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10화 (110/166)

제 8장. -선제공격- (3)

"세렌이 패러딘 나이트가 된 것까지는 알았는데.......... 클라스라인을 침

공해온 카르트라는 다도해의 나라를 토벌하는데 사령관이 되었단  말입

니까?"

"그렇지. 게다가 그야말로 보기 좋게 토벌에 성공했어."

대륙의 포도밭이라는 널찍한 음식점에 모인 킬츠와 루디, 그리고 쿠슬

리와 크라다겜은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대화의 장을  열고 있었다. 킬츠

는 그 동안 자주 만날 기회가 없던 크라다겜과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

는데,그는 회색의 피부와 전신에서  풍기는 강렬한 기운, 그리고  약간

딱딱한 말투를 제외하고는 거의 보통 준수한 안간 청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킬츠는 왠지 크라다겜이 뉴린젤보다 더  인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설사  한쪽은 진실을 내면에 숨기고  있으며,

한쪽은 나중에 후천적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대화의 화제가  클라스라인에 있는  세렌에게로 옮겨졌는데,

쿠슬리의 말로는 패러딘나이트에 선발된 세렌이 거의 선발되자마자  바

로 카르트군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전투를 벌여, 압도적인 숫

자의 적군을 물리치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었다.

"야....... 그 녀석, 예전부터 생각이 깊고 착실하더니 결국은  크게 성공

했군요. 패러딘 나이트에 일군의 사령관이라."

쿠슬리의 말에 루디가 흐뭇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킬츠도 내

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무척 기분이 좋은 듯 했다. 이미  예전에

그 섭섭했던 마음은 사라진 후였다.

"그런데 말이지,  이번에는 클라스라인에서  드라킬스를 공격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어. 그것도  단지 드라킬스가 자신들과의  국경에 병력을

집중한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주 메뉴로 나온 따끈한 쿨드의 등심구이를 먹기 좋게 나이프로 자르면

서, 쿠슬리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에? 원래 우리의 작전대로라면 드라킬스가 클라스라인을 공격해야 하

는 게 아닌가?"

킬츠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쿠슬리는 잠시 교묘하게  눈치챌 수 없도

록 주위의 눈치를 살핀  다음, 목소리를 죽여 조용히  킬츠의 궁금증에

답해주었다.

"사실은, 이것도 우리의 작전이란다."

"예?"

"나이트 길드의 연주에 맞춰 클라스라인이 춤을 추고 있다고  보면 되

지. 물론 작곡은 마인슈 총 참모장이지만."

쿠슬리의 설명은 이런 것이었다. 즉, 권력과 부에 눈이 멀어버린  클라

스라인의 재상, 몰튼 후작에게 일부러 정보를  흘려서 먼저 드라킬스를

공격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중간  중간에 훌륭한 바람잡이역

할을 한 나이트길드의 숨은 인물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두말할 것

도 없다.

그리고 마인슈의 예측에 의하면, 전쟁이 벌어지면, 십중팔구  드라킬스

의 승리가 확실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드라킬스의 피해도  어느 정도

심각하겠지만, 드라킬스는 간단한 클라스라인을  공격하는 명분을 얻게

되고 전 병력을 동원, 클라스라인을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북부

자치도시 연합은 잃었던 영토를 회복, 하고  드라킬스의 보급선을 끊어

일거에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클라스라인과의 전쟁으로 병력이 크게 줄

어있을 드라킬스군을 비축해놓은  자치도시연합의  군대로 공격한다면,

드라킬스의 군대는 숫자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잇달 은  전투로 인해

매우 지쳐있을 것이므로 높은 승산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마음 내키는 대로 클라스라인이나 드라킬스를  점령하

는 것도 가능하지. 하지만, 자치도시연합은 결코 남의 땅을 침범하지 않

아. 이곳은 자유와 평화를 원하는 나라니까. 나이트길드로써도 불필요한

전쟁을 늘릴 마음은 없고 말이야."

마인슈가 훌륭한 까닭은 그의  전략과 전술적인 식견뿐만  아니라, 그

사심 없는 마음자세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 자유의 나라, 자

치도시연합의 중추에 어울리는 인물인 것이었다.

"이 도시는 정말 좋은곳이다."

그대, 크라다겜이 스프를 한술 떠먹으며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킬츠와 루디의 눈에는 그의 행동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크라다겜! 음식을 먹어도 되는 거야?"

킬츠는 깜짝 놀라며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스프를 마시고있는 크라다겜

을 바라보았다. 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 예전에 알아낸 것이다.  마족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물론 그에

따라 에너지도 얻을 수 있고.  하지만, 그렇게 얻은 에너지로는  마족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구나......"

"그냥 인간처럼 먹을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크라다겜은 좀 어색하지만 확실한 '웃음'을 지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

했다.

"음식이란 아주 맛있는 것이다. 덕분에, 난 여러 가지의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지."

"대단해! 크라다겜. 정말 엄청난 발전이야."

인간의 음식을 먹는 마족. 결코 흔하지 않은, 아니 세상에 두 번  다시

보기 힘들 그런 모습이었으나 결코 어색하지는  않았다. 주위의 인간들

에 자연스레 어울려 그 역시 하나의 조화로운 존재를 이루고 있는 것이

었다. 마족이라는 것은 다른 그 무엇에게라도 거슬리는 존재였다.  하지

만 그 거스름을 없애고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함께 새로운 '나'를 이룬다

는 것은 오직 지상의 생명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에리나는 안 왔지?"

쿠슬리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루디가 가볍게 웃으며 이곳에 오

기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사실, 쥬크 님과 에리나도 함께 오려고 했지만, 쥬크 님이 결사적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에리나도 쥬크 님과시내를 돌아다닌다고

했어요."

쥬크는 자신은 결코 마족과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닥 잡아 때며

킬츠와 동행할 것을 거부했다. 예전에 성의 전쟁 때  마족에게 쌓인 감

정이 어지간히도 깊었던 모양이었다.

"쥬크라니?"

크라다겜이 뭔가 낌새를 알아채고는 킬츠를 바라보자 킬츠는 어색하게

웃으며 안개에 숲에서 알게되어 동행하고 있는 쥬크라는 실리온 늑대의

수장을 설명해 주었다. 그가 예전에 성의전쟁 때 데스 나이트와 힘겹게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도.

"음..... 그런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예전에 확실히 안개로 가득 찬 숲

을 공격하라고 '나타스'에게 명령받은 적이 있다."

크라다겜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으나, 이번에는  그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이 동시에 경악의 표정을 지으며 동공이 확대된 눈으로  크라다겜

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나타스에게.... 직접 말입니까?"

루디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치 진실을 재차 확인이라도 하듯  더듬거리

며 물었다.

타락천사 나타스. 태고 적부터 지상에 펴져  있는 여러 위협적인 몬스

터들에게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신들이 직접 보내었다고 해는 전

설적인,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천사'라는 종족의 가장 큰 오점이었다.

그 천사들은 대륙 서쪽에 인간들을 모아  대륙 최초의 나라인 '천사성

국'을 만들고는 지금까지 유지시켜오고 있었다.  그 숫자는 대략 천  여

명. 물론 그들도 유한한 지상의 물질로 만들어진 덕분에 무한한 존재는

아니었으나, 그들의 수명은 대략 천년을 상회했다. 확실한 성별의  구분

이 있고, 생식을 하여  종족을 보존하는 것은 인간과  동일했기 때문에

등에 달려있는 한 쌍의 흰 날개를 제외한다면 보통 인간으로 보아도 문

제없을 종족이었다.

그러나 인류를 수호한다는 대업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언젠가  다른

마음을 품게 된 천사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아마도 지상의 욕망의 힘에

영향을 받아 번한 것이라고 추측되는 이들은,  처음에는 개성적인 성격

과 뛰어난 활동력으로 천사성국에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 중 '나

타스' 라고 불리던 한 천사가 멸망한 고대의  유적에서 마계의 힘을 부

리는 한 책자를 우연히 얻음으로써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커졌던 것이

었다.

나타스는 직접 마계와 계약을 맺어 마족과 마수로 구성된 어둠의 군대

를 불러내어 대륙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는 3대

신병기 중 하나인 질서의 검 '인자드'를 가진 용사 피스의 활약과, 하나

로 뭉친 대륙의 국가들에  의해 나타스의 패배로 끝이  났다. 나타스는

피의 사막에서 봉인되어 최후를 맞이하였으며, 그가 불러내었던 마계의

군대는 다시 역 소환되어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바로 그 공포의 대명사인 나타스에게 직접 명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다. 비로 그들과 함께 이 자리에 있는 크라다겜이 말이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막상  듣고  보니 섬짓한

데......... 맞아. 옛 말에 의하면, 나타스는 여섯 장의 회색 날개를 가졌으

며 키가 100세션이 넘었다고 하던데...... 정말로 그랬나?"

마인슈의 물음에 크라다겜은 잠시  생각하다가는 낮은 톤의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 아니다. 그는 두 장의 회색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키도 나보

다 작았다.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모습이었지. 그때는 오직 파괴의 감정

뿐이었던 내가 보았었는데도 말이다."

모두 크라다겜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으며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직접 나타스의 옆에 있었던 크라다겜의 말이

니, 확실한 사실임에 틀림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밖은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어 갔지만, 크라다겜의 이야

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크라다겜은 그렇게 마음 것  자신이 알고있는

것들을 털어놓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싶었던 것이었다. 인간들의

대화처럼. 흥미 있고, 재미있게.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그것은 지극히 인간다운 서로의 상호작용이었다. 그리고, 크라다겜은 조

금씩 또 다른 멋진 감정들을 느껴가기 시작했다. 모두 밤을 새우면서도

크라다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니 말이다.

"대단해, 그럼 그 별의 용사 피스와 검을 겨루었단 말이야?"

"그렇다. 왜 그가 별의 용사라고 불리는 지 이유를 알겠군. 그가 사용하는

검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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