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16화 (116/166)

제 8장. -선제공격- (9)

클라스라인군의 추격군(?)을 물리치고 성으로 돌아온 드라킬스군은 결

코 승리의 자만 감에 빠지지 않고 다음에 있을 출격을 대비하기 시작했

다. 자만 감을 느끼기엔 남아있는 적군의 숫자가 너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승기를 잡았다고 할 수 있지. 적군의 주력 기사단을 물리쳤으

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승리를 한 것은 아니야."

디트마리스는 전군을 두 개로 나누어 교대로 휴식을 취하도록  명령했

다. 모름지기, 병사의 피로가 축적된다는 것은 전쟁의 승패와  직결되었

기 때문에 최대한 배려하여 병사들을 쉬게 하는 것이었다.

"일단, 적군은 이번 전투로 태세를 정비하는데 약간 시간이 걸릴 테니,

그 동안에 아군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는 게  좋겠어. 금방 공격해 들어

오지는 않을걸."

이는 먼저 미카드론의 예측이 있었기 때문에 디트마리스로써도 안심하

고 전국 교대휴식의 명령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었다. 디트마리스는 미

카드론의 머리를 전폭적으로  신임하는 편이었다. 그  누구보다 서로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졌던 바로 다음날인 9월 7일의 아침에, 클라스라인

군은 미카드론의 기대를 저버리고는 약 1만  정도의 기병을 움직여, 네

르담성의 후문 쪽을 향해 멀리 돌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드라킬스로는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정말 생각 없는 놈들이군.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군대를 둘로 나누

어 앞뒤에서 공격할 참이겠지? 한번 당하고서도 아직 자신들의 실책을

깨 닳지 못하는 모양이야....."

이 보고를 받은 디트마리스는 코웃음을 치며 휴식중인 절반의  기사단

을 다시 전투대기, 네르담성의 후방으로 이동하는 클라스라인군이 후문

쪽에 도착했을 때 바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할 것을 명령했다. 또 한

번 각개격파로 적의 병력을 줄이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미카드론도 이 계획을 찬성했다. 하지만  그는 디트마리스에게 3

만에 가까운 쿠스기사단의  전 지휘를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모를 적들의 함정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용의주도

한 인물이었다.

디트마리스는 미카드론의 의견을 즉각받아들여, 자신은 일단 성에 남

아있고 전 기병의 지휘를 미카드론에게 맡기었다. 미카드론은 디트마리

스가 드라킬스 전체에서도 유일하게 자신의  전 병력을 맡겨도 믿음이

가는 인물이었다.

그리하여 태양이 하늘이 중앙으로  향하고 있을 쯤,  네르담성 후문에

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이동을 마친  클라스라인군을 향해, 정확히 2만

7천의 드라킬스가 자랑하는 쿠스나이트들이 성문을 열고 공격해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을 이끄는 것은 드라킬스의  3장군중 한 명인 미카

드론이었다.

"나온다!모두 침착하게 계획대로 진행하는 거다!"

그리고 이 1만의 화이트나이트를 지휘하는 클라스라인의 사령관은  얼

마 전에 벌어진 카르트 토벌전쟁의 영웅인 나이트 세렌이었다. 그는 긴

장되는 눈으로 고속으로 육박해 들어오는 드라킬스군을 바라보며 이 작

전의 성공을 기원했다. 자신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

었다. 그리고 언제나 결과는 노력한 만큼 얻어진다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는 세렌이었다.

드라킬스군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당황해하는 클라스라인군의  중앙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미카드론의 작전은 처음 전투 때와 비슷했다.  일단

중앙 돌파하여 적군의 후방에서 반전한 다음,  성에서 대기중인 나이트

도브린의 기갑병들과 함께 포위하여 끝장보자는 것이었다. 적들의 발상

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드라킬스군이  초전과 같은 작전을 사용해도

얻어질 결과는 전과 동일할 것이었다.

게다가 드라킬스의 중앙돌파에, 클라스라인의  화이트나이트들은 너무

도 손쉽게 돌파 당해  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전군이  완전하게 반으로

갈라져서는 말이다.

"정말, 형편없는 적들이야. 이러면싸움할 맛이 안 나는데."

미카드론이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군이 이렇게도 허약

하다면 조금은 김이 새는 기분도 들기  마련이었다. 죽어나가는 병사들

에겐 미안한 말이었으나, 조금은 적이 만만해야  전투에서 승리해도 뿌

듯한 것이었다.

결국 반으로 완전히 갈린 클라스라인군은 혼비백산, 다시 하나로 뭉칠

생각도 하지 않고 둘로 갈려진 상태로 양 성벽을 돌아 후퇴하기 시작했

다. 클라스라인군도 너무 순식간에 당해서 사령관들이  연시 후퇴를 외

치고 있는 것이었다.

계획에서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이런 기회를  놓일 수는 없는 일이었

다. 미카드론은 재빨리 둘로 갈라진 클라스라인군중 오른쪽으로 도망치

는 적군을 선택, 추격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욱  기겁한

클라스라인군은 미친 듯이 속도를 올려 도주에 혼신의 힘을 다하기  시

작했다. 그러나 후방의 병력이 드라킬스군의 손아귀에  조금씩 당해 가

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망쳐! 도망쳐라! 죽기 싫으면!"

그때 도주하는 클라스라인군의 오른쪽 부대를 지휘하는 것은 기마술엔

일가견이 있는 펠린이었다. 세렌을 비롯한 나머지 패러딘나이트들은 모

두 왼쪽에 합류한 것이었다.

그는 일단 적군이 자신의 부대를 공격해  오는 이상, 세렌의 주문대로

정말 놀라서 도망치는 연기를 해야만 했다. 드라킬스군에게 잡힐 듯 말

듯한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면서 그들의 주의를 끌어야 했기 때문이었

다. 드라킬스군을 유인하는 것, 그러나 유인한다는 생각이 들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이 지금 세렌의 부대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그러나 미카드론의 전황을 보는 시아는  정확했다. 도주하는 클라스라

인군이 멀리 우회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클라스라인 본진의 뒤로

달리고있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그는 순간 섬짓한 기분이 들며 전군

추격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 도주가 미리 계획된 것이었단 말인가?'

설마 클라스라인군이 이런 고 난이도의 연기를 해내며 마치 초전에 드

라킬스군이 클라스라인군을 유인했던  것 같은 계책을  사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미카드론이었기 때문에, 놀란 마음은 대단했다. 적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았던 것이었다. 오히려 아군을  함정에 몰아넣을 교묘

한 전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때 클라스라인의 본진이 고함을 지르며  그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미카드론은 이 상황을 미리 예상해냈기  때문에 재빨리 병력을 성으로

퇴각시킬 수 있었다. 실로 조금만  늦게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면,  포위

당해서 고통스런 전투를 벌였을 뻔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카드론이 이 작전을 눈치 채는 것조차 세렌의 계획 속에  들

어있는 것이었다. 달려오는 클라스라인군은  이미 드라킬스군이 도망쳤

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방향을 바꾸며 계속하여 달리는 것이었다.  그

방향은 네르담성과는 정 반대쪽을 향하고 있었다.

세렌이 세운 작전은 이러했다.  일단 그대로 퇴각하는  것은 보기에도

안 좋고, 무엇보다 보병이 많기 때문에 퇴각도중 적들의 추격에 심각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니, 미카드론이라면 그 기회를  놓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빠른 기병을  다수 보유했으므로 기습적으

로 치고 빠지는 작전을 펼치기가 용이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렌은 자신 휘하의  1만 화이트 나이트를 이용,  마치

어설프게 성을 함락하기 위해 네르담성의 뒤로 이동하려는 것처럼 위장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병력을 격파하기위해  성에서 나올 드라킬스군

의 기병을 대비, 미리 손쉽게 반으로 갈라지라는 명령을 내려놓았다. 중

앙돌파 당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나, 애초에  목적이 도망치는데 있

다면 큰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도망치는 아군 무리 중 하나를 추격해올  드라킬스군을

최대한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끌어들일 수 있는 곳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만 마치 이 작전이 본대의  병력과 합세하는 양동작전

이라는 사실을 적 사령관에게 일깨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함정이라는 것을 파악한 적 사령관이 달려오는  클라스

라인군의 본대를 발견하고  전력으로 성으로 퇴각해  들어가면, 달리는

클라스라인의 본대, 즉 4만을 넘는 보병들은  그대로 전장을 이탈 무사

히 퇴각한다는 것이 이 작전의 최종목표였다.  그리고 펠린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이 작전을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곧 둘로 갈라졌던 세렌의 부대는 하나로 합세하여 퇴각하는 아군의 후

방을 수비하며 역시 따라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미리 다운크람에게 보

급부대를 퇴각시켜놓으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더욱 뒤에 있는  보급부대

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멋진 연기였어 펠린. 정말 위급한 듯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던걸."

세렌이 다시 재회한 펠린을 바라보며 농담  섞인 칭찬을 하자, 펠린은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별로 힘들지는 않았어. 왜냐하면 연기가 아니라 실제상황이었거든, 아

무리 속도에 자신  있는 나의 기병이었지만,  드라킬스군의 추격해오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서,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도망쳤어, 안  그랬으면

그대로 적군에 휩쓸려서 분명히 전멸 당했을걸."

펠린은 아직도 식은땀이 나는 듯 이마를 손등으로 훔치며 몸서리를 쳤

다. 굳이 세렌의 부탁대로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드라킬스 기사단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펠린도 속

도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말이다.

한편, 무사히 성에 도착한 미카드론은 계속하여  멀어져 가는 적의 모

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한방 먹은 것이었다. 드라킬스  최고

의 지장이 말이다.

"하하....... 전군 퇴각을 위한 작전이었단 말이지? 대단하군...... 내가 당

하다니........"

그러나 미카드론의 허탈한 표정과는 달리 디트마리스는 상황을 파악하

고는 버럭 화를 내며 크게 소리쳤다.

"아니, 도망가다니! 이제 겨우 본 게임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는데! 이대

로 그냥 보내줄 수는 없어!"

하지만 이미 멀리 가버린 클라스라인군을  따라잡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디트마리스는  흥분했는지, 미카드론에게  따라오라고 소리치며

성의 옥상에 대기중인 자신의 비룡, 전장의 폭풍을 타고는 퇴각중인 클

라스라인군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아, 아니! 뭐 하는 짓이야!"

미카드론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날아가는 비룡의 뒷모습을  바라

보며 급하게 쿠스나이트들을 다시 준비하여 재차 출격하였다. 디트마리

스의 말처럼 적군을 그냥 보내주기 아까워서가 아니라  막무가내로 적

진을 향해 날아가 버린 디트마리스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천

하의 드래곤나이트와 그의 비룡이 명콤비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몇만의

대군 앞에서는 그저 화염 속으로 몸을 던지는 불나방에 불과했다. 아무

리 열정적이고 뜨거운 디트마리스였으나 웬만하면 최후의 이성은  지키

는 편이었는데, 온갖 작전과 준비를 세워둔 시점에서 적의 퇴각은 도저

히 용납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사실 이성을 잃은 것

이 아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계산을 끝낸 것이었다.

'클라스라인군의 후방을 지키고있는  저 기병부대를  혼란시켜 이동을

더디게 한다면, 그 동안 우리 드라킬스의 기병들이  추격할 수 있을 것

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순간적으로 발끈한  것도 없지는

않았으나, 최소한 그는 수많은 전투에서 아군을 승리로 이끈 역전의 용

사임엔 틀림없었다. 그 정도의 생각 없이 천방지축, 날아갈 철부지는 아

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심하고있던, 즉  클라스라인군의 후방을 지키고있

던 세렌의 부대는 곧 그  하늘을 나르는 비룡의 웅장한 자태를  눈으로

확인하며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아차! 드래곤나이트! 디트마리스에게 비룡이  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

지 않았는데!"

세렌은 탄성 섞인 신음을 흘리며 어찌 보면 너무도 무모하게 느껴지는

저 비룡의 급습의 의미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미 저 멀리 네르

담성에서 뿌연 흙먼지가 일어나는 것이 세렌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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