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토벌전쟁- (2)
"기세는 대단하군. 그럼, 카젯과 루벨의 실력을 지켜볼까."
세렌은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카르트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렌이 이끄는 4천의 화이트나이트는 후 열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먼저 카르트군 4만을 막아선 것은 루벨과 카젯이 이끄는 1만의 크루세
이더였다.
"쳇, 일단은 수비만 하며 시간을 끌라 이거지?"
카젯은 투덜거리며 아군에게 절대 수비만 하며 결코 함부로 공격해 들
어가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물론 키사르의 작전이었는데, 이것은 루
벨에게도 똑같이 적용된 명령이었다.
크루세이더들은 기본장비인 롱소드와 클라스라인의 문양 중에 하나인
푸른 입사귀가 새겨져있는 큼지막한 흰색의 방패를 치켜세우며 지휘관
의 명령에 따라, 철저한 수비의 자세로 들어갔다. 일단 크루세이더들에
겐 검과 방패 이외에 긴 창과 활 세트가 하나씩 상비되어있었는데, 그
것들은 가장 후방에 있는 다운크람의 수송부대에 맡겨둔 상태였다. 효
과적으로 수비를 펼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드디어 카르트군의 만도가 크루세이더의 방패와 부딪치기 시작
했다.
"이 겁 많은 녀석들! 무서우니까 막기만 하겠다는 거냐! 하하하....."
클라스라인군이 수비에만 치중하니까, 카르트군은 더욱 의기양양해서
는 마치 역전의 전사들처럼 으름장을 놓으며 마구 공격해 들어가기 시
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카르트군이 실전으로 다져진 몸이고, 세렌이 이
끄는 클라스라인군이 대부분 신병이라고는 하지만, 클라스라인군은 체
계적으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쉽사리 뚫리지 않고, 견고한 수비를 자
랑했다. 거의 한 사람 당 두 명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훌륭하게 잘 버티
고 있었다. 오직 수비에만 정신을 쏟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데군데에 기합소리와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사망자의 숫자는 전투의 규모에 비해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미리 크게 우회하며 적군의 측면으로 진격해 들어가던 펠린
이 이끄는 8천의 화이트 나이트가 카르트군의 오른쪽 옆구리를 강습한
것은. 정면의 적에게만 정신이 팔려있던 카르트군으로써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셈이었다.
"오, 오른쪽에 적군 기습!"
"뭐야! 어느새!"
라크튼은 깜짝 놀라며 아군을 측면에서부터 마구 돌파하고있는 백색
갑옷의 기마병들의 위용을 바라보았다. 펠린은 막강한 기동력을 발휘,
휘하의 전군을 이끌며 적군의 측면에서부터의 중앙돌파를 노리고 있었
다.
"적군을 돌파하여 배후에서 재 역습하라! 돌파하는 거다!"
펠린은 자신의 세인랜스를 종횡무진 찔러대며 엄청난 기세로 적군을
뚫고 가고있었다. 바로 중앙돌파, 배후전개의 전술이었다.
측면에서부터 돌파 당한 카르트군을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졌다. 역
대로 이런 식의 전투는 벌여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하는 것도 무리
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수비만 하고있던 루벨과 카젯의 군대가 반으
로 갈라지더니 뒤에서 대기 중이었던 세렌의 지휘하의 4천 화이트나이
트들이 그 사이로 적군을 가르며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돌진해라! 이미 나이트 펠린의 부대가 측면에서 돌파했기 때
문에 수월할 것이다!"
이번에는 세렌이 정면에서 적군을 반으로 가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갑자기 등장한 화이트나이트의 빠른 기동력과 돌파력에 카르트군은 맥
없이 뚫리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펠린의 부대가 측면에서의 중앙
돌파를 시전 한 후였기 때문에 더욱 편하게 돌진할 수 있었다.
"다, 당황하지 마라! 주위에 적이 보이면 공격하면 된다!"
그러나 정작 가장 많이 당황하고있는 것은 라크튼 자신이었다. 정면과
측면에서부터 중앙돌파를 당하고 나서, 드디어 수비에서 벗어나 적극적
인 공세로 돌변한 크루세이더들까지 합세하여, 카르트군을 3면에서의
협공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무작정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 장기였던 카르트군으로써도 그 초점을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갈피
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사방에서 공격을 받
으니 아군의 효율성은 더욱 떨어졌고, 초반의 군사적 우세는 금새 돌변
해있었다.
"제, 제길!"
라크튼은 분노의 고함을 지르며 정면의 크루세이더들을 공격하기 시작
했다. 그는 일단 사령관이라서 말에 타고는 있었지만, 기마술에는 익숙
하지 않았는데, 커다란 만도를 휘두르는 그 완력이 대단하여 크루세이
더들의 방패가 짓눌릴 정도였다.
"유일하게 말을 타고있는 것을 보니 네가 대장인가 보구나!"
그때 신나게 말을 몰며 적군을 몰살하고 있던 카젯은 역시 아군을 몰
살하고있던 라크튼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그쪽으로 말을 몰고
달려갔다.
화이트나이트의 갑옷이 흰색이라면, 패러딘나이트의 갑옷은 빛의 색이
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더욱 흰색이었다. 게다가 그 장갑의
두께와 크기에서 차이가 났기 때문에 한눈에 보아도 화이트나이트의 갑
옷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패러딘나이트의 갑옷이었다. 게다가 그
투구의 모양도 전혀 달랐다.
라크튼도 그 갑옷을 잘 알고있었다. 프로겐성을 함락할 때 적의 지휘
관이 입고있던 갑옷이었다. 수많은 아군의 목숨을 앗아가며 끝까지 버
티었던 강력한 기사. 바로 그 유명한 패러딘나이트의 갑옷이었던 것이
었다.
"제길! 네 녀석의 목숨으로 이번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마!"
흥분한 라크튼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카젯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말머리
를 돌려 그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무기가 불꽃을 튀기며
교차했고, 강철의 파열음이 강렬하게 전장을 울려 퍼졌다.
"힘이 좋은데, 하지만 루벨에 비교해선 아직 멀었어."
카젯은 여유 있게 라크튼의 공격을 튕겨 내며 빠른 속력의 검술로 밀
어붙이기 시작했다.
"제길... 강하다!"
프로겐성의 성주는 100여명의 아군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손
으로 목숨을 끊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카젯은 지금 펄펄 날 정도로 체
력이 남아돌았으며, 실력도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했다. 비
록 말 위에서는 펠린의 창술에 뒤지는 그였으나, 힘만 세고 기마술도
형편없는 적 장수하나 제압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기
마술도 떨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그들 중에서는 펠린의 다음가는 실력
이었다.
"그럼 이쯤에서 작별이군. 너만 죽이면 이 전투도 금새 끝이 나겠지.
역시 키사르는 머리가 참 좋단 말이야?"
"비겁한 녀석들!"
과연 무엇이 비겁한지는 모르는 일이었으나, 일단 라크튼은 최후의 순
간에 그렇게 외쳐대었고, 곧 카젯의 휴페리온에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적장의 목을 베었다! 이제 승리는 완전한 우리의 것이다!"
카젯은 의기양양하게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머리회전이 그다지
빠르지가 않아서 언제나 다운크람에게 놀림받는 카젯이었으나, 이럴 때
한마디 외치는 것이 아군의 사기를 몇 배로 증가시켜주며, 적군의 사기
를 땅에 떨어뜨린다는 사실쯤은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절대적 이여서, 사령관을 잃은 카르트군은 더욱 혼
란에 빠지었고, 대대적으로 유일한 서쪽의 빈틈을 노려 전장에서 탈주
하기 시작했다.
"추격하라! 한 놈도 살려서 보내면 안 된다!"
세렌은 전군에 추격명령을 전달하며 그 자신도 직접 후퇴하는적군의
후 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만에 괴멸에 다다른 카르트군이
었으나, 아직도 1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살아있었고, 그들이 다시 프로겐
성으로 들어간다면 비록 약간이더라도 상황이 불리하게 변할 요지가 있
었다.
"죽어라!"
"크악!"
도망가는 적군을 클라스라인의 군대는 가차없이 공격해 들어갔고, 속
도 면에서 화이트나이트를 뿌리칠 수 없었던 카르트군은 하나 둘씩 쓰
러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단 다섯 시간 동안의 전투로 인해, 4만을 넘던 카르트군은 극소
수의 퇴각 병들을 제외하고 지휘관인 라크튼을 포함, 완전 괴멸되었으
며 그 시체는 전투가 벌어졌던 마르젠 평야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그
리고 세렌이 이끄는 클라스라인의 토벌군의 피해는 사망자 3천 여명,
그리고 부상자 천 여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사상자의 대부분은 초반에
수비에 치중했던 크루세이더들이었으며 화이트나이트의 피해는 극히 소
수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