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영광의 기사- (19)
북부자치도시 연합으로 지원군을 보낸 지 약 5개월이 지난 성의력 665
년의 5월. 봄의 기운이 서서히 여름으로 바뀌어 가며 사막이 최대의 열
기를 내뿜을 준비를 하는 이 계절에 남부자치도시 연합으로써는 뜻밖의
흉보가 전해져 왔다. 바로 페이오드왕국이 군대를 이끌고 서쪽 국경을
침입해 온 것이었는데 국경의 수비대가 단 5일만에 전멸 당하고, 파죽
지세로 남부자치도시연합의 도시들을 마음 것, 유린하고 있었다.
이미 주력기사단을 지원군으로 보낸 차라 기동력 면에서 페이오드의
리플레이크 기사단에게 압도당한 남부자치도시연합의 군대는 썰물 밀려
가듯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수도 격이라 할 수 있는 텔핀
을 남겨두고 국토 서쪽의 대부분의 도시들이 점령당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남부자치도시연합으로써는 비겁하다 소리치며 페이오드를 매도했지만,
페이오드로써는 절묘한 병력투입의 기회를 포착하고는 실행했을 뿐이었
다. 대륙의 다섯 국가들은 모두 남, 북 자치도시연합들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데 별다른 명분이 필요 없었
다. 그저 영토확장, 그리고 걸리 적 거리는 민간사병을 격파, 이렇게 말
하기만 하면 만사 태평이었기 때문에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편
한 전쟁이요, 당하는 입장에서는 언제 말도 없이 쳐들어올지 몰랐기 때
문에 공포 그 자체였다. 물론 지금의 북부자치도시연합은 나이트길드라
는 최고의 정보기관이 뒤를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
만, 남부는 그 사정이 달랐다. 정보력이 취약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속수
무책으로 국경이 뚤려버린것이었다.
물론 그것에 대비해 국경지방에 대부분의 병력을 집중시켜 놓고있었던
남부 차지도시연합이었으나 국경이 동서로 두 개 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병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나마 페이오드와의 국경 쪽에
더 많을 병력을 배치시켜 놓았건만, 허무하게도 너무나 간단히 무너져
버렸다.
텔핀의 시장은 전 병력을 집중하여 텔핀성 내에서 농성을 하기로 결심
하고는 일단 사신을 북부로 보내었다. 다시 병력을 돌려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는데, 이 사신이 무사히 파울드로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고, 도착
했다 해도 자유기사단이 다시 클라스라인의 국경을 넘기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과연 이번에도 통과시켜줄지도 의문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잔여
병력으로 페이오드의 공격을 버텨야만 했다.
그때, 킬츠일행은 조금 오래 지식의 탑에서 묵고 있다가, 북부자치도시
연합으로 돌아가기 위해 텔핀으로 올라오는 도중이었다. 초반에는 13인
의 마도사, 이트라이와 더불어 여러 마법사들의 환송을 받으며 즐겁게
돌아올 수 있었지만, 후반에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텔핀 성 군데
군데에 포진하고있던 클라스라인의 군대에게 포착되었기 때문이었다.
키 큰 검사 두 명에, 마법사 한 명, 그리고 커다란 늑대 하나를 발견한
페이오드의 보병 20여명은 무작정, 화살을 날려오기 시작했다.
"예의가 없군! 적인지 아군인지 확인도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하마터면 화살에 맞을 뻔했던 루디를 바라보며, 킬츠가 화를 내며 그
들에게 달려들었다. 화살은 계속해서 날아왔지만, 킬츠는 간단히 검을
사용하여 튕겨 내었고, 순식간에 병사들에게 육박하여 10여명을 베어버
렸다. 그리고 나머지는 조금 뒤에 달려온 뉴린젤에 의해 간단히 처리되
었다.
"미안하지만, 나와, 주위사람들의 목숨을 노리는 인간을 살려줄 수는
없다구."
단번에 목이 잘려나가던가, 복부에 치명상을 입어 사망했던가, 하여튼
대부분 즉사한 시체들을 바라보며 킬츠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한가하게 그곳에 서서 자신이 만들어놓은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
을 수는 없었다. 이미 이쪽상황을 눈치 챈 다른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
며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는 주황색의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있는 페이오드의 리플레이크 기사단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군.... 군대였나? 어느 나라의?"
"페이오드 말고 또 뭐가 있겠어! 저 주황색 갑옷은 페이오드왕국의 리
플레이크 기사단이라고!"
쥬크에 등에 타서는 달려오던 루디가 소리쳤다. 재빨리 킬츠와 뉴린젤
도 쥬크의 등에 올라탔고, 그러자 쥬크는 곧바로 병사들이 달려오는 반
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인간 세 명을 태웠음에도 불구하고, 쥬크
의 속력은 리플레이크 기사의 말보다 훨씬 빨랐다. 화살 몇 개가 이어
서 날아왔으나, 쥬크의 근처에 스치지도 못했다.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왼 페이오드왕국?"
킬츠가 의아해하며 말하자 뉴린젤이 간단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페이오드왕국이 남부자치도시연합을 공격해 온 것이다."
그리고는 조용히 있다가 잠시 후 다시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마도 북부로 지원군을 보낸 것을 노리고 쳐들어온 것 같군."
"엑! 얍삽한데."
킬츠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쥬크의 내달리는 속도가 어지나 빠른지,
이미 페이오드의 병사들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내리지 그래, 특히 여자. 너를 내 등에 태우고 싶지가 않
다."
"누구는 타고싶어서 탔는가. 개의 등에 타서 도망친다는 것은 가문의
수치다."
"무엇! 크으으...... 살려줬더니 못하는 소리가 없군."
그러자 마자 뉴린젤은 가볍게 쥬크의 등위에서 뛰어내렸고, 쥬크는 으
르렁거리며 뉴린젤을 쏘아보았다.
"다시는 태워 주나봐라!"
"누가 탈줄 알고."
점차 분위기가 험악해 졌지만, 더운 사막에서 한바탕 난리를 부린 후
였기 때문에 지친 뉴린젤이 먼저 말다툼을 포기했기 때문에 상황은 해
결되었다.
"페이오드는 잔혹한 재상이 국내의 여러 인사들을 내쫓고 독재를 펴고
있다던데,"
루디가 페이오드에서 일하다가 그 나라의 대 총관이자 재상인 사시드
에 의해 집과 재산을 잃고 쫓겨난 마인슈를 생각하며 말하였다.
"그래? 국왕은 어쩌고?"
킬츠가 물어보자 루디는 입가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국왕인 레이바크 3세는 병이 심해서 국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사시드가 감금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원래 사시드는 처음 부임했을 당시에는 평범했던 재상으로 무난하게
국정을 운용하였던 범재였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대 총관의 자리까지
맡으면서, 군사 권을 장악, 국내의 유력한 인물들을 국외로 추방시켜버
리며 홀로 독재를 펴나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자신의 사리사
욕이나 재물을 모으는 일엔 전혀 신경도 안 썼기 때문에 큰 국민들의
반항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제일 무서워....... 재물엔 관심도 없으면서 홀로 높은 자
리에 올라 국가를 주무르는 사람이......"
루디는 역시 사시드가 호감이 가지는 않는 듯 고개를 저으며 서쪽을
바라보았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페이오드왕국의 셋째 왕자님인 티엣타 왕자님
은 대단한 인품의 소유자라던데, 개인의 재산이나 패물들은 모조리 가
난한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고, 평민이라 업신여기지 않고 가금씩 시내를
돌며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좋은 왕자라는 평판이 자자해.
인기도 엄청나게 높고. 게다가 절정의 미남이래."
"나이가 몇인데?"
킬츠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자 루디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글세...... 올해로 17세라던가....."
"미소년으로 명칭을 바꿔야겠군."
"굳이 말하자면 미청년이지. 그건 그렇고, 원래 페이오드는 셋째왕자에
게 대지의 가호가 있다고 해서 다음 왕위를 가지게 되나봐. 그래서 국
민들의 기대가 무척 높다던데......"
킬츠일행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다. 텔
핀에서 편한 휴식을 취하고, 다음 식량을 보급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조
금은 문제였지만, 지식의 탑에서 얻어온 육포와 빵들은 아직 충분했다.
끝끝내 몸에 좋다며 말린 전갈을 싸준다는 것을 거절한 일행이었다.
그리고 약 세 달 후, 킬츠 일행은 무사히 파울드에 도착하게 된다. 하
지만, 그 사이에 페이오드의 재상, 사시드가 남부 자치도시연합의 점령
지에서 일으킨 잔인하고 끔찍한 만행들이 불러일으킨 엄청난 파문에 대
해서는, 아무리 킬츠가 소울아이의 달인이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