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영광의 기사- (25)
"다운크람.... 이번에는 아무래도 함께 싸워야 할 것 같다. 이쪽으로 가
까이 오고있어."
카젯이 심각한 표정으로 정면의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앞에는
세 갈래로 갈라진 갈림길이 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것들 중 한군데로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는 듯 했다.
"숫자가 많다면 그래 야지."
"이 검. 돌려줄까?"
"아니, 검은 계속 네가 쓰고있어. 그 편이 효율성이 높으니까."
다운크람은 침착하게 상황을 예측해보며 이상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확실히, 검을 사용하는 솜씨는 자신보다는 카젯이 뛰어나니, 자신은 미
끼가 되어서 적을 유인하고, 그 사이에 카젯이 베어버린다. 좀 단순한
듯 했지만, 현재로써 다운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등잔을 들고 서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뒤로 유인할 테
니, 너는 미리 뒤쪽의 어둠 속에서 매복해 있다가 다가오는 적을 기습
해라."
"위험하지 않겠어?"
"위험해도 해야지. 그럼 네가 미끼가 될래?"
"아니...."
일단결정이 나자 카젯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어두운 뒤쪽의 함족 벽에
착 붙어서 몸을 감추어 버렸다. 다운크람이 만들어 줄 완벽한 기회를
기다리며.
'자, 오너라...... 재빨리 도망쳐 주마.'
이제는 그 무엇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를 다운크람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다수가 모여서 오는 듯 했다. 긴장의 식은땀이 그의 얼굴
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데,
"어! 저기 불빛이 보여! 또 누군가 있나봐!"
왼쪽으로 나있는 통로에서 익숙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다운크람의기억 속에 남아있는 목소리, 조금 엷은 듯 하면서도 부드러
운 목소리.
'펠린?'
"정말? 어이! 거기 누군지? 카젯이야? 아니면 다운크람?"
이번에 들려온 새로운 목소리 역시 다운크람의 기억에 있는 것이었다.
은은한 음성에 침착한 톤의 듣기 좋은 목소리.
'세렌?'
"오호, 다행이 우리만 남아있던 게 아닌가 보군."
이번에는 느긋하고 여유 로운 목소리였다.
'루벨까지?'
그리고 가장 먼저 다운크람이 본 인간의 얼굴은 섬세하기는 하지만,
무표정하고, 조금 어두운 듯하면서 날카로운 모습을 하고있었다.
"키사르!"
"이로써 여섯 명 전부 다 모였어. 든든한데?"
펠린은 즐거운 표정으로 싱글거리며 웃었다. 현재 일행은 키사르의 지
시에 따라 이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미로는 다중 구
조로 되어있어서 한쪽 벽에 손을 짚고 이동한다 하더라도 출구를 발견
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카젯은 다운크람에게 뭐라고 놀려주고 싶었으
나, 이어서 쏟아질 반격을 생각하며 놀려주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정말로 우리밖에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인가? 그럼 이번에 패러딘
나이트는 딱 여섯 명이겠군. 책임이 막중한데."
다운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클라스라인의 장래를 생각했다. 물론 키
사르와 세렌 같은 '머리'를 가진 인물들이 선발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
으나, 일단 여섯 명이라는 숫자는 너무도 적은 숫자였다. 투자에 비해
결과가 안 좋다고 나 할까.
그러나 일행은 잠시 후, 넓은 통로로 새로 들어가면서, 또 다른 불빛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 통로의 한쪽 벽에 기대어 두 사람이 쓰러져 있
는 것이었다.
"사람이다!"
그러나 쓰러져 있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통로를 가득 메운 10여
구의 몬스터들의 시체도 있었다. 그 카우렛사들은 대부분 외상은 없었
지만, 복부를 가격 당했는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목이
반 바퀴쯤 돌아가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그 전부를 맨손으로
상대한 듯 했다.
"누구..... 지?"
한편에 쓰러져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분
명, 어디선가 본적이 있던 모습이었다.
"파울프!"
세렌이 서로간에 불미스러웠던 기억을되살리며 그의 얼굴을 떠올렸
다. 거만하고, 남을 깔보는 듯한 얼굴. 분명히 예전에 세렌일행에게 시
비를 걸었다가 세렌에게 왕창 깨졌던 그 귀족집단의 우두머리를 하고
있었던 녀석이었다.
"세렌..... 이군. 그리고 다른 녀석들....."
"그러나 파울프는 얼마 서있지도 못하고는 비틀거리며 다시 쓰러졌다.
세렌은 황급히 달려가 그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쳇..... 또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는군....."
쓰러졌으면서도 끝까지 중얼거리는 파울프였다. 그리고 말조차 하지
못하고 기절해 있는 나머지 한 명은 역시 안면이 있었던 마일젠이었는
데, 두 사람 다 상처가 심각했다. 전신에 카우렛사들에게 물리거나 긁힌
크고 작은 상처들이 심하게 나있었고, 파울프는 갈비뼈가 부러진 듯 했
으며 마일젠은 머리를 당한 듯 했다.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신성마법을 받지 않은 한 적어도 5개월 이상은 집중 치료를 받아야 회
복될 정도의 상처였다.
"무기만... 있었으면......"
파울프는 분한 듯 이를 갈며 중얼거리다가 결국 의식을 잃고 기절해
버렸다. 확실히, 맨손으로 둘이서 카우렛사 열 마리를 상대한 것은 대단
한 일이었다. 둘 다 완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듯 했다.
"음, 실력이 확실히 늘었는걸. 맨손으로 이 정도라."
루벨이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전에 것 멋뿐이던 모습
에서 세렌에게 당한 충격으로 인해 피땀을 흘리며 수련에 열중했던 그
들이었다.
그러나 상처 입은 귀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몸
부림쳤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부상을 입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짐
짝에 불과했다. 그것도 물건이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건
을 소비시키는 악덕한 짐짝이었다.
"어쩌지? 그냥 버리고 갈까?"
다운크람의 비정한 말에 세렌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곳에 그냥 놔두면 곧 굶어 죽던지, 새로운 몬스터들에게 당해 죽던
지, 죽음을 당하게 될 꺼야. 뻔히 알면서 놔두고 갈 수는 없어."
확실히, 그들은 예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꼴 보기 싫은 귀족지상
제일주의자들이었으나, 그들도 인간인 이상,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역시 그 마음 때문에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카젯의 상의가 희생되어 그들의 붕대역할을 하였고, 역시 카젯과
다운크람이 그들을 업고 이동하기로 했다.
"쳇, 말도 안돼. 이 녀석들이 뭐가 예쁘다고 업어줘야 하나."
카젯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그래도 자신이 업고있는 마일젠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다쳤기 때문에 자
칫하면 평생 함께 할 고통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여섯 명보다는 여덟 명이 패러딘나이트가 되는 것이 좋지 않
겠어. 그리고 이들도 성격은 안 좋아도 지금까지 끈질기게 버텨오며 엄
청난 노력을 해왔어. 그런데 이런 곳에서 운 나쁘게 탈락한다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아?"
이상적으로도,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타당성이 있는 세렌의 말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결코 그 두 명을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었다. 나중에 수없이 많은 적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중요
한 일이었지만, 죽어 가는 아군의 목숨을 살리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아무리 싫은 상대라도, 목숨은 소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