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영광의 기사- (28)
"에리나! 정말 에리나야?"
그녀는 그 동안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져있었다. 일단 예전의 어린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정령사의 복장이 잘 어울리는 멋진
여성으로 성장해 있었다.
"어머! 킬츠오빠. 정말 오랜만이야."
그러나 그녀 특유의 밝은 성격과 남을 즐겁게 만드는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둘은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며 어쩔 땐 침울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마구 웃기도 하였다. 둘 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꾸밈없이 대부
분 말해버리는 성격이라 상당히 죽이 잘 맞았다.
"어! 나만 빼놓고 둘이 만담을 나누고 있다니! 섭섭한 걸?"
그때 루디도 그녀의 방을 찾아와 밝게 웃으며 에리나를 반기었다. 서
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둘도 없는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또 좋은 소식이라면, 루디가 킬츠의 용병대에 참모로 배정된다
는 것이었다. 서로의 친분을 고려한 나이트길드 측의 적절한 인사배치
였는데, 또한 에리나도 용병대의 야전 특수 보조담당관을 맡게되어 킬
츠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그리고 킬츠는 다음날부터 그 동안에 모집된 용병들의 정리와 개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파울드 평원 전쟁의 승리로
인해 대륙의 여러 용병들이 일거리를 찾아 파울드로 몰려든 것이었는
데, 그 숫자는 구 용병들과 합쳐서 대략 6천을 상회했다.
일단 그쪽 분야에 지식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뉴린젤의 의견을 따르며
킬츠는 전군을 네 개로 조직하여 자신과 뉴린젤, 그리고 크랭크와 하인
스에게 각각 통솔하게 하였다. 뉴린젤의 말에 따르면 병력을 분산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일단 병력을 조직적으로 개편하면 실전에 작전을 펼
치기에 대단히 유용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킬츠의 부관인 나이트
라르스와 루디도 동의를 한 것 이여서 킬츠 역시 두말없이 조직개편에
들어갔다.
"햐, 천인장이라 더니 정말로 천명 이상의 부하를 거느리게 되었군. 조
금 부담되는데?"
낮에 자신의 수하로 배속된 1천 300의 용병들을 바라보았던 크랭크가
하인스와 함께 주점에서 술을 마시며 감개무량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것도 다 자네의 역량이 모자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 난 아무
렇지도 않던걸."
"그건 자네가 책임감이 없어서 그래. 자네는 수많은 여자들을 건들어
놓고는 나중엔 나 몰라라 하지 않나. 끝까지 책임을 지어야지."
"글세, 난 그들에게 아름다운 꿈과 추억을 제공해 주었다고 생각하는
데."
"과연 파울드 최고의 바람둥이다운 말이로군."
"과찬이야. 난 아직도 꿈을 얻어야할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구."
"............ 그 말은 아직도 파울드 부녀자들의 수난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군."
"아직도 파울드의 부녀자들에게는 꿈과 추억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
이지."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듣기 괴롭다네."
크랭크는 동료의 괴변이 머리를 어지럽히는지 고개를 휘휘 저으며 하
인스의 잔에 맥주를 다시 가득 부었다.
"아, 오늘은 과음을 하면 안돼. 있다가 밤에 약속이 있거든."
".............. 또 여자인가."
"물론이지. 난 아직 수많은 여성들에게 꿈과 만들어줄 능력을 가지도
있다네."
"당하는 쪽은 나중에 악몽이었다고 생각할 거야."
"세렌 마틴스."
"네."
"귀 공은 제 91회 패러딘나이트 선발전을 통과한 영광스런 인재로 그
노력과, 용기와 지성을 인정하여 새로운 패러딘나이트에 임명하노라."
세렌은 법왕청의 어전 앞에서, 아름다운 패러딘나이트의 갑옷으로 완
전 무장한 차림을 하고는 법왕의 앞에서 정중하게 무릎을 꿇으며 패러
딘나이트의 검인, 휴페리온을 수여 받았다. 물론 지극히 형식적이고 지
루한 일이었지만, 일단 이 의식을 치러야만 공식적인 패러딘나이트로써
의 직위가 주어지는 것이었다.
어전의 양옆으로는 수많은 고위 관료들이 이 수여식을 관청하고 있었
다. 그리고 그 중에는 법왕의 두 딸인 미네아와 미레나 공주도 포함되
어 있었다. 세렌이 직위를 수여 받는 장면을 바라보는 미네아공주의 표
정이 무척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는 황금 잎사귀가 수놓아진 무
척 아름다운 푸른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전보다 무척
성숙하고 자연스러워, 그녀 본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주고 있었다.
"키사르 템프라인."
"네."
"귀 공은 제 91회 패러딘나이트 선발전을 통과한 영광스런 인재로 그
노력과 용기와 지성을 인정하여 새로운 패러딘나이트에 임명하노라."
키사르를 마지막으로 법왕 파우킨저 3세의 나이트 수여식은 그 막을
내렸고 곧 이어 법왕청 1층 홀에서 새로운 패러딘 나이트들을 축하하는
기념 파티가 열리었다. 참석자들은 클라스라인의 이름 있는 귀족가문
사람들이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참석을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
만 법왕청의 1층 홀은 그 크기가 대륙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그 많은 사람들이 와있어도 혼잡하거나 어지럽지 않았다.
최고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과 벽. 매직길드에 특별 주문한 수
많은 휘황찬란한 상들리에, 수많은 명공들의 혼이 실려있는 멋진 조각
들, 만들어진지 몇 백년이 지난 최고급의 와인들, 이 모든 것들이 새로
운 패러딘 나이트를 위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귀 공이 이번에 최고의 성적으로 패러딘나이트에 선발됐다고 하는 나
이트 세렌이시군 요, 이쪽은 우리 딸인 로렌젤라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
"역시 소문대로 대단한 미남이시군 요. 이번에 저희 딸이 17세를 맞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 저분이 나이트 세렌 님?"
"정말로 멋지다~~ 아...."
이 공포스런 상황은 비단 세렌뿐만 아니라 나머지 다섯 명에게도 마찬
가지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물론 그 규모 면에서는 세렌보다 떨어졌지
만, 순진한 청년들에게 충분히 곤혹스러움을 안겨주는 곤란한 상황이었
다. 개중 세렌은 그래도 예법을 갖추며 자신의 엄청난 인내를 발휘했지
만, 다운크람이나 키사르는 애초에 그런 인간들의 말을 씹어버렸고, 펠
린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했으며 루벨과 카젯은 의외로 웃음을 보이
며 그런 음식에 날아드는 날 벌레 같은 무리들을 상대로 적당하게 때우
고 있었다.
"쳇,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군. 한마디 내뱉어주고 싶지만..............."
새로운 패러딘나이트들과 혈연적 친분을 맺어놓아 가문의 영광을 꾀해
보겠다고 날아드는 꼴사나운 귀족들에게, 있는 대로 독설을 내뱉어 주
고싶은 충동을 느끼는 다운크람이었으나, 일단 자리가 자리인 만큼, 절
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기, 잠시 비켜주실 수 없으신가 요? 나이트 세렌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그때, 누군가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고,세렌의 주위를 가득 둘러싸
서는 자신의 가문과 자녀의 PR에 열중하고 있던 귀족들이, 멈칫 하며
길을 비켜주었다. 바로 클라스라인의 둘째 공주, 미네아였다.
"잠시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지요, 나이트 세렌."
"영광입니다. 공주 님. 기꺼이 그렇게 하지요."
"그럼 저쪽 발코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