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84화 (84/166)

제 6장. -영광의 기사- (16)

"네? 또 여기에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옆에 서있던 두 명의 신관이 누워있던 카젯의 옆으로 들고있던 패러딘

나이트의 전용병기, 휴페리온과 여분의 식량을 내려놓고는 유유히 동굴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건......"

"휴페리온입니다. 카젯 님에겐 익숙하신 물건이지요."

과연 익숙하기는 한 물건이었다. 보통 검보다 약 1.5배는 길이가  길고

폭이 넓으며 무게는 대략 두 배 정도인 공포스런  대검. 흰 검날에 빛

이 반사되면 그지없이 아름다운 반사광을 내뿜는 이 무기를 카젯은  지

난 4년 동안 하루에 5천 번씩 휘두르며 수련을 했었던 것이었다.

"아, 이번 관문을 휴페리온을 가지고 하는 것인가 보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 무거운 검을 신관들이 굳이 낑낑대며 가져왔을 리

가 없을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가 카젯  님의 옆에서 관문의 진행을

도와드릴 것입니다."

남아있던 신관은 빙그레 웃으며 손에  들고있던 모래시계를 내보였다.

이 모래시계 안에 들어있는 모래가전부 아래로 내려오면 그것은  하루

가 지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카젯 님은 오늘 하루동안 뜻하신 방법으

로 휴페리온을 5000회 휘두르셔야 합니다. 찌르기도, 올려 베기도  내려

베기도 상관없습니다."

"내 맘대로 요? 그거 정말 쉬운 관문이군요."

지금까지의 관문들에 비교하면 그런 대로 쉽다고 할 수 있는  4차관문

의 통과 방법에 카젯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을 꿈틀거려  누워

있는 자신의 옆에 놓아진 휴페리온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카젯은 4년

간의 수련동안 하루에 기본으로 해야할 량인 휴페리온 5천 회 휘두르기

보다 대략 천 회 정도 더 많은 6천 번을 휘두르며 수련을 했었다. 익숙

해지면서부터 조금씩 횟수를 늘려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날 때마다 횟수는 5백 회씩 추가됩니다."

"............ !"

잠시 계산을 해보던 카젯의 얼굴에 곧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들기 시작

했다.

"그렇다면........."

"이번 관문도 한 달입니다. 즉 마지막 날에는 2만 번 정도 휴페리온을

휘둘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2만 번! 그럴 수가!"

카젯이 경악하며 몸을 움찔거렸다. 2만 회라면  평소수행의 네 배가되

는 량이었다. 물론 카젯이 이런 것까지 생각했을 리는 없겠지만, 이것은

계산해보면 이 것은 하루동안 약 4초에  한번씩 휘둘러야만 했다. 하루

내내.

"자, 모래시계는 벌써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관문은 시작된

것입니다. 우선 이 모래가 아래층으로 전부  떨어지기 전에 휴페리온은

5천 회 휘둘러야 합니다."

"잠깐! 난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데!"

"걱정 마세요. 오늘은 아직 23크락 이상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빙긋 웃으며 말하는 신관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는 카젯이었다.

지금 몸 상태도 엉망인데, 과연 하루에  500회씩 늘어나는 이번 휴페리

온 자유 휘두르기 관문을 마지막날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그

의 마음을 엄습해오고 있었다.

'이런........'

카젯  센트리얼. 18세. 키가 24세션이 넘는  이 훤칠한 키의 청년은 원

래 파울드의 어느 골목 안에 있는 작은 여관집의 막내로 부모에게 물려

받은 검은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잘  어울리는 어찌 보면 미남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남자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만 그렇지, 머리 속이 그 외모

에 따라주지를 않기 때문에 언제나 동료인 다운크람에게 핀잔을 받기만

하는 심각한 불운을 겪고 있었다. 물론 본인의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라

크게 개이 치는 않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가문의 부흥이나  애인의 구출이라는 원대(?)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번 패러딘 나이트에 참가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

만 동네에서 가장 빠르고 건강했기  때문에 센트리얼 가문에서 양자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을 때, 단지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승낙

을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종류에  상관없이 먹고 살 정도의

음식이라면 무엇이라도 상관없었고, 금전감각도 모자라, 부자가  되고싶

다는 생각 역시 품고있지 않았다. 단지, 그가 바라는 것은 이  패러딘나

이트 선발 수행 그 자체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몸을 움직이며 자신을 단련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힘

든 여관 일을 돕는  것도 즐거웠지만, 나중에 루벨을  만나고 나서부터

온 동네를 누비며 싸우며, 달리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사실을 깨 닳게

되었다. 강도가 높은 행동일수록  그는 더욱 큰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섭취한 에너지를 잔뜩 소모하며 격렬한 운동을, 그리고 물 흐

르듯 쏟아지는 땀방울들을 즐겼다. 움직인다는 것, 행동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카젯에게서는 하나의 훌륭한 유희였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아서 약간 애를 먹기도 했던 카

젯이었으나, 사실 그에게 있어서 휴페리온을  휘두르거나, 말을 타거나,

친구들과 대련하는 것은 너무도 즐겁고 보람있는  일이었다. 그 강도가

세 지면 세 질수록 더욱더 말이다.

"쳇..... 아직도 아프지만 뭐, 할 수 없지."

카젯은 약 1크락정도 누워있다가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

론 한 손에는 휴페리온을 들고있는 상태였다. 이미 그의 양손에 엄청난

굳은살을 배이게 한 무거운  대검. 그러나 그는 이곳의  그 누구보다도

이 무거운 친구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자만심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처음엔 혼자서 뛰어난 수련생  여

섯 명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던 세렌마저도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카젯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남들은  휴페리온은

수련했지만, 그는 휴페리온은 즐겼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더 신명이 나게 말이다.

"시작하시려고 요?"

"뭐... 그런 셈이죠. 오늘은 앞으로 오 천 번 휘두르면 되는 겁니까?"

재차 되묻는 카젯의 질문에 신관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네. 물론 한번에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카젯 님 마음대로  중간에

휴식을 취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중간에 쉬면  다시 검을 집어들기가  더 어려울 텐

데......."

"알아서 하시길 바랍니다."

무정한 신관의 대답에 카젯은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휴페리온을  휘

두르기 시작했다. 단지 뻣뻣하게 팔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무릎과 허리를 이용하여  그가 제일 자신 있는

대각선 베기를 양방향으로 번 갈아가며 휘둘렀다. 언뜻 보면 무척 힘들

어 보이는 방법이었으나 오히려 몸 전체를 사용하여 힘의 반동을  줄인

이 움직임이 사실은 가장 힘이 덜 드는  방법인 것이었다. 카젯은 지난

4년간 자연스럽게 그 것을 깨 닳고 있었다. 가장 힘이 덜 들며 몸의 힘

을 최대한 살려서 검에 전달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더욱 즐겁게 휴페

리온을 즐기기 위한 카젯의 몸이 터득해버린 비기였다.

"잘 오셨습니다. 나이트 네프일. 여러분의 지원이 우리에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남부자치도시연합의 지원군을 환영하는 겸해서 파울드에는 간단한  회

의가 열리었다. 참석자는 북부자치도시 연합의 자유기사 단장인 나이트

세텔과 혼의 용병단의 용병장 스와인, 총 참모장 마인슈, 그리고 킬츠를

대신하여 용병단의 대표로 참석한 천인장 크랭크가 있었다.

북부자치도시연합의 군사 권이  나이트길드에 양도되어있다는  사실은

숨기는 편이 낳았기 때문에 나이트길드  간부들은 참석하지 않고 있었

다. 만약 그 사실이 밝혀지는 날에는 드라킬스 전역에 있는 나이트길드

의 회원들의 생명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아무리 우방국이라도 그 정체를

숨기는 것이 안전했다. 물론 총 참모장 마인슈의 의견이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무슨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총 참모장 님의 뛰어난

전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서 드라킬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이트 네프일은 겸손하게 자신들을  낮추면서 총 참모장을  바라보았

다. 그도 익히 이 뛰어난 총 참모장의  전략 구상능력을 알고있었기 때

문에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 별 것 없어 보이는 유약한 학자풍의 사내를

대하면서도 결코 끝까지 예의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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