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선제공격- (1)
카르트군의 군대를 격퇴하고, 빼앗겼었던 프로겐성까지 재 함락한 세
렌은. 잡았던 포로들을 돌려주며 카르트의 지원군을 돌려보내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카르트군의 토벌 전은 우선 일단락을 맺
은 것이었다.
카르트의 수송선에 포로들을 태워 보낸 지 7일쯤 지나는 날, 드디어
세렌에게 군대를 이끌고 수도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이상한데, 그 썩은 귀족 놈들, 카르트군의 재 침입에 대비하여 이 프
로겐성이나 영원히 지키고 있을 것을 명령할거로 예상했었는데."
세렌이 읽어준 공문의 내용을 들은 다운크람이 약간의 의구심을 품으
며 빈정거렸다. 그러나 그 문제는 세렌도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이
제 적의 대군을 물리친 전쟁의 영웅이 된 세렌을 견제하는 측면에서,
정말로 사망한 나이트 크차리스를 대신하여 프로겐성의 성주를 시키려
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문의 끝에는 나이트 키사르를 프로겐성의 성주로 임명한다는
말이 있었다. 즉, 돌아올 때, 키사르는 두고 오라는 것이었다. 병력은 단
화이트 나이트 3천을 남긴 채로.
"생각보다 고 단수의 놈들이군. 정확히도 찔렀어. 차라리 카젯을 남기
고 간다면 속 편할 텐데....."
다운크람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체 임시 회의장의 테이블에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그 자리에 카젯이 있었다면, 어설프게나마 반격이 나왔을
테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젯은 그 자리에 없었다. 밖에서 펠린과
함께 남은 병력을 점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세렌도 전쟁에 있어서 작전구사능력은 뛰어났으나, 키사르처럼
전략, 전술, 그리고 정보의 수집과 판단에 있어서 포괄적인 능력을 갖추
지는 못했다. 세렌에게 있어서 키사르는 최고의 작전참모이자 부관이었
는데, 수도에서는 지금 그를 떼어 내고 오라는 것이었다. 실로 교묘한
생각임에 분명했다.
"너구리는 역시 너구리로군."
"너구리?"
"몰튼 후작 말이다. 타락귀족의 최강 보스지."
루벨도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특유의 넉넉한 스마일 페이스를 접어둔
체 쓴 음식이라도 잔뜩 먹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너구리라... 적당한 표현이군. 정말 짜증나는데. 얕은꾀만 잔뜩 짜내
는...... 그래서 그는 카르트군이 혹시나 재 침공할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 건가?"
루벨의 말에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운크람은 생각을
했다 과연 3천의 병력으로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카르트군의 재 침공을
막아낸다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리 그 군사를 지휘하는 것이 키사르라
고 하더라도, 적의 수가 너무 많으면 대책이 없었던 것이었다.
"상관없다. 만약 카르트군이 다시 공격해 오면 어떻게든 막아내겠다.
하지만, 괜히 시간을 지체하다간 그들에게 덜미를 잡힐 위험이 있어. 어
서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나 정작 당사자인 키사르는 평소의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체 담담
하게 말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면, 허세가 심하다고 생
각되겠지만, 결코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 키사르의 입에서 나온 말아가
때문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래, 너라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꺼야. 그리고 그 말대로, 빨리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더 이상 프로겐성의 식량을 소비할 수는 없지."
세렌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잠깐
생각하더니 키사르에게로 다가왔다.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 나중을 위해서 준비해
두었으면 하는 것이 있어. 그게 뭐냐하면............"
다음날, 모든 준비가 마쳐진 세렌은 휘하의 8천 병력과 함께 프로겐성
을 떠나 수도로 향했다. 일단 처음 출병할 때 보다 숫자가 줄어들었고,
전투의 위험도 없었기 때문에 진군 속도는 무척 빠른 편이었다.
괜히 시간을 끌었다, 어쨌다 하는 잔소리를 듣기실었기 때문에 세렌
은 특히 신경을 써서 병사들이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빠른
진군을 했는데, 막상 예상보다 이틀 먼저 수도에 도착해보니, 오히려 너
무 빨리 온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나이트 세렌이다!"
"카르트군을 물리친 패러딘 나이트!"
수도에 도착한 세렌 군을, 시민들을 열광하며 맞이해 주었다. 엄청난
인파가 적의 대군을 무찌르고 당당히 돌아온 승장의 얼굴을 보기위해서
법왕청으로 통하는 중앙 대로에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인기
폭발이었는데, 더구나 그 문제의 기사인 세렌이 등까지 내려오는 아름
다운 직모의 금발에, 가을 하늘같은 티 한 점 없는 푸른 눈동자를 가진
준수한 외모의 미청년이었기 때문에, 그를 맞이하는 시민들의 함성을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러나 막상 법왕청에 들어간 세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재상, 몰튼
의 짜증나는 잔소리였다. 왜 마음대로 잡은 포로를 적군에게 넘겨주었
냐는 것인데, 세렌은 올라오는 속을 참아내며 간단하게 더 이상의 피해
를 줄이기 위해서였다고 대답한 뒤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
"자자, 이쯤에서 그만 두시지요 몰튼 재상 님. 어쨌든 나이트 세렌은
적군을 물리친 큰공을 세우지 않았습니까?"
그대 세렌의 위기를 눈치채고 달려온 것은 패러딘 나이트에서 최고 노
령자인 나이트 퀵셀트였다. 그는 막 받은 화이트나이트의 지원병들을
훈련시키다가 세렌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축하해주기 위해 부랴부랴
성으로 돌아왔는데, 세렌이 재상의 집무실에서 잔소리를 듣고있다는 소
식을 알아내고는 재빨리 집무실로 행했던 것이었다.
"흐흠..... 일단 퀵셀트 님이 그렇게 말하시니. 지금은 참지만, 또 한번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말로서 끝내지 않겠소. 반성하기 바라오 나
이트 세렌."
그리고 그제서야 몰튼은 그 듣기 싫은 목소리로 만들어내는 고문과도
흡사한 잔소리에서 세렌을 해방시켜주었다. 아무래도 퀵셀트는 클라스
라인의 군부계통에서는 제일 가는 인망을 가진 실력자였기 때문에 일단
양보한 것이었다.
"자자, 재상의 말을 너무 마음에 두지 말게나, 나이트 세렌. 저런 인간
을 탈을 쓴 기생 체와 상대한다는 것은 자신의 품격만 떨어뜨리는 일이
라네."
퀵셀트는 인자한 미소와 함께 세렌의 등을 두드려주며 백작의 발작에
개의치 말라고 하였다.
"물론입니다. 나이트 퀵셀트 님."
세렌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퀵셀트를 바라보았다. 세렌은 그가 현
재 88회 패러딘 나이트 선발 출신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노 기사이
자 덕망 있고, 실력 있으며 클라스라인에게 진심의 충성을 헌납하고있
는 훌륭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정말 호감이 가는 인
물이었다. 이런 훌륭한 기사들이 있었기에 클라스라인은 그 존재를 유
지해 온 것이라고 세렌은 판단하고 있었다.
법왕은 몸살이 나서 몇 일째 법왕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세렌은 대단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 그에 대한 포상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패러딘 나이트에게 상을 수여하는 사람은, 오직
법왕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법왕도 대단한 인물이야. 실로 이 부패한 클라스라인의 지도
자로써의 능력을 너무도 충분히 갖추고 있단 말이야?"
누가 들으면 국왕 모독 죄로 감옥에 끌려갈 대단한 발언을 가차없이
말하던 다운크람은, 지금 세렌의 저택에 모여있었다. 현재 자식덕분에
자작으로 승격된 마틴스 자작은 몸 건강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수도
동쪽에 있는 조용한 자신의 별장에서 요양 중이었다. 그러나 세렌의 판
단으로는 아마 그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 같았다. 마지막으
로 보았던 마틴스 자작의 얼굴엔 생기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었
다.
물론 친형제는 아니지만, 그의 두 형들도 저택에 오는 날은 드물었고,
덕분에 이 세인트룸에 있는 마틴스 가의 저택은 세렌의 집이자, 그의
동료들과 함께 사용하는 회의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더욱 재상부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자세히
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펠린의 말로는, 재상 몰튼의 측근들이, 심각할 정도로 법왕청내의 여러
군데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고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인가. 정보
를 입수한 것 같다고 했다.
"저기, 식사는 아직 인가? 오늘 모이라고 해서 아침도 먹지 않고 왔는
데,"
그러나 막 분위기가 심각해지려고 할 때, 루벨의 산통을 깨는 막강한
발언으로 인해, 심각한 대화는 식사가 끝난 뒤로 미루어졌다.
"카젯이 없으니까, 이젠 네가 그 녀석 몫까지 푼수 짓을 하는 거냐 루
벨."
지금 카젯은 양부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 어떤 귀족 가의 처녀와 선을
보러 가있었다. 흰색의 예복으로 말쑥하게 차려입고, '카제스'라는 이름
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무슨 소리냐 다운크람. 일단 배를 채워야 좋은 의견도 나오는 법인
데."
"페이오드의 한 의학서에 의하면, 음식을 먹으면 위에 산소가 대량으
로 공급되어, 상대적으로 두뇌로 가는 산소의 량이 줄어든다고 한다.
즉, 머리회전이 둔해진다는 것이지."
"호오, 하지만 나는 식사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머리가 핑핑 도는걸.
그 의학서를 쓴 사람, 아마 그 사례를 자세히 조사하지 않은 모양이다."
느긋하게 천천히 말하며 한마디도 밀리지 않는 루벨이었다. 그도 말발
이 보통은 아니여서, 카젯과는 달리 아픈 곳을 세심하게 지르는 다운크
람의 독설에도 흔들리지 않고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식사가 끝나고 나서도, 세린 들은 재상 가의 의심 가는
행동의 진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상상력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골치가 아
팠다. 이럴 때, 정보의 습득과 분석 판단,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상상과 예상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키사르가 있었더라면, 금새 정
보를 얻어내어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련만, 그는 지금 저 멀
리 동남쪽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의 시장이 되어서 그들과 떨어져있는
것이었다.
"새삼, 키사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군."
결국 결론이 나질 않자, 세렌이 한숨을 내쉬며 그를 그리워했다. 이럴
때 키사르가 옆에 있어주면 정말 좋으련만........
그러나 약 3일 후, 재상 부는 그 동안 만들어 놓은 엄청난 계획을 국
내에 발표해 버렸다. 정말로 엄청난 계획을, 그것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
는 스케일을 가진 비뚤어진 예술품이라 해도 상관없을 작품이었다.
그것은, 바로 전 병력을 동원하여, 드라킬스령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