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09화 (109/166)

제 8장. -선제공격- (2)

몰튼 후작을 정점으로 한 클라스라인의 주요 관직을 자치하고있는  귀

족들은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를 이루고  있다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그

결속력이 강했다. 그리고 언제나 더러운 수법을 사용할 때 그 결속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이번 경우도 그러했다. 문제는 바로 몰튼 후작이었는데, 최근 클라스라

인의 나이트길드에서 나온 소문을 들으니, 드라킬스의 군대가 클라스라

인과의 국경에 위치한 네르담성으로 집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몰튼 후작은 즉시 개인 정보원들을 파견하여  사실을 확인했는데, 정말

로 네르담성에 대규모의 군대가 집결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건 분명히 드라킬스가 클라스라인을 노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후작은 두려움을 느꼈다. 만약 드라킬스에  의해 클라스라인이 점령되

고 만다면, 자신들의 처지가 위험하게 되는 것이었다. 후작은 결코 애국

자가 아니었지만, 국가에 붙어사는 기생충인 것은  분명했기 때문에 클

라스라인의 앞날을 걱정해야만 했다.

드라킬스의 군대는 대륙의 최고 정예로써,  북부 자치도시연합과의 전

쟁으로 인해 그 실력이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즉 실전경험도

풍부하다는 증거였는데, 실력과 경험을 동시에 갖춘  이 막강한 군대는

결코 생긴지 10년도 되지 않은 다도해의 카르트군에 비할 바가  아니었

다. 그리고 그 정도의 상식을 모르고 있을 몰튼후작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은 드라킬스의 총 병력이 전부 집결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지금 먼저 공격한다면..........'

달콤한 시나리오가 후작의 머릿속에 구상되었다.  클라스라인의 전 병

력을 이끌고 네르담성으로 쳐들어가 아직 전부 집결하지 않은 드라킬스

의 군대를 전멸시킨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드라킬스의 군대를 천천히

요리한다.

이렇게 된다면, 일을 계획하고,  진행시킨 자신의 공은 엄청날  것이고

후작에서 공작으로 직위가 상승될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그

리고 새롭게 얻어지는 공작령이라는 이름아래의  영지들....... 구미가 당

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좋은  것이건 아니건, 후작은  그 시작단계에서부터

커다란 우를 범하고 있었다. 바로 대대적으로  국내에 드라킬스를 공격

할 것이라고 선포한 것이었다. 마치 드라킬스에게  우리는 너희를 공격

할 테니 그전에 미리 준비하라고 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오. 어째서 우리가 먼저 드라킬스를 공격한다는 말

입니까. 아무리 드라킬스에서 국경지방의 성에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 전쟁을 선포하거나 국경을 침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

까."

출병 건을 다루기로 되어있는 군 회의에 참석한 퀵셀트는 그야말로 막

가고 있는 이 후작의 처사에 크게 반발을 하며 반대했다.

"그러나 저들이 공격해오면 그때는 이미 늦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리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 드라킬스를 물리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입

니다. 아직은 네르담성으로 드라킬스의 전군이 모인 것은 아니니까요."

몰튼 대신 재상대리로 참석한 이온스 백작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지금 걸어다니는 클라스라인군의 역사라고 할 수 있

는 나이트 퀵셀트의 앞에서 전략을 논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적이 병력을 다 집중하지 않았을 때 병력을 집중한 아군이  적을

친다는 것은 저의 전략의 교과서적인 방법이라 할 정도로 지극히  당연

한 것이었다. 그리나 문제는 아직 드라킬스가  적이라는 확실한 단서가

없었으며, 덕분에 클라스라인은 드라킬스를  공격할 대의명분이 존재하

지 않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긴다고 해도  지금의 드라킬스처럼 사람들

에게 결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은 분명했으며, 만약 진다면,  시민

들의 엄청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게다가 승산이 어느 정도 되는 지도 문제였다. 아무리 전 병력이 집중

되지 않았더라도, 일단 네르담성을 지키는 적의사령관이 드라킬스의 3

장군중 하나인 디트마리스였기 때문에 그 유명한 붉은 질풍의 기사단이

있을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미카드론이나 파리퀸 같은 나머지 두 명의

장군들도 이미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필시 적군의 사령관은  그 드라킬스 3장군중 하나일  것이오.

그런 용병의 귀재들에게 지리적인 우세를 주어준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

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  우리로써는 드라킬스와의 국경지

방에 병력을 집중하여 수비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란 말입니다."

사실좀더 세세한 이유와 사정을 설명하며 상세하게 말하고 싶었던 퀵

셀트였으나, 어쩐지,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것 같았기 때문에 약간은 체

념한 듯, 어느 정도 적당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 드라킬스군이

농성을 한다면 그 또한 얼마나 공략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또한

평야에서의 정면대결을 펼친다면, 드라킬스군의  소문난 막강한 위력이

발휘될 것이 분명한데, 그 어느 모로  보아도 클라스라인군에게 유리한

것은 없었다. 고작해야 그 알량한 몰튼후작의  작전에 의한 병력면에서

의 약간의 우세정도가 유일했다.

사실 퀵셀트도 드라킬스가 이미  클라스라인을 넘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도 이 길에 잔뼈가 굵을 대로 굵어진 사람이라,  그

정도의 일쯤은 어설픈 후작보다 미리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트 퀵셀트는 후작처럼 미련하게 먼저 공격하여, 오히려 적

에게 전쟁의 구실 점을 마련하게 해주는 어리석은 작전을 세우지는  않

았다. 그는 교묘하게 적군을 클라스라인 영토로 깊숙하게 유인한 후, 미

리 대기중인 병력으로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보급선을 끊어버린 다음

에, 궁지에 몰려있는  드라킬스군을 향해 포위망을  좁힌다는 치밀하고

뛰어난 전략을 구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보급문제와 지형문제 때

문에 공격해오는 쪽은 언제나 궁지에 몰린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

는데, 오히려 그런 절호의 기회를 모르고서, 재상은 막무가내로  작전을

세운 것이었다.

"이미 법왕 폐하의 허락을 받아놓은 상태입니다. 지금에 와서 출병 건

에 반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군대의 조직에 힘을 써주시기  바랍니

다."

이온스백작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야말로 몰

튼의 일 처리는 주도면밀한 것 이여서 반대할 세력들이 눈치채기  전에

미리 모든 조치를 다 끝내 놓은 것이었다. 뒤늦게 이 엄청난 사실을 알

고 난 퀵셀트나 프레이어 같은  진정한 충신들이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도록 말이다.

프레이어 공작은 처음 출병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그 동안 계속되는  피로의 누적으로 쇠약해져있던

육체와 정신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는 그대로

기능을 멈춰버린 것이었다. 다행이 신관들의 치료로  인해 목숨은 건졌

지만, 계속되는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져있었다.

프레이어의 부재는 일을 성사시키려는 몰튼 재상의 패거리에게는 그야

말로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없어지고 나니, 법왕청의 주

요업무는 거의 마비상태였다. 지금까지 오직 그만이 열성적이고 적극적

으로 국사를 처리해 오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그의 빈자리를 메울 수

가 없었다. 무능력한 다른 귀족들이 아무리 무더기로 달라붙어도 그 효

율성은 프레이어공작의 10%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정부의혼란에도 불구, 몰튼  재상의 명령 하에 드라킬스

출병 건은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작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엔 관심 없고, 오직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얻게될 새로운 영지

와 재물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마는 군. 재상도 이쯤  되면 인간이 아니라 재난

이야. 국가가 존재한다는 대전제가 있어야 자신들의  부와 권력도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며칠 후에 있을 출격을 앞두고, 세렌과 함께 자신이 지휘할 군대의 보

급품을 확인하고 있던 다운크람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보급품들을  바라

보았다. 여분의 화살과 갑옷, 검과 방패, 창,  그리고 식량. 그것들은 다

운크람의 작품으로, 짜임새 있고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으나, 과연 쓸

모가 있을 지는 의문이었다.

"아니, 몰튼 후작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거다. 단지 어떻게 나라를 유

지시켜야 하는지 방법을 착각하는 것이지."

역시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느끼며 세렌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이번 전쟁에 동원되는 클라스라인의 병력은 화이트 나이트 4만과 크루

세이더 5만이었다.이것은 남부자치도시와의 국경지방에 주둔중인 병력

까지 모두 집결한 것으로, 언제 페이오드에 점령당할지 모르는 그 위험

한 지대를 텅 비워둔다는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아직

훈련을 마치지 않은 병사들도 있었는데, 일단 숫자를 맞추기 위한 재상

의 일시 방편이었다. 아직 많은 수련기간이  남은 수많은 훈련생들에게

실전용 무기와 갑옷을  지급해야하는 훈련담당관 나이트  퀵셀트로써는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훈련도 끝나지 않은 병력으로 무엇을  하려 한다는 말인가. 카르트군

의 꼴이 나고 싶은지......."

퀵셀트로써는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었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일

이었다. 올해 8월까지는 모든 준비가 마쳐져야하는 것이었다.

"나이트 세렌의 인기가  아무리 많다고 하지만,  전쟁만 끝나면 이번

계획을 세운 나의 명망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1석 2조의 효과가 아니겠는가?"

몰튼은 자신의 저택에서 그런 생각이나  하며 와인 잔을 비우고  있었

다. 전쟁터에서 피를 뿌리며 병사들이 전투에 목숨을 걸고 있을 때,  그

는 자신의 저택에서 역시 국민의 피땀을 자내어 만든 그야말로 피 같은

와인을 마시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참이었다.

"역시 와인은 마르젠 지방의 것이 일품이란 말이야...... 음,  그래. 이번

에 새로 받을 영지는 그쪽의 포도밭 근처가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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