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89화 (89/166)

제 6장. -영광의 기사- (21)

크라다겜은 오늘도 파울드의 성문 중 하나를 바라보며 출입하는  사람

들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을 하고있었다. 한때는  마계에서 제일이라는

다크나이트의 마스터로써 악명을 날리던 존재였으나, 지금은 그 맹목적

인 파괴의 마음을 잃고, 나이트길드에 들어와, 자신의 직책에  충실하고

있었다.

사실, 그 동안 1년이 넘는  시간을 이곳 파울드에서 보내면서,  새롭게

그와 친해진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기껏 해봐야 같이 일하는 쿠슬리

정도. 그것도 보통사람들이 말하는 친한 관계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색

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마족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절대 믿을 수

없는 광경임엔 틀림없었다.

만약 그가 직접 전쟁에 참가한다면, 상대편에서는  그 혼자에 의해 거

의 1천이 넘는 군사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지금 교

전중인 드라킬스의 최고의 나이트, 드래곤 나이트라 할지라도, 그의  상

대가 될 수는 없었다. 설사 드래곤을 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확인한 사람들은 점차 의심을

하기 시작할 테고 혹시나 마족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면, 득달같

이 신전에서 사람들이 파견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트

길드로써는 그를 군사적인 쪽에 배치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그것을 잘

못하면 그야말로 혹 떼려다 하나 더 붙이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었

다.

크라다겜과 함께 성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던 쿠슬리는, 오늘 에

리나와 함께 할 일이 있다며 잠시 빠져있었다.  어차피 윈 거리에서 인

간의 숨은 살기를 파악하는 크라다겜이었으므로 별 상관은 없는 일이었

다.

그때, 회색의 특이한 복장을 한 남자 하나가 성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

이 보였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옷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내부에서 느껴

지는 독특한 느낌도 특이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그 속성조차도 다른

것이었는데, 그 문제의 인물은 바로 신관이었다.

생명의 빛의 여신 라프나의 신관들은 보통  흰색의 신관 복을 입었고,

정령의 신 스피리스트의 신관은 푸른 신관 복이었다. 그리고 회색의 신

관 복은 바로 운명의 신 데스튼의 신관들이 입는 복장이었다.

'저것이 바로 신관.....특이한 기운이군. 인간 내부에 있는 알마스 자체

가 거의 신성화 되어있다.'

그러나 그에게 약간의 경계심이 느껴졌기 때문에 다운크람은 잠시동안

그를 주시해서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긴장되어있으며 경계하는 느낌.......

그리고 그때 그 신관과 크라다겜의 눈이 마주쳤다.

"...................."

순간 신관의 표정이 묘하게 어두워 졌다. 크라다겜은 그때 신관에게서

엄청난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살기라고 해도 무방한  느낌이었

다.

그러나 그 신관은 곧바로 몸을  돌리더니 바로 성문을 빠져나가  버렸

다. 성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잠깐 크라다겜과 눈이  마주치

더니, 곧바로 다시 성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크라다겜은 아무 말 없이 계속  자신의 임무로 돌아갔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문제로

그들에게 닥쳐올 것인지에 대해서, 점차 인간화  되어가고 있는 크라다

겜으로써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문제였다.

패러딘 나이트 선발 최종관문을  진행해나가고 있던 라프나  대신전의

신관들은 지금까지의 성적을 종합하여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미 상황은

엄청나가 악화되어 있어서 처음에 참가했던  14명중에서 벌써 세 명이

탈락해 있었다.

"2차 관문에서 한 명, 그리고 4차 관문에서 두 명이 탈락했습니다."

확실히 휴페리온 2만 번은 오래 단련된 수련생들로써도 힘겨운 일이었

던 모양이었다. 한번에 두 명이 떨어진 것이었는데, 만약 나머지 세  개

의 관문 중에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 이상의 탈락 생들이 나

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수련생들은 이미  능력 면에 있어서 남아있는

관문들을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마 더 이

상의 탈락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신관들의 생각은 낙천적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남아있는 11명의 수련생들이 전부 최종관문

에서 통과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대 최저의 통과인원이기 때문이었다.

신전 측에서 책임을 지어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어쨌든  고금에 없는

불명예임엔 틀림없었다. 오직 그 불명예를  메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역시 역대 최초로 벌점 0점으로  최종관문에 돌입한 마틴스 백작  가의

아들, 정확히 말하면 양아들인 세렌이 무사히  패러딘나이트가 되는 것

이었다.

그리고 그런 신관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듯, 세렌은 5차 관문

을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 속

에서 세렌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까닭은, 그가 더위를 먹어서가

아니라, 바로 5차 관문에 들어가기 전에 살짝 볼 수 있었던 한 통의 편

지 때문이었다.

'킬츠도, 루디형도 무사하다 이거지, 정말  다행이군..........게다가 에리

나도 무사히 정령사가 되어서 지금은 쿠슬리 씨의 보호아래에 있는  것

이고.....'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세렌은  엄청난 힘을 얻고 있었다.

지금의 기분이라면 설사 자신을 찜통 속에 넣는다 하더라도 웃을 수 있

을 것만 같았다.

즐거운 기분으로 수련에 임했더니 시간도  무척 빨리 지나가는 듯  했

다. 아껴두었던 물과 식량을 전부 먹어버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문이 열리며 어둡기만 하던 방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끝났습니다. 세렌 님. 어서 나오세요."

신관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렌은 가벼운 몸으로  방을 빠져 나왔다. 기

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몸무게가 조금 줄어들어서 더욱 가볍게

느껴졌다.

"저기, 몸에 땀  새가 배어서 그러는 데, 샤워라도 할 수 있을까요?"

세렌이 자신의 몸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를 느끼며  신관에게 말하자,

그는 세렌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 듯, 여전

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음관문으로 가시면 충분히 몸을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말을 들었던 세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6차 관문

은 아무래도 물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다음관문으로 이동하며, 세렌은 나중에 패러딘 나이트가 되고 나서 자

신이 할 일들을 생각했다. 아직 어떤 일을 맡게 될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왕이면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 계열로 임명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

다. 그래서 변방이나 최전선으로 배치된다면 더없이 좋을 듯 했다. 이왕

패러딘나이트가 되는 것, 불안정한 이 대륙에서  무엇인가 활약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무료하게 후방에서 병사나 훈련시키고, 성주가

되는 것은 도저히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언제나 바쁘게 뛰어다니

며 몸을 놀리는 일만이, 그의 마음에 만족감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

었다.

물론 그가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생명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것이었고,  그 사이에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는

평등한 것이었다. 적어도 세렌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귀족들은 어떤가, 평민이나 노예들은 거의 인간이 아니

라 자신들의 부를 채워주는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부

자가 되는 것도 좋다. 노력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좋다.  하지

만 선천적으로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느냐 때문에,  그런 모든 가능성들

이 자신의 노력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

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렌이 최종적으로 노리는 것은 단순한 이

름을 날리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난 귀족이지만, 저 무능력하고 게으른 인간들과 같은 명칭으로 불린다

는 사실이 혐오스럽다.'

그의 친구들 중 몇 안 되는 진짜 귀족들 중 하나인 다운크람의 말이었

다. 과연 게으른 인간에게 부가 주어져도 좋은 것인가. 무능력한 인간에

게 한 나라의 관리의  자리가 주어져도 되는 것인가.  심히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란 말인가. 인간들의  절대수인 평민을 위한 것

이 아니라, 극소수의 귀족들만을 위한 잘못된  제도가 이 클라스라인에

는 깊게 뿌리 박혀 있었다. 귀족의 재산은 다운크람의 부친처럼 심각하

게 써버리지 않는 한 영지라는 명목 하에 보존되었으며, 약간의 명줄만

있다면 아무리 지식 없는 사람이라 해도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법왕

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애초에 지금 하고있는 패러딘나이트의 선발수련부터가 잘못된  것이었

다. 왜 귀족들의 자제만 수련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지는가? 평민들에게

는 재능이 없다고 믿는 것인가?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카젯과 루벨, 그리고 세렌자신도  평민출신이었

고, 펠린도 정확하게 따지고 보면 귀족의 순수한  혈통을 잇지 못한 불

완전한 귀족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현재까

지 남아있지 않는가?

귀족들은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들과 비교해서  그미천한

'평민'들이 사실은 한치도 다를 바  없이 자신들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이었다. 아니, 너무도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이제는 그런 진실조차 망각해 버렸는지

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부조리한 사회였다. 세렌은  결코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어떠한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바로 이곳입니다. 세렌 님."

신관은 말을 타고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구역으로 이동했다.

역시 말을 타고 쫓아갔던 세렌은 오랜만에 보는 거리의 집들을  정겨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늘은 어두웠다. 시간은 자정을 한참 넘긴 한밤중이었다. 그렇기 때문

에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몇 명  있다해도 그들은 대부분 심

하게 취한 취객이었다. 말을 타고있는 신관 한 명과 연습 복 차림의 건

장하고 늘씬한 체격을 가진 미청년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볼  사람들

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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