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토벌전쟁- (3)
승리의 환호성은 세렌의 지휘하에 있는 클라스라인군 전체로 퍼져나갔
다. 그들은 대부분 20대 초 중반의 나이를 가진 신규병력이었는데, 다행
이도 첫 출전의 전투를 완승으로 이끌었던 것이었다. 만약 어설픈 지휘
관을 만났다면, 첫 전투가 마지막 전투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이 바로 신병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클라스라인군의 승리는 비단 1선 지휘관의 유능함뿐만 아니라,
적군 총 사령관의 대단한 무능력도 한몫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카르트
군의 총 사령관, 라크튼은 오직 힘만 믿고 돌격하는 아둔한 장수였다.
물론 일개 병사의 신분이었다면, 아군의 세력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을
지도 몰랐으나, 그는 4만의 카르트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이었으므로, 넘
치는 혈기와 자만심은 일단 제쳐두고, 적군의 부대편성이나, 용병의 변
화를 자세히 관찰하여, 때에 따라 주도면밀한 작전을 명령하여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었다. 게다가 지휘계통은 오직 그
혼자가 전부였기 때문에, 자신이 사망한다면, 아군의 혼란이심각하게
가중될 것을 예상, 군대의 후 열에서 작전명령에 전력을 기울이며 몸을
사렸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사령관으로써의 그 어떤 정도도 걷지 않았고, 결국 아군
의 대패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해준 세렌군의 은인이라고 해도 좋을
평가를 받게되었다. 결국 그의 죽음까지도 클라스라인군의 사기를 상승
시켜주는 효과를 발휘했을 뿐이니까.
그리고 카르트군의 문제는 더 있었다. 바로 장비에 관련된 것인데, 그
들은 오로지 한 자루의 만도만을 장비하고 전투에 임했었다. 물론 가벼
운 방어 구에 방패도 없어 민첩성 면에서는 뛰어났지만, 그것도 같은
보병끼리의 전투에서나 효과를 발휘할 뿐, 대륙의 기병 부대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갖춘 화이트나이트를 상대로, 고작 만도 하나의 장비
는 무력하기만 했다. 적어도 보병이 기병을 상대할 때는 마상의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장창 계열의 무기를 장비 해야 싸움이 되는
것이지, 검 계열의 무기를 가지고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번 마르젠 평야의 전투에서 클라스라인군의 기병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
는 사실로 확실하게 입증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륙의 왕국들이
보유한 정규 보병들은 대부분 기본 검과 방패장비 외에도 창 한 자루씩
을 예비하여 갖춰두고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카르트군은 지휘관에서부터 시작하여 기본 장비까지 골
고루 패배의 요인을 상비하고 있었으며, 클라스라인군은 1선 지휘관들
이 전투개시 열흘 전부터 머리를 싸매고 효과적인 전술을 준비했으니,
승리가 클라스라인 쪽으로 돌아간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
이었다. 아무리 병력의 숫자 면에서 차이가 났다고는 하지만, 지휘계통
의 효율적인 전술지휘, 장비의 우세, 기본병력의 질, 높은 사기와 기세
가 적군을 훨씬 상회한다면, 어느 정도의 병력차이는 가볍게 메울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카르트군이 7만의 전군을 다 몰고 공격해 왔다면, 아무
리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앞선다 하더라도, 이렇게 쉽게 승리를 따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패배할 상당히 높았겠지."
후방에서 보급부대를 지휘하던 다운크람은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객관
적으로 이번 전투를 지켜보면서 만일 기병에 의한 중앙돌파가 불가능할
정도로 적군의 숫자가 많았다면, 아마도 승리의 여신은 카르트군의 손
을 들어주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것의 그 혼자만의 날카로
운 의견이었고, 대부분의 클라스라인군은 너무나도 압도적인 이번 승리
를 보면서, 아마 4만이 아니라 7만의 적군이 한번에 쳐들어 왔다고 하
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젖어있었다.
물론 이것은 자만과 방심이라는 전쟁에서 가장 조심해야할 극약과도
같은 것이었으나 어찌 보면, 첫 출전한 이번 전투에서 지휘관의 작전에
만 잘 따른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휘관의 명령을 충실히 실행하며 믿고 따라주는
병사들이야말로 지휘관들의 작전이 최고의 빛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
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승리의 밑거름이었다.
클라스라인의 병사들에게 패러딘나이트라는 이름은 거의 절대적인 존
재였다. 그리고 그것은 병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마
찬가지였는데, 그 이유는 일단 일반인으로써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선발
수련을 통과한 사람들이라는 경애심 때문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인간
이라면 극히 견디기 어려운 수련을 5년 동안이나(정확히는 4년) 하루도
빠짐없이 소화해내는 그들의 초인적인 체력과 끈기에 믿음을 줄 수 있
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라프나 신전의 신전기사라는 점도 효과
를 발휘했는데, 그 이유는 신관들은 언제나 평민들을 도와주었기 때문
이었다.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이라면 신관들은 신분여하에 관계없이
치료를 해주었기 때문에, 시민들 사이에서는 그 평판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귀족들의 횡포에 대한 반발 감이었다. 클
라스라인의 귀족들의 부패와 타락은 그 악취가 대륙을 진동시킬 정도여
서, 민중들의 불만이 상당히 쌓여있었다. 그러나 일단, 패러딘나이트들
은 결코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시민들을 괴롭히지 않았고, 언
제나 묵묵히 나라를 지키며 싸우는 모습에 시민들은 희망을 느꼈던 것
이었다.
"패러딘 나이트 세렌이 이끄는 군대가 수도로 진격해 들어오는 카르트
군의 선발대를 격파시켰다!"
세렌군의 승리소식은 곧 클라스라인 전역으로 퍼져갔고, 특히,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던 클라스라인의 수도, 세인트룸의 사람들은 더욱 환
호하며 이번에 새로 선발된 젊은 패러딘나이트를 찬양했다. 식당과 주
점에서는 술잔들이 높이 솟았고, 거리의 사람들의 표정에 활기가 넘쳐
있었다.
"내친김에, 프로겐성까지 단숨에 되찾았으면 하고있겠지. 하지만, 그것
은 불가능한 일이야."
세렌은 한숨을 쉬며 환호하고있을 수도의 시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
다. 현재 그가 이끄는 군대는 마르젠 평야를 지나, 얼마 안 있으면 항구
도시인 프로겐성에 도착할 거리에 다다라 있었다.
"일단 성벽을 공략할 사다리와 성문을 공략할 공성병기들은 준비되어
있지만, 그것도 아군이 적군보다 많아야 시도해 볼만하지, 지금 같아서
는 승산이 없다."
프로겐성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에 대한 작전회의에서, 일단 키사르
가 정공법으로 성을 공격하는 것이 얼마나 아군에게 불리한 일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준비된 식량이 모자라니까. 이왕이면
먼저 근처 도시에서 식량을 보급 받았으면 하는데."
다운크람이 아슬아슬한 식량사정을 들며 세렌의 결단을 촉구했다. 아
무리 첫 전투에서 승리를 했고, 아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
고 하더라도, 일단 며칠 굶으면 말짱 헛수고인 것이었다.
"성에 남은 3만의 카르트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은 저번에 그 원시인처
럼 우매하지는 않은 것 같다."
"맞아. 무리한 결전을 감행하지 않고 성안에 틀어박혀 철저한 농성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키사르의 평가에 세렌이 동의를 하고 나섰다. 정찰병의 보고와 정보에
의하면, 적군은 항구를 제외한 3면의 성벽에 군사를 빽빽하게 배치해
놓고 농성을 할 준비를 하고있다는 것이었다. 괜히 성문을 부수려고 돌
진했다간, 성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화살의 빗발에 엄청난 병력의 피해
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성문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뚫리는
것도 아니라서, 안에서 미리 각종 준비를 해놓았다면, 부시는데 시간이
더욱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어찌하면 좋을까........'
세렌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차라리 마르젠
평야에서 7만의 적군과 싸우는 것이 더 쉬운 일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만큼, 굳게 수비하고있는 견고한 성을 점령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 성을 지키는 적군의 숫자가 아군의 숫자를
능가할 때는 더욱 그러했다.
"이럴 때는 화이트나이트들이 그다지 쓸모가 없네.........."
펠린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는 광활한 평야에서 부대를 이끌
고 적진을 헤치고 돌격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지만, 말에서 내려 성벽을
기어올라가는 것은 애초에 상상조차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때, 침묵을 깨며 키사르가 입을 열었다. 언제나 와 같은 높낮이 없으
며 감정도 희박한 딱딱한 목소리로. 그러나 그것은 나머지 다섯 명에게
는 마른하늘에 단비와 같은 목소리였다.
"방법이 한가지 있다. 실현 가능성은 적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