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90화 (90/166)

제 6장 -영광의 기사- (22)

"이제 거의 도착했습니다."

도시 외곽으로 한참을 나가자, 건물이 뜸한 거리가 하나 나왔다.  미리

병사들 몇 명이 그곳에서 대기를 하며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는

데, 원체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보니 무척 한가해 보였다.

서너 명의 병사들은 신관을  발견하고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신관은 말에서 내려서 세렌과 동행하여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갔는데,

세렌은 점점 가깝게 들리는 무엇인가 강렬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음....... 무슨 소리가 들리는 데요."

세렌이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신관은 아래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아래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그러더니 의아해하는 세렌이 다시 되물어 보기도 전에, 신관은 바닥에

있는 한 작은 맨홀을 발견하고는 몸을 숙였다.

"자, 이것을 들어내세요."

세렌은 신관의 말에 따라 약간의 힘을 주어 맨홀의 손잡이를 들어올렸

다. 그러자 그 맨홀 아래의 어두운 공간에서  지금 것 들려오던 정체불

명의 소리가 엄청난 크기의 소음으로 들려왔다. 바로 물소리였다.

"6차 관문은 바로 이 아래  있는 지하수로의 물길을 거슬러서  상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신관은 맨홀 아래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음 때문인지 평소보다  목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목적지는 열려있는 맨홀이 있는 곳까지입니다.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기한은 한 달이 구요."

"............. 그럼 식량은 어떻게 합니까?"

"이번 관문에서 식량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풍부한  물이 주어지니까

요."

"마셔도.... 되는 물입니까?"

"물론입니다. 이 지하수로에 흐르는 물은  예전에 이 세인트룸을 가로

지르던 강줄기를 잡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깨끗합니다. 시민들이 사용하

는 상수도관의 원천이기는 하지만, 하수도관과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어

서 안심해도 됩니다."

안심이라...... 세렌은 속으로 혀를 차며 어두운 맨홀아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물이 깨끗하고 좋아도 한  달간 물만 마시고 저 엄청난  소리를

내는 지하수로를 거슬러 올라가라는 것인가.

"확실히, 샤워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세렌은 가볍게 웃으며 맨홀에 안쪽으로 나있는 사다리를 타고는  아래

로 내려갔다. 그리고 조금 내려가자, 곧바로 위에서 맨홀의 뚜껑이 닫치

며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밀려왔다.

'가차없군.......'

대략 100세션이 넘는 거리를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자, 세렌은 겨우 바

닥에 발을 댈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세렌이 서있는 곳은 겨우 사람

하나가 서있을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었고,  한쪽 면만이 탁 트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청난 수량이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세렌은 손으로 물살의 흐름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았다. 다행이 생

각보다는 그 흐름이 빠르지 않았는데, 그래도 가만히 물에 몸을 맡긴다

면 순식간에 저 아래로 떠내려갈 정도의 속도는 되었다.

'이 정도의 물살을 헤치며 상류로 올라가라는 것인가..... 기한이 한  달

이니 그 거리가 만만히 않을 텐데......'

세렌은 대략적으로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를 가야지

열려있는 맨홀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먹을 것이

라고는 오로지 끝없이 흐르는 저 지하수로의 물줄기일 뿐, 아무리 물만

마셔도 한달 이상 버티는 것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리

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중간에 졸리게 되면 잠을 자두어야 할텐데, 지하수로에 얼마간

의 간격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여유공간이 존재 할 것인가....'

세렌은 천천히 물로 내려갔다.  수심은 세렌의 허리정도까지  차 오를

정도였다. 충분히 걸을 수는  있었지만, 속도를 낸다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계속하여 이런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웬만한 사람이라도 금

새 지쳐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해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세렌은 벽에 손을 대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세렌이 이런 물살을 거슬러서 헤엄을 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걸어서 가는 것이 체력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는 길

이었다.

지하수로의 옆에 나있는 그 위의 좁은 공간은 대략 한시간 정도 갈 때

마다 한번씩 나타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간이 나올 때마다 올라

가서 휴식을 취할 수도 없는 것이, 마음놓고 쉬엄쉬엄 가다가는 주어진

기간인 한달 안에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쉬지 않고 갈 수도 없는 노릇 이여서, 세렌은 대

략 여덟 개가 나올 때마다 한번씩 올라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어차피 정확한 거리를 모른다면...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한달 안에 도착할 수 있겠지.'

허기가 밀려오면 적당량의 물을 마셨고, 아무리 졸음이 밀려온다 하더

라도 위의 빈 공간이 여덟  개를 지날 때까지의 거리를 이동하지  않는

한 결코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점차 물을 거슬러서 이동하는  거리가

줄어들었다. 물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4년

간 강력하게 다져온 그의 체력도, 결국은 바닥이 나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세렌에게는 강력

한 체력뿐만 아니라, 그것을 능가하는 뛰어난 정신력 또한 가지고 있었

다. 체력을 전부 소비했다면,  남은 것은 정신력이었다.  어차피 포기란

있을 수 없는 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사용해서라도 끝까지 걸어가

야만 했다.

어둠 속에서 홀로 강한 물살을 거르며 앞으로 걸어가는 일. 그러나 긴

시간이 지나가 어렴풋이 가느다란 빛줄기가 세렌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

했다. 바로 하늘에서부터.

빛이 들어오는 곳은  열려있는 맨홀이었지만, 그 빛의 근원은 바로 하

늘이었다. 세렌은 눈이 부실 정도의 성취감을 느끼며, 배고픔도, 피로도

전부 잊으며 빠른 속도로 그 빛을 향해 걸어갔다.

세렌은, 단 20일 만에 지하수로를 이동하여, 목적지에 도착 한  것이었

다.

"역대의 기록입니다. 역시 벌점 0점의 세렌 님 답  군요...............  아직

열흘이나 남아있으니.... 열흘 후에 마지막 7차 관문이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니 그 동안은 편히 기다리고 있으시기 바랍니다."

편히 기다 리라....... 고 했기는 했지만, 신관이 세렌을 데려간  곳은 바

로 1차관문과, 5차 관문을 진행했던 그 공포의 지하 석실이었다. 어둡기

도 매한가지였고, 적막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식량이  담겨있는

상자에 열흘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세렌

은 일단 만족하며 그곳에서 열흘을 기다렸다.

'마지막 관문도 이곳에서 벌어지는가...... 이번엔 어떤 것이지?'

세렌은 이곳에서 벌어진다는 마지막 7차 관문을 예상해보며 시간을 때

워나갔다. 이제 하나만 통과하면 되는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의 최종관

문. 과연 그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난제를  안겨줄 것인지 사뭇 기대

가 되어왔다.

'지금까지는 한가지의 관문마다 한 달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최종관

문은 분명히 1년간 진행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번 7차 관문은 약 6개

월간 진행되는 것인가?'

확실히 계산을 해보면 그러했다. 과연 어떠한 관문이기에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주어지는 것일까. 일단 주어진  시간과 마지막이라는 것으로

봐서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 기다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7차관문의 시작입니다. 기한

은 6개월. 그 동안에 미로를 탈출 하셔야 합니다. 자, 그럼."

열흘이 지났는지, 방문이 살짝 열리며 신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고는 무엇인가를 방안에 넣어주며 다시 문을 닫았는데, 그것은 바로 한

개의 등잔이었다.

'웬....... 등잔인가. 그리고, 미로라고?'

세렌이 이상함을 느끼며 등잔에 막 불을 켰을 때,방 한가운데가 스르

르 열리며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세상에........ 그럼 저 아래로 내려가면 미로라는 것인가? 그래서 이 등

잔을 준 것이고?'

하지만 등잔의 기름은 시간이 지나면 곧  바닥이 날것이 분명했다. 그

리고 그때동안은 이동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 다음엔? 깜깜

한 암흑에서 그 길이가 얼마나 되는 지도 모르는 미로를 헤쳐나가야 한

다는 것인가?

세렌은 갑자기 기분이  막막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기한이 6개월이니

만큼, 그 미로도 적당히 끝날 수준은 아닐 듯 했다.

'별 수 있나..... 일단 내려가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하자.'

그리고 아무런 식량이나 ,식수도 없이, 달랑 등잔 하나만 가지고  세렌

은 문제의 지하미로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패러딘 나

이트가 되기 위한 최종 선발전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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