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무엇을 위하여- (3)
"그럼........ 그렇게 결정 한 거니?"
세렌은 철창을 잡은 한쪽 손의 손가락으로 기이한 박자를 만들며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꼈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높은 위
치에 올라있는 클라스라인이라는 한 국가를 포기하면서 까지 세렌을 구
해내려는 것이었다.
"그래, 솔직히 이런 나라에서 장군으로, 기사로 싸워봤자 귀족들만 좋
을 뿐이야. 어디로든 가자 구. 널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그 후작의 뜻
대로 사라져 주면 되는 거야."
펠린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철창을 잡은 세렌의 손을 잡았다. 세
렌의 손은 매우 차가웠다. 마치 쇠로 만든 조각품이 차가워졌을 때 만
지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펠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피가 통할 수 없는 살, 즉 굳은살이었다. 세렌도, 펠린도 지난 5년간의
수련을 거치며 자연스레 손에 박혀진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래도... 아깝지 않아?"
세렌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펠린에게 재차 말했으나, 펠린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그를 바라보았다.
"결코, 내가, 우리가 패러딘나이트가 아니게 된다해도, 우리가 패러딘
나이트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변함없으니까. 지난 그 고생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우리가 어디를 간다해도."
"그래... 그렇구나. 정말 고맙다."
"고맙긴. 그리고 말인데...."
펠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품속에 숨겨놓은 작은 공 같은 물체를 꺼
내들었다.
"이런 곳에서 제대로 야채를 먹을 리는 없겠지. 식사는 어때?"
"최악이야. 양은 마음대로 인데, 향과 맛이 너무 안 좋아서 거의 굶다
시피 하고 있다."
"음..... 그래도 체력 유지 상 억지로 먹어둬. 루벨이라면 양만 충분하다
면 일단 좋아하겠지만..... 이거 받아. 모래 하나 숨겨온 거야."
"이건..... 옐브린 열매?"
펠린이 건넨 주먹보다 조금 작은 노란빛의 열매를 받아든 세렌은 곧
그 열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옐브린 나무 열매. 전 대륙에서 오
직 세디아 황국의 동쪽 해안지방에서면 난다는 극악의 신맛을 가진 과
일이었다. 특수 영양소가 풍부하여 오지를 여행하거나 배로 이동할 때
등, 야채를 먹기 힘들때 주로 이용하여 피로회복이나 각종 결핍질환에
특효로 사용되었다.
"장난 아니게 시니까 조금씩 먹어. 일단 이걸 먹어두면 눈이 어두워진
다던가 잇몸에서 피가 나는 일은 없을 꺼야."
"정말 이거 하나면 충분하겠군. 보기만 해도 입에서 침이 나는데."
"어쨌든 잘 버티고 있어 그리고 수상한 음식이 나오면 먹지마, 후작이
라면 독살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펠린은 적어도 한달 후 까지는 다시 기별을 주겠다고 말한 뒤 저 멀리
서 시간이 다되었다고 소리치는 간수 장에게 달려갔다.
"가요! 알았지? 그럼 잘 지내고 있어!"
"그래. 다른 녀석들한테도 안부 전해 줘."
펠린이 들고있던 등잔이 멀어져가자 다시 세렌의 시아는 어눌한 어둠
으로 찾아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방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해도
사실은 그곳엔 무엇인가가 분명히 존재는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
고, 실제로 없는 것은 아니니까.
"예전에 최종관문 할 때가 생각나는군.... 그래, 그때처럼 위급한 것도
아니니까, 천천히 한 달만 기다리자......."
세렌은 마치 눈에 보이는 듯이 낡은 나무침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자연스럽게 그곳에 누웠다. 등에 닿는 감촉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한
쪽 손에 들고있는 옐브린 나무열매의 감촉은 정말 부드럽고 매끈했다.
세렌은 그것을 자꾸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뜨나 감으
나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일단 눈을 감고 잠시 기다리면, 또 다
른 새로운 세계가 그를 인도하는 것이었다. 바로 꿈이라는 이름아래. 그
리고 세렌은 감옥 안에서 잠들며 성의력 670년의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
다.
성의력 670년이 되고 나서 곧바로10일 동안, 북부자치도시연합의 나
이트길드가 포착한 정보들은 실로 세인을 경악하게 만들 정도의 놀라운
것이었다. 일단 그것들은 총 세 가지였는데, 북부 자치도시연합에 있어
선, 한가지는 나쁜 정보, 또 한가지는 좋은 정보, 그리고 나머지 한가지
는 그 좋고 나쁨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정보였다. 그리고 말이 정
보이지, 확실한 사실임에 틀림없는 나이트길드의 정보임에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쁜 정보는, 남부자치도시연합을 공격중인 페이오드왕국이 최후
까지 항전하던 남부자치도시연합의 도시, 텔핀을 기름과 불화살을 사용
해서 완전히 불태워 버렸다는 것이었다. 도시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
의 없으며, 그 엄청난 시신들은 클라스라인의 총관, 사시드에 의해 비참
하게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좋고 나쁨을 명확하게 가릴 수 없는 정보는, 바로 재상의 끔찍
한 만행을 보다못한 페이오드의 셋째 왕자인 티엣타가 그를 따르는 수
천의 군대를 이끌고 페이오드 북부의 루히스 산맥으로 도주하여 재상을
처단하겠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물론 사시드의 만행을 보았을 때 이는
분명히 잘된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일단 북부 자치도시연합에게 있어
서 그것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이에 맞서 사시
드는 티엣타 왕자를 반역자로 간주 조속히 토벌대를 보낸다고 역시 발
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부 자치도시연합에 있어서 좋은 정보는 바로 드
라킬스의 네 개의 가문중 하나인 가장 동쪽의 영토를 차지하고있는 루
비 가문의 여 가주, 미네르바가 휘하 병력과 함께 그야말로 국가에 반
기를 들고나선 것이었다. 이어진 정보에 따르면, 루비가문에 속해있는
병력은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였으나, 드래곤 나이트가 아니면서도 대
대로 내려온 비룡을 소유한 인물들이 많아 큰 문제라는 것이었다. 왜
반기를 들었는지 이유는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국왕과의 불화
로 빚어진 것 같다는 추측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기본적인 전략을 다시 잡아야 하는 불행한 사태에 처
하고 말았습니다."
회의를 열은 마인슈는 말의 내용과는 달리 환한 표정을 지으며 모두에
게 웃음을 보여주었다.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지
만, 왜대시 세워야 하는 지, 그 이유는 극히 좋은 일이었다.
"네르담성에 집결한, 그리고 집결하려고 했던 드라킬스의 병력들이 속
속히 본국으로 말머리를 돌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아
닐 수 없지요."
마인슈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받으면서 회의를 이끌어 나갔다. 당초
드라킬스군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이다 보니 회의실의 분위기가 매
우 밝았다. 단 한사람을 빼놓고는.
"그전에, 먼저 총 참모장님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다름 아닌 3성기사인 나이트 네프일이었
다. 바로 남부자치도시연합의 지원군을 통솔하는 사령관인 그는 테이블
을 주먹으로 탕탕 치며 호전적인 자신의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드라킬스에 문제가 생긴 것은 정말로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우선은
남부 자치도시의 멸망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제가 태어난
곳 이여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만, 따지고 보면 이일도 북부에서 주력
기사단을 지원군으로 빼내었기 때문입니다."
네프일은 이마에 핏줄까지 세워가며 핏대 높여 소리쳤다. 자신의 모국
이 다른 나라에 점령당했는데 속이 뒤집어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입니다. 그것에 대한 대책도 이미 세워두고 있습니다."
마인슈는 부드럽게 웃으며 네프일을 바라보았다. 북부자치도시연합의
총 참모장은 그 문제도 결코 소홀이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책을 세워두셨단 말입니까?"
네프일의 목소리의 크기가 조금은 수그러들었고, 마인슈는 고개를 끄
덕였다.
"물론입니다. 어찌 동맹국가이며 건국이념이 같은 나라끼리 서로 모른
척 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아서, 일단 이 자리에서 설명
드리지는 않으려고 했으나, 나이트 네프일을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서
일단은 대략적인 것만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마인슈의 표정은 지극히 차분했다.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