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영광의 기사- (15)
-사랑하는 세렌 오빠에게
오빠. 나 에리나야. 오빠 동생. 설마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오빠는 클라스라인의 어느 귀족가문에 양자로 들어갔다며,
그래서 지금은 패러딘 나이트 선발전에 참가하고 있고.
뒤늦게 말하는 거지만, 정말 축하 해.
오빠라면 반드시 멋진 패러딘 나이트가 될 수 있을 거야.
동생은 벌써 정령사가 되었는데, 설마 오빠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
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오빠의 벌점이 무려 '0' 점이라며?
그럼 걱정은 없겠네.
나는 지금 북부자치도시 연합의 도시인 파울드에 와있어.
이곳에서 쿠슬리 아저씨를 만났거든. 카름언니 아버지 있잖아.
그런데... 알고 있어? 카름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오빠가 마을을 떠난 뒤로 정말 여러 가지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
카름언니는 정말 안됐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킬츠오빠와 루디오빠가 무사하다는 거야.
그 둘은 벌써 여기 북부자치도시 연합에 취직을 했어.
킬츠 오빠는 벌써 용병단을 이끄는 사령관이 되었대.
대단하지않아?
역시 난 예전부터 킬츠 오빠의 재능을 알아봤다니까.
음..... 그런데, 나도 이곳에서 일을 하나 맡아보려고 해.
나는 정령 강림의 의식에서 조금 특이한 정령을 얻게 되었거든.
그 이름은 '케사라' 불의 속성을 가진 정령인데 말이야.
등급도 상급 정령이고 게다가 아주 희귀한 정령이래.
스피리스트 신관 님들의 말에 다르면 케사라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약 700년만의 일이래. 대단하지?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야전 특수 보조 어쩌고..... 하는 일을 맡게 됐
어.
월급도 상당해. 지금은 무료로 어느 좋은 고급여관에 묵고있지만,
1년 정도만 착실하게 모으면 집 한 채쯤 살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반드시 훌륭한 패러딘 나이트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마칠게. 그럼 안녕.
성의력 668년 2월 6일.
오빠의 귀여운 동생, 에리나 씀.
추신- 편지 늦게 보내서 미안. 그런데 답장 좀 보내 줘~~
"에.... 사나름 신관 님?"
"무슨 일이시죠?"
자신의 방에서 현재 최종관문을 겪고있는 수련생들의 지난 4년간의 성
적을 쭈욱 체크하고 있던 고위신관이자, 세렌의 담당신관이었던 사나름
은 누군가의 노크소리에 잠시 서류를 비켜두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아, 세튼 신관 님 아니십니까."
"네. 일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별로 상관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편지 한 통이 신전으로 찾아와서 말입
니다...."
신관 세튼은 사나름에게 예쁜 흰색의 봉투로 쌓여있는 손바닥만한 편
지 한 통을 내밀었다. 발신인은 파울드의 에리나라는 사람이었고, 수취
인은 물론 세렌이었다.
"세렌 님에게로 온 것 같군요."
"네. 그런데 지금 최종관문에 들어가 계신지라........."
신관 세튼은 난처하다는 듯 말했고, 신관 사나름은 편지를 받아서는
자신의 책상 서랍에 집어넣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지금은 세렌 님에게도 중요한 순간이니까, 이 편지는 관문이 끝
나고 나서 제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규정에도 최종 관문 중
에 있는 수련생에게 그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음, 알겠습니다.그럼 나중에 부탁드립니다."
"네. 물론입니다."
"그럼 생명의 빛의 축복이 신관 님의 머리 위에서 영원토록 뿌려지기
를....."
세튼은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사나름의 방에서 나갔다.
사나름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언젠가 세렌이 말했던 자신에게 동생이
하나 있고 그녀의 이름이 에리나라고 하는 이야기를 기억해 내었다. 수
련관 내에선 편지를 받는 것은 허용되나, 편지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끔 편지라도 왔으면 하고 씁쓸하게 웃던 모습이 사나름의 기
억 속에서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약 세 달만 편지가 일찍 왔어도 전해줄 수 있었으련만, 사나름
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서랍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역대 패러딘 나이트들 중에서 사상 최초일 벌점 0점을 기록하
고는 최종관문으로 들어간 전대미문의 주인공. 바로 그 세렌의 담당을
맡았던 사나름으로써는 요즘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만약
세렌이 이대로 최종관문을 통과하여 패러딘 나이트의 직위를 수여 받는
다면, 사나름으로써도 더 없는 기쁨이요, 영광인 것이었다.
'규정엔 어긋나지만..... 뭐, 한 관문이 끝나고 그 사이에 이동할 때 살
짝 건네줘서 읽어보게 하면 되겠지.'
사나름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뻐할 세렌의 얼굴을 생각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힘들기로 유명한 최종관문을, 이 편지를 읽음으
로써 더욱 기운을 내어 임할 수 있게 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사
나름은 그런 편지 한 통이 인간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그 동안의 경
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카젯은 흡족한 표정으로 상자를 바라보았다. 대체 며칠이 걸렸는지,
정확히 알 수 는 없지만, 그는 해냈던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모
래를 집어들어 상자 속에 가득 집어넣는 작업을.
초반엔 거의 3초에 한번 꼴로 왕복을 하여 모래를 채워 넣었고, 나중
엔 물 속에 잠수까지 하며 모래를 퍼내어 결국은 오직 육체의 힘을 통
해서만 이 힘든 관문을 통과한 것이었다.
카젯은 적어도 '근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라고 외치는 열
혈 주의자는 아니었으나, 매사에 특별히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주어진
일에 착실하기만 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발상의 전환이 약하다는 것인
데, 그 증거로써 첫 번째 관문에서는 뛰어난 육감으로 자신을 노리는
누군가의 느낌을 금새 알아채고는 한달 내내 단 두 번의 수면을 취할
정도로 막강한 체력을 과시하며 상대를 경계했다. 그리고 두 번째 관문
에서도 역시 날아드는 박쥐를 전부 해치우기 전까지는 식사도, 수면도
취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바로 눈앞의 것만 본다고 할 수 있겠지만,
도 다르게 본다면 주어진 일을 일단 순수하게 처리한다는 점에서는 높
이 평가 할만 했다. 개인의 다른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물론 다른 생각을 하기는 하냐고 물어보면 그로써 대답할 말은 없겠지
만.
"하하하.... 이번 관문도 통과다......... 커억! 으으으으........."
털썩.
상자에 가득 모래를 채우고 난 카젯은, 일단 관문통과의 기쁨은 제쳐
두고, 그 동안 무던히도 혹사당한 전신의 근육들의 갑작스런 대 반란에
시달리며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는 한동안 바닥에 누워있는 그 자세 그
대로 일어나지를 못했다.
"에구 삭신아...... 아무튼 통과했으니 좋군."
그러나 편안히 누워서 혼자만의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잠시, 이윽고 세
명의 신관이 동굴 안으로 들어와서는 한 달이 지났다는 소식을 알려주
는 것이었다.
"아슬아슬 했네...."
"음. 확실히 카젯 님은 3차 관문을 통과하셨습니다."
신관 중 하나가 상자에 차있는 모래에 대한 검사를 마치고는 활짝 웃
으며 카젯에게 축하의 미소를 보내었다. 그러나 이미 전신의 근육통으
로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카젯으로써는 함께 웃어줄 수 없는 것이 무
척 안타까웠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시는 군요."
"네, 근육통이 심각......."
"하지만 신성마법을 시전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규칙이니까요."
"............."
한순간, 왜 물어봤냐! 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던 카젯이었으나 고통이
너무 심각해서 소리를 지르면 몸이 울려 더욱 아플 것 같았기 때문에
카젯으로써는 생각을 많이 한 끝에 결국 참아낼 수 있었다.
"자, 그러면 바로 4차 관문에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