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영광의 기사- (24)
"반갑네 그려."
루벨은 묵직한 웃음을 지으며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실로 6개월만에
보는 넉넉한 웃음이었다.
"이로써 네 명이 모였구나. 그런데 다운크람이나 카젯은? 그리고 나머
지 수련생들은 어떻게 된 거지?"
"길이 엇갈렸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전의 관문에서 떨어졌을지도."
펠린의 말에, 키사르는 매정하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지
금까지의 여섯 개의 관문을 거지며, 그 중에서 떨어졌을 가능성도 충분
히 있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정인데."
"물론이야, 펠린. 아마도 길이 엇갈렸을 테지. 아마도 곧 만날 수 있을
거다."
세렌은 펠린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가문을 부흥시킬 막중한
의무를 가지고 있는 다운크람과, 단순무적 카젯이 설마 이런 관문들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질 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확실히, 세렌이 말하니
까 믿음이 갔다.
"맞아. 그 녀석들이 이렇게 손쉬운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을 리가 없
지."
루벨이 호탕하게 웃으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것은 루벨 혼자만
의 생각이었다. 오직 유일하게 넉살좋고 뱃심 있는 이 거대한 청년만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던 그 동안의 관문들을 그렇게 평가할 수 있었
다. 세렌도 고통스럽다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도 결
코 쉬운 관문은 아니었다. 그 좋은 예로, 그 자리에 서있는 사람들 중에
서 루벨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약간이라도 확실하게 몸이 말라있었
다.
"너의 체력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자신은 죽을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며 겨우겨우 통과했던 관문들을,
마치 캠핑이라도 다녀온 듯한 여유 있는 모습을 하며 통과한 루벨을 바
라보며, 키사르는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약간의 빈정거림이 담긴
말투로 감정을 대신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곰의 체력이라고 불러주게, 예전에 많이 들었던 별
명이니까. 하핫."
루벨은 과연 키사르의 중얼거림을 넉살좋게 받아넘기며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카젯처럼 그 정도의 악담에 발끈하거나 풀이 죽을 루벨이 아니
었다.
"다운크람?"
"..... 그 얼굴은 꿈에서도 나타나 나를 괴롭히던 카젯이군."
사실은 그 얼굴 덕분에 지금까지의 관문들을 통과했으면서도, 다운크
람은 미로 속에서 만난 의외의 사람을 보고는 한숨을 지었다. 서로 외
길에서 마주보며 만난 것이었다.
"만나서 정말 반갑다. 오랜만이야. 그런데 모습이 왜 그래?"
다운크람과는 달리, 순수하게 재회의 기쁨을 느끼며 즐거워하던 카젯
은 검붉은 자국이 온몸에 묻어있는 다운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몬스터를....... 상대했다. 이것을 주워서 다행이었지."
다운크람은 한 손에 들고있던 낡은 롱소드를 들어서는 카젯에게 건네
었다.
"난 지금 너무 피곤해. 그러니까, 이제부터 네가 앞장서서 적이 나오면
상대해라."
"자... 잠깐.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난 이쪽으로 가고 있
었는데......."
다운크람과 카젯은 서로 반대편에서 마주보며 만났기 때문에 가려고
하는 길이 엇갈려 있었다.
"난 지금까지 한쪽 벽에 손을 짚고 이동했으니까. 내가 가던 방향으로
가야 한다. 미로는 한쪽 벽에 손을 짚고 그대로 따라서 이동하면 언젠
가는 출구에 도착할 수 있게되니까."
물론 모든 미로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있는 다
운크람이었으나. 일단은 그것에라도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가던 길로 갈 것을 주장했다.
"그.... 그래? 어쩐지 벌써 몇 시간째 돌아다녔는데.... 같은 곳을 헤 메
는 것 같더라."
"호오, 너의 모자라는 능력들 중에 방향감각 부족까지 포함시켜야겠
군."
"그.. 그럴 것까지는 없잖아?"
"잔말 말고 이동하기나 해. 이 방향치야."
"뭐, 뭣! 방향치! 말 다했냐!"
"아니, 기억력 부족에 판단력 부족, 연산력 부족에 연상력 부족인......."
"돼... 됐어. 그만해."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다운크람은 오랜만에 카젯을 놀려주며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
다.
'이것도 중독현상인가.....'
그리고 그 둘은 한참을 벽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두 마
리의 카우렛사를 만난 그들이었으나, 무기의 성능을 능가하는 카젯의
검술로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네가 상대했다는 몬스터가 이 녀석들이야? 뭐, 별것도 아니네."
"시끄럽다. 너야 믿을 것은 오로지 그 육체밖에 없으니까 그렇겠지."
다운크람의 말에 무엇인가 발끈하며 무언가 반박하고 싶었던 카젯이었
으나 자신으로썬 정말로 딱히 그밖에 내세울 것이 없었기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뭔, 말을 못하게 하네......."
카젯이 궁시렁거리며 중얼대고 있을 무렵, 가던 길의 앞쪽에서, 무엇인
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운크람은 눈치채지 못했으나, 믿을 건 육
체적인 능력밖에 없었던 카젯은 예리하게 그 소리를 포착 할 수 있었
다.
"잠깐. 무슨 소리가 들려."
"이곳은 구조가 소리가 막히게끔 되어있어서 확산이 잘 되지 않는다.
정말로 들리는 거야?"
"그래...... 들려."
"또 몬스터인가?"
"그럴지도....... 아무래도 걸어오는 듯한 소리인데.... 그 숫자가 한둘이
아니야."
"그렇다면?"
"최소한 넷 정도...... 둔탁한 소리도 들리기 때문에 더 많을 지도 몰
라."
카젯은 긴장하며 바닥에 엎드려 귀를 땅에 대었다. 아무리 몬스터들을
상대로 자신이 있는 카젯이었지만, 그것도 1대1에 한해서일 뿐. 한번에
두 마리가 덤벼온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했고, 그 이상이라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