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14화 (114/166)

제 8장. -선제공격- (7)

성의력 9월 6일의 오전,  클라스라인군의 전열을 지키고  있던 나이트

제레딘과 사브린의 부대는 멀지 감치에서 미리 포진중인  드라킬스군을

발견한 수 있었다. 그 숫자는 대략 3만 정도. 분명히 농성을 할  것이라

예측하고 미리 선진에 공성병기까지 준비하고 있었던 그들로써는  정말

뜻밖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세렌은 차마 작전회의에서 그냥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한 것에 대

해 후회하며, 일단 의견을 내어 아군의  전체적인 이동진형을 효과적인

방향으로 디자인했다. 물론 누가 들어도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기 때문

에, 나머지 사령관들도 이를 동의,  세렌이 모색한 진형을 따르기로  했

다.

우선 나이트 제레딘과 사브린의 부대를 선진에 세우는데, 적의 기습에

대비하여 네르담성에 도착할 때까지 수비형으로 무장한 크루세이더들을

앞에 내세운다. 그리고 그 뒤로는 언제라도  공격 가능하게 화이트나이

트들을 대기시키며 행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병력이 분산

되지 않게 큰 거리를 두지 않고 나이트 파리퀴스와 마드리스가  이끄는

부대가 뒤를 밭쳐주며 선진의 전투 시, 빠른 연계공격을 할 수 있게 선

지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뒤로 세렌이 이끄는 부

대가 보급품을 싫은 마차부대를 호위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섬광의 기사단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1만 5천, 화이

트나이트 부대를 거느리고있는 제레딘과 1만의 화이트나이트, 그리고 6

천의 크루세이더들을 지휘하는 나이트 사브린은 드라킬스군이 포진하고

있는 것을 가장먼저 발견한 것이었는데, 적은 미리 대기중인 듯, 가만히

포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즉각 클라스라인군을  향해 돌진하는 것

이었다. 3만의 병력이 모두 드라킬스가  자랑하는 쿠스나이트로 이루어

진 기병부대였다.

"적군이 화살진형으로 공격해 온다! 전군 충돌에 대비! 전투태세를 갖

추어라!"

제레딘은 황급히 명령을 내렸으나, 워낙 적군의 이동속도가 빨랐고, 설

마 적군이 이처럼 담대하게 나올지 몰랐던 클라스라인군의 방심으로 인

해, 전열에 있던 크루세이더들의 수비가 일순간에  무너지며 돌파 당하

는 지경에 이르렀다.

"절대 중앙돌파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 진형  안으로 들어온 적

군은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 사방에서 포위하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그러나 클라스라인군 전체에 이 명령이  전달되기도 전에, 드라킬스군

은 클라스라인군의 중앙까지 돌파하다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들어왔

던 곳으로 신속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현란

한 전술의 변화였다.

그러나 클라스라인으로써는 적군이 아군진형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가

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포위망을 형성하기는

늦었고, 기습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안겨준 적군을 그냥 보내줄 수가

없어, 제레딘과 사브린은 전군 추격을 명령했다.

"적군이 미리 겁먹고 꽁무니를 빼고 있다! 추격하여 섬멸해 버리는 거

다!"

제레딘의 박력 있는 외침에 잠시 적에게 놀림받았던 휘하의 섬광의 기

사단들이 노도와 같은 고함을 지르며 도망가는 드라킬스군의 뒤를 추격

하기 시작했다. 나이트 사브린의 부대의 기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보병은

기병을 추격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므로, 오직 같은  기병만이 적군을 추

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선진을 기습한 적군이 후퇴하고 있다! 함께 추격하는 거다!"

그때, 상황을 액면에 있는 그대로만 파악한  후진에 있던 나이트 파리

퀴스가 재빨리 부대에 있는 5천의 화이트나이트들에게 선진과 함께  추

격할 것을 명령했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는 성급한 판단이었는데, 일단

명령이 떨어진 이상, 후회하고 어쩌고 할 것도 없이 명령을 받은  기병

들은 아군 전체의 진형을 무너뜨리며 적군의 추격에 열을 올린  것이었

다.

또 다른 후진의 사령관인 나이트 마드리스는 적의 공격이 아군을 분산

시키려는 계획이라는 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일단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으로 판단 추격을  명령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파리퀴스의 부대에서 기병들이  아군 전체의 대열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선진의 추격에 합류하는 것을 보고는  서서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

갔다.

'아차! 함정이다! 적은 아군을 일부만 유인하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 후회는 너무도 뒤늦은 것이었다.  이미 선진과 후진의 일부

로 구성된 추격대는 저 멀리까지 달려가 있는 것이었다. 되돌리기엔 너

무 먼 거리였다.

그러나 세렌은 이 변화를 정확하게 짚어 적군의 계책이라는 사실을 단

번에 파악해내었다. 그러나 그는 멀지 감치에서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워낙 거리가 멀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확한 전투의 전황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연 어느 정도의 병력이 적군의 뒤를 추격

해 들어갔는지, 다른 사령관들은 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있는지,  보급부

대를 지키고 있는 세렌으로써는 그 이상,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보같이 도망간다고 그냥 추격해 들어가면 어쩌나, 애써서 만들어놓

은 진형까지 전부 망가뜨리면서....."

세렌은 혀를 차며 아군의 실책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군의 실책을 이끌어낸 드라킬스군의 절묘한 타이밍의 기습돌파와, 그

에 이은 도망은 얼떨결에 아군이  추격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정교했다. 세렌은 이 작전이, 자신이 두려워해 마지않는  전륜한

미모의 소유자인 '미카드론'이라는 이름의 드라킬스군 사령관이 세운 계

책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디트마리스에겐 없는  지극히 유연한 발

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로써 대륙 3장 군중  두 명과 전투를 벌여야하는  처지에

놓였군. 어쩌면 나머지 한 명도 있을지도 모르고.....'

세렌은 철벽의 기갑단을 이끌며 수많은 북부자치도시 군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나이트 파리퀸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드라킬스 최 정예군과의 싸움,  그것

은 클라스라인군의 피해가 기대 이상일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예측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전멸하면...... 안 되는데......."

도주하는 적군의 뒤를 쫓고 있던 사브린과 제레딘의 기병들은  어느새

네르담성까지 도착해 버렸다.  그러나 네르담성에 도착한  적군은 둘로

갈라져서는 성의 좌우로 돌아서 계속 도주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이 성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클라스라인군은 아마도 적군

이 추격해오는 클라스라인군이 따라 들어올 것을 염려, 성문을 열지 않

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클라스라인군도 역시 둘로 갈라져 네르담성의 벽을 따라  도

망치는 적군의 뒤를 계속하여 추격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때 성벽 위에

서 화살이라도 쏟아져 내리면 어쩌나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일단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추격군을 지휘하던  나이트 제레딘은 속

으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아하, 드라킬스군은 이게 전부로구나. 그래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도망

치는 것이로군. 하지만, 우리의 임무는 네르담성을  점령하는 것, 더 도

망가면 그때부터는 추격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한 생각이 현실로 벌어지기라도 하듯,  네르담성을 지나서도 드라

킬스군은 도주할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미  네르담성 뒤쪽으로 멀리

도망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추격은 그만해도 된다! 네르담성은 이제 우리의 것이다!"

제레딘은 기세 좋게 소리치며  아군의 추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둘로

갈라졌던 아군을 하나로 집결시키려는 찰나, 그의  판단은 현실과 크게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내린 명령은 애초에

드라킬스군에게 기습당했을 때 내렸어야 했던 것이었다.

계속 도망가려는 듯했던 드라킬스군이 반전하여 멈춰선  클라스라인군

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었다. 제레딘은 숨이 멈추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지금까지 적군을 추격해온 아군의 숫자 약 2만을 넘을 정도였기 때문이

었다. 워낙 속도를 내어서 후방의 아군의 지원을 기대하는 것도 당분간

은 무리였다.

"후, 후퇴! 후퇴하라! 본진이 있는 곳으로 후퇴하라!"

양군의 상황이 정 반대로 바뀌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드라킬스군은

도망치는 클라스라인군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 순간 네르담성의

후문이 열리면서 대 기병용 장창을 장비 한 나이트 도브린의  기갑병들

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 도망가려는 클라스라인군의 퇴로를  막아서고

는 완강히 맞서는 것이었다. 그  숫자는 대략 1만 정도. 초반에는  약간

클라스라인군이 유리했으나, 곧 후위로  드라킬스군의 기병들이 육박해

들어오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갔다. 앞뒤에서 포위 당

하니, 어찌 해볼 대책이 없는 것이었다.

드라킬스의 기병들은 언제 도망쳤냐는 듯이 엄청난 기세로 클라스라인

군을 휩쓸기 시작했다. 원래는 양군이 1대 2 정도의 전력 비였으나,  지

금의 전투만 볼 경우 그 숫자비가 반대가 되 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클

라스라인으로써는 가장 안 좋은 모양으로 포위되어서는 말이다.

"닥치는 대로 공격하라! 한  시간 내로 적군을 전멸시키지  않으면 곧

적의 후위대가 도착한다!"

디트마리스는 지금까지의 도망치는 연기에서 본래의 적을 공격하는 임

무로 돌아와 철저하게 몰아붙이며 엄청난 속도로 클라스라인군을  처치

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대인 붉은 질풍의  기사단도 도망보다는 공격하

는 것이 적성에 맞는 듯, 그야말로 미친 듯이 전투에 임하고 있는 것이

었다. 마치 그 동안의 도주의 한을 단번에 풀어버리려는 듯 했다.

클라스라인군은 그야말로 사자 떼에 둘러 쌓인  양이라도 된 듯, 번번

한 저항한번 해보지 못한 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기 시작했다. 나이트

제레딘은 결코 무능력한 지휘관은 아니었으나, 이런  상황에 빠지고 보

니,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었다.

"침착하라! 조금만 버티면 아군이 구원하러 와줄 것이다!"

그러나 제레딘의 이 외침이 실현되기에는 남은 병력이 너무도 적었다.

이미 짧은 시간동안 대다수의 병력이 적의 공격에 목숨을 잃은  것이었

다. 드라킬스군은 정말로 신명나게 공격하고 있었고, 클라스라인군은 도

살장에 끌려온 가축처럼 무력하기만 했다.

결국 제레딘은 가까스로 천 여명의 아군을 모아 기적적으로 적의 공세

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때 아직 전장에는 5천에 가까운 클라스라

인군이 당하고 있었지만, 그들까지 전부 모을  시간은 제레딘에게 주어

지지 않았다.

"도망가는 적 사령관을 노릴 필요는 없다!  확실하게 남아있는 적군을

몰살하는 거다!"

디트마리스는 눈에 보이는 승리를 만끽하며 직접 말을 몰고  남아있는

클라스라인군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클라스라인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전투를 계속해 나갔으나, 한  사람 당 서너 명

씩의 드라킬스군이 붙어있기 때문에 오래 버틴다는 것은 도저히 무리가

있었다.

결국 단 한사람의 클라스라인군도 적에게 항복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

자리에 있던 클라스라인군의 전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

다. 물론 먼저 도망친 제레딘이  소수의 아군을 이끌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그야말로 소수일 뿐,  그는 대다수의 섬광의  기사단과 다른 부

대의 패러딘나이트까지 잃고 만 것이었다. 후방에  있던 나머지 클라스

라인군이 허둥지둥 달려오기는 하였으나,  이미 상황은 종결된  후였다.

오히려 재빨리 성으로  철수한 드라킬스군이 네르담성벽에서 무더기로

화살을 퍼부어 클라스라인군은 또 한번의 큰 피해를 입으며 적의  화살

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퇴각해야만 했다.

클라스라인과 드라킬스의 서로간의 흥망을 결정하는 이번 전쟁의 전초

전은, 드라킬스의 완벽한 승리로 끝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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