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06화 (106/166)

제 7장. -토벌전쟁- (7)

프로겐성에 머물고있는 클라스라인군의 사령관, 나이트 세렌은 포로반

환을 조건으로 병력을 철수해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포로인  카르트군의

사령관, 제크트를 돌려보냈다. 물론 이는 되도록 피해 없이 이 토벌  전

을 마무리지으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는데, 지원군을 싣고 오던

카르트군 수송선과 다행이 길이 잘 맞았는지,  바다의 한가운데서 마주

칠 수 있었다. 물론 카르트군의 예상 해로를 파악하고있던 제크트의 부

탁으로 배를 몰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세렌은 카르트군에서부터 보내온  한 통의 서신을 받

을 수 있었다. 포로를 돌려준다면 더 이상 클라스라인을 공격하지 않겠

다는 약속이 담긴 서신이었다.

"제크트라는 카르트인, 다행이 그들을 설득한 모양이군. 혹시 복수전이

다 어쩐다 하면서 마구잡이로 공격해오면 어쩌나 했는데."

서신을 받은 세렌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프로겐성의 항구로  보낼

것이라는 카르트의 빈 수송선을 기다렸다.

"혹시, 함정은 아닐까? 그 적군 사령관, 적어도 무능력해  보이지는 않

았다. 아군을 방심시켜 기습을 하려는 것일지도 몰라."

다운크람은 일말의 경계심을 품으며 병력을  준비시킬 것을 제안했다.

포로를 태우기 위해 올 카르트의 수송선에서 갑자기 적군이 튀어나온다

면, 프로겐성은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이었다.

세렌은 다운크람의 의견을 수렴, 5천의 크루세이더들을 항구에 포진시

켰다. 세렌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어서 병력을 더욱 배치해두고 싶었

지만, 크루세이더의 숫자는 그것이 한계였다. 연이은 두 차례의  전투로

약 절반 정도의 크루세이더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었다 물론 카르트군

의 피해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카르트군과는 달리, 세렌은

본국에서 지원군을 받을 처지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단 한 명의 병력

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분명, 세인트룸의 시민들은 축제의 분위기에 휩쓸려 있겠지.  정말 오

랜만에 적의 침공이었으니까."

펠린은 자신의 기억으로 클라스라인이 마지막으로 다른 나라와 전투를

벌였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쯤 전에 영토의 분쟁으로 인해 북부

자치도시 연합과 벌였던 국지전이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클라스

라인이 적군에게 영토를 빼앗겼던 것은 아마도 성의 전쟁 때 타천사 나

타스의 어둠의 군대에게 당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만큼 클라스라인의

국력은 안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안정된  국력과 비례하여 귀족

들의 부패도 심각했지만.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겠지만, 귀족들은 초상 분위기일걸, 설마 이기리

라 곤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 녀석들, 우리가 만약 패배했으면 어쩔 생각이었을까? 순식간에 수

도가 함락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세렌은 다운크람과 펠린의 대화를 들으며,  클라스라인의 주도권을 잡

고있는 귀족들의 속성을 파악해 보았다. 물론  프레이어 공작같이 전력

으로 일하며 국가에 헌신하는 모범적인 귀족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문

제는 세렌도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있는 몰튼 후작과 그의  측근들이었

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이득을 위해서라면  국가마저도 팔아치울

족속들이었다. 만약 드라킬스가 압도적인 대군으로 침공해 들어와 수도

를 포위한 후, 법왕의  목을 가져오면 나머지 귀족들의  지위를 약속해

주겠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개인사병을  동원해서라도 법왕을 암살하는

데 혈안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아버님도 기력이 쇠하셔서...... 프레이어 공작 님만 괴롭겠구나.'

세렌의 양아버지인 마틴스 백작은 클라스라인에서 가장 고귀한 직책중

하나인 법왕청의 그랜드저지를 맡고있는  실력자였으나, 나이관계로 지

금은 정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 오직  고생하는 것은 국무총

관인 프레이어 공작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의  아들인 파울프가 이번

에 세렌과 함께 패러딘나이트에 선발되었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로써 힘

이 날 것은 틀림없었다.

세렌은 카르트군과 벌였던 전투를 생각했다. 물론 제크트는 격식이 있

는 지휘관이라 약간 고생해서 이기기는 했지만,  카르트군 대부분이 장

비가 빈약했으며, 지휘계통의 숫자가 워낙 적어서 병사들이 중구난방으

로 분산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들은 체력적으로 강하기는 했지만,  정규

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병사들이었고, 무기의 상응 관계도 파악하지 못

하고 있었다. 즉 여러 면에서 너무 약했던 것이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

에 적은 숫자의 세렌 군이 승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대륙에서 그런 수

준의 병사들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는 오직  신생국인 카르트뿐이었다.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 이야기 역시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적군이 도와주어서  이겼지만......... 또 이런  불리한 전투를

감행시키면 곤란하다."

항구에 서있던 세렌에게, 키사르가 다가와서는  세렌이 하고싶었던 말

을 대신해주었다. 만약 다음에 드라킬스 공국이 공격해왔다고 가정했을

때, 시기심 많고 겁 많은 귀족들이 압력을 넣어 또 한번 세렌에게 소수

의 병력을 주어 막아내라고 한다면, 그때는 대책이 없었다. 드라킬스 군

은 결코 클라스라인군에 뒤지지 않는, 오히려  실전경험이 적은 클라스

라인군보다 더욱 강력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공

격해 온다면 그 명망 높은 드라킬스의 3장군이 이끄는 군대일 텐데, 세

렌으로써는 그들보다 더 많은 숫자의 병력으로 전투를 벌인다고 하더라

도 승리를 거둔다는 확신이 없었다.

"맞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 죽음밖에 기다리

지 않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출전해야만 하는 것일까?"

세렌은 표정에 희미한 불안을 드러내며 아름다운 항구의 바다를  바라

보았다.

"아, 그런데 타키니에 대해선 알아 봤어?"

잠시 침묵하고있던 세렌은 키사르가 자신의 목숨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있을지도 모르는  한 소년의 이름을  꺼내었다. 물론

키사르도 5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을  했으니,

그 키사르라는 소년도 아마 청년으로 성장했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장

담할 수는 없었지만.

"물론이다. 하지만..........."

키사르는 말꼬리를 흐리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

내지 않는 이 무표정한 청년도, 한 소년의 이름이 나오게 되면 금새 감

정적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파스텔에서 팔튼으로 다시 팔려갔다는 사실은 알아내었지만....... 팔튼

성에서 그 행적을 찾을 수가 없다. 또 어디로 팔려간 것일까........."

키사르는 패러딘나이트 선발전이 끝나자 마 자 사람을 시켜  타키니가

팔려갔다는 도시들의 수색에 나섰다. 만약 본인이 할 수 있었다면 직접

나서서 그를 찾아 돌아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의 행방은 묘연했

다.

"하지만, 언젠가는 만나게 될 꺼야. 네가 이토록 만나기를 원하니까."

"그래, 같은 하늘아래 함께 있는 한, 반드시......."

키사르의 눈이 붉게 물들어 갔다. 항구의 수평선에 석양이 지고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 한가운데에 있을 때보다도 더욱 붉게 타올랐다. 마

치 남아있는 생명을 모조리 불태우듯이. 그리고  내일의 새로운 태양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정찰병에 보고에 의하면, 드라킬스의 군대가 대규모로 네르담 성으로

모여들고 있다 합니다."

"음. 그렇군요. 이제 드라킬스의 진짜 저의가 확인될 것입니다."

북부자치도시 연합의 총 참모장, 마인슈는 부관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

이며 미소를 지었다. 드라킬스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것도 그의 예상과 거의 일치하는 시기에.

마인슈는 급히 전군에 비상 경계태세를 전달, 결코 성밖으로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제인트 성채에 주둔중인 혼의 용병장, 스

와인을 파울드로 불러들였다. 그와는 따로 긴밀히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일은 나이트길드의 간부들과  이미 상의가 끝나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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