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93화 (93/166)

제 6장. -영광의 기사- (25)

"다운크람.... 이번에는 아무래도 함께 싸워야 할  것 같다. 이쪽으로 가

까이 오고있어."

카젯이 심각한 표정으로 정면의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앞에는

세 갈래로 갈라진 갈림길이 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것들 중 한군데로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는 듯 했다.

"숫자가 많다면 그래 야지."

"이 검. 돌려줄까?"

"아니, 검은 계속 네가 쓰고있어. 그 편이 효율성이 높으니까."

다운크람은 침착하게 상황을  예측해보며 이상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확실히, 검을 사용하는 솜씨는 자신보다는 카젯이 뛰어나니, 자신은  미

끼가 되어서 적을 유인하고, 그  사이에 카젯이 베어버린다. 좀  단순한

듯 했지만, 현재로써 다운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등잔을 들고 서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뒤로 유인할 테

니, 너는 미리 뒤쪽의 어둠 속에서 매복해  있다가 다가오는 적을 기습

해라."

"위험하지 않겠어?"

"위험해도 해야지. 그럼 네가 미끼가 될래?"

"아니...."

일단결정이 나자 카젯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어두운 뒤쪽의 함족 벽에

착 붙어서 몸을 감추어  버렸다. 다운크람이 만들어 줄  완벽한 기회를

기다리며.

'자, 오너라...... 재빨리 도망쳐 주마.'

이제는 그 무엇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를 다운크람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다수가 모여서 오는 듯 했다. 긴장의 식은땀이 그의  얼굴

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데,

"어! 저기 불빛이 보여! 또 누군가 있나봐!"

왼쪽으로 나있는 통로에서 익숙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다운크람의기억 속에 남아있는 목소리, 조금 엷은 듯 하면서도 부드러

운 목소리.

'펠린?'

"정말? 어이! 거기 누군지? 카젯이야? 아니면 다운크람?"

이번에 들려온 새로운 목소리 역시 다운크람의 기억에 있는 것이었다.

은은한 음성에 침착한 톤의 듣기 좋은 목소리.

'세렌?'

"오호, 다행이 우리만 남아있던 게 아닌가 보군."

이번에는 느긋하고 여유 로운 목소리였다.

'루벨까지?'

그리고 가장 먼저 다운크람이  본 인간의 얼굴은  섬세하기는 하지만,

무표정하고, 조금 어두운 듯하면서 날카로운 모습을 하고있었다.

"키사르!"

"이로써 여섯 명 전부 다 모였어. 든든한데?"

펠린은 즐거운 표정으로 싱글거리며 웃었다. 현재 일행은 키사르의 지

시에 따라 이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미로는 다중 구

조로 되어있어서 한쪽 벽에 손을 짚고 이동한다 하더라도 출구를  발견

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카젯은 다운크람에게  뭐라고 놀려주고 싶었으

나, 이어서 쏟아질 반격을 생각하며 놀려주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정말로 우리밖에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인가? 그럼 이번에  패러딘

나이트는 딱 여섯 명이겠군. 책임이 막중한데."

다운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클라스라인의 장래를  생각했다. 물론 키

사르와 세렌 같은 '머리'를 가진 인물들이 선발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

으나, 일단 여섯 명이라는 숫자는  너무도 적은 숫자였다. 투자에  비해

결과가 안 좋다고 나 할까.

그러나 일행은 잠시 후, 넓은 통로로 새로 들어가면서, 또 다른 불빛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 통로의 한쪽 벽에  기대어 두 사람이 쓰러져 있

는 것이었다.

"사람이다!"

그러나 쓰러져 있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통로를 가득 메운 10여

구의 몬스터들의 시체도 있었다. 그 카우렛사들은  대부분 외상은 없었

지만, 복부를 가격 당했는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목이

반 바퀴쯤 돌아가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그 전부를 맨손으로

상대한 듯 했다.

"누구..... 지?"

한편에 쓰러져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분

명, 어디선가 본적이 있던 모습이었다.

"파울프!"

세렌이 서로간에 불미스러웠던 기억을되살리며 그의 얼굴을  떠올렸

다. 거만하고, 남을 깔보는 듯한 얼굴.  분명히 예전에 세렌일행에게 시

비를 걸었다가 세렌에게 왕창 깨졌던  그 귀족집단의 우두머리를 하고

있었던 녀석이었다.

"세렌..... 이군. 그리고 다른 녀석들....."

"그러나 파울프는 얼마 서있지도 못하고는 비틀거리며 다시 쓰러졌다.

세렌은 황급히 달려가 그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쳇..... 또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는군....."

쓰러졌으면서도 끝까지 중얼거리는  파울프였다. 그리고  말조차 하지

못하고 기절해 있는 나머지 한 명은 역시 안면이 있었던  마일젠이었는

데, 두 사람 다 상처가 심각했다. 전신에 카우렛사들에게 물리거나 긁힌

크고 작은 상처들이 심하게 나있었고, 파울프는 갈비뼈가 부러진 듯 했

으며 마일젠은 머리를 당한 듯 했다.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신성마법을 받지 않은 한 적어도 5개월 이상은 집중 치료를 받아야  회

복될 정도의 상처였다.

"무기만... 있었으면......"

파울프는 분한 듯 이를 갈며  중얼거리다가 결국 의식을 잃고  기절해

버렸다. 확실히, 맨손으로 둘이서 카우렛사 열 마리를 상대한 것은 대단

한 일이었다. 둘 다 완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듯 했다.

"음, 실력이 확실히 늘었는걸. 맨손으로 이 정도라."

루벨이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전에 것 멋뿐이던 모습

에서 세렌에게 당한 충격으로 인해 피땀을 흘리며 수련에 열중했던  그

들이었다.

그러나 상처 입은 귀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몸

부림쳤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부상을 입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짐

짝에 불과했다. 그것도 물건이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건

을 소비시키는 악덕한 짐짝이었다.

"어쩌지? 그냥 버리고 갈까?"

다운크람의 비정한 말에 세렌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곳에 그냥 놔두면 곧 굶어 죽던지, 새로운 몬스터들에게 당해 죽던

지, 죽음을 당하게 될 꺼야. 뻔히 알면서 놔두고 갈 수는 없어."

확실히, 그들은 예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꼴 보기 싫은 귀족지상

제일주의자들이었으나,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역시 그 마음 때문에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카젯의 상의가 희생되어 그들의 붕대역할을 하였고, 역시 카젯과

다운크람이 그들을 업고 이동하기로 했다.

"쳇, 말도 안돼. 이 녀석들이 뭐가 예쁘다고 업어줘야 하나."

카젯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그래도 자신이  업고있는 마일젠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다쳤기 때문에 자

칫하면 평생 함께 할 고통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여섯 명보다는 여덟 명이 패러딘나이트가 되는 것이  좋지 않

겠어. 그리고 이들도 성격은 안 좋아도 지금까지 끈질기게 버텨오며 엄

청난 노력을 해왔어. 그런데  이런 곳에서 운 나쁘게  탈락한다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아?"

이상적으로도,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타당성이 있는 세렌의  말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결코 그 두 명을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다. 나중에 수없이 많은 적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중요

한 일이었지만, 죽어 가는 아군의 목숨을 살리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아무리 싫은 상대라도, 목숨은 소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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