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15화 (115/166)

제 8장. -선제공격- (8)

"이거, 초전부터 심각하게 깨졌군. 예상은 했지만....."

뒤늦게 보급품 수송부대를 호위하며 전장에 도착한 세렌의 부대는  네

르담성에서 화살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진을 치고있는 아군의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런 전속력의  이동으로 인해 클

라스라인 전군이 숨을 헐떡이는 것이었다.

"이건 확실한 나이트 제레딘의 실책인데 말이야......"

상황을 들은 세렌은 이번 원정군의 총 사령관이자 섬광의 기사단의 지

휘관인 나이트 제레딘을 바라보며, 그 뒤의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임

시로 지어진 막사에 멍하니 앉아 허무한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

었다. 분명히 그의 실수로 인한 패배였지만, 제레딘의 휘하에 있는 섬광

의 기사단의 생존자가 약 천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자, 책망보다는

동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섬광의 기사단은 명실상부한 클라스라인의 최

정예 기사단으로 원래는  1만의 화이트나이트로  구성되어있었으나, 그

중요성을 감안, 5천의 추가 병력을 배치시켜 놓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피해는 제레딘의 섬광의 기사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제

레딘과 함께 선진에서 행군 중이던  나이트 사브린의 부대에 속해있는

화이트나이트 5천까지도 함께 전멸 당한 것이었다. 이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총 4만이  동원되었던 화이트나이트가 벌써 절

반정도 목숨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걸로 기동성의 저하는 확실한데, 게다가  나머지 2만의 화이트나이

트 중 절반은 우리 보급부대의 호위부대에 속해있잖아."

펠린은 인간의 실수로 인해 무참히 죽어버린 군마들의 명복을 빌며 상

황을 정확하게 짚어내었다. 바로 이번 전투로  클라스라인군의 주력 기

마병이 대부분 당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총 병력면에서는 클라스라인군이 앞서고 있었다. 아직 클

라스라인은 호위부대를 포함, 6만이 넘는 대군을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 전초전으로 확인된 적군의 숫자는 기병 3만과  보병 1만 정도. 기

동력 면에서는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나, 일단  총 병력에서는 앞서고있

는 것이었다.

"아직 우리는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아직 적을 능가하는 병

력이 남아 있습니다."

절망에 빠져있는 나이트 제레딘을 대신하여 작전회의를  주도하고있던

나이트 파리퀴스는 되도록 희망적인 말투를 골라서 사용하며  침울해진

나머지 네 명의 사령관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 발

언은 파리퀴스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세렌은 일단 발언권을 얻어서는 흐트러진 아군의 배치부터 제대로  잡

는 것이 급선무라 했다. 현재 드라킬스군은 일단 성안으로 들어가 있었

지만, 언제라도 클라스라인군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단  적군에

겐 3만이라는 언제나이동가능 한 기병이  준비되어 있었고, 게다가 그

사령관이 대륙에서 가장 빠른 전투를 벌인가는 나이트 디트마리스였다.

그리고 이번 적의 작전으로 아마 기병을 이끌던 나머지 한사람의 적 사

령관은 드라킬스의 지장으로 손꼽히는 나이트 미카드론일 가능성이  농

후했다.

세렌은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네르담성을 점령하기위해 공격해 들어간

다면 적에게 허를 찔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일단  수세로 전환하여

적의 변화를 지켜본 다음 먼저 드라킬스군이 성에서 나오는 순간을  노

려야 한다고 말했다.사실은 '이쯤  되는 시점에서 퇴각하는 것이  좋겠

다'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으나 회의장의 분위기가  서서히 복수전을

펼쳐야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시원하게 내뱉을 기회

가 없었다. 소극적이다, 상부의  명령에 위배되는 일이다,  우리는 성을

점령하러 왔지, 병력만 잃고 퇴각하러  온 것이 아니다, 등등의  말들이

나올 것이 세렌으로썬 두려운 것이었다.

'왜 그러나 세렌, 언제부터 그런 것을 겁내는  겁쟁이가 된 것이냐. 예

전에 킬츠는 사피라키루이의 거대한 날개 앞에서도 그렇게 당당했는데,

내가 이 자리에 서서 하고싶은 말 하나 못한단 말인가? 고작 그런 비난

을 두려워해서?'

전에 세렌과 미네아 공주 건으로 결투를 벌였던 적이 있는 나이트  마

드리스가 조금 늦게라도 드라킬스의 함정을 파악한 그 기지를 살려  세

렌의 의견에 동의하며 적이 성에서 나와 공격해오면 그때 어떻게  반격

할 지에 대해서도 세렌의 의견을 물어왔다. 사실 이 패러딘나이트는 전

에 대결을 했을 때부터, 이 세렌이라는 청년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

는데, 본토를 침공해온 카르트군의 토벌 사령관을 맡아, 훌륭하게  승리

를 거둔 것을 보고는 자신의  기대가 어긋나지 않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 그것은........ 음, 일단 그전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입니

다."

세렌은 마드리스의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결국 마음속에 맴돌던 그 말

을 풀어놔 버리고 말았다.

"사실은, 저로써는 지금 즉시라도 이  원정군 전체를 퇴각시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대체 이런 가치 없고 무리한 전투를  무엇 하러 벌여야 하

는 것인지..... 실제로 드라킬스가 우리 클라스라인을 노린다면, 일단  방

어를 하며 깊숙하게 적을 끌어  들여 한번에 포위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세렌은 막힌 체증이 한번에 쑥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후에 들려올 그 어떤  비난도 지금의 이 기분

을 느끼기 위해서였다면, 충분히 불사할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응은 세렌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것이었다.

"어찌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겠소......... 애초에 나이트 퀵셀

트가 그 점을 파악하고 우리와 함께 작전을모색하고 계셨는데........"

나이트 파리퀴스는 세렌의 말에 길게 한숨을 내쉬며 동감의 뜻을 나타

내었다.

"더욱이 남부 자치도시연합이 페이오드에게  점령당하려는 지금, 서쪽

의 국경의 병력까지 동원한다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서쪽국경을 지키고있던 나이트 사브린도 불만을 터뜨리며 본심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세렌만이 이번 원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 것이었다. 모두들 현실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나이트 세렌, 역시 젊고 능력 있는 기사답습니다. 우리도 그  말을 하

고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재상의 결정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

라........ 명령 상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지요."

나이트 마드리스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세렌을 바라보았다. 나머지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세렌에게 무언의  결단을 원하는 눈빛이었

다.

'다행이...... 생각이 있는 분들이었구나. 내가 너무 고참 기사 님들을 과

소 평가했는걸'

세렌은 안도의 심호흡을 하며 생기가 넘치는 눈빛으로 다름  사령관들

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실현  가능성이 적어 구상만 해두고  말았던 그

작전을, 이런 상황이라면 써먹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키사르 없이

혼자서 생각한 작전이었지만, 그 와 나머지  동료들의 능력으로도 충분

히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령관들의 동조가  있는 이상

성공시킬 가능성이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제게 작전이 하나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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