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선제공격- (6)
"클라스라인군, 자스칼성에서 출격, 적어도 8만 이상의 대군임."
이 소식이 드라킬스에게 전달된 것은 클라스라인군이 출격한 날짜인
성의력 669년 8월 14일에서 이틀 후인 8월 17일의 정오 쯤 이었다. 후
에 있을 전쟁을 대비, 병사들의 피로가 쌓이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속
도로 진격해오는 클라스라인군과는 달리, 자스칼성을 감시 중이던 드라
킬스의 정찰병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말을 달려, 이 중대한 사실을 방
생한지 불과 이틀만에 그곳에서부터 400만 세션 떨어진 네르담성으로
알려온 것이었다.
그때 네르담성에 있던 4만 5천의 드라킬스군은 이미 작전을 계획하고,
군대의 포진을 끝마쳐 논 상태였다.
임시로 네르담성에 있는 드라킬스군의 총 사령관직을 맡고있던 나이트
디트마리스는 함께 있던 자신보다 세 살 어린 드래곤나이트 동기생의
의견을 수렴, 둘의 휘하 부대를 네르담성에서 클라스라인 쪽으로 100만
세션쯤 앞에 화살형의 진형으로 배치해놓고 있었다. 이 진형의 특징은
전열이 좁고, 전체적으로 길게 늘어져있는 속도중심의 진형으로써 강력
한 돌파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장기전으로 갈 경우 중간이 적에 의해
단절되어 병력이 분산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얼마 전에 벌어졌던 클라스라인과 카르트와의 전쟁처럼, 양군의
기량에 큰 차이가 있지 않는 한, 상대보다 적은 병력을 가지고 전투에
임한다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술을 구상한 나이트
미카드론은 일단 클라스라인의 선진을 유인하여 각개 격파하는 작전을
세운 것이었다. 솔직히 이것 말고는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전쟁에서 적군을 이기기 위해 갖춰야할 조건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적보다 다수의 병력을 보유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전장
에서 낭비병력을 만들지 않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언제나 후방을 철저
히 지켜서 아군의 보급로와 퇴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밖에도
장비의 우수, 지휘관의 통솔력과 전술적인 판단 등이 있겠으나, 일단은
이 세 가지의 조건이 철저하게 갖춰진 경우라면, 웬만한 다른 방면에서
의 열세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이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춘
다는 것이 곧 지휘관이 무능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승리할
확률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승리를 위한 세 가지 조건 중에,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지휘관의 역
량으로 충분히 충족 가능한 문제였다. 하지만 첫 번째 조건은 그 지휘
관이 속해있는 국가의 재정과 작전에 달려있는 문제였으므로 지휘관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미카드론을 포함한 몇몇의 유능한 사령관들은, 자신들의 능력
을 발휘하여 이 첫 째 조건을 일시적이나마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적군을 유인하여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만약 아군이 적군의 절반정도의 병력이라 하더라도 적군이 셋으로 분
산된다면 그중 하나보다는 아군의 숫자가 많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적군을 분산시키는 데에 있는 가장 중요한 효과였으며, 아군의 역
량에 다라 이 나눠진 세 개의 적군 병력이 다시 서로 뭉치기 전에 하나
씩 각개 격파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내 능력으로는 아군을 늘릴 수가 없으니까, 잠깐동안 적군을 줄여서
상대하는 수밖에."
미카드론은 자신의 부관인 나이트 자벨에게 아주 편안한 말투로 말하
였으나, 사실상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적군사령관이 전쟁의
전자도 모르는 얼간이가 아닌 이상, 멍청하게 아군병력을 분산시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지,
그래야 최적의 효과는 얻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적들도 덩달아 분위기
에 이끌려 딸려 나올 수 있는......."
그때 적군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산시킬 것이냐는 자신의 부관인 자
벨에게, 미카드론은 장난기 가득한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
답했다. 물론 원체 미형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 어떤 표정으로 웃는다
해도 그 아름다운 용모가 퇴색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는 이 작전을 위해서 자신의 부대에 있는 보병들을 성에 대기중인
나이트 도브린의 부대에 있는 기병, 즉 드라킬스의 주력 기사단인 쿠스
나이트들과 전부 교체했다. 이번 작전에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기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카드론은 자신이 세우고 디트마리스와 함께 수정한 이번 작전을 자
신의 부관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세부적인 작전의 전달은 모두 부
관에게 맡겨 왔던 그였으므로, 언제나 자신이 생각하는 작전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벨에게 이해시켜야만 했다. 물론 자벨은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었으므로, 상관의 작전을 이해하는데 그다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좋은 작전이군요. 하지만 만약 실패했을 경우엔 어쩌시렵니까?"
자벨은 염려스러운 말투로 말했으나, 그렇다고 진짜로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 미카드론이 아니었기 것이
다.
"물론 그럴 때를 대비한 대책도 마련해 두었지 그것도 아주 겹겹으로
말이야. 이 작전은 실패해도 아군이 크게 손해날일은 없기 때문에, 그때
가서 새로운 작전을 시작해도 별로 문제될 건 없어."
실패해도 본전치기, 그러나 성공한다면 전쟁의 승기를 잡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매력적인 작전이었다. 물론 적군이 이
작전을 미리 파악하여 그에 대한 대비를 완벽하게 해놓고 이중의 함정
을 파놓았다면 사정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카드론은 이런
무모하다면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어설픈 전쟁을 시작하는 클라스라인
군에서 그 정도로 적을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들
지 않았다. 물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군의 작전에 그다지 영향을
줄 수 없는 낮은 직분의 그야말로 숨은 인재리라.
"하지만, 빠른 속도전과 세세한 다채로운 전술적인 변화를 아군병사들
이 잘 실행해줄지가 문제야."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이트 미카드론이 이끄는 군대는 대륙에
서 최고의 조직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마치 사령관 님의 손발처럼 움
직여 줄 것입니다."
미카드론이 걱정스러운 듯 포진해있는 아군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자
벨은 자신 있게 장담하며 상관의 기우를 일소에 제거해 버렸다. 그것은
물론 자벨의 허풍이나 자만이 아니었다. 그는 부관의 능력을 넘어서, 언
제나 지휘관이 요구하는 최선의 진형과 전술을 발동시킬 수 있게 미카
드론의 병사들을 훈련시켜왔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런 자벨의 노력이
있었기에 세세한 아군의 병력을 직접 지휘하는 2선의 장교들의 연계가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었다. 즉, 미카드론의 화려한
전술은 자벨이라는 유능한 부관이 옆에 있어주었기 때문에 그 진정한
진가를 발휘했다. 아무리 한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백 마리의 양이, 한
마리의 양이 이끄는 백 마리의 사자를 이긴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
코 그렇지가 않았다. 잘 훈련된 유능한 병사들이 없는 한, 지휘관의 노
력도 그 빛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드라킬스의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들 중에서, 병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분은 나이트 디트마리스이시지만, 휘하로 배속되기를 원하는 사령
관은 바로 나이트 미카드론입니다."
자벨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름다운 사령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입
을 열었다. 그는 이 외모와, 실력이 총체적으로 뛰어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 드래곤나이트의 부관이 된 것을 언제나 평생의 행운이라고 생
각했다. 그가 18세에 처음 쿠스나이트에 선발되어, 운 좋게 미카드론의
부관으로 배정되자, 미카드론은 이 젊은 청년의 능력을 금새 파악하고
는 아예 나중에 교체되지 않도록 배려를 하여 전속 부관으로 임명한 것
이었다. 부하의 능력을 파악하고 중용 하는 것, 그것은 한 군대를 이끄
는 사령관에게 있어서전장에서 작전을 구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능
력이었다. 덕분에 자벨의 상관에 대한 충성은 거의 신앙에 가까울 정도
로 발전해 있었다. 그러나 둘의 사이는 언제나 친형제처럼 친근하기만
했다.
"그거 기분이 별로 안 좋은데, 마치 나이트 디트마리스는 애인, 나는
부인으로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그래도, 애인보다는 부인이 좋은 게 아닙니까? 집안의 실권을 쥐고있
잖아요."
"하지만 언제나 재미를 보는 것은 애인이야. 게다가 남편이 애인과 바
람이 나서 몰래 함께 야반도주라도 해버리면 정말 곤란하지, 집에 혼자
남은 부인의 처량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야기가 계속하여 질 나쁜 농담으로 빠져들었으나 그것은 서로의 얼
굴에 웃음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곧 대륙에서 국력 1,2위를 다투는 두
대국의 주력군대간의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참이지만, 그들 사령관과
부관의 정신수준은 이미 범인의 그것을 초월, 거의 초연하기까지 했다.
마치 제자에게 전술을 가르치는 듯한 미카드론의 작전설명이 끝나면 연
이어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박장대소, 웃음바다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너무 친한 나머지, 드라킬스군 사이에는 그들에 관한 이상한 소문마저
떠돌 정도였다. 어쨌든 그 둘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으며 마치 남
일 말하듯 자신들의 전쟁에 대해 말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전쟁준비를 하는 족속들인데 말이다.
드라킬스의 최고의 지장이라 불리는 사령관과, 그의 부관에게는 전쟁
전에 바늘에 실 가듯 찾아오는 두려움의 긴장감조차 비켜 지나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