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영광의 기사- (31)
"하하. 이제 됐소이다. 잘됐어."
회의가 마친 후, 회의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귀족들은 몰튼후작의 저택
에 모여 자축의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이제 위험인물이었던 나이트 세렌은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오.
설사, 겨우 목숨을 보존했다 하더라도 전쟁에서 패배한 이상, 그의 인기
는 바다에 썰물 빠져나가듯 사라져버릴 것이 분명하니까..... 물론 전장
에서 죽어주면 더할 나위가 없고."
몰튼 후작은 너구리같은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490년 산 레드와인이
담겨있는 자신의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나라의
번영과 안정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부와 권력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세렌의 소식을 듣고는 한동안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이 위
험인물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고 고민에 잠겨있었던 몰튼 후작에게 카
르트군의 국내 침입은 오히려 반가운 일인 것이었다. 확실하게, 자신들
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만약 세렌이 승리를 하면........."
그중 한 귀족이 슬그머니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가능성을 들고 말하
자, 몰튼 후작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 애송이가 어떻게 자신의 두 배도 넘는 적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이냐. 게다가 그의 부대로 편입된 군사들은 대부분 이번에 새로 차출
된 신규병력. 승패는 보나마나 뻔한 것이다."
"그렇군요. 제 시아가 좁았습니다. 역시 후작 님이십니다."
아주 속보이는 아첨을 떨며 귀족들은 얼른 비어있는 후작의 술잔에 와
인을 따라 부었다. 엄청난 권력욕에 노예가 되어있는 이 후작의 바지춤
이라도 붙잡아, 같이 부귀를 누리려는 이들 타 귀족들의 행각은 실로
보기 흉한 기생충 같은 것이었다.
"클라스라인은 우리 귀족들의 천국이어야만 해. 영원토록 말이야. 그렇
기 때문에 중간 중간 나타나는 거슬리는 잡초들은 빨리 뽑아주는 게 상
책이지."
그러나 그 잡초들이 진정 클라스라인을 받쳐갈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
은, 이미 그들의 좁은 생각으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잡초가 전부 사라져 버린다면,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이 그토록 자신
들의 천국이길 바랬던 클라스라인이 전부 무너져버리라는 간단한 사실
조차,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멀고 먼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세렌은 자신이 카르트 토벌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마틴
스가문의 저택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때 그는 동료 다섯 명을 모두 불
러들여서 점심 식사를 하던 중이었는데, 전문이 도착한 것이었다.
처음엔 이제 막 패러딘나이트가 된 자신이 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
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그보다도 더욱 놀란 것은 바로 군대의 규모였다.
"2만 6천...... 규모 면에서는 수도방위군에 필적할 정도이다. 하지만....."
키사르는 일단 토벌군의 숫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말했지만,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바로 적군의 규모였다.
"정보에 의하면 카르트군의 총 숫자는 7만 여명이다."
"7만! 그렇다면 아군의 세배에 가까운 숫자잖아!"
펠린이 놀라며 소리쳤다. 아무리 아군이 명망 높은 화이트나이트에 크
루세이더로 구성되어있다고는 하지만, 일단 숫자 면에서 너무도 큰 차
이가 나는 것이었다.
"어떤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군대가 준비 되는대로 빨리
출동을 해야한다는데, 이쪽으로 오고 있나봐."
세렌이 재미있다는 듯 살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나한테 다섯 명의 야전지휘관 임명권이 있는데, 함께 가고싶은
사람 없어?"
"이봐 세렌, 그런 것은 이번에 빨질 사람 없어? 라고 물어보는 것이
빠를걸."
기름진 토끼고기를 통째로 우적거리던 루벨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다섯 명 다 데려갈 건가?"
"왜, 카젯. 빠지고 싶어?"
세렌이 묻자 카젯은 고개를 휙휙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가야지. 내가 없으면 어쩌려고."
"바보의 지휘를 따른다면..... 군 사기 면에서 커다란 위기가 올 것 같
은데,"
"다운크람......."
"어쨌든 자세한 이야기는 식사가 마치고 응접실에 가서 하자. 위쪽에
서는 마치 죽어서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일단 주어진 전쟁은
승리로 이끌어야 하지 않겠어, 우린 명색이 패러딘 나이트인데,"
세렌이 대화의 내용을 건설적인 면으로 이끌며 세부적인 내용으로 주
제를 옮기었다.
"확실히, 탁 트인 평야에서 7만의 대군과 격돌한다면, 우리로써는 승산
이 희박하다."
식사를 마치고, 응접실에 둘러앉은 일행은 다운크람의 말을 시작으로
대화를 열어갔다. 사실, 이곳에 있는 여섯 명이 이번 토벌군에 전부 지
휘관으로 활약할 것이 확정적이기 때문에 이 대화는 거의 사전 작전회
의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전략적인 면에서는 우리가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전술이야. 정면으로 부딪치면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방
법을 모색해봐야 하지 않겠어?"
"세렌의 말이 맞아. 우리에겐 기사단이 있으니까 여러 가지 전술을 펼
칠 수 있어."
역시 말의 매니아다운 펠린이 기병의 우수성을 들며 의견을 내었다.
물론 전술에 대해서는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 때 배운 기초적인 것이 전
부였으나, 그 기초적인 것 중에는 빠른 병력의 이동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군은 섬에서 올라왔으니까, 아마도 기병은 없을 것이다. 이점은 확
실히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지. 그렇지만, 단지 그것만 가지고는 싸움이
안돼. 보다 세부적인 전술이 필요하다."
"전술이 아니라....마술을 사용해도 힘들겠군."
다운크람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확실히, 그들로써는 최대
한의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지만, 일단 이런 상대적으로 소수의 병력으
로 다수의 적군을 공격하라고 명령한 정치계통의 설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성의력 669년 1월 14일. 나이트 세렌을 사령관으로 한 카르트 토벌군
이 클라스라인의 수도 세인트룸을 빠져나갔다. 그 숫자는 보급부대를
합쳐서 약 2만 6천. 적 카르트군의 총 숫자는 대략 7만 정도였다.
-6장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