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선제공격- (10)
드라킬스 공국의 상징인 드래곤 나이트. 그리고 그들 드래곤나이트 중
에서도 선택받은 극 소수의 기사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궁극의 생명체
드래곤.
그야말로 둘이 합쳐 진정한 드래곤 나이트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었다.
하지만 사실 드래곤나이트의 공중병기인 비룡은 엄밀히 말해선 드래곤
의 종족이 아니었다. 사실은 드래곤과 흡사한 생김새를 가진 와이범인
것이었다. 결코 인간에게 뒤지지 않는, 아니 그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드래곤이라는 종족이 인간의 지배를 받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수
면 기에 들어갔을 때 자신들을 지켜주는 키퍼의 '부탁' 이라면 모를까,
결코 다른 인간의 명령은 듣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드래곤보다는 극히 떨어지는 지능과, 능력을 가진 와이범도
역시 인간과 비교할 땐 막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대
화는 불가능했지만, 드래곤나이트와 와이범간에 중요한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었으며, 마치 기사들의 갑주를 몇 겹으로 뭉쳐놓은 듯
한 단단한 비늘로 덮인 피부는 적당한 창검으로는 흠집하나 내기 힘들
었다. 활을 쏘아도 대부분 그냥 튕겨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 강력한 비행생명체를 상대할 때는 화살이 제일이었다.
많은 군사들이 동시에 무더기로 화살을 퍼부으면, 제아무리 날고 긴다
는 와이범도 맥을 못 추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퇴각하는 클라스라인군의 후방을 지키며 역시 후퇴하고있
던 세렌의 부대는 활이라고는 하나도 장비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세
렌군의 목적이 전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적군을 유인하여 함정아닌 함
정에 빠뜨리려는 것이었으므로, 검이나 창 하나만 들고 가는 것도 버거
웠던 것이었다. 그런 참에 활과 화살까지 챙겨왔을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드디어 세렌의 부대를 사정거리 안에 포착한 드래곤나이트,
디트마리스는 그야말로 전장의 폭풍인 자신의 비룡을 급 하강시키며 클
라스라인의 화이트나이트들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주위의 대기를 가르
며, 클라스라인군의 전의를 가르며 말이다.
"어디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아라!"
처음엔 멍하니 공중을 비행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자신들을
향해 하강하는 것을 눈치챈 화이트나이트들이 급하게 이동을 멈추고 전
투할 채비를 갖추었으나, 보통 용기사들이 사용하는 장창보다 더욱 긴
총 길이 60세션의 특수 제조된 강철 창에 실린 비룡의 기동력을 막아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라도 막아보려 했던 한 화이트나이트는
뒤에 있던 두 명의 다른 기사들과 함께 가슴 한 복판이 꾀 뚫려 그대로
꼬치에 꿰인 개구리 마냥 하늘로 끌려 날아갔다. 이 엄청난 창을 드는
것도 대단한 힘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창에 건장한 성인남자 세 명을
꿰고서도 전혀 힘들지 않은 표정으로 가볍게 공중에서 그 세 명을 털어
버리는 디트마리스의 모습은 클라스라인군에 있어선 '공포' 그 자체였
다.
공포에 휩쓸린 몇몇 화이트나이트들이 들고있던 창을 힘껏 던져보았으
나, 그 창은 유연한 비룡의 몸놀림으로 인해 그들에겐 스치지도 않았다.
맞아도 상처가 날지 의문이었는데, 애초에 맞지 조차 않으니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끄어억!"
또 다시 비룡은 하강하여 클라스라인진영을 휘저었고 그때마다 두서너
명의 화이트나이트들이 목숨을 내어놓아야 했다.
"고작 한 마리의 비룡과 드래곤 나이트에게 1만의 기병이 유린당하다
니!"
보다못한 카젯이 디트마리스의 창에 당하고있던 군의 후방으로 말을
몰고 달려갔다. 물론 활이 없었으므로 일어난 결과였으나, 그렇다고 이
대로 구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혼자만 활약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카젯."
그때 루벨도 빠른 속도로 말을 몰며 카젯의 질주에 동참했다. 명색이
클라스라인에서 제일 가는 기사인데, 저런 모습을 두고볼 수는 없는 것
이었다.
"난 클라스라인의 패러딘나이트 루벨리자크! 비룡을 타고는 일반 병사
를 상대로 잔학한 폭행을 하는 것보다는 나와 승부하자!"
루벨은 카젯에게 '옆에 떨어져서 기회를 노리고있어' 라고 귀뜸 한 후
이제 일곱 번째의 강하를 하려하는 디트마리스를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호오, 그 유명한 패러딘나이트인가. 상대하기에 손색은 없겠지. 바라
던 바다!"
현재 드라킬스가 클라스라인과 전쟁을 치르는 이상, 패러딘나이트의
목이라면 최고의 명예이자 소득이었다. 디트마리스로써는 저 패러딘나
이트의 수급만 창에 꾀어버린다면, 이대로 성에 돌아 간다해도 상관없
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런 식의 객기는 아무리 실력이 받쳐준
다고 해도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나이트 루벨리자크? 자네까지만 상대하고 나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
지. 나머지는 뒤에 따라오는 우리 쿠스나이트들이 상대해 줄 테니 말이
다!"
디트마리스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지금까지보다 두 배는 빠를 듯한 속
도로 루벨을 향해 날아들었다. 비룡의 날개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귀
청을 찢을 정도였다.
'이렇게 날뛰어놓고 그냥 보내줄 성싶으냐.'
루벨은 속으로 코웃음 치며 날아드는 비룡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아무
리 거대한 그의 몸이라 해도 저 창에 한번 뚫린다면 그대로 공중으로
끌려갈 것이 분명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의 엄청난 몸
집이 아니라, 자신의 엄청난 힘이었다.
'저 녀석도 저 무거운 창에 서너 명 끼울 수 있을 정도로 장사 라지
만...... 나도 그에 뒤지지는 않을걸.'
루벨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온힘을 다해 들고있던 휴페리온으로
자신의 몸에 닿기 직전인 드래곤나이트의 장창을 위로 처내었다. 온몸
의 힘을 싫은 실로 통쾌한 일격이었다. 디트마리스의 창은 그대로 위로
튕겨 올라가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체 루벨의 어깨만을 긁을 뿐이었
다. 그리고 그 반동이 얼마나 강한지, 비룡이 속도를 주체못하고 잠시
대각선 위로 주춤하며 흔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 아주 잠깐의 순간을,
패러딘나이트 중에서 검술만을 최강이라 자부하고있던 카젯은 결코 놓
이지 않았다. 어느 샌가 뛰어들어 말에서 내린 카젯은 그대로 공중에
잠시 멈칫한 비룡을 향해 뛰어오른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루벨의 힘에 비할쏘냐!"
카젯은 멋대가리 없는 말을 소리치며 들고있던 휴페리온을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며 전력으로 비룡의 긴 목의 정 가운데를 가격했다. 카젯
이 거의 100세션에 가까이 뛰어오르자, 비룡을 타고있던 디트마리스의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디트마리스로써는 루벨의 엄청난 힘보다, 카젯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점프보다 더욱 경악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내려친 카젯의 검에 그 동안 수많은 정장을 함께 누벼왔던 '전장의 폭
풍'의 5세션이 넘는 두께의 목이 단숨에 잘라진 것이었다. 비룡으로써는
너무 순간적인 일이라 고통의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것이었다.
"좋았어!"
뜨거운 붉은 피를 사방으로 흩날리며 저 멀리를 향해 날아가는 비룡의
목을 바라보며 낙하하던 카젯은 승리의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단단한 와이범의 껍질이라지 만, 그 날카롭게 벼려진 휴페리온과, 그것
을 사용하는 패러딘나이트의 힘에는 견딜 수 없었다는 사실이 그의 기
분을 날아갈 것처럼 만들었다. 처참하게 죽어간 아군의 복수를 해낸 셈
이었다.
"아아악!"
그와 비교해서 나이트 디트마리스의 얼굴은 심한 낭패간에 젖어있었
다. 그는 10세션의 상공에서 목이 날아간 자신의 비룡과 함께 지상으로
추락하고있는 중이었다.
콰앙! 하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그 둘은 지면과 충돌했다. 그리고 디
트마리스는 그 충격으로 몇십 세션쯤 튕겨서 뒤로 날아가 버렸다. 온
몸에서 심각한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적어도 몇 군데는 부러진 것
같았다.
"끝장을 내주지!"
그와 비교해서 무사히 지면에 착지한 카젯이 하반신에 밀려오는 약간
의 충격도 무시하며 디트마리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그때 그를 제
지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군, 다시 퇴각이다! 적의 기사단이 바로 앞까지 육박해 들어왔다!"
바로 세렌의 목소리였다. 카젯도 곧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좀 전에 비
룡이 날 뛸 때 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부터 불과 3,4천 세션 떨어진 곳에 쿠스나이트들의 대군이 몰려오는 것
이었다.
"안타까운데...... 일단 승부는 다음에, 서로 땅에 있을 때 다시 겨루도
록 하지."
카젯이 미련이 남는 듯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려 자신의 말
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너.... 비겁하다! 둘이서 하나를 기습하다니!"
디트마리스는 받쳐 오르는 울분에 못 이겨 엉겁결에 소리쳤으나, 그
말이 억지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드라킬스의 3장군이라고 까지 불리시는 분이 그런 말을 하다니, 과연
비룡을 타고 공중에서 적군을 기습하는 게 비겁한지, 그 기습하는 비룡
과 드래곤나이트를 두 명이 서 협공하는 게 비겁한지, 생각해 볼 문제
인걸."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사실을, 루벨은 마치 진짜로 의문인 것처
럼 디트마리스를 향해 소리쳤다. 조롱과 비난이 한껏 담긴 점잖은 독설
이었다.
"아................."
디트마리스는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곧 그 자리에 있던 클라스
라인군은 바람처럼 전부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는 금새 뒤쪽에서 드라
킬스의 기병들이 쇄도해 들어왔다.
"디트마리스! 괜찮은가!"
그들을 이끌고 달려온 미카드론의 관심사를 도망가는 적병의 추격이
아니고, 나이트 디트마리스의 생존여부였으므로 전 군의 이동을 멈추게
하고는 재빨리 디트마리스를 향해 달려갔다.
"이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군. 내가 너무 경솔했어....... 클라스라인
의 패러딘나이트는 그 지휘능력은 몰라도 실력만큼은 대륙에서 초일류
인데 말이야."
물론 실력이 초일류에 속하는 것은 패러딘나이트 중에서도 극히 일부
였지만, 디트마리스는 그 중에서도 운 나쁘게 최고에 속하는 두 명의
패러딘 나이트를 상대했던 것이었다.
"실수도 해봐야지 더욱 성장하는 게 아닌가.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다
음 번엔 절대로 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혹시 정말로 중요한 싸움에서
실수한 것보다는 이번에 미리 해놓고 다시는 하지 않는 것이 다행 아니
겠는가?"
미카드론은 허탈하게 웃고있는 디트마리스를 위로하며 심하게 부상당
한 그를 자신의 말로 조심스럽게 옮긴 후, 전군 귀성할 것을 명령했다.
'클라스라인군의 저 1만 정도의 기사단, 마지막에 보여준 그 활약은 놀
라울 정도였다. 지휘능력도, 실전 실력도 말이야.'
미카드론은 이번 전투를 되새겨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후회가 남는 것
을 음미했다. 무려 8만이 넘는 대군을 맞이하여, 아군의 병력에 큰 손실
없이 적에겐 큰 피해를 주며 퇴각시킨 것은 그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대단한 전과였으나, 마지막 뒤처리가 꺼림칙했던 것이었다.
'그 지휘관, 나중에 우리 드라킬스가 클라스라인의 본토를 침략할 때
큰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다. 드라킬스 최고의 용장과 지장을 물 먹이다
니. 정말 대단하군.'
자신도 결국은 마지막에 펼친 클라스라인의 작전에 넘어간 꼴이었다.
덕분에 흥분한 디트마리스가 비룡을 타고 날아가다가 크게 당한 것이었
고,
물론 이 작전이 나온 것이 이제 막 패러딘나이트에 선발된 갓 스무 살
을 넘은 젊은 청년이라는 사실가지 미카드론이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 누군가의 실력이, 여간 녹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은 뼛속 깊이 샛길
정도로 똑똑하게 느낀 것이었다.
이로써, 드라킬스의 네르담성을 점령하기 위해 클라스라인이 파견한
총 8만 7천의 원정군은, 약 3만에 가까운 피해만을 남기고는 별 성과
없이 본국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지막에 보여준 작전의 승
리로 인한 깨끗한 후퇴는 그런 대로 전과라 치부할 수 있었지만, 섬광
의 기사단의 전멸(약간은 남았지만)이라는 막대한 손실이 앞에 버티고
있었기에 공이라고 하기엔 그 크기가 너무 작았다. 그러나 이번 전쟁으
로 패러딘 나이트들 간에 세렌의 지명도가 급상승한 것은 사실이었다.
마지막에 그가 보여준 작전은 실로 절묘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20대 초
반의 어린 나이트였지만, 다음에 벌어질 전쟁에는 패러딘나이트 전원의
동의로 세렌이 총 사령관을 맡게 될 정도로 그에 대한 다른 패러딘나이
트의 믿음을 확고했다. 세렌이 있었기에 이 이상의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남은 병력이 클라스라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클라스라인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
니었다.
8장, 선제공격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