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04화 (104/166)

제 7장. -토벌전쟁- (5)

3일째까지, 정말로 겁이라도 먹은 듯 가만히  눌러 앉아있던 클라스라

인군이, 4일째 되는 날의 저녁, 갑자기 우렁찬 함성을 질러대며 동원 가

능한 화이트 나이트 전군을 집결해 공격해 들어오자. 카르트군의 현 사

령관, 제크트는 갑작스런 상황의 변화에 침착하게  반응하며 전군에 명

령을 내렸다.

"모두 침착하게 활을 쏘며 적군의 접근을 저지하라! 특히, 성문을 공격

해오는 적을 집중적으로 노려라!"

그 동안의 클라스라인군의 침묵으로 약간 긴장이 풀어져있던 카르트군

이었지만, 곧 평상시의 전투수준을 회복했고, 들고있던 활에 화살을  장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령관의 발사 명령을  기다리며 엄청난 속도

로 쇄도해 들어오는 적의 흰색갑옷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아군을 방심시켜놓고, 야습이란 말인가? 흠, 의도는 좋지만, 그 정도로

당황할 우리가 아니다. 모두들 전의에 불타고 있으니까.....'

현재 카르트군의 전의는 엄청나서, 성벽에서 적과 싸우기 위해 아래로

뛰어내리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그만큼, 그들은서로의 피를 보

려는 열망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전군, 발사!"

제크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커다란 소리를 지르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곧 전열 에서있던 병사들이 쏘아내는 2만개가 넘는  굵

은 빗줄기 같은 화살의 폭우가 달려드는 화이트나이트의 머리위로 쏟아

져 내렸다.

"모두 방패를 이용하여 급소를 수비하라! 고저 차가 심하기 때문에, 잘

못 맞으면 갑옷이 관통 당한다!"

세렌은 철과 나무로 만들어진 빗줄기를 뚫으며 아군에게 소리쳤다. 거

의 10초에 한번씩 아군의 두 배에 가까운 화살들이 그들에게  퍼부어지

는 것이었다. 아무리 화이트나이트의 갑옷이 견고하다 하더라도, 희생자

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크억!"

"제길!"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들을 태우고 이동중인 말들이  화살에

맞고 사망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덩달아 말  위에 타고있던 기사들까지

도 낙마하며 크게 부상당하거나  운이 나쁘면 목숨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대열의 중앙에서 열두 명의 화이트나이트들에게 들려 오고있는

길이 200세션의 공성추는 무사히  프로겐성의 성문까지 접근해  들어갔

다.

"저 공성추를 들고있는 적군을 노려라!"

어두워서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있던  제크

트는 그 커다란 기둥 같은 물체의 사용용도를 파악하고는 아군에게  소

리쳤다.

그러나 이미 공성추는 성문에 닿아있었고, 열두  마리 말의 속도에 담

긴 힘을 폭발시키며 그대로 성문에 충돌되었다.

콰앙! 하는 엄청난 소리가 성문과 공성추사이에서 터져 나왔고, 그 거

대하고 견고해 보이던 프로겐성의 성문이 일순간 들썩하며 금이 가버렸

다.

그러나 공성추의 일격은 한번뿐이었다. 적군의  화살이 집중적으로 성

문근처를 노리고 쏘아졌기 때문이었다.

"버텨라! 조금만 버텨라! 그러면 곧 성문이 열릴 것이다!"

세렌은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힘겹게 버티고있는 아군들에게 소리치며

단 한순간의 기회를 노리며 날아오는 화살들을 방패로 막아내었다.

"화살은 조잡하지만, 엄청나게 많이도 준비했네."

펠린은 쉴새없이 쏘아대는 화살을 막아내며 그 숫자의 많음에  감탄했

다. 하지만, 차라리 그 화살 만들 재료로 대 기병용 창을 만드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좋아! 적군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대로 자기고있는 모

든 화살을 퍼부어라! 그리고 나면 바로 출격해서 적군을 직접 섬멸하는

거다!"

제크트는 자신이 세웠던 애초 작전에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그는 지

금 클라스라인군이 퇴각도 하지 않고, 성 근처에서 화살에 맞아가며 수

비를 하는 것이, 아마도 지휘계통의 불찰이나  혼란의 상황에 빠져있다

고 판단했다. 이왕 성문을 공격했다면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끝까지 밀

어붙이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재빨리 퇴각했어야 하는데, 적군

은 지금 그중 아무 것도 하고있지 않소,  단지 아군이 쏘아대는 화살의

먹이가 되고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신중한 제크트라 할지라도, 이쯤  되

면 눈앞에 보이는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유하고있던 화살이 거의 다 떨어져갔다.

아마도 클라스라인군의 타격도 상당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무방비상태인 아군의 등뒤로 수천 발의  화살들이 날아왔다. 그

리고 바로 얼마지 나지  않아서 또다시 수천 발의  화살들이 날아왔다.

성밖에서가 아니라, 성안에서 쏘아진 것이었다.

"뭐, 뭐냐!"

완전히 무방비상태인 카르트군의 등으로 화살들이  날아와 박혔고, 금

새 엄청난 숫자의 사상자들이 생기며 성벽 위의 카르트군을 금새  혼란

에 휩싸였다.

"성, 성안에 적군의 보병들이 침입했습니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제크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아드는 화살을 피해  몸을

숙였다. 성문을 굳게 닫쳐있다.  미리 복병이 숨어있던  것도 아니었다.

확인은 철저히 했으며, 성 시민들이 무기로 사용할  만한 것은 모두 압

수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자치군도 아니었다. 게다가 날아드는 화살에는

클라스라인의 붉은 잎사귀의  증표가 새겨져 있었다.  황금의 잎사귀는

왕족, 청색의 잎사귀는 귀족, 백색의 잎사귀는 패러딘나이트, 녹색의 잎

사귀는 화이트나이트, 그리고.....

"크, 크루세이더! 클라스라인의 정규 보병! 어떻게 들어왔지!"

키사르가 제안한 작전은 일종의  양동작전으로 적군의 대부분이  성벽

위에 포진해 있는 것과, 프로겐성이 항구도시라는  점을 이용한 전술이

었다.

"프로겐성 근처엔 작은 항구도시나 마을들이 많이 있으니까, 크루세이

더들을 이끌고 그곳에서 배를 빌려 야음을 틈타 프로겐성의 항구에  상

륙하는 거다. 그리고 나머지 화이트나이트들은 성  정면으로 육박해 들

어가서 적군의 시선을 집중시켜 크루세이더들의 침입에 신경을 쓰지 못

하게 하고."

성공하면 무방비의 적군의 후방을 기습가능하고, 손쉽게 성문도 열 수

있었으므로 세렌은 그 작전을 채택했다. 그리고  곧바로 카젯과 루디가

휘하의 전병을 이끌고 근처 항구마을로 우회해들어갔고, 3일 후 밤이

찾아오면 총 공격을 단행하겠다고 결정했다.

물론 이 전술은 적 후방을 치고 들어갈 양동부대와 주력부대간의 호흡

이 정확하게 맞아야한다는 단점과, 만약 기습을 적군이 눈치챈다면,  양

동부대의 전멸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도 있는 위험한 작전이었

다.

"하지만, 프로겐성은 너무 견고하기 때문에, 이 작전을  시도할 수밖에

없어. 성공하면 승리는 확실할 테니까."

세렌은 떠나는 카젯과 루벨에게 시간을 적절히 맞추라는 부탁을 했다.

물론 다운크람이 옆에서 카젯이 껴있어서 성공확률이  적을 것, 이라고

말했지만, 성안에서 벌일 직접적인 전투에선 카젯이  막강한 위력을 발

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다운크람도 카젯의  출전을 반대하지는 않

았다.

그리고 곧 근처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에 도착한 카젯과 루벨은 주위의

다른 도시에도 연락하여 대형 어선 100여 척을  준비, 8천 여명의 크루

세이더들을 한 척 당 80명씩  태워서는 결전의 시간에 맞춰 배를  띄웠

다. 배를 조종하는 항구의 어부들은 대부분 몇십  년씩 그 직업에 종사

한 베테랑들로 루벨이 부탁한 4일째의 밤에 딱 맞춰서 프로겐성의 항구

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을 점령하고있던 카르트군은 막  전투가 벌어져 예비병력까지  모두

성벽위로 투입된 후였다. 그리고 그들이 세렌이 이끄는 화이트나이트에

게 신나게 화살을 쏘아대고 있을 무렵, 루벨과 카젯이 이끄는 8천의 크

루세이더들은 조용히 항구에 상륙, 재빨리 성벽을  향해 기습해 들어갔

던 것이었다. 중간 중간에 한두 명씩 서있던 보초들도 병사들보다 먼저

달리기 시작한 루벨과 카젯의 빠른 검에 의해 소리한번 질러보지  못하

고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도시 안쪽에서부터 성벽 근처에 도착한 클라스라인군의 양동부

대는 장비하고 있던 활을 장전, 역시 활을  쏘아대는데 정신이 없는 카

르트군의 등뒤로 가볍게  화살을 난사했던 것이었다.  화살을 장비하고

있던 5천 여명의 크루세이더들이 한 명당 다섯 발의 화살을 쏘았을 때,

이미 카르트군의 피해는 1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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