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울의 길-81화 (81/166)

제 6장. -영광의 기사- (13)

"루, 루디형!"

킬츠는 당황하며 루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설마 방금  전의 대화를

전부 들은 것은 아니었을까, 킬츠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불안감이 배

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루디는 태연하기만 했다.

"어, 킬츠. 왜 그래."

"아, 아니........"

태연한 루디의 반응에 킬츠는 아무래도  그가 방금 전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대륙 전체를 날려버릴지도 모른다는데, 태연할 사람

이 어디 있겠는가.그러나 루디는 그런 킬츠의 기대를 무시하며 이트라

이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방문 밖에

서 엿듣고 있었습니다."

"허억! 모두... 다?"

킬츠는 화들짝 놀라며 루디에게 물었고, 루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하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무엇인가, 거리낌이 있거나 결코 상대의 눈

을 회피하지 않는 당당한 웃음이었다.

"뭐, 대부분 들었지."

"이런......."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킬츠. 난 결코 너를,그리고  내 친구들

을 회피하지 않을 테니까."

루디는 다시 이트라이를 바라보며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  시

작했다.

"이트라이 님. 저도 대충은 알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대륙 전

체라는 그 반경범위를 들었을 때는 조금 놀랐지만 말입니다."

눈물을 닦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트라이에게,  루디는 단호하게 말했

다.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해서 소중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게 하

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버릴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생각 따위라니요! 가족들을 버리고 먼 타지로 몸을 옮긴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십니까?"

이트라이는 다시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자신은 모든 것을 희생하며 오

직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을 위해 이곳까지 떠나왔건만, 루디는 그런 이

트라이의 행동을 '무슨 따위' 라고 취급한 것이었다.

"글쎄요. 물론 이트라이  님은 고통스러우시겠지요.  하지만, 남아있는

가족들 역시 이트라이 님과 똑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고통스럽다는 사

실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루디의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이트라이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공포의 정령을  자극할 정도의 섬뜩한 두려움을

동반하며 말이다."

"아..... 아니..."

"이트라이 님은 가족들을 위해 집을  떠나셨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그

런 이트라이 님의 마음을  모릅니다. 물론 떠나는 이유를  말하고 나온

것을 아니겠지요?"

"................"

"그렇다면 남편 되시는 분의 마음은 어떨까요. 자신의 아내가 말도 없

이 어린 자식을 놔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것도 아무 말도 없이......"

"아아..........."

이트라이의 양 볼에 끊임없는  눈물의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기분만 생각  했던 것이었다. 자신이 고통받는  것으로 모든 것

이 해결되는 줄 착각하며.

"그리고 남겨진 아드님은 자라서 과연 어떤 슬픔과 고통을  느끼게 될

까요. 너의 어머니는 너를 낳자마자 집을  나가버렸다는 말을 들으면서

말입니다."

이트라이는 오열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루디는  가

차없이 신랄하게 말의  폭풍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이트라이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킬츠를 향한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설사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들이 과연 이트

라이 님이 떠나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할  가요? 결코 아닙니다. 그들

역시 이트라이 님을 보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슬픔에 끝없는 슬픔과 고

통을 느낄 것입니다. 이트라이 님은 아시나요. 떠나간 자보다 더욱 고통

스러운 남겨진 자의 슬픔과 고통을."

루디는 어렸을 때 언제나 활기차게 인사하며 즐겁게 마주하며  보내던

마을사람들과,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 같은 마을 장로와, 그리고  안타깝

게 세상을 떠난 카름과, 얼마 전 부질없이  목숨을 잃은 자신의 친구들

을 생각하며, 그 동안 편안한 얼굴과 무난한 성격으로 감추어왔던 쌓인

울분들을 폭발시키듯 토해내었다. 그는  결코 눈물을 터뜨리지  않았다.

단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소리칠 뿐이었다. 진정한 눈물은 하염없이 속

으로 흘려보내며.

"진정 그들을 위한다면, 같이 살아서 함께 있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이

트라이 님을 진정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리고 이트라이 님도

마찬가지라면, 서로가 떨어지는 것, 그것이 설사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

는 몰라도, 또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죽음보다 더욱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차라리 죽음의  위험이 있다해도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낳은 것입니다."

루디는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다는 것은 오히려 남을 더욱 고통받게 한다는 것을.

그리고 루디는 고개를 돌려 킬츠를 바라보았다. 그 동안 함께 여러 가

지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동료이자, 친구, 그리고 형제와도 같

은 그를 바라보며, 루디는 언젠 간 꼭  하고싶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

다.

"킬츠.... 난 네가 소중한 사람이 죽느니,  차라리 자신이 죽는 것이 더

낳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어.  하지만 그것은 너의 만

족일 뿐이야. 네가 진정 남을 위한다면, 너의 소중한 사람도 너를  희생

하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해. 물론 정도

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해. 서로 같이 죽는다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이왕이면 함께 살아 있는 것이 즐겁지 않겠니."

루디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러나 킬츠의 표정은 흔들리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이 생각했던, 그리고 행동했던 것들이, 사실은 자신의 만족

을 위한 것이었다니......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킬츠는

얼굴을 활짝 펴며 루디를 향해 웃어 보일 수 있었다.

"물론이야. 루디형. 나는 결코 죽어서  형에게 슬픔을 주지 않을  테니

까."

"바로 그거야. 그것이 정말로 나를  위하는 마음이야. 그리고 너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나 역시 결코 네게  슬픔을 주지 않을 테니

까."

루디의 얼굴에도 킬츠의 그 환한 미소가 스며드는 듯 했다.

"우리는 서로 잃을 것이 너무 적게 남아있어. 그러니까. 다시는 잃어서

는 안돼.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말이야."

0