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21화 (121/166)

제 9장 -무엇을 위하여- (4)

"일단 지금 상황에서 남부의 영토로  군사를 보내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재상을 처단하겠다 들고  일어선 티엣타 왕

자에게 군사적인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바로  지원군을 파견하는 것이

지요."

총 참모장의 말에 네프일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는 어떻게 보면

타국의 내란에 간섭하는, 즉 타국의 정치나 전쟁에 관여하지 않는다, 라

는 자치도시연합의 최대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고  했지만, 다르게 생각

한다면, 동맹국인 남부자치도시연합을 구한다는  명백한 구실이 되기도

했다. 대륙에서 오직 둘뿐인 약소국 자치도시연합이  이번 기회에 잘만

하면 페이오드라는 정통 왕국과  동맹을 맺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티엣타왕자의 결정에 달린 일이기는 했지만, 재상의  군대에 비하여 군

사력 면에서 미약한 그가 이 지원군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마

인슈는 바로 이점을 노린 것인데, 그냥  무상으로 도와준다면 그쪽에서

먼저 의심을 하고 나설 것이기 때문에 명백한  지원의 보답, 즉 티엣타

왕자의거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그  대가로 빼앗긴 남부자치도시

연합의 영도와 자치권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 협상이 성공적으로 완결된다면 현재 홀로 고립된 상황에  몰려있는

자치도지연합은 든든한 아군을 얻게 될 것이다.  앞으로 다시 드라킬스

가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자치도시연합의 우방인 페이오드가  후방을

공격해 준다면 훨씬 수월한 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수가 있었군요."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페이오드에 대한 직접적인 공세를 취하지 않고

서도 남부 자치도시연합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페이오드와는

우방이 되고요."

"일거 양득이로군. 실로 묘책입니다 그려."

어느 샌가 흥분을 완벽히 가라 안친 네프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인슈

의 작전을 감탄했다. 확실히 적은 힘으로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는 뛰

어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공할 경우에 한해서이지만.

"하지만, 우리가 이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여러 가지의 문제가 놓

여있습니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그 문제 중 가장 큰 것은 바

로 병력을 지원하기 위한 이동로를 드라킬스가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

다. 하지만 다행이 지금 드라킬스의 병력도  대부분 본국으로 철수하고

있으니 기회는 있습니다."

"그래도 설마 드라킬스가 병력을  전부 철수시키지는 않을 것  아닙니

까?"

회의장 한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혼의 용병장, 스와인이 마인슈가 잠깐

말을 멈춘 사이 일반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다. 물론 당연할  일이겠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아선 결코 안 되는 극히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입니다. 스와인 용병장. 드라킬스는 반드시 일개 부대쯤은 요충지

에 남겨둘 것입니다. 그것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부대로 말입니다. 아마

도 나이트 파리퀸이 이끄는 철벽의 기갑단이 수비 면에선 가장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테니 가장 유력한 후보지요."

자리에서 일어서 있던 마인슈는 양손으로 테이블의 모서리를 붙잡으며

조금은 문제가 있다는 말투로 심각하게 말했다. 드라킬스의 3대 사령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나이트 파리퀸의 철벽의 기갑단은 역대의 드라킬스

와 클라스라인간의 전쟁 중에 클라스라인에게 숫자적으론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힌 역사가 있었다. 오죽하면예전에 뉴린젤이 용병 모집 소에

찾아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대자 그곳에 있던 모두가 이를 갈며 공

격해 들어왔겠는가. 그 정도로 파리퀸의 이름은 자치도시연합의 사람들

에겐 증오의 대상인 것이었다.

계속되는 마인슈의 설명을 들으며, 성 방위 사령관의 이름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킬츠는 예전에 뉴린젤이 들려준 이야기가 사실이 되어가

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뉴린젤과 그의 아버지

간에, 특히 그녀가 이뤄지기를 바라해 마지않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킬츠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녀를 멋대로 키우

며 전사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지만, 어쨌든  나이트 파리퀸은 뉴린젤의

아버지가 아닌가, 적어도 킬츠는 부녀가 서로 칼을 맞대고 불꽃을 튀기

는 살풍경한 광경을 보고싶지는 않았다. 그것도 지금 자신의 소중한 사

람 중에 하나인 뉴린젤이 주인공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 아버지 사이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깊은 골이 패

여 있었다. 결코 서로가 있는 곳으로 건너올 수는 없었다. 뉴린젤의  복

수심은 그 정도가 매우 심각했다. 만약 파리퀸이 아버지의 사랑을 먼저

보여주고, 진실로 자신이 딸을 위해 그런 일을 시킨다고 설명을 해주었

다면, 뉴린젤도 결코 그런 원한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그렇기 때문에, 킬츠는 더욱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회의가 끝난 어둑해진 저녁, 킬츠는 고급 여관 세피로이스에 뉴린젤이

묶고있는 방을 향했다. 물론  원 목적은 휘하에 있는  천인장들에게 이

작전을 미리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킬츠는 뉴린젤에게 다른  이

유로 하고싶은 말이 있었다.

그리고 뉴린젤의 방에 도착한 킬츠는 가볍게 노크하고는 아무 생각 없

이 그냥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현재  그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뉴린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할까 하는 것뿐이었다.

"저, 뉴린젤. 오늘 회의에서 말이야."

"................"

"................. !"

일단 무리 없이 말을 건네려는 킬츠는 방안에 있는 뉴린젤의 옷  갈아

입는 모습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막  샤워를 마친 듯

아직 마르지 않은 촉촉한 몸과 머리카락을 하고는 겨우 속옷만 입고 이

제 막 겉옷을 입으려는 순간이었다. 서로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고, 킬

츠의 동공은 순간적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아-앗! 미, 미안."

킬츠는 재빨리 몸을 돌리며  다시 밖으로 나가서는  문을 닫아버렸다.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고, 어느새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시... 실수다.'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킬츠는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번

에는 조용히 노크를 하며 헛기침으로 뉴린젤을 불렀다.

"들어와도 된다."

뉴린젤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몸에 거의  딱 맞는 검은 색의

연습 복. 거기에 흉갑만 찬다면  예의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방금 전의 그 사건 때문인지, 킬츠의 눈에는  그녀가 결코 평소의 모습

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그러나 뉴린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한 눈으로 킬츠를 바라보

았다. 하지만 킬츠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평소와는  다른 미세한 떨림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 그건...... 그래. 이번에 드라킬스에  내분이 일어나서, 북부 자치도

시연합의 점령지에 주둔  중이던 대부분의 병력이  본국으로 철수한데.

그래서 이번에 잃었던 영토를 되 찾으려나봐."

"그것 잘됐군. 하지만 드라킬스의 장군  중 누군가는 반드시 남아있겠

지."

"맞아. 그리고 마인슈 총 참모장의 말로는 그 남아있는 드라킬스의 사

령관중 가장 유력한 후보가......... 드라킬스 3장군중 하나인........"

"내 아버지. 나이트 파리퀸이겠지."

킬츠가 자꾸 뜸을 들이자 뉴린젤은 간단하게 킬츠가 끝까지 꺼내지 못

한 그 사람의 이름을 먼저 말하였다. 뉴린젤의 판단력도 마인슈에게 뒤

지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미리 예측하던 것이었다.

"그래. 나이트 파리퀸이 이끄는 철벽의 기사단이 남게 될 거라더군."

킬츠는 한숨을 내쉬며 뉴린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결코 그녀에게 말

해주려던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역시 뉴린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와의 싸움을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는..... 내가 아버지와 싸우는 것을 반대하는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오히려 뉴린젤이었다.  어찌 자신의 마음을 그리

도 잘 알아주는지, 킬츠는 허무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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