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103화 (103/166)

제 7장. -토벌전쟁- (4)

현재 프로겐성에 주둔하며 철저히 수비에 힘을 기울이고있는  카르트

군의 사령관은 제크트라고 불리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카르트의 국왕, 하르엘의 친척으로 체격도 작고 얼굴도 평범하여,

언뜻 보면 그저 그런 다도해의 흔하고 흔한 어부로나 보일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완력도 약하고 검도 잘 다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이번 원정길에 부사령관의 지위로 참가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단지 왕의

친척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전사한 사령관 라크튼이 카르트부족의 통일에 온몸을 던져  공

을 세웠다면, 그는 친척이자 부족의 족장인 하르엘에게 어느 부족을, 어

떠한 시기에, 어떤 방법으로 공격할 것인지 조언을 해주었던 소위 말하

는 전략가였다. 영광스런 부족의 통일 뒤에는 그의 보이지 않는 뛰어난

전략이 숨어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가 없었다면, 아무리 부족  중에서

최강을 달렸던 카르트라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다도해의 패권을 장악하

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국왕이 된 하르엘도, 그 밖의  병사들도 제크트를 그다지 신임

하지 못했다. 일단 하라는 데로 해보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쟁의 승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힘이 없

어서 말만 하는 무력한 사람으로 보이고 있었다. 일단은 부사령관의 직

책으로 원정에 참가시키기는 했지만, 그를 보낸  국왕도 그다지 미덥지

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사령관이 직접 이끌고 갔던 4만의 군사들과 함께 클라스

라인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자, 그는 서열상  당연히 잔여병력의 사령

관을 맡게되었다. 병사들로써는 힘도 없는 나약한  청년이 사령관이 되

어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으나 사실은 오히려 그가 사령관이 됨으

로써 자신들이 생존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깨 닳지 못하고  있었

다.

제크트는 일단 전 사령관의 복수를 하러 출격하자는 부하들을  가까스

로 말려놓고는 전군을 성벽 위에 배치시켜 농성을 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는 실제로 클라스라인의 군대가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있었기 때문

에, 무리하게 평지에서 일전을 벌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현재 아군이

지리상으로 훨씬 유리한 성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인데, 구태여 승부를

가리러 출격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장병들은

그저 사령관이 겁쟁이다, 속이  좁다하며 놀려대었지만, 일단  사령관의

위치에 서게된 제크트로써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군을 살려야하는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온갖 굴욕을 참아내며  태연한 모습을 나타내었

다.

가까스로 돌아온 퇴각 병의 말에 따르면, 클라스라인군의 기마병이 사

방에서 아군을 관통하더니, 다시 배후에서 포위하여 공격해 들어왔다고

했다. 덕분에 카르트군은 우왕좌왕, 사령관마저 적군  패러딘나이트에게

목숨을 잃자 그야말로 오합지졸로 변신하여 전멸을 면치 못했다는 것이

었다.

'중앙돌파 후 배후전개.......클라스라인군의  지휘관은 자신들의  부대를

최대한 이용할 줄 아는 전술을 사용한다.......'

제크트는 한숨을 내쉬며 창도 없이 기마병과 전투를 벌였던  카르트군

에게 동정을 금치 못했다. 다도해에서의 전투는  오로지 보병끼리의 전

투였기 때문에 기마병과 붙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것도 뛰어

난 사령관의 지휘를 받고있는 일명 '화이트나이트'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페하에게 그렇게 창을 제조할 것을 요청했건만......'

클라스라인의 침공에 박차를 가하고있을 무렵, 제크트는 클라스라인의

기병에 대비, 장창을 제조하여 병사들에게 지급할  것을 요청했으나 국

왕은 자원의 부족을 들며  쓸데없는 짓이라고 딱 잘라  거절해 버렸다.

만도에 사용되는 철을 녹여서 창의  앞부분에 쓰이는 창날을 만든다면

한 자루의 만도에서 최소 네 자루 이상의 창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물

론 창대를 만들 단단한  나무가 많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이렇게 라도

해서 창을 만들었다면, 조금 더 효과적으로 적의  기병들을 맞설 수 있

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후회를 해봐야 죽어버린  4만의 아군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해야할 일은 어떻게든 적의 공격에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여 점령한 이 프로겐성을 지키는 것이었다.

'앞으로 한달 정도만 더 기다리면 본국에서 나머지 2만의 지원군이 보

급물자를 싫고 이곳에 도착한다. 그때까지만 최소한의 피해로 버틴다면,

나중에 지원군과 합세하여 여러 가지 공격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제크트는 일단 지원군 2만을 프로겐성의 항구가 아닌, 다른 해안 가에

상륙시켜 몰래 적의 후방으로  돌아가게 한 다음, 일시에  성문을 열고

남아있는 성안의 전군을 출격시켜 앞뒤에서 공격을 퍼부을 전략을 구상

하고 있었다. 물론 현재 3만의 군사로도  충분히 가능한 작전이기는 했

지만, 워낙 적군의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고싶

은 마음은 없었다. 3만보다는 5만이 승리할 확률이 확실히 높은 것이었

다.

문제는 그대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과연  클라스라인군이 어떠한 방법

으로 프로겐성을 공략할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적군의 절반이

상을 기병이었기 때문에, 성을 공격하기에는 부적합했다. 대략적인 적의

숫자는 2만 정도. 그중  절반 이상이 기병이었으므로 나머지  1만도 안

되는 보병을 가지고는 3만의 군사가 버티고있는 프로겐성을 공략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냥 눈 딱 감고 정면으로 공격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제크트는 적군 사령관이 이번에는 약간의 열혈을 발휘하여 그냥  성을

공격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의 희망사

항이었고, 사령관의 입장으로써 그는 언제나 적군이 펼칠 수 있는 최고

의 작전을 염두에 두고 대처해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더욱 골치가 아팠

다.

그리고 몇 일 후,  드디어 클라스라인군이 육안으로  보이는 지점까지

육박해 들어왔다. 예상보다는 많이 늦은 속도여서  제크트는 조금 다행

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본국에서 제조한 활과 화살을 전군에게 지급했다. 상당히 조잡하

게 만든 것이기는 했지만, 일단 활로써의 위력은 충분히 발휘할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높은 곳에서의 공격이라면, 아무리 조잡한 활이라  해도

큰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클라스라인군은 한참동안 카르트군의 화살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진

을 치고는 버티기 시작했다. 가끔씩은 기병들이  돌격해 들어오고는 했

지만, 아군의 화살세례에 곧 도망치고는 했다.

'화살이 다 닳게되는 것을 노리는 것인가....'

제크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달려드는  화이트나이트들

은 특유의 넓은 방패로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화살은  충분하다. 이럴  것을 대비하여  많이 만들어  왔으니

까.....'

창을 만드는 계획은 국왕의 거절에 의해서 무산되고 말았지만, 화살을

만드는 것은 허락을 얻어낸 제크트는, 대량의 화살을 만들어서 함께 가

지고 왔던 것이었다. 확실히, 화살촉은  그다지 많은 량의 철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 없는 소모전이 시작 된지  벌써 3일이 지나갔다. 제

크트는 이대로만 나간다면 곧 지원군과 합세하여 적군을 공격할 수  있

으리라는 기대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클라스라인군이 뭔가 꿍꿍이가 있

을 것이라는 의혹감도 점점 커져가도 있었다. 그리고 의심이 가는 부분

도 있었다. 바로 보병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크루세이더라고  불리

는 클라스라인의 보병들, 분명히 어느 정도는 남아있을 것이  분명한데,

시아에 보이지 않는 먼 후방에 대기시켜놓았는지 그 모습이 보이지  않

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군의 화살을 소모시키기  위한 작전에는 보병

이 효과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후방으로 제쳐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만, 지간이 지나고 보니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훗! 우리의 활이 무서워서 접근도 못하는구나!"

"사령관 님, 저렇게 겁쟁이 들인데 그냥 나가서 쓸어버리죠."

카르트군은 그런 클라스라인군의  모습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해 했다.

쉽게 자만심에 빠지는 것은 다도해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크트는 예외여서,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

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본국에서 지원군이 도착하니, 그때 한번에 나가

서 공격하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참고 기다려라."

제크트는 혈기에 넘치는 병사들을 다독거리며 그 힘의 분출을  억제했

다. 이럴 때 아군이 성밖으로 나가는  것이야말로 클라스라인군이 노리

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자... 이제 오늘밤에 시작된다. 카젯과 루벨이 잘 해줘야 할텐데."

프로겐성의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지 4일째 되는 날,  세렌은 드디어

펠린의 부대와 함께 화이트 나이트 전군을 대기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흉내만 내면 되는 거다.  무리하게 공성추를 사용해서 성문

을 공격하지 않아도 되지."

키사르는 이번 작전의 크라이막스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카르트군을 성벽  위에 묶어놓아야 한다고 말했

다. 물론 세렌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근처 도시에서 보급 받아온 식량도 3일 후면 바닥이 단다. 이번이 마

지막기회야 세렌."

다운크람도 출전할 준비를 하며 세렌에게 말했다. 물론 그가 지휘하는

보급부대를 참전시키는  것은 아니었으나,  개인적으로 패러딘나이트가

하나라도 더 많이 필요했으므로 세렌의  부대에 함께 참전하는 것이었

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프로겐성에 점점 어둠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태양

이 지평선 너머로 그  모습을 감추려 하자, 세렌은  대기중인 전군에게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명령을 내렸다.

"명심해라. 처음은 적의 화살공격을 막기만 하도록, 그럼.... 전군, 출격

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