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영광의 기사- (27)
제 91회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의 최종 7차 관문은 역대 최초로 수련생
이 마지막 출구를 직접 만들어 통과한 의례 없는 사건을 일으키며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총 참가 인원수 14명. 최종 통과 인원수 8명. 여기까지만 보면 참가자
의 50% 이상이 합격이라는 역대 최고의 통과율이었지만, 절대 수를 계
산해볼 경우 역시 평균 총 선발자의 50%라는 역대 최저의 통과 인원이
었다.
아무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발전이었는데, 일단선발된 8인에 대
해서, 그들이 훌륭한 인재라는 사실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가지지 않았
다.
일단, 통과가 확정되자, 상태가 심각했던 두 명의 합격생들은 바로 신
관들의 집중 마법을 통해 회복되었으며 나머지 여섯 명도 본래 자신들
을 담담하던 신관들에 의해 잔 상처들이나 흉터들을 깨끗하게 치료받았
다. 그리고 이것은 여담으로, 펠린과 다운크람, 세렌, 키사르는 지상으로
탈출하자마자 신성마법으로 치료도 받지 않고 곧바로 목욕탕으로 달려
갔으며 카젯은 침실로, 그리고 루벨은 식당으로 곧장 향하여 각자 그
동안 깊이 갈구했던 기본적인 것들을 다시 찾아갔다.
어쨌든 그들이 모두 동시에 4개월만에 7차 관문을 통과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패러딘나이트 임명식까지 약 2개월이라는 천금같이 소중한
휴식의 시간이 주어졌다. 더 이상 하루 5천 회씩 휴페리온을 휘두르지
않아도 되었으며, 기마 법을 단련시키지 않아도 좋았다. 단지 몸이 근질
거리거나 지루하면 마음대로 수련장에 들어가 내키는 대로 휘두를 뿐이
었다. 물론 펠린은 하루에 네 시간 정도는 말을 타고 보낼 정도로 더욱
극성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 책........ 좋은데, 역시 자네의 추천도서답군."
다운크람이 테이블에서 한 책을 독파하고는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키사르에게 말했다.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카젯이나 펠린, 루벨
과는 달리, 다운크람은 언제부터인지, 세렌이나 키사르에게는 자네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자이푸스 자작의 저서는 모두 읽을 가치가 있지, 현실적으로 필요한
이야기를 추상과 공상을 가미시켜 적절하게 풀어놓았다."
최종 선발전이 진행되는 사이, 무슨 공을 세웠는지 남작에서 자작으로
승격된 자이푸스 자작이 쓴 신간 서적을 탐독하며, 키사르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 얼마 만에 가져보는 오후의 독서란 말인가. 그 동안 가문을 살리
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좀 여가시간을 가져야겠
어."
이제 다운크람의 펠리스 남작가문의 부활을 맡아 논 당상이었다. 게다
가 적어도 자작이나 백작으로 그 격이 올라가게 될 것도 분명했다. 원
래 클라스라인의 귀족가문에서 패러딘나이트를 배출하는 것은 매우 큰
영예와 공으로 그 귀족적 지휘가 상승하는 것은 부가적인 소득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새로운 영지와 높은 관록이 지급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삶의 피가 되며 인생의 거름이 되는 독서를 즐기고있는 다운크
람과 키사르와는 달리, 펠린은 화창한 늦가을의 오후를 말을 달리며 보
내고 있었고, 루벨과 카젯은 몸이 쑤시는지, 대련실에서 연습용 휴페리
온을 사용하여 몸을 풀고 있었다.
세렌은 수련관 정원의 벤치에 앉아서 사랑하는 자신의 동생과 친구에
게 보내는 편지를 보고있었다. 관문을 통과하는 도중에 담당 신관의 배
려로, 자신에게 보내온 동생의 편지를 살짝 볼 수 있었던 그는 그후로
내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이 일을 이제야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된 것
이었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자신은
패러딘나이트가 되었노라고.
여러 가지 안부와, 한번 찾아왔으면 한다는 바램을 적음으로써 동생에
게 보내는 편지는 금새 끝낼 수 있었던 세렌은, 막상 킬츠에게 보낼 편
지의 내용을 생각하며 약간의 고민에 빠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킬츠는
자신이 언덕마을을 빠져 나올 때 마중조차 나오지 않아서 크게 실망하
고 있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상자 속에 고가의 사피라키루이 날개가루
를 넣어주는 멋진 우정을 보여줬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약 5년만
에 간접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는 이번 편지의 첫 마디를 어떤 말로 장
식해야할지, 세렌으로써는 고민이 되었던 것이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 킬츠에게, 그 동안 잘 있었니.... 아니야. 너무 평
이해. 뭔가 다른 말이 없을까......'
한참을 고심하다가 결국은 '나의 영원한 친구, 킬츠에게'로 첫 머리를
장식하기로 결심하고는 막 편지지에 글로 옮기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세렌이 앉아있는 정원의 벤치로 다가왔다. 바로 세렌일
행과 함께 이번 91회 패러딘나이트 선발전을 통과한 파울프였다. 마일
젠도 약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 파울프 아니야, 몸은 좀 어때?"
세렌이 다가오는 파울프에게 먼저 입을 열며 말을 건네었다. 지하미로
에서는 상처를 제대로 치료할 도구가 없어 상처가 파상풍에, 곪기까지
했던 파울프였으나, 지금은 지극한 신관들의 집중 치료로 인해 거의 정
상적인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몸은 좋다. 그런데......"
파울프는 조금 머쓱한지 헛기침을 몇 번하고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
다.
"고... 고맙다. 세렌. 지하미로에서 나를 구해주어서. 덕분에 패러딘나이
트까지 되었으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감사는 너를 업고 이동했던 카젯에게 말하는 게 어때. 난 별로 한 것
도 없는걸."
"그.... 그런가.... 하지만 어쨌든 너의 덕이다. 다시 한번 고맙다."
파울프는 이번에는 정중하게 고개까지 숙이며 세렌에게 고마움을 나타
내었다. 죽음의 순간에서 이제는 패러딘나이트가 되었으니, 그 동안에
가슴속에 쌓아왔던 원한도, 봄날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예전에 내가 너희에게 했던 말,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래? 그렇다면 그 생각은 좀 바뀐 건가?"
"물론이다. 너희들이야말로 진정한 실력자야. 예전에 나는 순수한 귀족
들만 이 클라스라인을 지탱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지만, 잘못된 생각이
었다."
"그거 정말 잘됐구나."
"이제는 그런 모든 것들을 떠나서, 진짜로 실력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
나 이 영광스런 클라스라인을 짊어지고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다."
예전과 비교하면 정말로 대대적인 발상의 진보였다. 물론 이 부패한
클라스라인 법국을 부를 때 '영광스런'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으로
봐서는 아직도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정
도로도 이미 대단한 발전이었다.
파울프는 카젯과 루벨에게 대신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며 마일젠과 함
께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마디 건네고 간 것
이 세렌에게는 더욱 더 즐거운 마음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난 너를 나의 라이벌로 생각하겠다. 우리는 좋은 친구는 될
수 없어도, 좋은 라이벌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엔 거의 적이라고 여길 정도였는데..... 하지만, 그래도 너와 나는
가야할 길이 다르니까. 언젠가는 정말로 적이 되어 싸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그때까지는 라이벌이겠지. 서로의 힘을 끌어 낼 수 있
는.......'
매직길드를 출발한지 약 3개월. 킬츠 일행은 클라스라인을 경유하여
드디어 북부자치도시 연합의 도시 파울드에 도착했다. 왕복 5개월 가까
이 걸린 긴 여행이었는데, 일단 최초의 목적과, 나중에 추가로 생긴 목
적을 둘 다 무사히 처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기 때문에 마음은 홀가분
한 편이었다.
그러나 막상 파울드에 도착한 킬츠는 여러 가지 불길한 이야기들을 듣
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페이오드의 독재 재상, 사시드의 명령으
로 남부자치도시가 대부분 함락되었다는 것과, 그 점령지 중 하나의 마
을을 단지 복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 주민을 몰살시켜
버리는 끔직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대륙 각지에서
그 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각종 몬스터들이 근처 마을을 습격하는
사건도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반면에 좋은 소식도 있었다. 일단 그 중에서 가장 좋은 소식은
바로 루디의 동생, 에리나가 파울드에 와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소식을
들은 킬츠는 곧바로 그녀가 지내고 있다는 고급여관 세피로이스의 한
객실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