  막아내었

다. 그러나 수세에 몰려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서로 진검을 사용하고 있

을지라도 킬츠의 마음엔 여유가 있었다. 킬츠는 지금 자신이 가진 힘과

속도를 전부 내지 않고 크랭크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력 좀 내봐 대장. 전에 전투에선 가의 마족을 방불케  하더니, 지금

은 왜이리 힘이 없지?"

크랭크는 공격 도중 검을 멈춰 세우며 너무 싱겁다는 듯 어깨를  으쓱

했다. 이 대련이 연습인 이상, 그 자신도 모든 실력을 내고있지는  않았

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킬츠의 실력은 이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성벽에 올라온 드라킬스군을 상대로  보여준 킬츠의 모

습은 마치 전투를 하기위해 때어난 마족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긴, 가볍게 땀만 내면 재미없지."

크랭크의 말에 킬츠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의 표시를 나타내었다.

킬츠는 이마에 난 땀을 한 손으로 훔쳐내며 들고있던 롱소드를  구경하

던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이번 대련을 위해 잠시  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내 검을 써야지 실력을 낼 수 있지. 조심해 크랭크."

"호오, 이제부터 본 경기의 시작인가?"

킬츠가 허리에 차고있던 자신의 검집에서 보통 롱소드와 비슷한  크기

의 검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러나 그 검은  보통의 롱소드와는 달리 검

전체가 완벽한 검은 색을 띄고  있었으며 그런 와중에서도 검날만큼은

새카만 어둠의 광택을 번뜩였다.  그 예기가 너무 섬뜩한  나머지 잠시

흐느적거리고 있던 크랭크도 갑자기 긴장을 바짝 차리며 자신의 바스타

드소드를 비스듬하게 세워들었다.

"그럼, 이번에도 먼저 들어가 볼까?"

선수 필승이라 했던가. 크랭크는 재빨리  달려들며 찌르기를 사용하여

킬츠를 공격해 들어갔다.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예리한 공격이었

다. 그는 찌르기의 자세나 그 찌르기가 상대의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를 결정하는 포인트, 그리고 힘은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등등 그런 모

든 이론적인 기술은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도 많은 반복과 실전의 경험이 있었기에, 정말로  실전적이라 할 수 있

는 매우 실용적인 찌르기였다.  바로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그때그때마다 공격의 정도를 가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크랭크의 시아에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킬츠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그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아주

희미한 잔상이었다. 그리고 그 잔상은.......

"아래!"

킬츠는 엄청나게 낮은 자세로 이미  그의 정면 아래까지 파고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위로 검을 휘두르며 일어섰다. 엄청난  속도였

다.

"꽈앙!"

그러나 그것은 속도뿐인 공격이 아니었다. 찌르기를 하던 크랭크의 검

은 킬츠의 검과 충돌하며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공중으로 솟구쳐  올

라갔다. 검을 놓인 것은  아니었으나 거의 놓일 정도로  크랭크의 손을

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킬츠의 검은 가의 폭발적인 힘을 터뜨리며 크랭크에게 달려들

었다. 힘겹게 검을 제자리도 돌려서 막아내면 다시 엄청나게 뒤로 튕겨

져 나갔으며, 다시 끌어와서 막아내면 또다시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 그만!"

단 세 번 막아내고는 크랭크는 자신의 패배를 소리치며 황급히 위기를

타파했다. 처음에 킬츠의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공격만  예측했다면 이

정도로 공세를 뺏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크랭크는 킬츠의 검

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엄청난 힘에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속도도 속

도지만 그 파괴적인 위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와........ 가슴뼈가 다 욱신거리네."

"다치진 않았지?"

킬츠가 가볍게 웃으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 정도로 다칠 이 크랭크는 아니지만.... 정말 대단한데. 어떻게 그렇

게 강한 위력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난 전장에서 드래곤나이트와 검을

겨룬 적도 있지만 그 기사의 검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크랭크는 한숨 돌렸는지, 혀를 내두르며 감탄에 마지못했다. 그러자 킬

츠는 크랭크에게로 다가가 자신의 검집을 건네주었다.

"궁금해? 일단은 무거우니까 그런 거지."

엉겁결에 그 검이 담긴 검집을 한 손으로 받아든 크랭크는 손이  아래

로 축 처지를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랐다. 한 손으로 들기엔 심각할 정

도로 무거운 것이었다. 바스타드 스워드도 한  손으로 능숙하게 다루는

크랭크였는데, 이 롱소드 급의 크기를 가진 이 상대적으로 자그마한 검

이 그 바스타드 스워드의 두 배에 가까운  무게인 것이었다. 그 크기에

서 느껴지는 무게라고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니, 어떻게 이런 검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지?"

"나도 모르지. 크라다겜에게 물어보면 알지도....... 그리고 두 번째는 내

가 움직인 곳을 보면 알 수 있어. 잘 연구해서 더 강해지면 좋겠지.  다

른 용병들도 말이야. 그러면 전쟁에서 훨씬 덜 죽을 수 있을 텐데...."

킬츠는 어딘가 모르게 희미한 어두운 표정을 하며 크랭크에게 검을 받

아들었다. 그리고는 성벽에서 내려가려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던 용병들은 몇몇이 환호하며 서로 내기했던 돈을 자신의  주

머니로 쓸어 담았다.

크랭크는 킬츠의 말대로 방금 전 자신들이 겨루었던 그 장소를 바라보

았다. 그곳에는 돌로 만든 성벽임에도 불구하고 네 개의 갈라진 발자국

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킬츠가 검을 휘두른 숫자와 일치했다.  돌

들이 순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에엑...... 어떻게 하면 이렇게 돌로 된 땅이 패이지?"

크랭크는 또 한번 혀를 차며  그 흔적들을 감상했다. 바로  그 무거운

검과 순간적인 이 정체 불명의 힘이 마치 폭발하는 듯한 위력의 킬츠의

검을 설명할 수 있는 증거들이었다.

"크, 크랭크 천인장!"

그때, 싸움구경에 신경 쓰지 않으며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던 용병 한

명이 소리치며 자신의 직속상관, 즉 천인장  크랭크를 소리지르며 불렀

다. 무언가 심각한 일인 듯, 그의 목소리 어딘가 엔 긴장감이  담겨있었

다.

"무슨 일이지?"

크랭크는 재빨리 그 용병이 서있는 성벽의 난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

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용병은 크랭크와 성밖을 번갈아  바라보며 선

밖의 북쪽 평원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약 200명도  넘어 보이는

회색의 신관복을 입은 무리들이 파울드 성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신

관들이 저렇게 동시에 몰려다니는 것은 실로 보기 드문 일이었다.

"뭐, 뭐야 저것들은, 데스튼의 똘마니들인가?"

언제나 전쟁터의 피와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며 결코 운명이라는  단어

를 믿지 않는 크랭크였기  때문에 운명의 신, 데스튼의  신관들을 그런

식으로 부를 수 있었다.

아무튼 범상치 않은 일이었다. 크랭크는 일단 성벽을 내려가는 세렌을

부르며 이 사실을 알렸다. 그의  의무는 정찰한 사실을 그들의  사령관,

킬츠에게 알리는 것뿐이었다. 그 외의 상부에 알리는 것은 모두 킬츠의

몫이었다. 물론 킬츠가 부재중엔 그의 대리역할을 맡아오던 크랭크이기

는 했지만.

계단을 내려가던 킬츠는 자신에게로  달려오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크랭크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뿐만  아니라 성 위에 있

는 용병들의 웅성거림도 어딘지 모르게 불길했다.

"킬츠! 킬츠 대장! 저기 회색곰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회색곰?"

"데스튼의 신관 말이야! 거의 200명도 넘어 보이는데?"

크랭크의 말에 킬츠는 다시 성벽 위로 달려와 그 사실을 자신의 눈으

로 직접 확인했다. 정말로  그 회색 신관복을 입은  데스튼의 신관들이

열 하나 틀리지 않고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일직선으로  파울드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킬츠는 이 예상  밖의 상황이 그에게 주

는 의문을 느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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