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11화 (111/166)

제 8장. -선제공격- (4)

클라스라인이 군사적 위험을 느껴 드라킬스의 네르담성을 공격해온다

는 소식을 들은 드라킬스군의 지휘계통들은, 오히려 안도의 잘되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사실, 진짜로 클라스라인을 침략할 준비

를 하고있었던 그들로써는 그 침략의 대의명분이 필요했기 대문이었다.

"정말 잘되었군. 멍청한 클라스라인  놈들, 알아서 전쟁거리를  마련해

주다니, 걱정을 하나 덜어주는군."

네르담성에 주둔 중이던 붉은 질풍의 기사단 사령관, 디트마리스는 임

시로 마련해둔 작전 회의실에서 클라스라인이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

고는 박장대소,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디트마리스, 일단은  현재 네르담성에 있는  병력으로 그들의

군대를 막아내는 것이 급선무 아닐까? 아마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군을 몰고 올텐데 말이야."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드라킬스 제 2기사단 사령관, 미카드론은 자신의

드래곤 나이트 동기를 바라보며 일단 눈앞에 놓인 과제의 어려움을  설

명해 주었다. 올해로 29세가 되는  이 아름다운 용모의 청년  사령관은,

그 외모뿐만 아니라, 뛰어난 용병을 사용하는 전술가로도 잘 알려져 있

었다.

현재 네르담성에 있는 드라킬스군의 숫자는 미카드론과  디트마리스의

두 부대와, 역시 드래곤 나이트인 중견의 사령관, 도브린이 이끄는 보병

부대였다. 원래 몇 달 뒤면 드라킬스의 본국에서 새로운 지휘관과 더불

어 주력군대를 보낼 예정이었으나, 현재로써는 세  명의 사령관이 이끄

는 4만 5천의 병력이 전부였다.

"맞아, 그렇지. 대군이라.............."

디트마리스는 활기차고 서글서글한 얼굴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띄우며

중얼거렸다. 사실은 드라킬스야말로 압도적인  대군을 이끌고 클라스라

인을 공격할 참이었는데, 불과 출전을 몇 달 앞둔 현재, 그 상황이 반대

로 재현 되 버린 것이었다. 디트마리스는 온몸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

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수많은 전장에서 적의 피를 부르는 용장의 투

지였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그 압도적인 패기로 적군을 돌파하며 승리

를 거두어왔던 것이었다.

"적어도 8만 이상일 걸세.  그것도 상대하기 곤란한  패러딘 나이트가

이끄는 군대가말이야."

"하지만 상대하기 곤란함으로써는 우리 드래곤 나이트도 만만치는  않

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게다가  그 유명한 드라킬스 3장군  중 두 명이

있는데, 아마 껄끄럽기로는 클라스라인군이 더 심각할 걸세."

디트마리스는 호탕하게 웃으며 작전회의실의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자신의 전용 전투비룡, 전장의 폭풍이 바닥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드래곤을  사랑하지는 않았으나, 언제나  정성으로

보살펴 주었고, 중요한 전투에는 반드시 동행하여  적군의 엄청난 피를

요구했다. 드라킬스의 비룡은, 대륙에 단 다섯 마리밖에 없다는  고룡들

과는 달리, 입에서 브레스를 뿜지는 못했으나, 빠른 속도로 공중을 비행

하는 막강한 기동력을 살린, 드래곤나이트의 길이  80세션의 엄청난 길

이의 장창은 단 한번의 일격에 대여섯 명의 적군 병사들을 꾀 찰 수 있

었다.

그러나 애초에 드라킬스가 확보하고 있는  전투비룡의 숫자가 적었고,

비룡이 드래곤나이트와 상성이 맞지 않을 경우, 결코 자신의 등에 태우

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룡을 다루는  드래곤나이트의 숫자는 드라

킬스 안에 통틀어 열 명도 안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 전투가 가능

한 숫자는 다섯 명 이하였다. 나이트들의 나이가 고령화되어 전투를 하

기엔 기력이 모자라는 것이었다.

"그래, 하지만 일단 우리의 숫자가 적군보다 모자랄  것은 사실이니까,

초반에는 적당히 계략을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베리우성에

서 자치도시연합과 대치중인 나이트 파리퀸에게 지원을 요청해야겠다."

미카드론의 의견에 디트마리스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의의 뜻을 나타

내었다.

"그렇게 되면 드라킬스의 3장군이  전부 모이게 되겠군.  아마 볼만한

전투가 벌어질 거야."

"여기서 클라스라인군을 꺾어놓으면, 나중에  클라스라인의 영토를 침

공할 때 확실히 수월하겠지, 그러니까 반드시 승리해야만 해."

"당연한 말 아닌가. 여지까지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는데, 공격하겠

다고 마구 퍼트리는 녀석들한테 질 수야 없지."

디트마리스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미카드론과 함께  클라스라인

군을 맞이할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 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뛰어난 용병가였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만드는 전술의 위력이  탁

월할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성의력 669년 8월 14일. 클라스라인군은 드라킬스와의 국경지방에 위치

한 자스칼 성에 집결해 있었다. 원래 성을  지키고 있던 나이트 제레딘

이 이끄는 섬광의 기사단 1만 5천을 제외하고도 약 6만 이상의  대군이

모여든 것이었다.

먼저 네르담성을 공략할 선발대는  나이트 제레딘과 나이트  사브린이

이끄는 4만의 군대였다. 그리고 그 뒤를  바로 이어서 나이트 파리퀴스

와 나이트 마드리스가 이끄는 4만의 2진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물론

병력을 둘로 나눈 것은 아니어서 서로간의 거리는 좁은 편이었다.

세렌은 1만의 화이트나이트를 이끌고 후방에서 보급부대를 지키며  대

기 중이었다. 물론 보급부대를 수호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도  했지만,

이것은 전쟁에서 큰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려는 재상의 강력한 입김이

씌어진 결과이기도 했다.

"후방지원이라..... 위험은 없어서 좋지만, 따분하겠구나.........."

카젯은 자스칼성의 성벽에 서서 한가한 표정을 지으며 출전준비에  한

잠인 다른 부대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후방을 지원할 세렌의 군대의 준

비는 완료된 후였기 때문에, 그 밑에 있는 카젯이나 다른 사람들로써는

할 일이 없었던 것이었다.

얼마 전에 무려 여섯 차례의 선을 보며 곤경에 빠졌던 카젯을  구해준

것이 바로 이 전쟁이었다.  상대편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꾸

거절해 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양부는 더욱 조건이 좋은 집안의

처녀들을 골라서 카젯과 선을 보게 했던 것이었다. 마음 약한 카젯으로

써는 차마 거절도 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선을 보러 나갈 수밖

에 없었던 것이었다. 결코 자신과는 맞지 않은 듯한, 갑갑한 정장을  갖

춰 입고 말이다.

"그냥 하나 골라서 잡지 그랬어, 그러면 더 귀찮은 일도 없을 텐데."

역시 할이 없이 성벽 위에서 9만의 대군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펠린

이 지나가는 말투로 카젯에게 말하자 카젯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심각

한 표정을 지었다.

"난, 결코 사랑 없는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니까 선을 보고 결혼한다

는 것은 말도 안돼. 내가 아무리 지금 클라스라인의 귀족 물을 먹고 있

다고는 하지만, 원래는 북부자치도시의 자유로운  인간이라 구. 두고봐,

언젠 간 반드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운명의 여인을 만날 테니까."

"남편 잘못 만나 자신의 일생이 망칠 비운의 운명을 가진 그 여인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

"다운크람......... 남 얘기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거야?"

"글세, 난 언제나 사실만을 이야기할 뿐."

다운크람의 말을 들은 카젯이 그를 째려보며 말하자, 다운크람은 고개

를 돌리며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승리했으면 좋겠지만, 아이디어가 그 썩은 재상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 잘 될지 모르겠다."

계속 카젯과 말싸움을 벌이기가 싫었는지, 다운크람은 말의 화제를 바

꾸며 이번 전쟁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병력이 많은 것은 좋지만, 이 병력을  먹이기 위한 식량도 그에 만만

치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텐데."

만일 선진이 돌파 당해, 후방에 있던  세렌의 부대가 포위되어 공격당

한다면, 아무리 보급부대의 수비를 맡고있는 세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지금 세렌은 나머지 네 명의 사령관들과 모여서 네르담성을 공격할 작

전을 짜고있었다. 그러나  세렌은 원칙대로라면 이번  전투에서 적군과

접전을 벌일 가능성은 적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위해서라도, 다른  부

대들의 작전에 무언가 조언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원래는 나이트 퀵셀트가 수도의 크루세이더 2만 5천을 지휘하고 올 예

정이었으나, 나중에 그는 그 역할을 나이트  마드리스에게 양보해 버렸

다. 자신이 없으면 재상의 폭주를 저지할 사람이 성에 없었기 때문이었

다.

이번 전쟁에는 다섯 명의 패러딘 나이트 지휘관 외에 스무 명의  다른

패러딘 나이트도 참가했다. 수도에 있었던 예비  기사들은 물론이고 클

라스라인 전역에 있는 도시들의 성주로 부임해 있던 여러 패러딘  나이

트들도 도시의 수비병중 일부를 이끌고 참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에도 재상이 뒤에 있었는지, 프로겐성에 성주로  부임해 있던 키사르는

동원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용의 주도한 인간이었다.

"세렌에게 총 사령관의 직책과 함께 전군의 작전 권을 부여해주고, 키

사르의 머리와 함께 작전을 펼쳐나간다면, 이번 전쟁, 아무리  기획단계

에서 허점이 많다 해도 어느 정도는 승산이 있을 텐데."

펠린은 안타까운 듯 고개를 크게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그는

전략이나 전술에 관해서는 그다지 식견이 없었지만,  그것에 대한 세렌

과 키사르의 능력이 다른 패러딘 나이트들을 능가한다는 사실은 정확히

알고 있다. 패러딘 나이트들은 대부분 지력보다는  무력에 의존하는 편

이었으므로 그 둘간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렌이야말로 진정한

총 사령관의 자격이 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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